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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드 스타일리스트 노영희 씨 철든 부엌에서 밥을 짓다
‘짓다’는 말은 참 아름답다. 밥을 짓고 집을 짓고 옷을 짓고. 우리의 의식주를 이루는 것들은 모두 이 ‘짓다’라는 말에서 생겨난다. 푸드 스타일리스트이자 요리 전문가이자 한식당 셰프인 노영희 씨는 ‘밥을 지어’ 세상과 소통하는 이다. 그가 10여 년 만에 새로운 작업실로 터를 옮겼다. 처음부터 그만을 위해 지은 요리 스튜디오로, 옛 작업실이 그러했듯 이곳 또한 마을 어귀에서 수많은 사람과 눈길을 주고받으며 살아온 아름지기 나무처럼 품이 넉넉하고 견고하다.


시공을 담당한 여름디자인(02-543-3415)의 대표인 인테리어 디자이너 김보영 씨와 함께 가평의 목재소에서 직접 구해온 호두나무 원목으로 만든 대형 테이블은 중간을 틔워 구로 철판을 덧대어 제작한 것. 푸드 스타일리스트답게 양도 어마어마하고 종류도 다양한 식기를 보관한 수납공간은 검은 구로 철판과 하얗게 칠한 나무로 제작한 슬라이드식 문 뒤로 숨어 있다.


투박하고 오래된 느낌이 나는 나무 서랍장은 ‘2012 서울디자인페스티벌’의 과실 브랜드 솔루션 전시에서 배를 세팅할 때 사용한 것. 전시에서‘ 내가 만약 배를 파는 가게를 낸다면’이라는 가정 아래 나무와 됫박 등으로 배 전용 셀러와 서랍을 꾸몄다. 지금은 수납용으로 사용한다.


오른쪽 노영희 씨의 작업실 스튜디오 푸디 입구. 나무 책상과 닭 모양의 우편함이 편안한 느낌을 준다. 묵직한 철문을 밀고 들어가면 제일 먼저 눈에 띄는 것은 다름 아닌 커다란 찬장. 엄마의 옛 부엌에 있을 법한 찬장 안에는 컵과 접시, 볼 등 식기가 가득하다. 찬장 디자인은 인테리어 디자이너 김보영 씨가 했다.


현대적인 반면 예스러운 양면의 공간 세상만사 모든 일은 밥 먹은 후의 식후사다. 배고프면 문화도 나오기 힘들다고 하지 않는가. 흔히 말하듯이 ‘다 먹고 살자고 하는 일이기에’ 안목과 취향이 빼어난 사람일수록 밥을 짓는 주방이 남다르다. 하물며 음식 만드는 일이 업인 이에게는 작업실이자 세계관을 반영하는 곳이 주방 아닐는지. 게다가 국내 대 표 푸드 스타일리스트로 음식 전문 기자는 물론, 요리사 사이에서도 큰 선생인 노영희 씨만을 위한 맞춤 공간이라니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이전의 작업실은 살림집 아래층에 있다 보니 편안함이 자연스레 묻어나왔어요. 이곳은 건물을 설계할 때부터 노영희가 사용할 전문 요리 스튜디오를 염두에 두었고, 무엇보다 인간미를 더하고 싶었지요. 워낙 고재와 목재, 구로 철판의 깊고 묵직한 느낌을 좋아하기도 하고 주방 가구를 스테인리스 스틸 소재의 모던한 스타일로 정하고 나니 더욱 절실했어요. 음식이 만들어지고 나누어 먹는 곳인데, 따뜻해야죠.”

묵직한 철문을 밀고 들어서자 시골집 마루 같은 나무 바닥이 깔려 있고, 엄마의 옛 부엌에 있을 법한 찬장을 확대한 듯한 수납장과 나무 질감이 좋은 커다란 서랍장이 놓여 있다. 일자로 시원하게 뚫린 공간은 벽돌로 벽을 만들어 쓰임새에 따라 구획했다. 고벽돌을 쌓아 만들어 자연스럽고 빈티지한 느낌이 난다. 언뜻 현대적인 최신 조리 시설과는 잘 어우러질 것 같지 않지만, 묘하게 괜찮은 그림이 된다. 자질구레한 물건은 보이지 않 는다. 물건이 많으면 정신이 산만해지기 쉬우니 불과 조리 도구 등 살펴 보면 위험한 요소가 가득한 요리 스튜디오야말로 수납공간 확보와 정리 정돈이 중요하다. 단순할수록 도道가 높다더니 공간에서도 그의 도가 엿보인다. 모던한 반면 고졸한 양면성이 있다. 양지가 있으면 음지가 있고 사람에게도 장점이 있으면 단점이 있듯 더없이 현대적인 반면, 예스럽고 소박한 멋이 있으니 세련된 이 공간이 인간적이고 따뜻하게 느껴지는 이유다.

