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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큐멘터리 영화감독 문창용 카메라로 쓰는 만인보萬人譜
인도 카슈미르주 라다크의 작은 마을에 사는 동자승과 노승의 이야기를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 <다시 태어나도 우리>가 조용히 세계인의 가슴을 촉촉하게 적셨다. 지난 8년 동안 그들을 찍은 촬영 분량만 물경 8백여 시간. 다큐멘터리 감독 문창용은 까마득한 고산지대에선 영화 촬영보다 축구와 눈싸움이 더 힘들었다고 말한다.


세계의 지붕 히말라야산맥 해발 3500m 고원지대에 자리한 인도 카슈미르주 라다크Ladakh는 기후와 토양, 식생, 심지어 생존의 기초인 식량과 산소조차 부족한 척박하기 그지없는 곳이다. 수목이 자라지 못하는 산의 정상에는 태곳적 만년설이 쌓여 있고, 눈이 녹은 산자락은 붉은 흙을 드러내고 있다. 다만 설산의 눈석임물이 흘러내린 내를 따라 야크의 눈썹처럼 버드나무들이 자라고, 오래된 전통 마을이 펼쳐져 있다. 나는 영화 도입부의 풍경을 보며 “아, 라다크!” 하고 중얼거렸다. 그곳은 생태 운동가 헬레나 노르베리호지Helena Norberg-Hodge가 ‘오래된 미래’라고 명명한 곳이 아닌가? 자연은 정복의 대상이고, 인간의 본성은 이기적이어서 서로 경쟁할 수밖에 없다는 서구의 세계관을 지녀온 그녀가 자연과 사람, 사람과 사람이 살갑게 공존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한 라다크. 언어학자이던 그녀를 생태 환경 운동가로 변모시킨 그곳에서 영화는 시작한다.

<다시 태어나도 우리>라는 이름의 그 영화는 시애틀, 베를린, 모스크바 국제 영화제 대상을 비롯해 외국에서 열두 개의 상을, 국내에서 네 개의 상을 휩쓸었다. 대체 무엇이 인종과 국경을 넘어 사람들의 심금을 울리고, 그 작품이 만들어지기까지 어떤 노력이 깃들어 있는 것일까? 조류 전망대가 있는 김포의 한적한 카페에서 문창용 감독을 만났다. 어느 순간 훌쩍 나타난 그이의 실루엣은 마치 물사슴처럼 보였다. 군살 하나 없는 날렵한 몸매에 눈빛조차 초식동물처럼 선하게 빛났다. “그야말로 상복이 터졌습니다. 수상 소감을 말씀해주신다면?” “아직 기쁨을 제대로 즐기지 못하고 있습니다. 한편으로는 놀랍고, 한편으로는 삼가고 있습니다.” “이렇게 좋은 반응을 얻을 줄 예상하지 못하셨군요?” “네, 저는 TV 방송 프로그램을 만들던 사람인데 영화를 제대로 만들 수 있을까 걱정이 많았습니다.” 그는 KBS <놀라운 아시아>, MBC <화제집중>, EBS <다큐 프라임> <극한직업> 등 1백여 편의 TV 다큐멘터리를 만들어온 베테랑 프로듀서였다. “삼가고 있다는 말은 무슨 뜻인지요?” “다큐멘터리는 좋은 작품도 제대로 상영하기도 힘들고, 잘 알려지기도 힘듭니다. 거기에 비하면 저는 천운을 얻은 셈이지요. 사람들의 관심으로 거만해지거나 고집스러운 꼰대가 되지 않을까 삼가는 거지요.”

