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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금처럼 녹는 삶으로 여행 명례성지
자신이 발전했는지를 돌아보게 되는 한 해의 끝. 자아의 성장 대신 자아의 축소는 또 얼마나 값진지를 되묻는 건축이 있다. 낙동강 변 아름다운 마을 언덕, 새것이 소금처럼 녹아 옛것을 감싸며 순례자에게도 여행자에게도 감동을 주는 밀양의 명례성지가 그곳이다.

승효상 건축가가 마을과 옛 문화재 성당 뒤로 자연 배경처럼 건축한 신석복 마르코 기념 성당을 거니는 이제민 신부. 옛 성당과 새 성당 사이 공간은 야외 미사와 작은 공연이 가능하다. 지층의 높낮이를 따라 미로처럼 이어지는 길을 따라가면 천장에서 빛이 스며드는 제대와 기도 공간을 만나게 된다.
낙동강 지류가 마을을 둘러 흐르고 비옥한 논과 밭 너머로 김해와 진해의 두 산 능선이 아련히 보이는 아름답고 평화로운 마을 풍경. 저 멀리 유유히 흐르는 낙동강 너머로 펼쳐진 능선은 김해 봉화마을이고, 그 뒤를 감싸는 두 번째 능선은 진해 웅천이다. 조선시대, 이곳 밀양 명례리의 강변 언덕에 살면서 소금과 누룩 장사를 하며 남몰래 천주님을 믿은 신석복 마르코는 1866년 병인박해 때 웅천장에 갔다 돌아오는 길에 포졸들에게 체포됐다. 그를 구하기 위해 아내와 형제들이 황급히 돈을 준비해 달려왔지만 그는 “나를 위해 한 푼도 포졸들에게 주지 마라”고 하며 스스로 고난의 길을 택해 혹독한 형벌과 옥살이 끝에 교수형으로 순교했다.

신석복 마르코 복자의 출생지 바로 옆에 세운 명례성당은 경남 지역 최초의 천주교회 본당이다. 초대 주임이던 강성삼 신부는 김대건, 최양업 신부에 이어 한국의 세 번째 신부다.

좌우로 남녀 자리를 나누던 기둥과 옛 성모상, 14처 그림이 그대로 남아 있는 명례성당. 남자는 정문을, 여자는 쪽문을 이용해 출입했는데, 문을 열면 아름다운 수목의 절경이 펼쳐진다.
자신을 녹여 음식 맛을 내는 소금처럼
“음식에 소금을 넣으면 소금이 자기 맛을 죽이고 자기 존재가 사라지는 것으로 다른 재료가 더욱 풍성한 맛을 내도록 만들지요. 그런 작용이 마치 순교와 같습니다. 이곳 신석복 마르코 순교자의 생가 터는 사람들에게 이러한 소금의 영성을 깨우쳐주는 곳입니다. 자신의 행복만 추구하며 자기중심적으로 사는 요즘 세상에서 주변을 위해 자신을 녹이는 소금 같은 삶을 묵상해봅니다.” 신석복 마르코 복자(죽은 사람의 덕행과 신앙을 증거해 공경의 대상이 될 만한 사람을 교황청에서 지정해 높여 부르는 말)와 소금 이야기가 세상에 드러난 건 2006년 생가 터를 발견한 이제민 신부의 학자적 탐구심 덕분이었다. 이제민 신부는 1980년 오스트리아 그라츠에서 사제 서품을 받고 광주가톨릭대학교 교수, 함부르크·진영·반송 본당 주임신부를 역임했다. 진영성당에서 사목하며 그는 2006년 강 건넛마을까지 복자의 생가를 직접 찾아가보았다. 생가 터에는 소와 돼지를 키우는 축사가 들어서 있었다. 냄새가 고약한 축사 옆에는 1897년 경남 지역에 가장 처음으로 세운 한국천주교회 성당이 방치돼 있었다. 오래된 한옥 양식의 기와 지붕 성전이 파괴되자 1938년에 그 잔해를 사용해 같은 자리에 원형보다 작게 지은 건물이었다. 조선시대에 부자든 가난하든, 사대부든 백정이든 신분이 다른 이들이 다 같이 한곳에 앉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천국이었을 곳이다. “빈부귀천의 차이는 극복했으나 남녀는 달랐나 봅니다. 가운데 저 기둥을 중심으로 왼쪽이 남자, 오른쪽이 여자 자리로 나누어놓았어요. 보통 성당에선 오른쪽에 남자가 앉는데 유교적으로는 ‘남좌 여우’를 중요시한 것 같아요. 좌의정이 우의정보다 높지요. 제대의 성모상은 처음부터 있던 것인데 연구자들이 스페인의 화가 무리오의 작품 내용과 아주 비슷하다고 해요. 누가 조각했을까요? 아마 불상을 만드는 사람이 했을 것으로 추측합니다. 성모상 밑에 파란색 부분이 마치 불상에 있는 연좌대 같고 천사들이 하늘로 날아가는 모습은 언뜻 동자승처럼 보이기 때문입니다. 벽에 있는 예수 14처 그림에는 지금은 사용하지 않는 표기를 누군가 손으로 직접 썼어요. 하지만 안타깝게도 옛 성당에 대해 기억하거나 대를 이어온 사람이 없어요. 그래서 더욱 소중한 곳입니다.”

