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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새로운 경험의 통로 우리는 어쩌면 모두 여행자
당연한 듯 접하는 일상과 사람과 사물도 낯선 곳으로 떠난 여행에서는 새로운 경험이 됩니다. 여행 문화가 성숙한 요즘, 가이드 뒤를 따라 잘 알려진 여행지에서 기념사진 몇 장 남긴 후 황급히 다음 장소로 향하는 것이 아닌, 그곳에서만 겪고 배울 수 있는 것을 찾아 떠나는 ‘경험 여행’이 해외여행의 대세로 떠오르는 이유겠지요. <행복>은 새로운 경험을 위한 여행지를 고민하는 분들을 위해 틈만 나면 어디론가 떠나지 않고는 못 배기는 여행 마니아들이 겪은 최고의 경험, 그곳에서만 배울 수 있는 교육 프로그램이나 원초적 자연을 체험할 수 있는 테마 여행지, 독특한 콘셉트와 아름다운 문장이 눈에 띄는 신간 여행서 등 솔깃한 여행 정보를 소개합니다.

안은경, ‘The Journey to the Recovery’, Archival Pigment Print, 50x70cm, 2016


누군가의 여행 후일담을 듣는 것만으로도 달뜨는 계절, 여행을 사랑하는 이들에게 ‘여행지에서 잊지 못할 경험’ 이야기를 부탁했다. 그 시간, 그 장소로 타임슬립하고 싶어지는 다섯 가지 색의 여행 이야기.


불편함을 참고, 부족함을 채우는 여행_노르웨이


여행이 ‘관광’이나 ‘휴양’과 뚜렷하게 구분되는 특징이 있는데, 바로 약간의 부족함을 채우는 과정과 그 불편함을 참고 적응해나가야 한다는 점이다. 아프리카나 미 서부의 황량한 사막에서 하는 캠핑은 넓은 사막과 쏟아지는 별 속에서 자연스럽게 삶과 존재에 대해 사색하게 만든다. 독일과 프랑스에서의 캠핑은 인생에서 진정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삶에서 우리가 놓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돌아보는 시간이 된다. 그런데 노르웨이에서의 캠핑은 다르다. 스위스 풍경을 ‘아우라aura’라고 한다면 노르웨이 풍경은 ‘푼크툼punctum(송곳이라는 의미. 롤랑 바르트는 푼크툼을 가리켜 ‘자신을 찌르고 자극을 주는 우연성’이라고 정의했다)’이라 할 수 있다. 특히 한밤에 너무나 적막해서 눈이 내리며 땅에 닿는 ‘사그락’ 소리마저 들릴 때 이 풍경은 나의 이성과 감정을 동시에 송곳처럼 찌른다.

예이랑에르피오르Geirangerfjord 위에 위치한 솔방Solvang 캠핑장은 스위스의 라우터브룬넨 Lauterbrunnen 캠핑장처럼 빙하가 수억 년에 걸쳐 깎아 만든 골짜기가 캠핑장 전체를 압도한다. 보통 이렇게 강렬한 산악 풍경은 삶과 존재, 인생을 넘어서 ‘경외감’을 느끼게 한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라우터브룬넨 캠핑장은 워낙 대규모인 데다 전 세계에서 몰려든 배낭여행자들의 함성과 노랫소리가 끊이지 않고 들려와 그러한 경외감은 일시적 감정일 뿐 금세 사그라들고 만다. 하지만 이곳 솔방 캠핑장엔 그야말로 아무도 없다. 경외감은 시간이 지나면서 무서움과 외로움을 동반한 채 내게 다가와 송곳처럼 나를 찌른다. 푼크툼에서 캠핑을 하며 보내는 하룻밤은 내가 인생에서 가치를 둔 것을 다시 생각하게 하고, 해·별·꿈·삶·사랑·존경·겸손·나눔 같은 잊고 있던 낱말들을 떠올리게 한다. 만약 누군가 몰가치적인 것에 매몰되어간다면 혼자 북유럽 캠핑 여행을 떠나라고 권하고 싶다. 부족함과 불편함을 참는 과정에서 부족함과 불편함은 자연에서 오는 경외감으로 채우며 자신에게 잊지 못할 커다란 자국을 남기기 위해서. 남기성(사진가, 여행 작가)