“새로운 것은 긴장감을 줘요. 끝없이 공부해야 하지요. 옛것은 조상들이 쓰던 것이니 익숙하고, 익숙한 것은 편안함을 주게 마련이니 옛것에 눈이 갈 수밖에요. 공간뿐만 아니라 음식도 마찬가지예요. 새것을 익히는 것도 중요하지만, 익숙한 옛것과 조화를 이루면 자연스레 내 것이 돼요.”


메인 주방은 스테인리스 스틸 소재의 식탁형 아일랜드가 있어 심플하다. 오른편에 별도의 수납 캐비닛이 자리잡고 있다. 독일 주방가구 브랜드 불탑 제품.


1, 2 작은 요리학교라 할 수 있는 이곳의 조리대는 엄마의 부엌 느낌을 내고자 나무 골조 위에 시멘트를 덧발라 만든 것. 요리 수업은 푸드스타일리스트를 꿈꾸는 이들을 위한 ‘푸드 스타일링 과정(48회)’, 기본기부터 손님 초대 단계까지 요리 초보를 위한 ‘기초 과정(1~3단계가 있으며, 각 10회씩), 4~5코스로 메뉴를 실연하고 식사까지 하는 ‘특별 과정(10회)’이 있다. 자세한 문의는 스튜디오 푸디(02-3447-5177). 
3 양문형 나무 서랍장의 한쪽은 패브릭을, 다른 한쪽엔 찻잔을 수납한다. 
4 옻칠한 타원형 티 테이블은 허명욱 작가 작품.
5, 6 이전의 스튜디오 위층에 있는 노영희 씨의 침실과 거실. 선반 위의 아기자기한 소품에서도 사람과 동물을 좋아하는 그의 마음이 드러난다.


싱크대의 선반 위에 컬렉션한 티포트를 올려 따뜻한 느낌을 더했다.


음식을 나누고 사람이 모이는 식탁 이 공간에는 보물이 여럿 있는데, 원목의 나뭇결과 무늬를 그대로 살린 대형 테이블이 가장 먼저 눈길을 끈다. 가평의 목재소에서 호두나무 원목을 직접 구해다가 중간을 가르고 철판을 댄 테이블로, 길이만 해도 520cm라니 늠름하기 이를 데 없다. “음식은 나눴을 때 의미가 있는 법이니 사람이 여럿 모여도 끄떡없을 정도로 넓고 긴 원목 테이블을 갖고 싶었어요. 테이블 자체가 좋으면 테이블클로스를 깔 필요가 없고, 쓰임새가 다양할 것 같았거든요.”

눈에 쏙 들어온 나무를 구해다 놓고 이곳을 시공한 인테리어 디자이너 김보영 씨와 머리를 맞대고 디자인 아이디어 짜내기를 수일. 테이블의 상판이 될 원목을 손상시키지 않으면서 폭을 넓히려니 묘안이 떠오르질 않았다. 양옆으로 철제를 덧대는 쪽으로만 골몰하니 따뜻한 밥이 올라갈 자리에 차가운 철판을 까는 게 영 내키지 않은 것. 그도 그럴 것이 음식도 따뜻한 것은 80℃로 예열한 오븐에 30분간 식기를 데운 후에야 담아 손님에게 내는 섬세한 이가 그다. “궁여지책으로 옆 건물의 가구 회사 상무님에게 물어보니, 중간을 틔우는 게 제일 좋은 것 같다고 하시더라고요. 그 럼 한 짝이라는 걸 누가 봐도 알 거라고.” 원목 폭의 4분의 1 부분을 길게 잘라 딱 그만큼 검은 구로 철판을 덧대어 상판을 만들고, 다리도 같은 소재로 제작해 연결하자 자연미와 인공미가 조화로운 테이블이 비로소 완성되었다. 어딘지 그를 꼭 닮아 새것과 옛것이 공존한 이 공간에 무게 중심을 잡아주는 듯하다. 게다가 집에서도 식구들이 한데 모이는 곳이 식탁이듯 테이블은 사람이 모이는 곳이 아닌가. 사람이 모이면 음식을 먹고 이야기를 나누게 마련이니 이 테이블은 노영희 씨의 마음을 그대로 표현한셈이다. “나이가 오십이 되면 레스토랑을 하고 싶었어요. 남산에 있는 한식당 ‘품 서울’은 제가 그린 인생에서 1~2년 빨리 시작한 거예요. 예전부터 원테이블 레스토랑을 하고 싶었는데, 이 테이블에는 그 꿈을 실현시키고자 하는 바람도 담겨 있지요.”