지형의 높낮이를 따라 설계한 새 성당의 모든 길은 낙동강 변의 아름다운 풍경을 지나 미사 공간인 제대를 향해 이어진다.

임옥상 조각가가 신석복 마르코 복자를 묵상하며 만든 조각 작품. 건축주는 가톨릭 신부, 건축가는 개신교 장로, 조각가는 불자인 명례성지는 소금 같은 존재와 삶의 의미를 세상에 전하고 싶은 세 사람의 합치와 협업으로 완성하고 있다.
후원회의 정성으로 느리게 짓는 성지
이제민 신부는 일평생 논밭일을 하며 살아온 교구의 신자들과 함께 후원회를 조성했다. 서울에서야 이내 많은 액수의 후원금이 모이기도 하지만, 이곳에서는 신자들의 소금 같은 마음이 모여 수년 뒤인 2011년에야 마침내 생가 터를 매입할 수 있었다. “어떤 분은 1만 원씩, 할머니들은 몇천 원을 신문지에 싸서 가져다주기도 하셨죠. 그렇게 4~5년 걸려 땅을 매입했는데 처음에는 기념 성당을 지으리라고는 생각지 못했어요. 방치되어 있던 옛 성당을 경상남도에 문화재로 승인받아 보수한 후 미사를 드리기 시작했습니다. 옛 성당에서 소금과 복음에 대해 이야기를 하다 보니 순례자들이 모여들었는데 성당이 작았어요. 그래서 천막을 치고 자리를 마련했다가 비가 오면 거두기를 반복했지요. 그러니까 힘들어서 새로운 기념 성당을 짓기로 한 것입니다.” 마침내 지난 5월 19일, 복자 신석복 마르코를 기리는 기념 성당 완공 봉헌식이 밀양시 명례성지에서 열렸다. 이제민 신부가 신석복 마르코 복자의 생가 터를 발견한 지 12년 만의 일이다. “건축가에게 원하는 조건이 다섯 가지 정도 있었어요. 첫째, 이 언덕의 능선을 그대로 살려주기를 바랐어요. 이곳은 마치 언덕 전체가 살아 움직이는 듯 아름답습니다. 그런데 보통은 언덕 위에 자신을 뽐내는 큰 성당을 지어요. 하지만 녹지 않는 소금 기둥에서 나를 소금처럼 녹게 해달라는 기도가 얼마나 나올 수 있을까요? 이 언덕에 올라오면 건축물은 녹아서 사라지는 듯한 성지가 되기를 바랐습니다.” 하늘이 올려다보이고 강이 내려다보이게, 평화로운 시골마을에 위압감을 주지 않아야 하는 조건도 있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문화재 성당이었다. “옛 문화재 성당 옆에 큰 성전이 들어서는 걸 상상해보세요. 옛것이 창고처럼 보이지 않을까요? 옛 성당이 초라해 보이지 않고 더 돋보이도록 하는 것이 우리가 상상하는 성지의 모습이었습니다.” 옛 성전은 잘 보전하고, 다섯 개 마을의 식수원으로 오랫동안 사용하던 물탱크에 이르는 부지에는 예수의 십자가 길을 뜻하는 14처를 조성하기로 했다. 언덕 위에서 마을 주민에게 생명과 같은 물을 공급해온 옛 물탱크는 위치도 모습도 설명하기 어려운 영적인 심상으로 다가온다. 자신의 건축보다 이 물탱크가 더 좋다고 했다는 승효상 건축가는 수명을 다한 옛 물탱크를 그대로 둔 채 빛이 드는 작은 구멍 아래 십자가와 제대를 배치했는데, 들어서는 순간 종교를 초월한 공간적 감동이 가슴 한편에 내려앉는다.