마드리드적인 밤_스페인


재작년에 혼자 스페인을 여행했다. 외톨이 여행은 수도 없이 해왔지만, 늘 그랬듯 새삼스레 외로웠다. 모두가 촘촘히 앉아 해산물을 먹던 보케리아 시장에서도, 하몽이 주렁주렁 매달린 세비야의 바에서도 나는 고독했다. 여기 대화를 나눌 친구 한 명만 있었어도! 쓸쓸한 기분으로 마드리드에서 여정을 마무리하던 어느 날 밤, 한 타파스 바를 찾았다. 홀의 모니터에서는 축구 경기가 펼쳐지고 있었다. 여기는 축구의 나라, 이 도시는 축구의 수도. 화면 속에는 모두가 열광하는 축구 리그 경기가 펼쳐지고 있었으나 문외한인 나의 눈에 녹색은 잔디요, 움직이는 것은 사람이었다. 하지만 모두의 시선은 화면에 가 있었고, 종업원들마저 바삐 서빙을 하면서도 모니터를 10초 간격으로 흘긋거리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화면을 유심히 보니 마드리드 팀의 경기였다. 그래서 이렇게들 열광적이군. 그때부터 나는 맥주 한 잔과 그 분위기에 덩달아 격앙되기 시작했다.

‘오늘만은 나도 팀 마드리드!’ 하고 속으로 선언하고–스포츠는 응원하는 편이 있어야 열 배는 더 재미있으니까– 마드리드 팀이 잘할 때마다 살며시 미소 짓고, 실책할 때마다 작게 한숨 쉬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나의 그 미세한 움직임을 모두 주목하기 시작했다. 동네 바에 혼자 찾아든 검은 머리 외국 여자가 마드리드 팀을 응원하고 있으니, 열혈 축구인들이 하나둘 다가오는 것이 아닌가. “어느 나라 사람이니?” “여행 중이니?” “축구 좋아하니?”라며 말을 걸고 영어가 짧은 사람은 번역기 애플리케이션까지 사용해 문장을 내밀었다. 또 누군가는 다음 축구 경기 일정까지 검색해서 보여줬다. 급기야 마드리드 팀이 우세해지자 종업원 한 명이 “공짜야!” 하고 윙크하며 맥주 한 잔을 내 테이블에 내려놓았다. 이게 무슨 일이람! 나의 축구인 코스프레가 이렇게까지 효과를 보다니. 그 밤을 떠올리면 나는 약간의 가책(실제 나는 가짜 팬이었기 때문에)을 느끼기도 하지만 대체로 몹시 흥겹고 유쾌하다. 여행지에선 특히 경계심이 심해져 타인과의 교류가 드문 내가 이국의 동네 바에서 함께 환호하며 축구를 봤다니 두고두고 신통할 일이다. 홍인혜(루나파크, 일러스트레이터)


꿈꿔온 집, 트리 하우스 _스웨덴



몇 년 전 아들과 함께 책을 보다 특이한 트리 하우스를 발견했다. 너무 가보고 싶다는 아들의 아우성에 자세히 들여다보니 사진 속 트리 하우스는 스웨덴 북부 숲속에 위치한 작은 호텔. 홈페이지를 찾아 예약은 했지만 그곳을 찾아가기까지가 이미 긴 여정이었다. 인천에서 헬싱키까지 가서 밤새 발트해를 가로지르는 타이태닉호만 한 큰 배(SILJA LINE)를 타고 스톡홀름에 도착, 다시 비행기를 타고 두 시간 정도 북쪽으로 이동한 후 자동차로 한참을 달려야만 스웨덴 하라스Harads의 숲 속 트리 호텔TREE HOTEL이 나타난다. 오두막집처럼 생긴 그곳에서 체크인한 후 또다시 소나무 숲길을 따라 수백 미터를 걸어 들어가니 드디어 우리의 진짜 트리 하우스가 나타났다! 그야말로 눈물이 글썽, 함성이 절로 나오는 순간이었다.

