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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천히 세월을 견뎌낸 삶애농장 친환경 인삼
척박한 산속에서 자라는 산삼처럼 인삼도 땅 위에서 스스로 버틸 수 있는 근성이 있다고 믿는 농부가 있다. 충남 예산군에 위치한 삶애농장의 박은서 대표 이야기다. 그는 인삼의 자생력을 믿으며 농약과 화학비료를 사용하지 않는다. 오로지 자연 농법으로만 건강한 인삼을 키운다.

농약을 사용하지 않고 자연 농법으로 인삼을 키우는 박은서 대표와 인삼・홍삼으로 색다른 여름 보양식을 선보인 이경호 셰프.
인삼밭을 지키는 파수꾼
분명 귀하디귀한 인삼을 키우는 농가라고 했다. 서울에서 세 시간 남짓 달려 도착한 삶애농장 인삼밭의 첫인상은 당황스럽게도 복잡하고 어수선했다. 일반적으로 깨끗하게 잘 정돈된 인삼밭과 달리 이곳은 줄지어 설치된 차광막 사이로 잡초가 무성하게 자라 전혀 관리 하지 않는 인삼밭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그 모습을 보고 나니 삶애농장에서 도대체 어떤 인삼이 어떻게 자라는지 더욱 궁금해졌다.

평범한 회사원이던 박은서 대표가 고향인 예산군으로 돌아와 인삼 재배에 뛰어든 건 2001년부터다. 금산에서 온 농부에게 인삼 재배법을 배운 것이 시작이었다. 그런데 한두 해가 지날수록 각종 농약을 뿌린 인삼밭에서 자란 인삼이 과연 우리 몸에 이로울까 의문이 들었다.

“병충해를 예방하는 살충제, 살균제, 항생제 등의 농약을 인삼밭에 뿌리는 것이 인삼의 자생력을 저해할뿐더러 결국 사람에게도 해를 끼치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 이후로 그동안 배워온 관행 농법을 과감히 접었어요. 앞으로 어떻게 농사를 지으면 좋을까 고민하고 고민한 끝에 농약을 사용하지 않기로 단호하게 결심했습니다. 그리고 인삼과 사람을 모두 구할 수 있는 자연 농법을 선택했습니다.”

농약을 사용하지 않고 인삼밭을 관리하면 채 1년도 안 돼 심은 삼을 모두 잃을 것이라는 주변의 만류에도 박은서 대표는 2006년부터 3천 평이나 되는 인삼밭을 자연 농법으로 관리하기 시작했다. 농약 사용을 점점 줄여나가면서 신기한 일도 일어났다. 독한 농약 때문에 인삼밭에서 자취를 감추었던 반딧불이를 비롯해 다양한 곤충이 다시 나타나기 시작한 것. 그렇게 자연이 살아나는 모습을 보면서 파수꾼처럼 인삼밭을 돌보기 시작한지 올해로 어느덧 9년째다.

7월이 되면 열리는 인삼 열매. 일반 농가에서는 뿌리에 영양분을 집중 공급하기 위해 인삼 열매를 제거하지만 이곳은 그대로 둔다.
6년의 기다림, 작지만 향이 진한 인삼
일반적으로 인삼은 6년을 키운다. 한 해 농사로 결실을 맺는 작물이 아니기에 인삼 농사는 지구력이 필요한 마라톤 경기와도 같다. 그 과정을 설명하면 이러하다. 녹음이 짙어가는 7월이 되면 인삼은 붉은 열매를 맺는데, 이를 채취해 껍질을 벗기고 응달에 말려 모래에 잰 후 하루에 두 번씩 물을 준다. 30일 정도가 지나면 하루에 한 번씩 물을 주면서 관리한다.

“이렇게 약 1백 일이 지나면 씨앗이 벌어지는 개갑 상태가 됩니다. 밭에 뿌리면 싹이 올라오는데 잘 키워서 묘삼밭(1년생 인삼을 키우기 위한 밭)에 옮겨 심어 1년을 키웁니다. 그렇게 1년을 견딘 묘삼을 11월쯤 본밭(삼이 2~6년 자리를 잡고 커나갈 밭)으로 옮겨 심는 것이지요.”

