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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례 1_ 후암동 게스트 하우스 도깨비 코타지 날것, 미완의 아름다움
진지함과 숙연함만이 전통을 대하는 올바른 태도일까? 모던한 세대를 반영한 젊고 혁신적인, 때론 유머러스한 디자인 역시 당당히 한국적일 수 있다. 1970년대 다가구주택을 개조한 ‘도깨비 코타지’는 진정 잃지 말아야 할 한국의 아름다움이 무엇인지 말하고 있다.

스텐실과 나왕 합판, 벽지 등으로 1970년대 빈티지 무드를 구현했다. 시공은 튠플래닝(02-412-2866)에서 맡았다.

다가구주택이 품고 있는 1970년대 빈티지 코드
서울 한복판 남산 자락에 숨어 있는 동네, 다양한 삶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후암동 옛 골목에 자리한 ‘도깨비 코타지’는 외국인을 위한 렌털 하우스다. 2011년 겨울, 수직 구조로 설계한 판교 타운하우스의 개조스토리를 <행복>에 소개한 집주인 김지원 씨는 후암동 다가구주택을 개조하며 당시 공간 인테리어를 맡았던 튠플래닝을 다시 찾았다. 김석 소장은 1970년대 지은 것으로 추정하는 다가구주택을 보고 가장 먼저 ‘무명성’을 떠올렸단다. “집주인이 원한 것은 영국 빈티지 스타일이었어요. 하지만 외국인이 한국에서 경험하고 싶은 것은 한국만이 지니고 있는 색깔 아닐까요? 누가 지었는지, 얼마나 많은 사람이 살아왔는지 헤아릴 수 없는 다가구주택의 무명성, 익명성이야말로 1970~1980년대 한국의 시대상을 대표하는 빈티지 코드라고 생각했어요.” 대지 면적 38평, 계단 옆으로 지하 1층과 지상 2층, 옥탑이 복잡한 동선으로 구성된 다가구주택은 공간 구성이 무척 폐쇄적이었다. 밖에서 보면 마치 한옥처럼 닫혔지만 안으로는 열린 공간을 구현하는 것이 중요한 키워드. 구조를 보강하는 데 예산의 50% 이상을 사용했기에 인테리어 비용을 최소화하면서도 콘셉추얼한 공간을 완성하기 위해 전체적으로 날것, 미완의 느낌을 살리는 데 주력했다. 실제 세월의 풍파를 견디며 속살을 드러낸 테라스 외벽은 그 어떤 패턴보다 화려하고 풍부하며, 뭉툭하게 잘라낸 슬래브, 툭 튀어나온 철근, 타일을 떼었다 붙였다하며 생긴 상처 등은 거칠지만 묘한 매력을 풍긴다.

“편하게 쓰고 즐길 수 있는 분위기, 그것 또한 날것이 주는 묘미예요. 양반의 고급 문화보다는 서민 문화, 백자보다는 편안한 막사발을 표현하고 싶었고, 나왕 합판이나 벽지 등 저렴하면서도 유지ㆍ보수하기 손쉬운 마감재를 선택했죠. 합판은 못 하나 빼고 박더라도 흠집이 도드라지지 않아 오히려 관리하기 쉬워요.”

공간에 툭툭 짜 넣은 가구는 한옥을 지을 때 사용하는 짜 맞춤 기법으로, 가구를 제작하는 곳을 찾아 맡겼다. 천장이 낮아 가구와 아일랜드 등도 최대한 낮게 제작한 것이 특징이다. 일반 높이의 테이블과 의자라면 앉았을 때 창밖의 처마가 시선을 차단해 바깥 풍경을 제대로 즐길 수 없는 반면, 가구가 낮으니 빛과 풍경을 온전히 즐길 수 있다.

그린과 민트 컬러를 주조색으로 꾸민 이상의 방. 아치형 구조를 살리고 패턴 벽지와 골드 기둥 장식으로 클래식한 요소를 더했다.

디자인이나 볼륨이 도드라지지 않고 가장 비용이 적게 드는 방법을 고민하다 스텐실이 떠올랐고, 클래식한 문양을 벽과 문짝에 찍어 장식했다. 사진은 권진규의 방에 적용한 스텐실. 문과 벽에 어긋나게 스텐실을 찍어 재미를 더했다.

윤동주 방의 테라스는 디자이너와 집주인이 가장 좋아하는 공간. 덧붙이고 떼어낸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녹아 있다.

“외국인이 한국에서 경험하고 싶은 것은 ○○○ 스타일, ○○○ 디자인이 아닌 한국만이 지니고 있는 색깔 아닐까요? 나왕 합판이나 벽지 등 저렴하면서도 유지ㆍ보수하기 손쉬운 마감재를 선택하고 자개장, 조각보 등 진짜 전통과 흔적의 의미를 담은 스텐실을 더해 가장 가까운 데서 살아 숨 쉬던 서민의 정서를 표현했어요.”


예술가의 삶, 문화와 정신을 담다
지하 1층과 지상 2층, 옥탑으로 이뤄진 다가구주택은 지하는 집주인의 베이킹 작업실, 지상 1층은 외국인 전용 게스트 하우스, 2층과 옥탑은 렌털 하우스로 활용할 예정이다. 공간을 살펴보기에 앞서 영어로 이상, 윤동주, 권진규라고 적힌 문패가 눈에 띈다.

“전통이라는 것의 형태적 면모를 그대로 재현하기보다는 문화나 정신을 담고 싶었어요. 집주인과 콘셉트를 의논할 때 이상, 윤동주, 권진규 등 1920년대를 살았던 예술가들의 이야기가 나왔고, 예술이라는 공통분모 아래 처절하게, 진정성 있게 작업한 세 사람의 이야기를 공간에 담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죠.”

