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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이스 선 엄수정 대표 村스럽게 삽니다
물 한 방울 필요 없는 생태 화장실, 자연으로 몸을 씻는 비누, 빗소리가 반가워지는 레인 스피커, 한 울타리에서 교감하는 동물 가족…. 지난달 차세대 라이프스타일 크리에이터로 소개한 스페이스 선 엄수정 대표를 다시 만났다. 생태 공동체를 이끌며 다양한 체험 프로그램을 선보이고, 친환경 생활용품과 빗물 저장 장치, 생태 화장실 키트를 개발하는 등 자연과 더불어 사는 삶은 고요하면서도 옹골찼다.

충주 소태면 남한강 자락에 자리한 생태 공동체 스페이스 선. 나이와 능력, 국적에 상관없이 자신의 경험과 재능을 나누고, 자연과 교감하며 살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언제나 열려 있다. (왼쪽 앞부터) 해원 동물 농장의 마스코트 돼지 코코, 황소 순심이ㆍ효리 모녀, 김현덕 팀장, 박지애 팀장, 엄수정 대표, 강아지 막꼬와 감자, 잘생기고 늠름한 한라말 2세 현빈.
솔솔 부는 바람에 실려온 싱긋한 풀 내음, 졸졸졸 평화롭게 흐르는 시냇물, 왈칵 쏟아져 내릴 것 같은 별빛…. 우리가 기억하는 행복한 순간에는 대개 자연이 담겨 있다. 자연에 가장 가까이 다가가 있을 때 우리는 치유를 받고 충족감을 느낀다. 바로 몸과 마음, 자연을 연결하는 비타민 N(nature) 효과다. 지금 우리의 낮과 밤은 어떠한가? 전 세계 크고 작은 도시에 거주하는 인구가 이미 10년 전에 세계 인구의 절반을 넘어섰다. 우리의 삶이 더 많은 첨단기술로 채워질수록 자연적 균형을 이루기 위해 더 많은 ‘자연’이 필요하다. 남한강 줄기가 흐르는 충주시 소태면의 작은 마을. 한때는 산이었을 야트막한 언덕에 도시 청년이 하나둘 모였다. 부모님의 귀촌이 계기가 되어 도시에서 시골로 내려간 엄수정 대표는 흙, 바람, 공기라는 존재가 눈에 들어오고 그간 도시에서 살며 경험하지 못한 벅찬 감정을 느꼈다. 사람과 자연이 서로를 아프게 하지 않고 함께 살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고민했고, 그의 고민에 동참하는 사람이 하나둘 모여 작은 생태 공동체 ‘스페이스 선仙’이 탄생했다. 스페이스 선은 한자 그대로 사람(人)과 자연(山)이 공존하는 공간. 여섯 명의 청년과 동물 가족이 교감하며 지속 가능한 삶을 실천하고 있다.

화학비료나 농약 없이 자연 농법으로 재배한 밤나무는 9월 중순부터 밤 따기 체험을 할 수 있다.

촌스러운 하루 체험 프로그램에서는 황토방, 생태 화장실, 농장의 자연 농법, 마크로비오틱 밥상 등을 경험할 수 있다.

공기 온수기, 태양열 판 등 에너지를 적게 쓰는 방식을 많이 고민한다. 에너지 절약을 실천하기 위해 겨울에도 바닥 난방을 하지 않고 나뭇조각이나 곡식 껍질을 원료로 사용하는 벽난로를 설치했다.

소금 누룩으로 간한 두부구이, 나물장아찌, 물과 들깨만 넣고 볶은 연근으로 구성한 채식 밥상.

스페이스 선 별채. 워크 어웨이 프로그램을 신청한 외국인이 공동체 생활을 하기도 한다.

워크 어웨이 프로그램으로 공동체 생활을 하는 프랑스인 실비아. 직접 수확한 사과와 밤으로 애플파이, 밤 스콘을 구웠다.