삼이 본밭에 본격적으로 자리를 잡으면 차광막 설치 작업을 시작한다. 경사진 차광막은 햇빛을 적절하게 공급하며 비와 수분증발을 막아주기 때문에 성질이 까다로운 인삼을 키우기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시설이다. 오죽하면 옛말에 인삼은 빛을 싫어하고 음지를 좋아하며 물을 좋아하면서도 습한 것을 싫어한다고 했을까. 계절마다 차광막의 두께를 달리해 볕 조절도 지속적으로 해주는 것이 중요하다. 잎이 말라버리면 뿌리로 영양분이 공급되지 못해 인삼이 죽거나 농사가 실패할 수도 있기 때문. 이렇게 세심하게 보살피며 꼬박 6년이라는 시간을 보내야 귀한 인

자연 농법으로 키운 인삼은 크기가 작지만 향이 진하다. 이렇게 6년을 견디며 자란 삼을 캘 때에는 잔뿌리 하나하나까지 상하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다룬다.
삼 한 뿌리를 얻을 수 있게 된다.
여기까지는 일반 농가와 별다른 점이 없어 보이지만 인삼을 캐면 그 차이가 뚜렷하게 보인다. 바로 인삼의 크기와 향이 다르다. 관행 농법을 따르는 농가의 경우 인삼을 재배하는 내내 살충제, 살균제, 항생제 등을 사용해 뿌리를 키우는 데 급급하다. 또 더위에 약한 인삼의 특성상 기온이 30℃가 넘어가면 거의 성장을 멈추는데, 대부분의 농가가 영양제를 투입해 잎을 크고 두껍게 만든다. 쉴 틈 없이 광합성을 하고 영양분을 공급받은 뿌리는 계속해서 자라면서 고유한 향도 점점 약해져간다. 요즘은 크기와 무게로 인삼의 가치를 결정하기에 무분별하게 농약을 쓰는 농가가 생겨날 수밖에 없는 것.

이와 반대로 박은서 대표가 자연 농법으로 재배한 인삼은 크기가 작고 향이 아주 진하다. 그 어떤 농약도 영양제도 사용하지 않고 인삼밭을 그대로 놔두기 때문이다.

“오래전부터 ‘신비의 약초’로 알려진 인삼에는 사포닌, 진세노사이드 등 유익한 성분이 풍부합니다. 건강해지기 위해 먹는 약용작물인 인삼의 뿌리를 구근비대제, 항생제 등을 써서 인위적으로 두껍게 만들고 싶지 않았어요. 우리 인삼의 지명도가 점점 낮아지는 이유는 크기만 커지고 고유한 향과 성분을 잃어가기 때문이에요. 크기는 작을지라도 인삼의 본성을 해치지 않고 키우는 자연 농법만이 답이라고 생각했지요.”

자연 농법이라고 해서 특별한 관리법이 있다거나 어렵고 복잡한 과정이 추가되는 것도 아니다. 관행 농법과는 정반대로만 하면 된다. 예를 들면 인삼 농가 대부분이 뿌리 주변을 둘러싼 잡초를 제거하고 인삼 열매를 떼어낸다. 잎과 줄기, 땅속 영양분을 모두 뿌리로 보내기 위해서다. 한데 박 대표는 인삼밭에 잡초가 무성하게 자라도 내버려두고, 인삼꽃이 피고 열매가 열려도 가만히 놔두라고 한다. 자연의 섭리에 충실하며 인삼을 믿고 세월을 견디는 것이 그가 할 수 있는 전부다.

3 6년근 수삼을 엄선해 쪄서 말린 홍삼은 함유된 사포닌의 가짓수가 인삼 중 가장 높다. 
인삼 중에서도 으뜸인 홍삼
인삼을 말할 때 홍삼을 빼놓을 수 없다. 홍삼은 인삼 중에서 유효 성분이 가장 많은 것은 물론 우리나라에서 제일 선호하는 인삼이기 때문. 박은서 대표는 물심양면으로 키운 인삼으로 홍삼과 홍삼액도 직접 만든다. 그 과정은 이렇다. 품질이 가장 뛰어난 6년근 수삼을 엄선해 껍질째 증기로 장시간 쪄서 건조기에 말리고 꾸들꾸들해지면 한 번 더 자연광에서 말려 홍삼을 만든다. 홍삼이 특별한 이유는 바로 증기에 찌는 과정에 있는데, 생삼의 독소가 제거되고 수삼이나 백삼 등 그 어떤 인삼보다 사포닌의 종류가 다양해진다.