겨울 저녁 햇살이 내리는 새 성당 내부. 바깥의 오래된 팽나무를 보전하기 위해 애초 설계보다 미사 공간을 축소해 지었다. ⒸJongOh Kim

언덕 끝에서 다섯 부락의 식수를 모으던 마을의 물탱크. 장소와 주변의 관계성 때문에 나무 십자가 하나만 세웠는데도 감동을 주는 영성의 공간으로 변모했다.
땅의 혼을 따른 성서적 풍경
“이 건축의 제목은 성서적 풍경을 뜻하는 ‘비브리칼 랜드스케이프Biblical Landscape’입니다. 땅 자체가 원래 성스럽습니다. 땅은 아주 오랫동안 세월의 기록을 통해 만들어졌기 때문에 크리스찬 노버그 슐츠는 <장소의 혼>이라는 책에서 모든 땅에는 혼이 있다고 했어요. 그러니 장소가 지닌 혼을 발견하고 그 땅이 원하는 대로 만들어주는 것이 가장 좋은 건축입니다. 대개 그곳에 오래 살아온 주민이 스스로 그 땅의 힘을 빌려 지은 전통적 건축이 땅의 혼을 따른 좋은 건축이죠. 현대의 모더니즘을 겪으면서 전 세계에서 통용되는 국제주의 양식으로 건축이 변질되었어요. 명례성지에 있는 옛 성당은 성당용으로 만든 한옥입니다. 옛날 한옥을 고쳐서 성당으로 쓴 게 아니에요. 그러니 귀한 건축입니다. 오랜 세월 몇십 년간 그 자리에 있었으니 내 생각에 건축은 그거 하나만 있으면 되었어요. 모든 다른 시설은 그 한옥 성당을 위한 배경으로 존재합니다.” 명례성지의 건축을 맡은 승효상 건축가는 옛 성당의 배경이 되는 ‘지형을 설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기념 성당도 지형에 있는 축대를 설계한 것과 같다. 모든 건물의 높낮이가 모두 다른 것도 전체 건물이 땅에 밀착되도록 한 의도다. 성스러운 지형에 따라 지은 성지, 그래서 성서적 풍경이란 이름을 지닐 수 있는 것이다. 승효상 건축가는 건축에서 두 가지 측면이 가장 중요하다고 주장해왔다. 첫째, 공공적 가치다. 개인이 돈을 내서 짓는 건물이라도 공공성에 기반을 두어야 한다는 뜻이다. 두 번째는 소란한 시대에 사람들의 영성을 건드리는 건축의 기능이 중요하다. “건축에는 생리적 욕구를 해결하는 공간, 생활하는 공간, 생각하는 공간이 있어야 합니다. 옛날 우리 건축에는 문방, 정자, 사당 등 생각하는 공간이 있었는데 지금은 다 없어졌죠. 오늘날 비록 생각하지 않고 사는 민족의 시대가 되긴 했지만, 일상적 공간이라도 건축을 통해 생각하는 시대로 만들 수 있어요. 세 번째는 장소가 지닌 기억, 주변과의 관계, 장소가 위치한 까닭으로 주변에 영향을 주는 파급력이 아주 중요합니다. 그런 면에서 명례성지는 대단한 곳입니다. 장소적 차원에서 접근할 수 있는 중요한 프로젝트라서 ‘다른 누구보다 내가 해야 할 일이구나. 나를 기다리고 있던 일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자신을 만나러 가는 여행