한국에서 이곳을 예약할 당시 거대한 새 둥지 형태의 집, 나무 속에 숨어버린 큐브 형태의 거울집 등 다양한 디자인이 있었는데, 초등학생인 아들은 고민도 없이 더유에프오THE UFO를 골랐다. 불시착한 UFO처럼 나무 위에 걸린 이 트리 하우스에서는 사다리가 주르륵 내려왔고, 조심조심 올라가보니 별자리 패턴의 침구가 있는 공간이 펼쳐졌다. 아들과 나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들어서자마자 곧바로 뒹굴기 시작했다. 저녁이 되어 랜턴을 손에 든 채 깜깜한 숲속을 헤치고 내려와 호스트 집으로 가니 따뜻한 촛불과 함께 순록 고기와 링곤베리 잼이 있는 ‘노르딕 식탁’이 준비되어 있었고, 호스트인 켄트린드발Kent Lindvall은 케이블을 이용해 친환경 트리 하우스를 지은 이야기를 식사 내내 풀어놓았다.

후두둑 빗소리에 잠이 깨어 작고 동그란 창밖으로 쏟아지는 빗줄기를 멍하니 바라보며 맞이한 아침. 원통으로 지은 핀란드식 사우나에서 달군 돌에 물을 부어가며 모처럼 힐링하고, 오후에는 인근 스토르포르센Storforsen 폭포의 계단식 절벽과 웅장한 물소리에 감탄하며 시간을 보냈다. 낯설고 신비한 자연의 아름다운 빛깔을 바라보며 걷고, 또 걷는 더없이 특별한 하루였다. 나무 위에 지은 UFO를 닮은 트리 하우스에서 좀 더 가까워진 듯한 하늘과 청정 자연의 바람 소리를 즐기며 여름에는 백야를, 겨울에는 오로라를 감상할 수 있는 곳. 마음만 먹으면 갈 수 있다고 하기에는 조금 먼 곳이지만 대자연의 한가운데에서 아이와 평생 잊을 수 없는 모험의 추억을 남기고 싶다면 꼭 도전해보시기를! 최성희(‘켈리타앤컴퍼니’ 대표)


여행, 그 또한 With or without you_프랑스


1996년 여름 8월 초 무렵. 나는 니스에서 어디론가 가는 열차를 타고 있었다. 아마 최종 목적지는 스페인 바르셀로나였던 것 같은데, 아무리 생각해도 그건 꽤나 먼 거리다. 고속 열차도 아니고 흔히 얘기하는 완행열차를 탔으니 심리적 거리는 더욱 멀었다. 전형적인 대학생 배낭여행자이던 나는 유레일 패스로 예산을 아껴가며 여행을 이어가던 중이었다. 열차에서 잠을 청하며 다른 도시로, 또 다른 도시로 이동하는 여행이 당연했던 것이다. 열차는 지중해를 바로 옆에 두고 달렸다. 하여 겉보기에는 무척 낭만적이었다. 차창 밖으로 에메랄드빛 지중해의 윤슬은 눈이 멀 만큼 반짝였다. 2등석 객차 안으로 새어 들어오는 햇빛은 다닥다닥 붙어 앉은 비슷한 또래의 여행자들 얼굴에 광선검 같은 줄기를 남겼다. 실상 나는 좀 불편했다. 승객들은 두 명씩 앉아야 할 좌석에 세 명씩 앉고, 통로에도 앉고, 팔걸이에도 걸터앉아 조금도 움직일 틈이 없었다. 그리고 무더웠다.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바람은 별로 와 닿지 않았으며, 체온은 상승하고 있었다. 낭만적이어야 할 순간이었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나는 지쳐만 갔다. 비슷한 심정이었을까, 탑승객은 대부분 침묵을 지켰고, 열차의 흔들림에 맞춰 고개만 끄덕였다.