“수삼의 경우 20여 종류의 사포닌이 들어 있어요. 이것을 홍삼으로 만들면 사포닌이 무려 30여 종류로 늘어나지요. 사포닌 종류가 늘어난 만큼 몸에 이롭고 효용성도 인삼 중 으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또 홍삼은 쪄서 말리기 때문에 저장성이 뛰어나요. 장기간 보관해도 내용 성분이 변하지 않는 것이 장점이에요.” 홍삼을 그대로 농축해서 만드는 홍삼액도 삶애농장의 자랑거리다. 사포닌 성분이 파괴되지 않는 적정 온도인 86℃에서 하루 정도 달인 추출액을 한 포에 고스란히 담아낸다. 꼬박 6년을 기다리며 키운 인삼 그리고 홍삼과 홍삼액은 친환경 농산물 업체인 ‘둘러앉은밥상’과 직거래 방식으로 소비자와 만나게 된다.

이경호 셰프는 인삼의 특유한 향을 살려 여름 보양식으로 즐길 수 있는 ‘인삼 가스파초와 닭새우’, ‘홍삼에 조린 도가니와 토마토 샐러드’를 요리했다.
가볍게 즐기는 인삼 보양식
귀한 인삼을 요리 재료로 쓴 것은 인삼 재배가 활발해지면서부터다. 약재 중에서도 최상급인 인삼은 보양 음식의 단골 식재료이기도 한데, 맛도 맛이지만 병을 예방하고 치유하는 약식으로 그 의미가 컸기 때문.

평소 야생 재료에 가까운 식재료를 재배하는 자연 순환 농법에 관심이 많은 이경호 셰프는 고집스럽게 자연 순리대로 인삼을 기르는 박은서 대표의 모습에 감동을 받았다고 한다. 그는 이곳 인삼의 맛과 향을 잘 살려, 우리가 흔히 보양식 하면 가장 먼저 떠올리는 삼계탕, 인삼구이 등과 완전히 다른 레시피를 제안한다. 인삼을 단순히 뿌리채소로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향을 더하는 허브나 양념으로 활용해 인삼 가스파초와 닭새우 요리를 선보인 것. 인삼으로 색다른 보양식을 즐기고자 한다면 한번 시도해보아도 좋겠다. 인삼과 요구르트, 오이, 마늘, 양파, 셰리 비니거, 잣을 넣고 곱게 갈아 빵으로 농도를 조절한다. 여기에 강릉에서 나는 닭새우를 살짝 데쳐 껍질을 벗긴 후 라임즙을 가볍게 묻혀 곁들이면 간편하게 완성할 수 있다.

“여름에 맞게 신선한 화이트 가스파초를 만들었어요. 보통 가스파초를 만들 때 청포도를 넣어 단맛을 끌어올리는데, 청포도 대신 인삼을 넣어 특유의 은은한 향을 더했습니다. 그리고 요구르트로 인삼의 쓴맛을 완화했지요.” 이경호 셰프는 이날 도가니와 토마토 샐러드 요리도 함께 선보였는데, 홍삼을 우린 물에 도가니를 조려서 차갑게 굳힌 후 상큼한 토마토 샐러드와 곁들이면 보양식을 좀 더 가볍고 신선하게 즐길 수 있다고 조언한다. 또 인삼은 약간 쓴 듯하면서 쓴맛 뒤에 감춰진 단맛이 독특해 요리뿐 아니라 디저트로 활용해도 좋다고 덧붙인다. 누구에게나 그러하듯 6년은 참으로 긴 시간이다. 농사꾼 박은서 대표 역시 그 기나긴 시간을 묵묵히 견디며 인삼을 기르는 일이 결코 쉽지 않다. 인삼을 위해서가 아니라 사람을 위해서 농사를 짓는다는 박은서 대표는 느리게 천천히 크는 인삼의 본성을 따르며 오늘도 인삼밭을 돌본다.

요리 이경호 촬영 협조 삶애농장(010-2026-7293)

글 김혜민 기자 | 사진 김동오 기자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15년 8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