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덤’으로 ‘정’ 주는 외교 밥상 “팥빙수 한번 드셔보세요.” 한국식으로는 1층, 영국식으로는 그라운드 플로어ground floor의 응접실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던 중, 단팥과 콩가루를 풍성하게 얹은 팥빙수를 송정원 여사가 건넸다. 한국에서 기계와 재료를 공수해 대사관저를 찾는 귀빈에게 특별 메뉴로 선보인다는 그는 “아마 런던에서 팥빙수를 만날 수 있는 유일한 곳일 거예요”라고 자랑했다. 내친김에 송 여사의 ‘외교 밥상’이 궁금해졌다.
“맛은 기본적으로 중요한 것이지만, 차림에서 개인적으로 신경 쓰 는 부분은 ‘보는 맛’입니다. 비빔밥을 예로 들면, 보색 대비가 명징 한 나물을 배열하고 달걀흰자를 분리해 푸딩처럼 만들어 고명으로 올립니다. 특별하진 않지만 사람들이 ‘달걀흰자 푸딩’을 호기심있게 들여다보며 즐거워하더군요. 음식이 참 곱다는 말을 들을 때마다 뿌듯합니다.”
밥상 이야기를 조용히 듣고 있던 추 대사가 꼭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며 덧붙였다. “아내가 음식에 대해서는 무척 까다로운 편입니다. 식재료를 구하러 갈 때는 반드시 셰프와 동행합니다. 정찬에 참석하지 않는 경우에도 끝까지 부엌을 지키는데, 바쁜 외교 활동에서 쉽지 않은 일이에요.” 음식은 항상 두 배로 준비한다. ‘대사관저 전용 도시락’을 넉넉하게 요리한 뒤 손님들이 돌아갈 때 손에 쥐여주는 것도 송 여사의 아이디어. “일하면서 식사하면 맛이 없거든요. 집에서 편안하게 먹으면 그 맛이 다르죠. 그래서 나중에 인사를 참 많이 받습니다. 감사 카드를 보내오기도 하고. 마음으로 준비하면 마음으로 느끼게 되는 법인가 봅니다.”
(왼쪽) 미국에서 공부 중인 딸 남영 씨가 런던을 방문해 모처럼 가족이 카메라 앞에 모였다.

1 현관 앞에 안방 머릿장과 한지 조명등을 배치했다.
2 야드로 도자기와 앤티크 의자로 2층 한쪽 벽면을 꾸몄다. 모두 빈티지 숍에서 송정원 여사가 구입한 것들.

3 추 대사의 집무실. 대부분의 시간을 이곳에서 보낸다. 책상 위에는 1980년대 초에 구입한 손때 묻은 일한·영한 사전이 항상 놓여 있다.
4 컨서버토리 룸에 연결된 작은 야외 공간을 소박한 정원으로 만들었다. 장독은 송 여사가 한국에서 구입해 가져온 것들.

5 나무로 바닥재를 마감한 런던의 건식 화장실 겸 욕실. 모서리가 둥근 욕조와 큼지막한 창문이 포인트. 송 여사가 관저에서 가장 좋아하는 곳으로 노을이 질 때 가장 아름답다고.
6 런던 한국문화원에서 전시를 한 인간문화재 박찬수 선생의 작품인 솟대로 꾸민 컨서버토리 룸의 한쪽. 잡귀를 없애고 번영을 뜻한다며 대사 부부에게 선물했다.

추 대사 부부의 침실. 대부분의 가구는 오랫동안 대사관저를 지켜온 것들이다. 순백의 공간과 최소한의 장식이 간결하면서도 아늑하다. 침대 머리 위 그림은 인간문화재 박찬수 선생이 관저 를 방문했을 때 바로 그려 선물한 것.
사람과 사람 사이의 믿음이 기본 올림픽을 맞아 경제ㆍ문화・안보 외교 어느 하나 소홀히 할 수 없다는 그는 문화 외교가 가장 많은 노력과 시간이 필요하고 성과를 측정하기도 무척 어렵다고 말했다. “아직도 갈 길이 멉니다. 하지만 대사로 취임한 2년 전을 떠올리면 해가 갈수록 인지도가 높아지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에요. 문화 외교의 범주는 아주 넓죠. 제가 강연하고 현지 사람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는 것 자체가 크게는 모두 문화 외교에 포함됩니다. 유학생이 공부하고, 한국을 찾는 여행자가 증가하는 것 등 사람과 사람이 만나 서로의 문화적 지식이 높아지는 것이 문화 외교의 기본이라고 생각합니다. ‘워킹홀리데이’인 청년 교류제가 올해 10월부터 시작되는데, 이를 계기로 더욱 많은 교류가 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추 대사가 올해 성사시킨 청년 교류제(만 18세부터 30세까지 최대 2년까지 영국 체류 비자를 주는 제도)는 보수적인 영국에서 얻은 의미 있는 결과로, 전 세계에서 우리나라가 일곱번째로 시작한다. 사람 간의 교류가 문화 외교에 가장 기본이어야 한다는 그의 외교 철학과 일맥상통한다. “신뢰가 상실되면 문화 외교는 순식간에 무너집니다. 장기간의 교류를 바탕으로 국민 간의 신뢰도를 탄탄하게 유지하는 것이 기본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사람 간의 접점을 최대한 많이 만들어주어야 합니다.” 추 대사 역시 페이스북과 트위터 같은 소셜 네트워크에 가입해 이용하고 있다고 하니, 사람 사이의 교류를 몸소 실천하고 있는 셈이다.