코끝을 간질이는 햇살에도 무감해질 즈음, 정신이 몽롱해질 즈음 마법 같은 일이 일어났다. 어떤 녀석이 포터블 오디오를 켰는데, U2의 노래가 흘러나왔고 모두 따라 부르기 시작한 것이다. “위드 오어 위드아웃 유With or Without You 오- 오- 오- 오-” 순식간에 2등석 객차는 떼창의 열정으로 지중해의 더운 바람을 무찌를 기세로 차올랐다. 추임새도 넣고 환호성도 지르며 노랫소리는 점점 커졌다. 유럽 대륙의 남쪽 해안을 따라 달리는 그 완행열차에서. 위드 오어 위드아웃 유. 아직도 U2의 노래를 들을 때마다, 혼자 열차를 탈 때마다, 마치 테오 앙겔로풀로스Theo Angelopoulos의 영화처럼 마술을 부린 그 순간이 되돌이표처럼 귓가에 맴돈다. 허태우(<론리플래닛> 편집장)


두 번째 고향, 리스보아_포르투갈



한 문장 한 문장이 심장을 뛰게 한 책이 있다. 마치 누군가가 나의 마음을 읽고 완벽하게 정리해 써 내려간 글인 것처럼. 바로 파스칼 메르시어의 <리스본행 야간열차>이다. 마치 신화 속 엘프의 이름 같은 ‘그레고리우스’가 뭔가에 홀린 듯 ‘아마데우 프라두’를 찾아 리스본으로 떠나는 여행. 메르시어가 말하듯 나도 우리가 어떤 곳을 떠날 때 일부를 그곳에 남긴다고 믿는다. 우리의 일부는 추억과 함께 떠나온 그곳에 머무는 것이라고. 그래서 나의 일부를 기꺼이 리스본에 남기고 싶었다. 밤 비행기를 타고 도착한 리스본에 발을 딛고 숨을 들이마시는 순간, 마치 내가 전생을 그곳에서 보낸 듯 리스본이 통째로 몸과 마음에 착 감겼다. 에어비앤비에서 찾은 테주강 가의 너무나도 아름다운 숙소, 1909년에 지었다는 브라질리언 아르누보 스타일의 거대한 팰리스 ‘팔라세트 샤파리스 데이 헤이Palacete Chafariz D’El Rei’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강을 향해 뚫린 스테인드글라스, 붉은 꽃이 흐드러진 테라스, 방사형으로 물이 튀는 분수, 나선형 계단을 올라가면 나오는 아름다운 기도실, 1백 년은 족히 되어 보이는 진초록빛 가죽 소파. 나는 그곳에 나의 일부를 두고 돌아왔다.

아홉 개의 언덕으로 이루어진 도시라는 리스본의 비탈길을 걷다 목이 마르면, 그저 아무 벽에 기대어 ‘진지냐Ginjinha’라는 아름다운 이름의 체리주를 한 잔 들이켜면 된다. 달콤하게 진하게 그리고 독하게 리스본을 마시는 느낌. 1유로로 부릴수 있는 사치다. 리스본은 검소하고 사소하면서도 어딘지 슬픔이 가득한 숨 막히는 그 특유의 아름다움으로 여행객의 불안한 마음을 어루만진다. 마치 이곳이 너의 두 번째 고향이라 말하는 것만 같다. 우연히 마음을 사로잡은 엽서 속 사진을 보고 찾아간 프론테이라 후작 궁전 ‘팔라시우 두스 마르케즈스 드 프론테이라Palacio dos Marqueses de Fronteira’. 1670년에 지어 바로 오늘날까지 그 가문의 사람들이 살고 있다는 곳. 세월과 함께 그 성에 쌓여온 가문의 역사를 떠올리고 궁을 거닐며 멀리 두고 온 현실을 꿈인 것처럼 잊을 수 있었다. 화려한 역사 속에 멈춰 추억으로 살아가는 도시, 리스본. 덜컹이는 노란색 트램을 타고 출근하고, 역 앞 구멍가게에서 우산 모양 초콜릿을 사는 아이들을 만날 수 있는 곳, 그곳이 바로 리스본, ‘리스보아Lisboa’다. 김아린(‘비마이게스트’ 대표)

정리 유주희 기자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17년 7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