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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례 3_ 논현동 주택 겸 게스트 하우스 서울방학 낯선 어울림
한옥은 ‘한국인의 가옥’의 줄임말일 뿐, 전통 창호와 대청마루가 있는 집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1900년대 초기의 도시 한옥과 후기의 양옥 역시 한옥이다. 1970년대의 한국식 양옥을 개조해 만든 ‘서울방학’은 우리네 멋을 새로운 시선으로 바라보게 한다 .

이 집에서 가장 한국적 공간인 2인실 아티스트의 방. 
양옥에 흐르는 한국적 감성
논현동 주택가에 문을 연 ‘서울방학’. 건축 설계 사무소 바이아키 디자인 스튜디오(by-archi.com) 이병엽 대표의 집이자 외국인을 상대로 하는 게스트 하우스다.

“어린 시절 방학 때가 되면 할머니 댁으로 놀러 갔어요. 신기하게도 이 집을 처음 봤을 때 그때의 기억이 떠오르더군요. 시골에서 느끼던 감정을 이곳에서 다시 마주하니 가슴이 두근거렸지요. 그래서 서울방학이라는 이름을 붙였어요. 우리 가족에게도 의미가 있고, 게스트들이 이곳에서 편하게 쉬며 자신만의 방학을 즐기길 바라는 마음을 담았지요.”

서울에서도 마당이 있는 주택에서 살 수 있을까 고민한 그는 주택을 장만하면서 게스트 하우스를 떠올렸고, 3개월 가까이 집을 보러 다니다가 이곳을 만났다. 오랜 시간 사무실로 사용했기에 내부는 지저분했지만, 천장을 덮은 1970년대의 목재 루버가 그의 눈길을 끌었다. 기억 한편에 남아 있는 어린 시절의 풍경이 오버랩되는 집, 40년 세월이 켜켜이 묻어나는 집이었다. 집은 1970년대에 서울에 한창 들어서던 양옥의 전형적 모습 그대로였다. 외부 구조는 일본식 단독주택과 흡사하지만(양옥은 일본을 거쳐 전래했기에 전체 구조나 외관이 일본식 단독주택 모습과 같다), 내부는 그 시대에 유행하던 요소가 담겨 있다.

주방에서 바라본 거실 풍경. 두 공간의 천장 루버와 바닥 색상을 교차해서 통일함으로써 단조로움을 피했다. 
홍목으로 만든 천장과 벽면의 루버, 금속공예를 방불케 하는 수제 방범창. 독특하게도 2층 방에는 연귀 맞춤과 반턱 맞춤으로 제작한 전통 창문이 있다. 40년 전 집을 지을 때, 자신에게 익숙한 아름다운 부분 한 가지쯤은 들이고 싶었던 집주인의 바람이 아니었을까? 이병엽 대표는 1970년대 정서가 담긴 구옥을 그만의 스타일로 재해석했다. 가족의 생활 공간이 주를 이루는 1층은 거실과 주방의 천장과 바닥 색상을 교차 통일했다. 값싼 목재를 사용한 주방 천장의 루버가 심각하게 훼손돼 가릴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다. 주방 천장을 흰색으로 칠하고, 바닥은 거실 천장처럼 짙은 원목 마루를 까니 공간이 한층 넓어 보이고, 전과 다른 분위기로 바뀌었다. 그리고 가구를 하나 둘 채워 나가기 시작했다.

햇빛이 방 안에 깊숙이 들어오면 전통 창살의 그림자도 함께 드리워진다. 여백이 있는 공간이기에 그림자마저 훌륭한 장식 요소가 된다. 
“평소 건축설계를 할 때 다른 요소를 병치하는 걸 좋아하는 편입니다. 1970년대의 전형적 양옥과 동시대의 북유럽 스타일을 병치하면서 생겨난 긴장감이 집 안을 색다른 분위기로 연출해주지요.”


동시대를 지낸 두 문화의 만남
“과거에 머무르기도, 그렇다고 과거를 잊고 현재에 매달리기도 싫었습니다. 평소 건축 설계를 할 때 서로 다른 요소를 병치하는 걸 좋아하는 편이라 이번에도 제 방식대로 표현해보기로 했지요.” 그는 구옥 형태는 고수하면서도 내부에 북유럽 스타일을 가미했다. 1970년대의 대표적 양옥과 1960년대에 황금기를 보낸 북유럽 스타일. 동시대의 두 요소가 대치하는 데서 생겨난 긴장감이 집 안에 신비로운 분위기를 조성해준다. 베이지 컬러로 칠한 장식적 계단도 서로 다른 두 분위기를 잇는 가교 역할을 한다.

