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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 평론가 이용재 음식 비평, 한식이라는 밥상을 뒤엎다
매일같이 먹는 한식, 우리는 잘 알고 있을까? 이 질문에 단호하게 고개를 내젓는 음식 평론가가 있다. ‘제 돈 내고 먹은 음식’에 대한 글만 쓴다는 음식 평론가 이용재는 지금의 한식을 맛의 원리와 개념에 따라 조목조목 분석해 비판하고, 전통과 습관에 갇힌 한식의 현대화를 제안한다.


“아마도 당대 음식계에서 가장 논쟁적인 인물은 이 책의 저자 이용재일 것이다.” 특유의 미문으로 이름 높은 ‘글 쓰는 셰프’ 박찬일은 한식 비평서 <한식의 품격>의 추천사를 이렇게 시작한다. 음식 평론가 이용재는 스마트폰과 알파고의 시대에도 여전히 전통과 손맛, 정성을 강조하는 한국 음식과 식문화를 과학적 원리와 정확한 개념, 단단한 논리로 낱낱이 분해하고 직설적으로 비판한다. 건축학도이던 이용재는 미국 뉴욕의 한 건축사사무소에서 일하던 10여 년전부터 블로그(bluexmas.com)에 미국과 유럽의 음식, 직접 차려 먹는 밥에 대해 썼다. 그러다 한국으로 돌아와 본격적으로 음식 비평을 시작, 다양한 매체에 음식 관련한 글을 기고했고, 외식 문화 비평서 <외식의 품격>에 이어 한식 비평서 <한식의 품격>을 냈다. 한식의 문제점을 조목조목 짚고, ‘한식 현대화’라는 대안까지 제시한 이 책은 매일경제신문의 ‘2018년을 여는 베스트 북 50권’에 선정되었고, 이용재는 조선일보가 선정한 ‘올해의 국내 저자 10’ 중 한 명으로도 뽑혔다. 작년 한 해 가장 주목받은 소설 <82년생 김지영>을 쓴 조남주 작가의 평이 특히 흥미롭다. “요즘 <한식의 품격>을 읽으며 연신 동의와 탄식과 깨달음의 외마디 감탄사를 내뱉고 있다. 무엇보다 무지 재밌다. 최소 다섯 줄에 한 번씩은 빵빵 터진다.” ‘논쟁적 인물’ 음식 평론가 이용재를 만났다.

책의 저자로서 조남주 작가의 “빵빵 터진다”는 평은 어땠나요?
“비계 하면 돼지, 돼지 하면 비계다. 그런데 담백하다니?”라는 책 속 문장을 읽고 웃다 못해 아예 외웠다는 독자도 있었어요. 글의 의도를 특정하고 싶지는 않지만, 책에 대한 여러 반응 중 “웃긴다”는 이야기가 가장 인상적이었습니다. 다양한 방향으로 해석할 수 있도록 켜가 두터운 글을 쓰려 합니다.

“쉽게 구입할 수 있는 식재료 종류가 갈수록 줄어들고 있어요. 실질적으로 한식이라고 말할 수 있는 음식은 얼마나 남았나요? 장 보러 가면 사람들 장바구니를 유심히 보는데, 식재료를 사는 사람이 많지 않아요. 반조리나 인스턴트 식품을 사지요. 선택지가 점점 줄어드는 현실이 안타까운 겁니다. ”

우리 음식과 식문화의 문제를 직시하고 낱낱이 드러내는 글쓰기가 불편한 사람도 많을 텐데요.
음식에 대해 나쁜 평을 한다는 것 자체에 거부감을 느끼는 분도 있지요. 제가 사람들의 관심을 끌기 위해 일부러 고약한 평을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많을 겁니다. 왜 맛있고 좋은 음식에 대한 이야기는 안 하냐고들 하는데, 정해진 지면 안에서 문제의식을 뚜렷이 드러내기 위한 선택과 집중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미국에서 8년 정도 생활하며 그곳의 음식과 식문화에 익숙해 있다가 30대 중반에 돌아왔는데, 음식이 맛이 없는 거예요. 사람들의 보편적 느낌과 제 경험의 간극도 터무니 없이 컸지요. 왜그런지를 고민하다가 대중 음식점부터 파인 다이닝 레스토랑에 이르기까지 음식을 먹었을 때 드러나는 단점이 지극히 일관적이고 뚜렷하다는 결론이 나더군요.

일관적이고 뚜렷한 문제라면요?
기본인 맛의 원리와 개념에 대한 이해도가 낮습니다. 그러다 보니 식재료부터 음식을 완성하는 과정을 일관하는 문법과 논리가 없지요. 만드는 사람과 먹는 사람 모두 그렇습니다. 나서서 문제를 제기하는 사람조차 없었고요.