카메라를 내려놓으니 보이는 것들
스포일러가 되고 싶은 생각은 없지만 영화를 보지 못한 독자를 위해 <다시 태어나도 우리>의 줄거리를 간략히 소개한다. 이 영화의 감동은 줄거리를 안다고 해서 절대 훼손되지 않으리라는 믿음을 전제로 한다. 라다크의 승려이자 의사인 우르갼 릭젠은 자신보다 60년 어린 소년 파트마 앙뚜를 제자로 들인다. 그런데 소년은 자신이 전생에 티베트 캄의 사원에서 살았다는 이야기를 한다. 반신반의하던 차에 티베트에서 온 승려가 환생을 확인해주고, 앙뚜는 라다크의 사원에서 린포체(환생불)로 즉위하게 된다. 린포체란 달라이라마처럼 전생의 고승이 몸을 바꾸어 다시 태어난 사람을 말한다. 티베트 승려는 그의 소식을 캄의 사원에 전하고 제자들이 모시러 오게 하겠다며 떠난다. 하지만 앙뚜가 린포체가 된 지 4년이 되도록 아무도 찾아오지 않는다. 그는 사원에서 쫓겨나고 사람들은 그를 ‘가짜 린포체’라고 손가락질한다. 하지만 우르갼은 그를 자신의 암자에서 살뜰히 모신다. 음식을 해 먹이고, 얼굴을 씻기고, 옷을 빨아 입히고, 등하교를 돌보고, 함께 놀아준다. 앙뚜는 일반 소년과 다름없는 천진한 소년이다. 하지만 캄과 라다크에서 버려진 자신의 운명을 예감하고 방황한다. 스승은 그를 캄의 사원으로 데려가기 위해 두 달간의 여행을 준비한다. 두 사람은 캄이 내려다보이는 티베트 국경의 설산에 오르지만, 중국이 점령하고 있는 그곳을 넘을 수 없다. 한 사원에서 앙뚜에게 린포체 교육을 시켜주겠다는 연락이 오고, 스승과 제자는 그곳에서 작별 인사를 고한다. 우르갼은 앙뚜에게 열심히 공부해서 자신의 사원을 찾아가라고 당부하고, 앙뚜는 우르갼이 늙어서 아이처럼 되면 자기가 모시겠다고 말한다. 스승은 온 길을 되짚어 라다크로 향한다. 문 감독이 처음 영화 속 우르갼과 앙뚜를 만난 것은 2009년, 동양의학 다큐멘터리를 찍기 위해 라다크를 찾았을 때였다. 티베트 전통 의사 우르갼을 만났는데, 스승을 따라다니는 다섯 살짜리 동자승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다음 해 다시 라다크를 찾았을 때 스승과 동자승의 관계는 뒤바뀌어 있었다. 앙뚜가 린포체가 되면서 우르갼이 앙뚜의 시중을 들게 된 것이다. “다큐는 기다림의 미학이라고 하지만, 각본이 없으니 기다림이 그저 기다림으로 끝날 수도 있을 텐데요. 8년 동안 촬영하면서 가장 힘든 일은 무엇이었나요?”

“한동안 카메라를 내려놓았어요. 그저 산과 구름과 사람들을 보며 거닐었지요. 그랬더니 카메라를 들었을 때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이는 겁니다. 우르갼과 앙뚜와도 더 깊이 있는 대화를 나누게 되었어요. 영화가 깊이를 얻게 되었지요.

“앙뚜가 사원에서 쫓겨나면서 ‘가짜 린포체’라고 손가락질을 받을 때였습니다. 어느 날 현지 코디네이터가 마을 사람들의 말을 전했습니다. 우르갼이 한국 사람에게 어린 린포체를 팔아서 돈을 번다는 것이었습니다. 앙뚜는 방황하고 있었고, 나는 나대로 경제적으로 쪼들리고 있던 차에 이 말을 듣고 무척 괴로웠습니다. 밤늦게까지 라다크 전통 막걸리를 마시고 터벅터벅 걸어서 우르갼의 암자로 걸어갔습니다.” 마을 사람들의 냉대와 모함을 내색도 하지 않은 우르갼에게 무어라고 항의라도 하고 싶었지만 차마 술 냄새를 풍기며 암자로 들어갈 수는 없어 길가 너럭바위에 누워 울었다. 한동안 흐느끼다 문득 올려다본 하늘에는 별들이 아름답게 빛나고 있었다. 낮 동안 햇볕을 받은 바위는 따뜻했다. “나라는 사람의 고집 때문에 모두 힘들어하는구나. 그만 접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짐을 쌌어요?” “아뇨, 그랬으면 영화가 안 나왔겠죠. 한동안 카메라를 내려놓았어요. 그저 산과 구름과 사람들을 보며 거닐었지요. 그랬더니 카메라를 들었을 때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이는 겁니다. 우르갼과 앙뚜와도 더 깊이 있는 대화를 나누게 되었어요. 영화가 깊이를 얻게 되었지요.”

