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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가가 지은 집] 조남호 씨가 설계한 용인 살구나무 집 아파트와 바꾼 집에서 더불어 살기
서울시립대학교 건축학부 박철수 교수와 명지대학교 건축학부 박인석 교수는 20년 지기 친구다. 각각 중계동과 분당의 아파트에서 살아가던 두 친구는 어느 날 살구나무를 사이에 두고 나란히 붙어 있는 땅에 집을 지어 이웃사촌이 되었다. 용인 죽전 단독주택 필지에 자리 잡은 살구나무 위ㆍ아랫집. 담장 없는 이 집에서 여덟 식구의 더불어 살기는 쿨하면서도 진중하다.

보통 자기 집을 짓겠다고 하면 보편적으로 세 가지 이야기를 듣는다. 첫째는 “전원으로 가시나요?”, 둘째는 “돈 많이 버셨나 봐요”, 셋째는 “좋으시겠어요”다. 박철수ㆍ박인석 씨에게는 두 가지 질문이 보태졌다. “건축 전공하셨는데 직접 하지 왜…”와 “어쩌다 함께 살게 되었지요?”다.

건축 설계를 전공한 건축학과 교수가 다른 이에게 설계를 맡긴 이유는 무엇일까? 가르치는 일과 설계를 해서 예산에 재료와 공법을 맞추는 일은 너무나 다른 분야이기 때문이다. 서로 다른 전문 분야를 인정해야 발전이 따른다고 강조하는 박철수 씨는 박인석 씨와 함께 평소 알고 지낸 솔토건축의 조남호 소장에게 설계를 부탁 했다. 두 필지의 땅을 사서 동시에 공사를 시작하고 거의 같은 시기에 입주해 더불어 살기를 실천하는 살구나무 집을 찾았다.

“얘들아,
아빠가 용인에 집 지어 이사 가자신다”

살구나무 윗집 박인석 씨에게 마당 있는 단독주택은 젊은 시절부터 꿈꿔온 가치이자 목표였다. 또 그에게는 조소를 전공한 아내에게 작업실을 만들어주는 것이 평생 숙제였다. 생활 편의상 아파트에 살아도 개인 마당을 이용할 수 있는 1층이나 옥상을 활용할 수 있는 꼭대기 층을 고집했지만, 공동주택의 공용 공간을 작업실로 활용하는 일은 녹록지 않았다. 더 나은 환경을 찾아 이사를 반복한 그와 가족은 결국 마당 있는 주택으로 이사를 결심했다.

반면 박철수 씨는 함께 집을 짓자는 친구 박인석 씨의 제안을 받았을 때 ‘과연 단독주택이 자신의 삶에 가능한가?’라고 스스로에게 물었다. 주택에 대한 경험과 지식이 부족하기도 했고, 비용도 상당할 것이라는 막연한 생각 때문이었다. 그러다 박인석 씨가 준비한 시뮬레이션을 통해 당시 살고 있던 중계동 105m2(41평) 아파트 한 채 값으로 땅 구입부터 집 짓기가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사실을 알았다. “아내가 반대할 줄 알았어요. 저와 친구 가족은 아이들이 어릴 적 함께 휴가를 가기도 했지만, 함께 사는 것은 하루 이틀 함께 놀러 가는 것과는 다른 일이니까요. 하지만 더 이상 아파트 시세에 신경 쓰지 않아도 되는, 시간과 정성을 쏟아 지은 집에서 고목처럼 뿌리내리고 살아보자 했더니 흔쾌히 수락하더군요.”

(왼쪽) 용인 죽전, 단독주택 필지에 지은 살구나무 집. 20년 지기 친구인 박철수, 박인석 교수가 이웃이 되어 더불어 살고 있다.



살구나무 아랫집의 거실.


농담 삼아 ‘538 작전’이라 부른 살구나무 집 프로젝트. 박철수 씨는 당시 살던 아파트의 시세 8억 원에 맞춰 땅값 5억 원, 건축비 3억 원으로 예산을 분배하고 설계를 맡길 건축가를 물색했다. 196m2(60평형대)의 집을 지을 때 건축비는 평당 5백만 원, 두 집을 함께 지으면 비용이 20% 절감될 것을 예상한 금액이었다.