놀기 좋아하고 한량 기질이 있던 ‘이상’의 방은 그린과 민트 컬러를 주조색으로 하고 골드 소재로 포인트를 주었다. 침실 한쪽 벽에 아치형 구조를 살리고 클래식한 패턴 벽지를 발라 1920년대 살롱 분위기를 완성했다. 나란히 자리한 ‘윤동주’의 방은 빛과 어둠이 공존한다. 침실 옆 작은 테라스는 집주인과 디자이너가 가장 좋아하는 공간으로 세월의 흔적을 고스란히 품고 있는 외벽이 공간에 운치를 더해준다. 2층과 옥탑으로 구성한 ‘권진규’의 방은 그가 빚은 테라코타 작품처럼 손맛이 느껴지는 공간으로 완성했다. 오렌지와 붉은 벽돌색을 포인트 컬러로 적용하고 발크로맷을 나이테 문양으로 가공해 계단 마감재로 사용했다. 원래 일곱 가구가 살던 집을 세 가구로 줄이고, 각방의 성격을 달리하다 보니 통일감을 주는 방식으로 스텐실을 적용했다. “스텐실은 흔적이에요. 빈티지를 구현하기 위해 지금 똑같이 만든다고 해도 진짜 그 시대의 것은 아니니, 가짜면 가짜답게 흔적만으로 존재하라는 의미를 담았죠. 권진규의 방은 문과 벽에 문양을 어긋나게 찍어 재미를 줬어요.

현관 입구에 들어서면 중문과 복도, 방으로 들어서는 문까지 어디가 벽이고 어디가 문인지 헷갈리는데, 이를 통해 현실과 가상 그리고 뒤틀린 시대를 경험할 수 있지요.” 공간 곳곳의 전통 원단과 자개 장식도 돋보인다. 자개 문갑을 구해 문짝만 벽에 부조처럼 연출하거나 천장에 몰딩처럼 붙이는 등 숨은 데커레이션을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장부 맞춤 기법으로 투박하게 제작한 벤치는 입식으로 쓰면 의자가, 좌식으로 쓰면 테이블이 된다. 용도에 딱 맞춘 집이라기보다는 다양하게 활용할 수 있는 여지를 주는 집임을 설명하는 대목이다. 지금 사람들이 추구하는 것은 단순한 과거의 향수가 아니다. 무작정 오래된 것을 고집하기보다 그것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것에 더 큰 관심을 보인다. 1920년대 예술가의 치열한 삶을 담은 문화적 코드와 1970년대 서민 문화의 투박한 정서를 담은 도깨비 코타지. 실용적 쓰임새와 시대적 감성의 절충이야말로 한국 스타일의 새로운 방향성을 제시하기에 충분하다.

자개 문갑의 문짝을 벽에 그림처럼 장식한 아이디어가 재미있다.

빛과 어둠이 교차하는 콘트라스트를 테마로 한 윤동주의 방. 검은 벽지로 마감한 벽에 전통 조각보를 걸어 한국의 절제되고 단아한 미감을 완성했다.

권진규의 방은 복층으로 구성했다. 발크로맷으로 마감한 계단에도 스텐실을 적용. 좌식과 입식의 중간 느낌을 살리기 위해 계단 위에 방석을 깔아 소파로 사용한다.

경사지에 비뚤빼뚤 자리한 다가구주택이 1970년대 감성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Interview 공간 디자이너 김석

“백자보다는 막사발, 푸근한 무명성이 주는 미학”

동네, 지역 환경과의 연결성이 중요했을 것 같은데, 이 동네에 처음 와보고 어떤 인상을 받았나?
오르막 길, 좁은 골목에 노후한 건물이 얼기설기 붙어 있는 모습이 정겹기도 하면서 약간은 삭막한 느낌도 들었다. 집들이 붙어 있다 보니 오히려 더 폐쇄적이었는데, 크게 구조를 바꿀 수 없다면 공간 안에서라도 개방감을 느끼게 하고 싶었다. 덧댄 마감재와 슬래브, 처마 등을 덜어내는 작업에 많은 시간을 투자했다.

오래된 주택을 레노베이션할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점은?
공간 재생에서 가장 중요한 건 플렉서블flexible한 공간을 만드는 것. 가변성과 융통성이 있어야 그 공간의 생명력도 오래가기 때문이다. 요즘 회자되는 재생 공간들을 보면 분위기만, 스타일만 얘기하는 것 같아 안타까울 때가 많다. 마감이 덜 된 것 같은 느낌을 건축주가 받아들이기 쉽지 않았을 것 같다. 1920년대, 1970년대 빈티지를 받아들였듯, 앞으로의 세월의 흔적도 남기라는 의미에서 외부 계단참 바닥을 하얗게 마감했는데, 관리를 염려해 고민 중이다. 주거는 유지, 관리, 실용성을 늘 염두에 두어야 한다는 걸 매 순간 느낀다. 튠플래닝에서 생각하는 한국적 모던함은 어떤 것인지 궁금하다. 문화의 다양성과 공존, 그로 인한 어정쩡함! 좋은 말로는 융통성.

어떤 디자인이 좋은 디자인이라고 생각하나?
필요하지 않을 때는 눈에 띄지 않지만, 문득 눈에 띄었을 때 감동받는 디자인. 사용자가 무언가를 하려고 할 때, 목적이 생길 때 그 의도를 비로소 알아차릴 수 있는 디자인. 앉았을 때 바라보이는 풍경, 그로 인한 의자 높이, 천장의 숨은 자개 장식 등이 그것이다.



글 이지현 기자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17년 5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