명례성지는 현재 승효상 건축가가 구상한 마스터플랜에서 겨우 20% 정도만 완성되었다. 14처도 있어야 하고 사제관, 수녀원, 피정 센터, 방문자 숙소 등의 시설도 필요하다. 무엇보다 조경도 해야 한다. 앞으로 할 일이 한참 남았지만 후원금을 모금하면서 진행해야 하니 데드라인을 기약할 수 없다. “내가 평소 주장해온 말과 너무 합치가 되는 일이니 평생을 걸쳐 하겠다고 봉헌 미사 때 많은 분께 약속했습니다. 아직 20%밖에 완성되지 않았는데도 요즘 방문객이 많아졌다고 들었습니다. 저는 이곳에 ‘고독하러’ 오는 사람이 많았으면 합니다. 명례성지는 자기 자신을 보러 가는 곳이지 건축이나 시설을 보러 가는 곳이 아닙니다. 자기 자신을 만나러 가려면 당연히 침묵해야 합니다. 마음을 씻어내려면 떠들지 않는 게 좋고, 무리 지어 가기보다 조심조심하며 가는 것이 좋습니다.” 낙동강 너머로 보이는 봉화마을에는 승효상 건축가가 설계한 노무현 대통령 기념관이 건축 중이고, 인근 지역에는 15평짜리 아주 작은 교회인 하양교회를 설계했다. 그리고 조금 떨어진 숲속에는 명상을 위한 공간이라는 뜻의 사유원을 설계했다. 이곳은 개인 공간이기 때문에 일반에게 개방하지 않지만 명례성지, 봉화마을, 하양교회, 사유원과 경상도 지역의 영성 공간이던 통도사까지 합해 낙동강을 중심으로 새로운 영성의 건축 여행이 가능하다. 시골 풍경 뒤로 깊은 숲에 고요히, 너른 땅에 작게 그려지는 생각하는 공간의 지도. 이제민 신부와 승효상 건축가 외에도 오랜 기간 후원자로 건축주로 마치 소금처럼 자신의 시간과 노력을 녹여낸 많은 존재 덕분에 낙동강 유역의 땅은 의미 있는 건축을 품은 더욱 비옥한 환경이 되어 우리에게 생각하는 여행의 의미를 제안한다. 12월에 떠나 만나는 명례성지는 여행자가 종교를 뛰어넘어 자연과 나, 세상과 나의 관계에 대해 돌아보는 내적 풍경으로 이끈다. 나를 녹여 주변을 풍성하게 하는 삶, 자기중심적 관계 대신 위로하고 위안하고 다독이는 관계, 천천히 끝까지 켜켜이 인내하며 쌓아 올리는 모든 과정에 대한 존경이 성서적 풍경을 거니는 여행자의 마음에 겨울 오후 햇살처럼 낮고 차분하게 스며든다.
주소 경상남도 밀양시 하남읍 명례리 1122 문의 055-391-1205


건축가 승효상은 낡은 한옥 성당인 명례성당이 역사와 사건의 시간이 중첩되어 대단히 상징적이고 위엄 있는 풍모를 지니고 있다고 느꼈다. 따라서 이 작은 건축을 중심에 두고 다른 건축은 특별한 풍경을 만들되, 그 특별성이 성스러움으로 연결되도록 설계했다. 우선 전체 땅을 다스리기 위해 기존 필지를 이용해 예수의 십자가 길인 14처를 조성했다. 옛 성당을 지나 14처를 순례한 후 땅의 경계 부분에 있는 저수조에 이르면서 복자의 생가가 있던 언덕의 땅 전체를 종주하게 된다. 신축 기념 성당은 서측 경사지에 지어 마치 절벽 풍경의 일부처럼 보이지만, 내부는 빛과 어둠을 통해 영적인 긴장과 이완을 느끼게 했다.

글 김민정 | 사진 박찬우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18년 12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