조남호 소장은 처음 설계 제안을 받았을 때 두 건축주가 모두 건축을 전공했다는 점이 조심스러웠다고 한다. 하지만 이번 작업을 하면서 기술적 문제든, 비용이든 ‘잘 아는 것’이 훨씬 도움이 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집 짓는 중간 과정에서 드는 세금이며 잡비가 상당한데, 이는 설계ㆍ시공비에 포함되지 않는다. 결국 예상 금액보다 6%의 비용을 추가 부담해야 하는데, 이 과정에 대한 설명과 이해가 부족하면 집 짓고 난 뒤 ‘원수’가 되기 십상이다.

“아무리 좋은 관계라도 실제 일을 같이 해보거나 같이 살아보면 굉장히 다른 부분을 느낍니다. 두 분의 성향이 다른 것처럼 두 집 설계에 적용하는 공간 언어도 달라야 하죠. 기본 설계는 물론 공용 공간과 개별 공간을 통합하거나 분리하는 문제는 공사하면서도 지속적으로 논의하고 수정하는 과정을 거쳤습니다.”


1
박철수 씨가 가장 마음에 들어하는 계단. 나무 소재로 감싼 꼼꼼한 디테일에 감동했다.


2, 3 거실을 지나 주방이 나오는 구조는 아파트와 흡사하다. 대신 주방과 현관 사이에 복도를 만들어 다용도실로 활용한다.
4 안쪽으로 자그마한 덱과 마당이 숨어 있다.

한 달 전기료가 6백40원
박인석 씨가 공간에 대해 구체적인 계획을 했다면, 박철수 씨는 건축가에게 ‘아이디어를 달라, 선택하겠다’는 입장이었다. 대학생과 고등학생 남매가 있는 살구나무 윗집 1층은 부부 침실과 거실, 2층은 서재와 남매의 방, 지하층은 아내의 작업실로 활용한다. 2층 아이 방과 서재는 박공지붕을 그대로 살리고 작은 거실은 가벽을 세워 공간을 수직으로 분할했다. 천장고가 높아 문 위로 투명 창을 설치했는데, 지붕 위에 부분 천창을 뚫어 등을 켜는 일이 거의 없다고. 윗집의 공간은 기하학적이고 입체적인 데 반해 아랫집의 공간은 비교적 평이하다. 대학교에 다니는 두 딸을 둔 박철수 씨는 2층 박공지붕 아래 사이좋게 다락방을 만들었다. 또 두 딸이 결혼 후 독립할 것을 예상해 침실, 주방, 서재, 거실 등 부부의 공간은 모두 1층에 배치했다.

“가끔 주변에서 나이 들면 작은 아파트 하나 얻어서 사는 게 좋다고들 이야기하는데, 그럼 무슨 문제가 생길까요. 손자, 사위, 딸이 집에 놀러 와서 머물다 갈 수가 없어요. 공중목욕탕처럼 남자끼리, 여자끼리 자야 하죠.” 오히려 자식들이 훗날 와서 어린 시절의 물건을 보기도 하고 머물기도 하는 공간을 유지하는 여유가 필요하다는 것이 박철수 씨의 설명이다. 건축가 입장에서는 부부 침실이 2층으로 올라가면 그만큼 공간을 구현하는 아이디어도 다양해지지만 집은 사는 이가 중심이 되어야 하므로, 건축주의 생각을 최대한 존중했다. 대신 평면 공간에 재미를 더하기 위해 숨은 복도를 많이 만들었다. 현관에서 주방으로 가려면 거실을 지나쳐야 하는데, 주방과 현관 전실 사이에 복도를 만들고 양쪽으로 수납장을 짜 넣어 다용도실로 활용했다. 침실과 서재 사이 복도에는 파우더 룸과 화장실을 배치했다.

(오른쪽) 대문에 붙어 있는 현판에는 건축 개요도가 상세히 적혀 있다. 살구나무 아랫집의 대지 면적은 337.50m㎡, 건축 면적은 134.26㎡, 연면적은 263.29㎡다.

내부 공간은 사는 이의 라이프스타일과 성향에 맞춰 조금씩 변화를 준 반면, 겹집(위에서 보면 정사각형, 직사각형 형태의 박스가 겹쳐진 모습)이라는 형태는 일치한다. 아파트 평면처럼 외부와 닿는 면적을 줄여야 에너지 효율이 좋기 때문이다. 거실 창은 모두 동서 방향으로 냈다. 여름이 길어진 우리나라 기후 변화상 남쪽 창을 내는 것이 더 이상 에너지 효율에 큰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남쪽으로 창을 내면 처마를 길게 뻗어야 하지만 용적률에 손해를 보기 때문에 이 역시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 “박공지붕은 온전히 기능적 이유에서 비롯한 것이지요. 실제 비가 내리면 빗물이 지붕을 따라 흘러내리는 우주의 질서에 따른 것입니다.”