70년대 양옥에 북유럽 가구를 가미했다. 동시대의 두 스타일이 만나 기대 이상의 아름다움을 만들어냈다.
2층에는 게스트를 위해 꾸민 방이 있다. 설계할 때 가상의 인물을 상상하며 작업하는 그는 이번에도 방마다 서로 다른 사용자를 설정하고 거기에 어울리도록 꾸몄다. 1인실 작가의 방, 2인실 아티스트의 방, 2인실 건축가의 방. 방 이름을 이렇게 붙인 데는 나름대로 이유가 있다. 1인실에는 코너에 ㄱ자형 베이 창문이 있는데, 이를 보는 순간 창가에 걸터앉아 책을 읽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아티스트의 방은 이 집에서 가장 한국적 공간으로, 전통 창문이 있다. 창문에 어울리는 낮은 좌식 침대를 배치하니 여백의 미가 느껴진다. 정남향으로 낸 창을 통해 햇빛이 들어오면 빈 벽에 전통 창살의 그림자가 운치 있게 드리워진다. 수묵화나 민화 작품도 매치하니 그 느낌은 배가된다. 하지만 이 방의 결정적 한 수는 바닥에 깐 러그다. 이국적 분위기의 패턴이 한식 스타일과 대치하며 색다른 분위기를 자아낸다. 이것이 그가 말하는 이질적 요소가 주는 긴장감! 마지막 2인실인 건축가의 방은 앞서 두 방에 비해 공간이 평범하기에 의도적으로 콘셉추얼하게 꾸몄다. 건축가의 아틀리에라는 상황을 설정하고 블루 컬러로 칠한 뒤 빌라 사보아의 그림과 건축 전용 서적 등을 들여놓은 것.

서울방학에서 가장 한국적 공간은 연귀 맞춤과 반턱 맞춤으로 짠 전통 창이 있는 2층 아티스트의 방이다.
그는 한국적 아름다움으로 ‘적당함’을 꼽았다. 적당한 여백, 적당한 형태, 그리고 너무 정적이지도 동적이지도 않으면서 무엇이든 받아들이는 적당한 포용력. 서로 어울릴까 싶었던 한국적 미감과 북유럽 스타일이 어색한 듯 신선한 그림을 만들어낸 것도 바로 이 적당함 때문이 아닐까? 전통을 보존하는 일은 중요하다. 하지만 전통을 현재의 시선으로 재해석하는 일은 더 중요하다. 이것이야말로 우리의 아름다움을 온전히 이해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더 이상 전통이라는 틀 안에 우리 자신을 가두지 말자.

 거실 한쪽 코너에 전통 다구를 모아놓은 공간. 한국적 감성이 더욱 짙게 느껴진다. 

클래식 무드의 계단 난간은 벽면 루버보다 한 톤 밝게 페인트칠해 1970년대 한국식 양옥과 북유럽 스타일을 잇는 역할을 한다.

Interview
건축가 이병엽

“한국적 미감은 현재의 시선으로 보는 전통도 포함한다 ”




집이 곧 게스트 하우스인 셈이니 가족의 생활도 전과 많이 달라졌을 듯하다.
전에는 어머니가 종일 집에 혼자 계셔서 적적해하실 때가 많았다. 하지만 지금은 해외에서 온 젊은이들과 교감하면서 오히려 긍정적 에너지를 얻으신다. 나 역시 다양한 사람과 마주하면서 현재를 바라보는 시선이 더욱 폭넓어짐을 느꼈다. 물론 불편한 부분도 있지만 얼마든지 감수할 수 있다.

곳곳에 수묵화 느낌의 작품과 다구가 놓여 있던데?
계단과 1층 거실의 그림은 조동준 작가의 작품이다. 어머니가 작가에게 선물 받은 작품인데, 정통 수묵화는 아니지만 한국적 분위기가 잘 흘러나와서 공간과 조화를 이룬다. 다구는 평소 가족끼리 차를 즐겨 마시기에 갖추고 있던 것이다. 거실 한쪽에 소반과 함께 정돈해놓으니 꼭 갤러리에 온 듯한 분위기가 난다.

건축설계를 할 때 한국적 코드를 어떻게 풀어내는 편인가?
한국적이라는 이름으로 강요하듯 보여주고 싶지는 않다. 그저 우리 안에 흐르는 정서를 간접적으로 느낄 정도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거기에 어린 시절의 향수를 일깨워주는 요소 한두 가지면 충분하다.

건물 외관이 독특하게도 레몬빛이다. 1970년대 양옥과는 달라 보이는데?
건축 초기에는 적벽돌이었지만 이전 주인이 파벽돌을 붙인 뒤 지금의 컬러로 칠했다. 다시 적벽돌로 되돌릴까 생각했지만 매일 보다 보니 어느 순간에는 정이 들더라. 이 집의 역사이자 이야기라는 생각이 들자 억지로 지우기보다 함께 가기를 택했다. 적벽돌로 바꿨다면 그 또한 정형적 틀에 끼워 맞추는 일이 되었을 것이다.


글 이새미 기자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17년 5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