눈으로 덮인 산을 걸어 티베트 국경으로 향하는 앙뚜와 우르갼. 끝을 모르는 막막한 여정에서 두 사람은 늘 함께했다.

문창용 감독의 카메라 뷰파인더를 바라보는 앙뚜.

서로를 바라보며 함께 웃는 앙뚜와 우르갼. 나이가 일흔에 가까운 우르갼은 어린 앙뚜를 헌신적으로 돌보지만, 앙뚜는 ‘가짜 린포체’라고 손가락질하는 사람들의 시선에 괴로워하고 방황한다.

인종과 종교, 국적을 넘어
“<다시 태어나도 우리>의 어떤 점이 관객의 마음을 움직였다고 생각하나요?” “이 영화는 티베트 불교를 바탕으로 하고 있지만, 다른 종교를 믿는 사람들의 호응과 공감을 얻었어요. 독일에서는 영화 감상을 마친 베를린의 한 할머니가 돌아가신 아버지 생각이 나서 울었다며 고맙다고 하는 겁니다. 미국 시애틀에서는 한 할머니가 ‘나는 꽤 오래 살았고, 영화도 꽤 많이 봤지만 지금껏 본 중에서 최고의 영화’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두 할머니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가슴속에 봉인되었던 무언가가 해제되는 듯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관습과 문화의 차이는 있지만 사람마다 비슷한 기억의 통점, 그리움이 있어요.” 그가 처음에 국내외에서 만난 사람에게 라다크를 소재로 한 영화를 만든다고 이야기했을 때 한결같이 반응이 시큰둥했다고 한다. 왜 한국인인 당신이 라다크 사람 이야기를 하느냐고. 하지만 그의 생각은 달랐다. 사람과 이슈를 그 지역 사람만이 다루어야 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인종과 국경을 넘어설 수 있는 소통과 공감을 다루고 싶었다. 그는 종교보다 관계에 초점을 맞추었고 결국 그것이 주효한 셈이다. 영화 관계자들의 몰이해, 현지 사람들의 오해, 경제적 쪼들림, 어디로 갈지 모르는 이야기의 향방, 그 밖에도 어려움은 또 있었다고 한다. “축구하고 눈싸움이 정말 힘들었어요.” 카메라에 자연스럽게 담으려면 앙뚜와 친해져야 했단다. 앙뚜가 원할 때마다 축구와 눈싸움을 했다. 앙뚜는 그 고장에서 자란 아이지만 안 그래도 고산증에 허덕이는 그가 한바탕 어울려 놀고 나면 지칠 대로 지쳐서 촬영할 힘도 없었다는 것이다. 화면 속 앙뚜의 까르르거리는 천진한 웃음의 이편에 그의 거친 숨소리가 숨어 있던 거였다.

“각본이 없다지만, 각본처럼 짜임새가 있어요. 혹시 캄으로 떠나는 여정은 힌트를 준 것 아닌가요?” “전혀요. 앙뚜가 사원에서 쫓겨나고 린포체로서 정체성이 흔들리면서 어깃장을 놓을 때 우르갼이 생각한 겁니다. 교육을 위해서라도 캄으로 떠나야겠다고 말이죠.” 두 사람은 라다크의 산골짜기를 벗어나 도시로 떠난다. 바라나시와 보드가야와 델리를 거치면서 산골 소년 앙뚜의 눈이 트인다. 마치 석가가 어린 시절 동서남북 네 개의 문을 나서면서 나고, 늙고, 병들고, 죽는 괴로움을 보았다는 ‘사문유관四門遊觀’과 흡사하다. 앙뚜는 도시에서 달콤한 사탕 맛과 함께 구걸하는 아이들과 갠지스 강가에서 태워지는 주검도 본다. “앙뚜가 린포체로 대접받은 탓에 버릇이 없는 면도 다소 있었는데, 여행을 통해서 성장하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우르갼은 시종 헌신적인 모습을 보이는데요, 불교적 신념 체계 때문에 린포체인 앙뚜를 섬긴 것일까요, 아니면 인간에 대한 따뜻한 마음이 소년을 보살핀 것일까요?” “두 가지가 다 있겠지요. 우르갼이 가르친 다른 제자들도 있는데 옛날에는 엄격한 모습이었다고 해요. 그런데 앙뚜와는 동자승일 때부터 특별히 살가웠어요. 일방적으로 우르갼이 앙뚜를 보살핀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우르갼도 앙뚜로 인해 성장했을 겁니다. 관계는 일방적으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니까요.”