땅기운, 햇살, 푸른 산세까지 자연의 에너지를 느끼며 사는 삶. 창밖으로 언제나 동물들이 뛰노는 모습이 펼쳐진다.
지구에게 듣다
야트막한 언덕을 오르니 벽돌로 지은 소담한 이층집과 단층집이 나란히 자리하고 안쪽으로 너른 들판이 펼쳐진다. “원래 밤나무밭이었어요. 부모님이 귀촌을 결정하고 지역을 알아보던 중 밤나무 숲 아래로 남한강이 바라보이는 풍경에 반해 이곳에 집을 지으셨죠. 그때 저는 뉴욕에서 살던 터라 사실 시골살이에 별로 관심이 없었어요. 부모님이 사시는 집이니 가끔 한국에 들어오면 왔다 갔다 하는 정도였죠. 그러다 어머니가 위중해지셨고, 뉴욕 생활을 접고 귀국하면서 서울과 충주를 오가다 2013년 완전히 정착했지요.” 처음에는 완전한 자신의 의지가 아니었기 때문에 답답하고, 때론 벗어나고 싶기도 했다. 그런데 농사를 지으며 한 해 두 해 살다 보니 왜 부모님이 이곳에서 살고 싶어 하셨는지 알겠더라. “몇 해 전 감자 농사를 크게 지었어요. 6월 말쯤 수확해야 하는데, 감자를 캐기로 한 날 갑자기 일이 생겼어요. 며칠 더 두면 감자가 더 커지니까 좋지 않겠냐며 자기 합리화를 하기도 했죠. 그러다 장마가 와서 하루 이틀 미뤄지고, 3주 뒤 감자를 캐려고 보니 반 정도는 썩어 있더라고요. 우리는 우리의 의지로 세상이 움직이는 줄 알지만, 사실 인간의 힘으로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는 걸 깨달았죠.”

자연의 존재에 대해, 당연한 듯 누리던 것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된 계기였다. 자연의 이치에서 겸손한 삶. 사람이 사람을 대하듯 자연을 대해야 한다는 의지는 동물 농장에서 오롯이 드러난다. 엄 대표는 구제역 파동으로 돼지들이 산 채로 땅속에 묻히는 광경을 보고 인간의 이기심에 희생당하는 이들에게 무엇을 해줄 수 있을까 고민하다 동물들과 한 울타리에서 친구처럼, 가족처럼 함께 지내기로 했다. 한라말 두 마리, 황소 한 마리, 양 세 마리, 유기견 몽이를 비롯해 사연 있는 동물을 하나둘 데려왔고 그들의 아픔을 달래주고자 풀 해解 원통할 원怨, ‘해원 동물 농장’이라고 이름을 붙였다. 미니 피그 코코와 레트리버 막꼬, 진돗개 감자가 들어오고, 한라말 부부와 황소 순심이는 새끼를 얻어 지금은 대가족이 되었다. 생태 체험을 위해 스페이스 선을 찾는 이들은 때때로 울타리 밖을 벗어난 활기찬 돼지 코코와 늠름한 말 현빈, 눈이 큰 황소 순심이를 마주치곤 한다.

노란색 벽지와 즐거움이 샘솟는 곳이라는 이름이 잘 어울리는 별채 거실. 커다란 테이블과 벽난로, 원단을 패치워크한 소파 등으로 소박하게 꾸몄다.

촌스러워도 괜찮아
농장에서는 어떠한 농약과 퇴비도 쓰지 않고 오직 흙, 햇볕, 빗물로만 농작물을 키우는 자연 농법을 실천한다. 화학비료를 쓰지 않으면 농작물은 못생기고 더디게 자라지만, 자연 에너지를 받아 더 단단하고 싱싱한 맛을 느낄 수 있다. 친환경 화장실 ‘생태 뒷간’의 배설물은 자연스레 거름이 되어 토양을 비옥하게 만들어준다. 동물 사료, 화장실, 거름에 모두 왕겨를 사용하는데, 마을에서 쌀을 도정하고 나오는 왕겨를 따로 모아 농장에서 수거한다. 농장에서는 빗물을 모아 농업용수와 생활용수 일부로 사용한다. 가장 자연에 가까운 물을 모아 사용하고 다시 자연에 돌려주는 자원의 가장 근원적 순환 해법이다. 기존 빗물 저장 장치의 경우 부피도 크고 외관상 보기도 좋지 않아 아예 빗물 저장 탱크를 자체 개발하기도 했다. ‘레인 스피커’는 물의 근원인 빗물을 떠올리며 물소리에 귀 기울이라는 뜻으로, 스피커 형태로 만든 빗물 저장 탱크다. 빗물을 2백 리터까지 저장할 수 있으며 모듈형으로 연결하거나 혹은 가로, 세로로 다양하게 배치할 수 있어 도시의 한정된 공간에서 활용하기 좋다. 특수 필터를 사용해 빗물에 섞인 이물질을 걸러내고 식수용 필터를 추가하면 식용으로 사용 가능하다.