평범함 속에 깊은 질서가 담겨 있는 법이라 말하는 조남호 씨. 붉은 벽돌 역시 현존하는 외장재 중에서 가장 내구성이 좋은 재료다. 오히려 시간이 지나면 더 좋은 느낌을 만들어낸다고. 보통 주택에 살려면 유지 관리비가 많이 들게 마련이지만, 두 건축주가 아파트에 살 때와 주택에 살때의 유지 관리비를 꼼꼼하게 비교, 분석한 결과 가히 놀랍다. “살구나무 윗집은 태양광 발전 설비를 했어요. 하지만 태양광 발전 설비가 다 좋은 것은 아니에요. 저희는 보통 전기 사용량이 400kW 이하이므로 누진세를 크게 적용받지 않아요. 설비하는 데 드는 비용을 전기료로 계산해보니 10년동안 사용하는 금액이더라고요. 하지만 윗집은 전기 사용량이 많은 터라 비용을 부담하고라도 태양광 발전 설비를 했죠. 지난달 놀랍게도 전기료가 6백40원이 나왔어요. 날씨가 좋아 쓰는 양에 비해 발전량이 많았던 거죠.”


1 집 안에 또 하나의 집이 있는 재미난 구조의 주인공은 화장실이다. 자그마한 천창 덕분에 불을 켜지 않아도 된다.
2 높은 천장을 수평으로 분할해 다락방을 만들었다.


박철수 씨는 아파트에 살 때보다 한 달 관리비가 오히려 적게 든다고 설명한다. 주택이라 경비 시스템 비용을 추가한 것을 제외하면 한 달에 6만 원 정도 비용을 절감했다고. 두 집이 사용하는 전용 면적은 아파트의 1.7배씩인데 말이다. 단, 여기에는 중요한 전제가 따른다. 바로 ‘설계와 시공의 꼼꼼함’ ‘삶의 태도’다. 단열, 창호 등을 철저하게 시공하고 계절에 맞춰 검박하게 사는 삶. 한겨울에도 티셔츠 하나만 걸친 채 실내 온도를 30℃씩 유지한다면 불가능한 얘기다.

‘쿨’해야 함께 산다
사회학자 하버트 갠스는 미국 사회에서 근린을 이루기 위해 적당한 가구 수는 ‘12’라고 말했다. 사람들이 너무 친해지면 속속들이 알면서 비밀을 공유하고 편파적으로 파장을 만든다는 것. 모르지는 않되, 너무 친하지도 않은 단위가 바로 ‘12’인데, 그런 사회학적 이론이 바탕이 되어 우리나라에도10가구가 사는 5층형 아파트와 한 층에 12가구가 사는 복도식 판상형 아파트가 등장한 것이다. 꼭 하버트 갠스의 사회학 이론이 아니더라도 아파트보다는 타운하우스가, 적당한 규모의 공동체에서 커뮤니티가 활성화된다는 것은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이다.

(왼쪽) 살구나무를 중심으로 윗집, 아랫집 나란히 자리 잡았다. 건축가가 설계에 주안점을 둔 부분은 집이 서로의 사생활은 유지하면서 단절감은 갖지 않게 하는 것. 담장으로 영역을 나누는 대신 계단의 단차이로 경계를 두었다.

14필지에 14가구가 살고 있는 이 동네 사람들 역시 서로 기분 좋은 친분을 쌓고 있다. 업무 시간이 자유로운 이들이 교외에 모이게 마련이고, 시간이 자유로운 만큼 마주치는 빈도수 역시 잦은 것. 또 대부분의 집에서 강아지를 키우기 때문에 산책시키며 정보를 공유한다. 공통의 관심사로 커뮤니티를 형성하는 반면, ‘단독 주택’이라는 주거 형태로 독립성을 보장받는다.“저와 박인석 교수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원칙 중 하나가 바로 ‘프라이버시가 지켜져야 커뮤니티가 있다’는 것이에요. 내가 온전하고 독립적이지 않을 때는 언제나 방어적 자세를 취할 수 밖에 없어요. 가장 중요한 것은 ‘쿨’하게 더불어 사는 것이지요.”