‘오래된 미래’와 ‘보다 나은 미래’ 사이에서
“ 눈보라 치는 산을 오르다가 국경을 넘지 못하고 소라고둥 나팔을 불다가 앙뚜가 흐느끼는 장면은 뭉클했습니다. 두 사람의 방황과 좌절의 근원인 현실을 상기시키는 상징적 모습이었습니다. 영화에서는 어떤 날 선 말도 없었지만 중국의 티베트 점령과 종교 탄압을 고스란히 웅변하고 있었습니다.” “티베트와 중국 사이의 정치적 갈등을 담으려고 했습니다. 달라이라마가 있는 다람살라는 마치 우리 일제강점기 때의 임시정부를 떠올리게 합니다. 그곳에 있는 사원에서는 날마다 고향에 가고 싶은 티베트 노인들이 모여서 기도를 하고 있지만 60년째 가지 못하고 있습니다. 나는 중국의 티베트 점령이 라다크의 동자승과 노승에게 미치는 나비효과를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티베트는 고유의 정부, 종교, 우편제도, 화폐가 있는 독립국가였지만 1950년대 중국 공산당 군대가 무력으로 점령했다. 14대 달라이라마 텐진 갸초Tenzin Gyazso는 어린 시절 설산을 넘어 다람살라에 망명한 이후 조국을 도와줄 정치 세력을 찾고 있지만 국제연합도, 강대국 정부도 눈감고 있다. 나는 사진작가 게일런 로웰이 펴낸 <달라이라마 나의 티베트>라는 책을 통해 우르갼과 앙뚜가 가지 못한 산 너머 티베트의 모습을 들추어보았다. 털모자를 쓰고 가죽 장화를 신고, 앞자락을 소문자 y 형태로 깊게 여미는 외투를 입은 사람들. 화려한 장식을 좋아하며 붉게 상기된 얼굴로 순박하게 웃는 사람들이 거기에 있었다. 사람뿐이랴. 빙하시대의 유산처럼 그곳의 자연에 적응한 야생동물들이 뛰어놀고 있었다. 드롱(야생 야크), 느얀(몸집 큰 티베트 양), 키앙(야생 당나귀), 고와(티베트 가젤), 나와(티베트 푸른 양), 우크파(독수리올빼미), 사지크(눈표범), 찬쿠(티베트 늑대). 모든 사람과 모든 동물은 안녕하신가? 우르갼과 앙뚜의 시야를 가린 눈보라 너머로 대신 물어보았다.

문창용 감독이 어머니에게 <다시 태어나도 우리>를 보여드리기 위해 극장에 모시고 갔더니 내내 코를 골며 주무셨다고 한다. “어찌 그럴 수가 있냐”고 묻자 “사과 장사를 하시는 어머니가 명절 대목 장사를 하느라 잠이 부족했을 것”이라고 답한다. 세계인을 울린 영화가 그의 어머니에게는 95분짜리 수면제가 된 셈이다.
“수상 소식을 우르갼과 앙뚜가 알고 있나요?” “그들에게 상은 큰 의미가 없을 겁니다. 완성된 영화도 아직 보지 못했습니다.” 문 감독은 지난해 6월, 두 사람을 한국에 초청하려 했지만 인도의 여권 발급 절차가 너무 더뎌서 성사되지 못했다. 2018년 초에 다시 초대할 예정이다. 나는 수행자인 그들이 대중 속에 드러나는 것에 대한 우려를 말했다. 문 감독 또한 그러한 우려를 잘 알고 있었다. “제가 받은 것에 대한 답례라고 생각해요. 극장에서 영화를 함께 보고, 우리 집에 초대해 조용히 한국식 식사를 대접할 생각입니다.” “라다크에 외부 문화가 들어오면서 많이 변화하고 있다던데, 어떻습니까?” “곳곳의 도로에 아스팔트가 깔리고 인심도 바뀌고 있습니다. 옛날에는 자식들을 먹이고 키우며 자급자족하는 것으로 충분했는데, 이제는 보다 나은 미래를 위해 교육이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예전에는 손님이 오면 그냥 재워줬지만 이제는 자식 교육을 위해 돈을 받아야 한다고 말합니다. 사기꾼도 생기고 빈부 격차도 생겨나고 있습니다.” 하지만 아직도 순박한 사람들이 남아 있다고 한다. “한번은 감자 심는 밭에서 소가 씨감자를 먹고 있는데 농부들이 그저 바라보고 있더군요. ‘땅에서 나고 자라는 것이 어찌 우리 겁니까? 같이 먹어야죠’ 하며 웃더군요.”