또한 ‘노케미No-chemi 라이프’를 모토로 일상에서 쓰는 비누, 캔들, 방향제 등을 직접 만들어 사용한다. 촌스럽게도 자연 성분으로만 만든 천연 생활용품이다. 먹어도 될 만큼 안전한 비누를 만들겠다는 마음으로 GMO 오일 대신 건강하고 안전한 식물성 오일과 천연 재료만 사용하고, 동물성 원료는 물론 오랑우탄 서식지에 위해를 가하는 팜 오일도 사용하지 않는다. 예를 들어 촌스러운 주방 비누는 착한 미생물이 공존하는 EM 발효액과 식물성 오일을 섞어 28일간 저온 숙성해 만든 것. 일반 세제만큼 거품이 풍성하고 뽀드득 소리가 날 정도로 깨끗이 씻기며 유칼립투스 아로마 오일을 함유해 기분까지 맑아진다.

사실 지속 가능한 삶의 가치를 강조하지만, 모든 사람에게 이렇게 생태 공동체를 이루며 살라고 강요할 수는 없는 일. 스페이스 선에서는 생태적 삶을 체험하고 공감할 수 있도록 생태 체험 프로그램 ‘촌스러운 하루’를 진행한다. 농장 체험이나 천연 생활용품 만들기를 비롯해 빗물 재사용, 생태 화장실 이용, 말똥 연료 체험, 잿물 설거지, 화석 에너지 없이 먹거리 만들기 등의 과정을 통해 자연의 순환과 재생을 피부로 느끼고 받아들일 수 있다. 옛날 방식으로 화덕을 직접 만들어 불을 때고, 자신이 직접 텃밭에서 수확한 채소로 한 끼 식사를 만들어보며 잠시나마 자연과 교감하는 시간을 경험한다. 지금 당장 모든 것을 바꾸지 않아도 괜찮다. 친환경을 나와 상관없는 일, 실천하기 어려운 일이라고 여기는 사람들이 잠시나마 이곳에서 머물며 ‘자연이 참 좋은 것이구나’라고 느끼기만 해도 잇츠 오케이!

가을을 알리는 코스모스로 자연 꽃꽂이를!

비건을 위한 디저트 애플파이.

스페이스 선에서 만든 촌스러운 비누와 방향제 아로마 캔들. 대나무 등 재활용할 수 있는 용기를 사용하고, 불필요한 포장 대신 친환경 종이 포장지를 사용한다.

물이 필요 없는 생태 화장실. 왕겨를 부으면 발효되면서 천연 퇴비가 만들어진다. 이 퇴비를 농장 밭에 뿌리고 나무에 주어 질 좋은 농산물을 생산한다.