13년 전 대사관 건물을 대사관저로 변경하면서 만든 한식방으로 온돌 난방이 가능하다. 경첩 거울과 병풍, 반닫이가 문살무늬 창문 너머 보이는 런던의 벽돌식 건물과 대비되어 인상적이다.
“케이팝이 그렇게 대단해? 대단해!” 지난해 11월, 8백 석의 오데온 극장에서 그룹 샤이니의 공연이 열렸다. 티켓이 판매 후 10분만에 매진되었을 때 케이팝의 인지도를 제대로 확인한 추 대사는 문화원 주관으로 12주 코스의 ‘케이팝 아카데미’를 기획했다. “케이팝을 좋아하는 영국 학생들이 우리 문화를 알리는 전도사 역할을 해주면 좋겠다는 생각에서 시작했습니다. 봄부터 7월 초까지 진행한 아카데미에서 가장 비중이 큰 부분은 ‘한국 문화 배우기’ 였습니다. 명절 문화, 예절, 역사와 한국 사회에 대한 이해 등 다면적으로 다룬 아카데미였는데 만족도가 무척 높았습니다.” 올림픽 한국 선수단 서포터로 1백 일 전부터 자원봉사하며 한국 선수단을 응원하고 있으니 외교 사절단이라고 해도 손색이 없어 보인다. 일시적이지 않을까라는 질문에 추 대사는 견고한 말투로 고개를 저었다. “영국 사람들이 미술에 대한 수용성은 높아도 음악은 무척 보수적입니다. 젊은 세대들이 확장시키는 정도는 숫자로 드러나지 않을 뿐 상당한 효과를 불러오고 있습니다.” 실제로 문화원 주관으로 개최한 케이팝 콘테스트는 그 열기가 대단했다고. 동영상 1차 심사에 총 84편의 영상이 선보였고 그중 12팀이 본선 무대에 올랐다. 영국뿐 아니라 이탈리아, 싱가포르 등에서 콘테스트에 참가하기 위해 런던을 방문했다. 장소만 런던이었을 뿐 정보는 전 세계로 흐르고 있었던 것. 그 과정 자체가 큰 홍보가 되었다.

1834년에 지은 건축물인 만큼 대사관저 곳곳에는 오래된 역사가 묻어나는 장식이 눈에 띈다. 화려한 장식의 목조 벽난로와 청록색 벽면 간의 색상 대비가 강렬하다. 벽난로는 지역구에 문화재로 등록되어 있다.

추 대사 부부가 담소를 나누고 TV로 영화와 한국 드라마를 관람하기도 하는 거실은 침실과 연결되어 있다.
런던 문화 외교의 초석이 되다 미국에서 로스쿨을 다니는 딸 남영 씨가 인사를 건넸다. “요즘 딸이 방학을 맞아 런던 로펌에서 인턴십을 하고 있습니다. 아내가 무척 좋아해요. 올림픽이 끝나면 다시 학생 신분으로 돌아갑니다.” 지긋한 눈빛으로 남영 씨를 바라보며 말하는 모습이 영락없이 자상한 아버지다. 아들 윤석 씨 또한 뉴욕의 한 로펌에서 변호사로 근무 중이다. 추 대사는 올해가 임기 마지막으로 오는 9월 말에 한국으로 돌아갈 계획이다. 런던 올림픽을 계기로 오랫동안 추진한 한국전쟁기념관 설립이 성과를 보이기 시작했다. 오랜 시간 숙원 정책이던 만큼 한국전쟁기념관 설립을 임기 동안에 꼭 성사시키고 싶다는 바람을 잊지 않았다. 외교 활동을 하는 동안 아이들은 어느새 자라 독립을 하고, 런던 올림픽을 치르며 문화 외교 중심에서 진두지휘했다. 그가 외교 생활을 하며 36년간 쌓아온 신뢰와 우정이 다음 세대를 위한 문화 외교에 디딤돌이 되었음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