다른 이들은 ‘두 건축주가 친구니까 항상 붙어 있겠지’라고 짐작한다. 하지만 이들은 지극히 개별적 생활을 한다. 담장 하나 없이 이웃하고 살지만 따로 살 때처럼 특별히 관심을 두지 않는 것이 바로 그들만의 더불어 사는 비법이란다.

“바비큐를 하면서 저 집 식구를 불러야 하나 말아야 하나 신경 쓰기 시작하면 피곤해집니다. 물론 편의상 서로의 물건은 공유합니다. 크고 작은 바비큐 기계를 바꿔 쓰기도 하지요. 다음 사람을 위해 깔끔하게 정리해두면 아무 불편함이 없죠.” 한 달 전쯤 윗집에서 식탁을 짜는데, 그날 마침 심심하던 박철수 씨는 나무 테이블 만드는 것을 거들었다. 하지만 얼마 전 자신이 컨테이너 화분을 만드는 데 박인석 씨는 바빠 나와보지 못했다. 그래도 서운해하지 않는 것, 이게 바로 더불어 살기를 영속시키는 방법이다.

(왼쪽) 살구나무 윗집. 2층은 서재와 남매의 방, 화장실로 구성되었다.

조남호 씨는 자신이 살고 있는 곳보다 조금 외곽으로 가거나, 평수를 줄이거나, 혹은 오래된 집을 개성 있게 개조한다면 얼마든지 ‘땅집살이’를 할 수 있다고 조언한다. 박철수ㆍ박인석 씨 역시 지역, 평수에 상관없이 아파트 한 채 가지고 있는 사람은 누구나 단독주택으로 갈아탈 수 있다는 걸 증명해 보이기 위해 모든 수치를 꼼꼼하게 기록해두었다. 두 건축과 교수의 살구나무 집 스토리는 곧 책을 통해서도 만날 수 있는데 제목은 <아파트와 바꾼 집>이다.

아파트는 나쁜 집이고, 주택은 좋은 집이라는 극단적인 편 가르기에서 시작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더 의미가 있는 살구나무 집. 궁극적으로 그들이 살구나무 집을 통해 보여주고 싶은 것은 ‘보통 집에 더불어 사는 보통 사람들의 이야기’가 아닐까.

박철수ㆍ박인석 교수의 바람직한 집 짓기 목표
보통 집을 짓자
평당 2천만 원짜리 집을 모시고 사는 것도, 집 장사 집의 허술함 또한 그냥 보아 넘길 수 없었다는 박철수ㆍ박인석 씨. 보통 집이란 집 장사 집과 건축가가 지은 집 중간을 말한다. 화려한 기교에 현혹되지 않고 평당 5백만 원을 넘기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실용적인 집을 짓자
실용적인 집이란 유지 관리비가 적게 드는 집이다. 이른바 뻥 뚫린 천장을 통한 공간감이나 커다란 통창으로 외경을 차경하는 등의 낭만은 불필요하다. 공간에 자연을 들이기보다는 자연으로 나가자는 것.
품격 있는 집을 짓자
조선백자는 화려하지 않지만 좋은 흙으로 형태를 잘 잡아서 구워낸 것 자체로 아름답다. 담백하면서도 건실하게 지은 집이 주목받아야 하는 이유다.
동네 풍경에 보탬이 되자
이웃에게 바라보이는 모습도 중요하다. 제 욕심만 꽉 채워 차 한 대 세울 곳 없이 이기적으로 지은 다세대주택이 비난받는 것은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살구 나무 집은 자그마한 화단을 길 밖으로 냈다. 마당 난간은 철제 빔으로 설치하고 배롱나무, 장미를 담장 쪽으로 옮겨 심으니 지나는 이웃 모두 꽃구경을 할 수 있다.

*건축가 조남호 씨는 서울시립대학교 건축학부를 졸업하고 정림건축에서 실무를 익혔다. 현재 솔토건축 (02-562-7576) 대표로 ㈜도코모모코리아 이사로 활동하고 있다. 2000년 한국건축문화대상 대통령상, 2002년 아시아건축사협회(ARCASIA) 어워드 골드 메달, 2004년 한국건축가협회상, 2005년 한국목조건축죽대전에서 본상을 수상했다. 대표작으로는 교원그룹 도고연수원, 서울시립대학교 건축학부 증축, 감중리 예술인 마을 등이 있다.
글 이지현 기자 사진 박찬우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11년 11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