불탑의 스테인리스 스틸 소재 식탁형 아일랜드는 수납장을 별도 캐비닛으로 배치한 것이 특징. 수납장에는 자질구레한 조리 도구는 물론 컵과 잔, 다양한 소스와 향신료 등을 보관할 수 있는 공간이 그야말로 효율적으로 알차게 구성되어 있다.


아늑하게 꾸민 집은 노영희 씨에게 오롯이 쉬는 공간이다. 섬세한 그의 취향이 고스란히 담긴 곳이기도 하다. 소파 위의 견공은 그에게 가족이나 다름없는 뽀리와 꼬망이.


엄마 부엌 같은 작은 요리학교 그의 오랜 꿈이 담긴 곳은 또 있다. 예전부터 요리학교를 만들고 싶은 마음을 담아 시연만이 아닌 실습도 가능한 쿠킹 클래스 공간을 꾸민 것. 그의 표현대로라면 ‘나 나름의 작은 요리학교’다. 그가 자신의 깜냥으로 만든 요리학교는 스튜디오의 메인 공간과 벽 하나를 사이에 두고 미닫이 유리문으로 나뉜다. 분리된 공간이되 투명한 유리가 서로의 안팎을 연결해준다. 차단과 공유 효과를 함께노린 것이라고. 무엇보다 신경 쓴 것은 조리대다. “옛날 엄마의 부엌 모습을 재현하고 싶었어요. 그래서 기본 골조를 나무로 만들고 그 위에 시멘트를 덧발랐지요. 규모는 클 필요가 없어요. 엄마가 딸에게 하듯, 하나를 가르쳐도 제대로 가르치고 세심하게 봐주려면 말 그대로 소수 정예여야 하니까요. 이 정도가 딱 좋아요.”

이곳은 요리사가 되고 싶은 이들과 푸드 스타일링을 배우고 싶은 이들을 위한 공간이기도 하지만, 그는 베이식 클래스도 진행할 예정이다. 첫 시간에 쌀 씻어서 밥하고, 쇠고기 육수 내서 국 끓이고, 간단한 반찬 만들기를 배우는 식이다. 밥상 차리는 것을 단계별로 배울 수 있는 커리큘럼이니 이 것이야말로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과외 공부가 아닌가. “세상만사가 다 그렇지만, 요리도 기본기가 탄탄하면 어떤 상황에서도 지혜롭게 대처할 수있어요. 칠 남매의 막내인 저도 초등학교 2학년 때 벌써 불 때서 밥하던 기억이 있는걸요. 엄마가 ‘지금 배워놔야 나중에 제대로 할 수 있다’며 부엌일을 시키셨는데, 지금 생각하면 제일 귀한 시간이었어요.”

그가 요리할 때나 가르칠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제철의 좋은 재료다. 좋은 재료를 써서 음식을 만들어본 사람은 그보다 못한 재료를 써도 좋은 재료로 만든 음식의 맛을 내려고 노력하지만, 처음부터 좋지 못한 재료를 쓴 사람은 노력하지 않고 맛을 내기 위해 요행을 바란다는 생각에서다. 재료의 중요성은 그 또한 지금은 고인이 된 반가 음식의 대가 강인희 선생에게 한식을 배우면서 자연스레 터득한 것. “5년간 매주 수요일마다 수업을 받다 보니 좋은 재료를 알아보는 안목이 생기더군요. 좋은 재료와 정성이 음식 맛을 얼마나 좌우하는지 그때 절감했어요.” 그는 자신이 그러했듯 요리 수업을 하면서 단지 레시피만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좋은 것을 알아보는 눈과 함께 합리적 요리법을 익히는 감각을 가르치고 싶단다. 삶이 그러하듯, 음식을 만들 때도 제일 시간이 오래 걸리는 재료부터 준비해야 마무리가 쉬운 법이므로. 여행객이나 국내 거주 외국인을 위한 쿠킹 클래스 등 다양한 커리큘럼도 기획하고 있다. 이 작은 요리학교는 그의 꿈을 실현하는 첫 단계다.