현대화, 한식의 지향점
그래서 <한식의 품격>의 부제는 ‘맛의 원리와 개념으로 쓰는 본격 한식 비평’이다. 이용재는 이 책을 쓰면서 음식 바깥의 문제를 의식적으로 배제하고 맛에 집중했다. 그동안 한식의 ‘맛’에 집중한 글이 얼마나 있었을까? 우리는 한식을 이야기할 때 습관처럼 어원과 역사, 손맛과 정성에 대해 다루어왔다. 가장 기본인 ‘맛’에 대한 이야기가 없었다는 사실 자체가 그에겐 아연하다. “외국, 특히 서양 요리의 기준으로 한국 음식의 세계를 재단한다”는 비판에는 “우리의 삶은 이미 서구화되어 있다”고 맞선다. “피자와 햄버거를 넘어 중국의 양꼬치, 베트남의 쌀국수가 동네 상권으로 파고들 만큼 세계의 음식이 서울을 찾아오는 현실에서 과연 서울 또는 한국의 음식이 세계로 그만큼 파고들고 있는가? 아니라면 무엇이 발목을 잡는지 생각해볼 일이다.” 지겹게 들어왔지만 그 방법에 대해선 누구 하나 속 시원한 답을 제시하지 못했던 ‘한식의 세계화’에 대한 이용재의 해법은 ‘한식의 현대화’. 이는 지금 한식의 문제와 더불어 <한식의 품격>의 내용을 이루는 또하나의 축이다.

한식의 현대화와 관련해 보통 ‘효율’을 이야기하는데, ‘품격’과 관련짓는 발상이 신선했습니다.
효율도 품격의 일부입니다. 음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맛이지만, 누가 어떻게 만드느냐의 문제도 그만큼 중요합니다. 할아버지가 미식가였어요. 할머니는 평소 먹는 밥상은 물론 잔치나 명절 때는 할아버지의 기준에 맞추기 위해 온종일 어두운 부엌에서 요리를 해야 했습니다. 어린 시절엔 맛있게 먹었지만, 이제 와 생각해보면 무척 불합리한 일이에요. 지금도 가끔 백반집에 가면 맛과 상관없이 부담스러운 기분이 듭니다. 가격에 비해 너무 많은 반찬이 나오고, 좁은 주방에서 50~60대 여성들이 어떻게 요리하는지가 음식을 통해 고스란히 보이거든요. 편한 마음으로 먹을 수가 없어요. 좋은 재료를 쓰고 조리법을 개선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그 이면에 깔려 있는 불합리한 가사 노동과 조리 노동의 문제를 고민하지 않고 한식의 품격을 논할 수는 없는 일입니다.

직접 요리를 하는 입장에서 바라본 한식은 어떤가요?
마음의 여유가 없을 때 선뜻 손대기 어려운 음식이기는 합니다. 직접 요리하는 건 평론가로서 탐구 과정이기도 한데, 그런 관점에서 한식의 문제는 노동력과 시간이 굉장히 많이 들어가는 음식이에요. 재료를 손질하고 갖은양념을 더해 만들어봐야 고작 반찬 한 가지가 될 뿐입니다. “한식을 먹지 말자” “처음부터 완전히 갈아엎자”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개선점을 충분히 찾을 수 있다는 거죠.

한식의 문제를 드러내는 데서 그치지 않고 구체적 대안까지 제시했어요.
음식 평론이 정착된 외국에선 음식 이야기만 하면 돼요. 하지만 한국엔 맛의 원리와 개념에 대한 공감대가 형성되지 않아 글을 쓰면서 기본 전제를 계속 깔아야 해요. “국물의 온도는 70℃를 넘기면 안 된다” “식사는 짜고 디저트는 달아야 한다” 같은 것들 말이지요. 과학책을 쓰는 저자가 “물은 100℃에서 끓는다”라는 이야기를 계속 써야 한다면 어떻겠어요? 누구도 한식의 지향점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기에 문제점을 이야기하면서 대안을 제시하는 일까지 해야 하는 거죠. 그러지 않으면 하늘에서 뚝 떨어진 이야기를 하는 것처럼 여길 테니까요.