“촬영을 하면서 그 사람과 친구가 되기도 하고, 그 사람의 마음속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는 게 가장 좋습니다. 다양한 사람을 만날 수 있고, 내가 보고 듣고 느낀 것을 다른 사람에게 전할 수 있다는 것이 다큐멘터리의 매력입니다.”


버섯은 사람처럼, 사람은 버섯처럼
“다큐 감독이 된 계기는 무엇이었습니까?” “나는 사람 이야기를 좋아했습니다. 대학 때는 학교 신문기자를 했고, 졸업 후에는 다큐멘터리를 공부하러 일본으로 유학을 가려고 했습니다. 그러다가 <인간시대> PD 윤동혁 선생 아래서 조감독으로 일하게 되었습니다.” 당시 윤 선생은 버섯을 주제로 촬영하고 있었다. 사람 이야기가 아니라, 버섯 이야기를 담는 것은 지루하기 그지없었다. 빨리 피라고 스프레이로 물을 뿌렸다. 참다못해 그만두겠다고 하자 윤 선생이 말했다. “버섯 찍을 때는 사람처럼 찍고, 사람 찍을 때는 말 못 하는 버섯처럼 봐야 해.” “그 말씀 덕분에 몇 개월 더 버섯 촬영을 했죠. 지금도 그 말의 의미를 곱씹곤 합니다.” “준비하고 있는 다음 작품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벗어날 수 없는 산>이라는 작품입니다. 아파트 20층 높이쯤 되는 인도네시아 최대의 쓰레기 매립장에서 하루 열다섯 시간씩 플라스틱과 유리병을 줍는 아이들 이야기입니다. 이상해요. 그렇게 힘든 곳에 살면서도 낙천적이고 무척 밝아요. 마음을 빼앗겨버렸지요. 촬영보다 아이들과 노는 시간이 더 많아요.” “다큐멘터리의 매력은 무엇인가요?” “촬영을 하면서 그 사람과 친구가 되기도 하고, 그 사람의 마음속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는 게 가장 좋습니다. 부모나 친구에게도 털어놓지 못하는 이야기가 있잖아요. 그들이 보여주는 가장 감동스러운 모습의 첫 관객이 되는 즐거움이 있죠. 다양한 사람을 만날 수 있고, 내가 보고 듣고 느낀 것을 다른 사람에게 전할 수 있다는 것이 매력입니다.” “버섯 촬영으로 돌아갈 생각은 없으시군요?” “하하하, 아직까지는요. 사람에게 인독人毒도 있다고 하죠. 그때는 바뀔지도 모르죠.”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사람들이 재미없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이거 다큐 아냐?’ 하고 말하곤 합니다. 하지만 삶에서는 예능보다 다큐멘터리적 순간이 더 많습니다. 조금의 지루함을 감수하고 다큐멘터리 영화를 많이 보아주셨으면 합니다.” 사람을 좋아하는 다큐멘터리 영화감독을 만났다. 어떤 이는 “사람만이 희망”이라고 말하고, 어떤 이는 “사람만이 절망”이라고 말한다. 저이가 유독 사람 이야기에 천착하는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 그러나 나는 그 질문을 꿀꺽 삼켰다. 그이의 일련의 작업을 통해서 그 답을 알 수 있을 듯했기 때문이다. 고은 시인이 ‘만인보’를 통해서 이름 없는 사람들의 삶을 노래했다면, 문창용 감독은 아마도 카메라로 만인보를 쓰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글 반칠환(시인) 사진 박기호 담당 정규영 기자 촬영 협조 그레이코데(070-4184-8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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