1 신선하고 먹음직스러운 제철 먹을거리가 담긴 디지털 포도프레임은 이곳의 명판 역할을 한다. 모두 노영희 씨가 스타일링하고 사진가 권순철 씨가 촬영한 것. 
2 메인 주방 공간과 이어지는 벽면에는 오븐과 함께 트레이, 포트, 컵, 등이 선반에 수납되어 있다. 음식을 따뜻한 접시에 담고, 기호에 맞는 음료를 바로 내기 위한 것이라고. 
3 노영희 씨의 정갈한 테이블 세팅.
4 노영희 씨의 작업실은 음식을 만드는 곳이자 사람이 모이는 곳이다. 지인들이 그를 가리켜 ‘청남동 큰 나무’라 할 정도로 품이 넓기 때문이다.
5 손님치레가 잦은 만큼 그에게는 커피, 차茶 등 음료 관련 도구도 많다. 서랍식 고재 가구에는 다구를 보관한다.


작업실의 통창은 프레임이 액자가 되어 하늘 풍경이 담긴다.


나무 같은 사람이 지키는 우직한 공간 오랜 마을의 어귀에 우뚝서 있는 아름드리나무는 품이 넓다. 세월의 연륜만큼 줄기는 늠름해지고 가지는 세상을 다 품어줄 듯 넓게 펴져 있다. 노영희 씨는 이런 큰 나무 같은 사람이다. 사람들에게 아름드리나무 그늘 같은 역할을 하니 그 밑에는늘 쉬어 가는 이들이 있다. 그러니 그의 작업실은 일상의 고단함을 달래는 쉼터이자, 감정의 정거장이기도 하다. “음식이 있는 곳엔 사람이 모이게 마련 아니겠어요. 그게 음식의 힘이니까요. 저는 사람을 사귀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리는 편이에요. 그런데 인연을 맺은 사람들은 다 내 안에 이파리가 되 어 있는 것 같아요. 살다 보면 서로 바빠서 연락이 뜸할 수 있지만, 마음은 다 그 이파리에 남아 있더군요.”

사람으로 이파리를 피우는 나무 같은 사람. 무더운 여름에는 지친 이들을 위해 두꺼운 옷으로 그늘을 만들고, 추운 겨울에는 하얗게 쌓인 눈을 품어 주기 위해 기꺼이 알몸이 되어주는 나무의 사랑이 인仁이라면, 그가 사람을 모으는 힘도 어진 품에 있을 터. 평소에는 즉흥적이지만, 5년이나 10년후에 이루고자 하는 일은 꼭 계획을 세우고 실행하고자 노력한다는 그에게 금방이라도 하고 싶은 것을 물으니 곧바로 “재능 기부”라는 대답이 돌아온다. “어려운 환경에 있는 청소년들이 직업을 선택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는 교육에 관심이 많아요. 제가 이루고 싶은 요리학교의 모습이지요.” 한식당 ‘품 서울’에 이어 뉴욕, 파리, 런던에 ‘품’을 내는 것도 앞으로 할 일이라고 덧붙인다.

나무는 나이가 들수록 아름다워진다. 그래서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사람은 꽃 같은 사람이 아니라 나무 같은 사람이리라. 앞으로도 더욱 줄기를 뻗어 가지를 늘리고 이파리를 무성하게 피울 그인 만큼 튼실한 열매를 맺기를. “가끔은 땡땡이도 쳐야 즐거운 법”이라는 그의 말마따나 인생 살이도 바람결에 춤을 추는 나뭇잎처럼 흔들흔들 즐기면서.

글 신민주 기자 | 사진 박찬우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13년 11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