한식의 현대화를 통해 우리 식생활은 어떻게 나아질 수 있을까요?
쉽게 구입할 수 있는 식재료 종류가 갈수록 줄어들고 있어요. 한식 자체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전엔 동네 밥집에서 쇠고기덮밥이라는 이름으로 일식 규동을 먹을 수 있었는데, 한식이 아니라는 이유로 없어진 지 오래지요. 한식 중 신선로가 있잖아요? 1980년대 요리책을 보면 신선로를 먹을 수 있는 식당에 대한 안내가 나와요. 요즘엔 비슷한 거라도 먹으려면 똠얌꿍을 먹으러 태국 음식점에 가야 하죠. 실질적으로 한식이라고 말할 수 있는 음식이 얼마나 남았나요? 합리적으로 한식을 현대화하면 요리가 편해지고, 다양한 재료와 새로운 조리법을 응용할 수 있을 겁니다. 버튼 하나만 누르면 시간 맞춰 쌀 종류에 따라 밥을 짓는 첨단 기술을 적용한 전기밥솥을 사용하면서 왜 다른 요리엔 그런 신기술을 적용하는 데 거부감을 보여야 할까요? 장 보러 가면 다른 사람들 장바구니를 유심히 보는데, 식재료를 사는 사람이 많지 않아요. 반조리나 인스턴트식품을 사죠. 나쁘다는 이야기가 아니에요. 선택지가 줄어드는 현실이 안타까운 거지요. 행복이 가득한 집이 되기 위해선 음식이, 식사 시간이 행복해야 하죠. 그러려면 주부에게 집중된 가사 노동을 분산해야 하고, 먹고 싶은 다양한 요리를 손쉽게 먹을 수 있어야 합니다. 그게 제가 생각하는 한식의 현대화입니다.

평소엔 어떤가요? 주변 사람들이 함께 갈 식당을 정하기 곤란할 것 같은데요?
일이나 친분으로 사람을 만날 땐 음식을 비평하는 뇌의 일부를 떼어서 냉장고에 넣어놓고 나옵니다.(웃음) 평가하는 목적으로 먹는 게 아니라면 큰 상관이 없어요. 그래서 제 돈 내고 먹지 않은 음식에 대해서는 글을 쓰지 않습니다. 정말 가까운 사람과의 식사 자리가 아니라면 맛없다는 이야기도 하지 않아요. 그런 사람과 함께 하는 식사는 저 역시 곤혹스러운 일이니까요. 디자인 연구자 박해천은 이용재가 “‘모더니스트’로서, 맛의 체계적 경험을 청사진으로 삼아 우리의 일상을 둘러싼 감각 경험 전반의 현대화를 추구한다”고 평했다. 좌고우면하지 않고 언제나 정면 돌파를 택하는 그의 직설을 불편하게 여기는 사람도 많지만, 점차 한식의 현대화라는 문제의식을 그와 함께하는 사람이 늘고 있다. 음식 평론가로서 이용재에게 우리 음식과 식문화는 한국 사회를 바라보는 또 다른 창이다. <한식의 품격>을 쓰는 동안 참고한 책으로 그는 서울대학교 공과대학 교수들이 공저한 <축적의 시간> 을 꼽았다. 한국은 축적을 위한 시간으로서 근현대를 제대로 거치지 못했고, 그로 인한 폐해를 사회 각 분야에서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는 내용. 평론가 이용재가 생각하는 한식의 문제도 이와 맞닿아 있다. 그가 번역한 <실버스푼>, 가정식에서 파인 다이닝까지 이탈리아 식문화를 집대성한 이 압도적 규모의 요리서 서문에는 이런 문장이 나온다. “이탈리아에서 식사는 중요한 일이다.” 전통과 역사, 손맛, 정성 등 추상적 가치와 식당의 세련된 인테리어와 고급 식기 외에 지금 우리에게 한식 자체는 얼마나 중요한 것일까? 그의 말처럼 행복이 가득한 집을 위해선 식사 시간이 즐거워야 하고, 누군가의 일방적 희생 없이 다양한 음식을 보다 간편하게 즐기기 위해서 한식은 개선의 여지가 충분하다. 우리가 음식 평론가 이용재의 직언직설에 귀 기울여야 하는 이유다.


이용재의 가정 한식 현대화 제안

1 오븐을 활용하라
오븐은 부분적으로 열을 가하는 가스레인지에 비해 공간 전체 를 데우기 때문에 효율적이고, 오래 끓이는 한식의 국이나 조림, 찜 등에 적합한 조리 도구다. 시간만 맞춰두면 계속 지켜보지 않아도 되니 부담을 덜어준다.

2 충분히 예열하라
가정에서 조리할 때 예열 과정을 충분히 거치지 않는 경우가 많 다. 팬 위의 기름이 충분히 가열되어 반짝거리고 연기가 나기 직전까지 예열한 후에 조리하면 시간을 줄일 수 있고, 채소와 고기 모두 훨씬 더 맛있게 요리할 수 있다.

3 참기름 대신 올리브유
올리브유는 튀김이나 부침용으로만 활용하기엔 고유의 향이 아깝다. 참기름과 들기름 대신 올리브유로 나물을 무쳐보면 어떨까? 상대적으로 맑은 느낌의 향이 제철 채소 고유의 쌉쌀한 맛을 살려줄 것이다.

글 정규영 기자 | 사진 이경옥 기자 | 스타일링 이승희(스타일링 하다) 촬영 협찬 청송문화관광재단 청송백자(054-873-7744)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18년 2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