슬림하고 모듈화되어 있어 도시에서도 편하게 사용할 수 있는 빗물 저장 탱크, 레인 스피커. 서울시 빗물 재생 육성 사업에 선정되어 누구나 원하면 서울시의 지원을 받아 설치할 수 있다.
나를 찾는 삶, 현재를 사는 삶
스페이스 선에서는 10대부터 50대까지 다양한 연령층이 공동체 생활을 한다. 도시 생활과 틀에 박힌 스케줄로 쳇바퀴 돌듯 하는 생활을 벗어나 하고 싶은 일을 찾아서 자유롭게 하며 동물과 교감하는 생활 속에서 ‘배경’이나 ‘조연’이 아닌, 본래의 자신을 찾는 경험을 한다. “가족이 아닌 사람들이 공동체를 이루어 산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겠지요. 만약 정말 ‘여기에 뼈를 묻을 거야’라고 한다면 스스로도 부담이 되고 쉽게 지칠 거예요. 공동체 식구 중 10대 학생이 있어요. 대안학교를 다니던 친구인데, 학교가 없어져서 부모님의 허락을 받고 이곳으로 왔지요. 여기서는 건강한 생활을 영위할 수 있는 기본적인 것을 스스로 배워요. 명상, 음악과 미술 등 예술 분야 중 관심 있는 분야 한 가지, 나를 발전시킬 수 있는 외국어, 고전 읽기, 독서 토론 그리고 농사. 짬짬이 울력에도 참여하니 아마 이 친구는 어디에서 지내든 기본 먹거리는 스스로 키워 살 수 있을 거예요.”

공동체 생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지속 가능한 삶의 비전을 나누고 실천하는 일. 스페이스 선에서는 동물과 함께 사는 상생의 의미로 채식을 하는 것이 기본이다. 농사를 지으며 더 건강하게 먹고 싶은 욕심이 생겨서 마크로비오틱을 배웠다는 엄 대표는 껍질부터 뿌리까지 모두 식재료로 활용하는 전체식을 손님에게도 권한다. 간장, 된장, 고추장, 소금 누룩도 직접 만들어 쓴다. 시골에 와서 달라진 게 하나 있다면 ‘무데뽀’ 정신이다. 도시에서 무언가를 하려면 완벽하게 준비해야 한다는 생각에 준비만 하다 지치는 경우가 많았는데, 시골에 살아보니 일단 부딪쳐보게 되더란다.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배우는 것 역시 ‘자연스러운’ 이치 아닐까 싶다.

“도시에서 살 때는 다른 사람이 원하는 나의 모습이 되기 위해 쓸데없는 에너지를 쏟은 것 같아요. 못하는데도 아닌 척, 잘하는 척하며 스스로 나를 외면하는 시간이 많았는데, 여기 오니까 하루하루 온전히 저에게 집중할 수 있고, 실제로도 어제의 내가 오늘의 나와 다르고 조금씩 성장해간다는 걸 느껴요. 도시에서는 몸은 편했지만 마음의 여유가 없었는데, 이곳에서는 몸을 하루 종일 바쁘게 움직여도 마음은 여유롭죠. 보세요, 이렇게 식사 준비하는 데 몇 시간씩 걸려도 괜찮잖아요!” 스페이스 선에서는 오늘 중에 반드시 끝내야 하는 일이 없다. 영화사에서 근무하다 공동체 일원이 된 박지애 씨는 이곳에서 ‘준비하는 삶’이 아니라 ‘현재’를 살아가고 있음을 느낀단다. 농사를 짓고 동물을 돌보며 삶의 여정에서 생긴 생채기를 치유하는 사람들. 완벽하게 준비하지 않아도, 한꺼번에 다 하지 않아도 되는 삶. 결국 지속 가능한 삶은 자연과 환경을 복원하는 것과 동시에 우리 자신을 복원하는 일이기도 하다.

연못에서 거침없이 헤엄치는 레트리버 ‘막꼬’. 엄수정 대표의 동생이 여행을 가면서 일주일 정도 이곳에 맡겼는데, 다시 돌아가지 않으려 해서 이곳 동물 가족과 함께 살고 있다.

남한강이 바라보이는 지붕 위는 엄수정 대표가 가장 좋아하는 장소. 지붕 위에 설치한 화분은 관수 시스템이 일체화되어 아파트 베란다나 지붕 위에 설치해 녹화 벽을 만들기 좋다. 스페이스 선 체험 프로그램은 홈페이지(www.spaceseon.com), 이메일(spaceseon@gmail.com), 전화(070-8835-4253)로 신청할 수 있다.

글 이지현 기자 사진 박찬우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17년 10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