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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레스토랑의 새로운 트렌드 음식 맛! 솜씨가 아니라 재료가 좌우한다
요리 연구가 박현신 씨가 최근 일본에서 가장 트렌디한 공간으로 떠오르고 있는 ‘자연주의 레스토랑’ 세 곳을 다녀왔다. 자연 상태 그대로 키운 채소로 요리하기에 단순한 음식이 아닌 재료가 담고 있는 에너지를 파는 곳. 순수한 자연의 맛과 톡톡 튀는 아이디어가 공존하는 일본 레스토랑 이야기를 들어보자.

레스토랑 내추럴 하모닉 입구에 신선한 채소가 정물화처럼 놓여 있다.

지난 10여 년 동안 텃밭을 가꾸며 유기농 농사에 관해 나름의 지식이 있다고 믿은 내게 사과 농사를 짓는 일본인 기무라 아키노리 씨의 이야기가 담긴 책 <기적의 사과>는 실로 충격이었다. 자연이 주는 땅과 공기, 볕과 물 외에 아무런 조치를 하지 않고도 맛과 품질이 뛰어난 사과를 재배하는 기무라 씨는 책 속에서 ‘자연 재배’를 권유했다. 건강한 땅은 퇴비를 주지 않아도 농작물에 충분한 영양을 공급할 수 있는 자연 능력을 가졌다는 것이 이유다. ‘유기농 퇴비라도 퇴비를 주면 작물이 영양 과잉이 되어 맛과 면역력이 떨어지고, 작물이 흡수하지 못한 퇴비가 지하수로 흘러가 오염의 원인이 된다’는 기무라 씨의 주장이 담긴 <기적의 사과>는 일본 농업은 물론 레스토랑에까지 변화의 물결을 주도하고 있다. 맛은 뛰어나고, 오래 두어도 썩지 않아 ‘기적의 사과’라 불리는 기무라 씨의 사과 또는 기무라 씨처럼 자연 재배 농법으로 키운 작물로 음식을 만드는 레스토랑이 속속 등장하고 있는 것이다. ‘기적의 사과’로 만든 수프가 있는 곳, 자연식도 맛이 뛰어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곳, 채소에 대한 호기심과 즐거움을 주는 곳. 그 음식 맛이 궁금해 일본으로 달려갔다.


1 도쿄 주택가에 있는 셰 이구치의 소박한 간판.


2 디저트로 나온 크렘 브륄레.
3 이 레스토랑의 오너셰프인 이구치 씨와 요리 연구가 박현신 씨. 


‘기적의 사과’ 수프를 맛볼 수 있는 곳, 셰 이구치
반년 후까지 예약이 차 있다는 도쿄의 레스토랑 ‘셰 이구치 Chez Iguchi’. 어렵게 예약해 찾아간 그곳에서 ‘음식 맛의 90% 이상은 재료가 좌우한다’고 믿는 이곳의 오너셰프 이구치 씨를 만났다. 그는 전국의 생산자를 직접 찾아다니며 좋은 재료만 선별해 사용하는 셰프로 유명하다. 몇 해 전 우연히 기무라 씨가 재배한 사과를 접한 그는 2년 넘게 냉장고 위에 방치해둔 사과가 썩지 않고 그대로 말라버린 것을 보면서 ‘기적의 사과’라 불렀고, 그때부터 기무라 씨의 사과로 만든 수프를 메뉴로 내고 있다. 레스토랑에 들어서니 가구 디자이너 조지 나카시마가 디자인한 멋진 테이블이 눈에 들어왔다. 점심, 저녁 딱 한 테이블만 손님을 받는 이곳은 최대 10명까지만 예약을 받는다. 요리는 이구치 씨가, 서빙은 그의 아내가 맡는 시스템으로 오붓하고 여유 있게 식사할 수 있는 공간이다. 이곳은 메뉴가 따로 없다. 가격만 정해져 있는데 점심은 7천 엔과 1만 엔 그리고 저녁은 2만 엔으로 그날의 가장 신선한 재료로 만든 코스 요리를 먹을 수 있다.

 
4 점심과 저녁, 단 한 테이블의 손님만 받는 셰 이구치의 다이닝 룸.


5 이구치 씨가 직접 만든 소스와 잼도 구입할 수 있다.
6 이곳의 대표 메뉴인 ‘기적의 사과’로 만든 차가운 사과 수프.


우리 일행은 ‘아지’라는 생선에 유자 향 무말랭이를 곁들인 요리, 시원한 사과 수프, 생땅콩 소스의 생선 요리와 일본에서 많이 먹는 ‘오쿠라’라는 채소에 버섯과 감자를 곁들인 오리 요리 순으로 식사를 했다. 호텔 셰프 경력이 있는 이구치 씨의 요리는 소스 중심의 프랑스 요리에 기초를 두고 있지만 일본에서 많이 먹는 재료를 사용하고, 재료의 맛을 살리기 위해 소스 농도를 약하게 해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다. 시원한 사과 수프는 사과를 껍질째 갈아 생크림과 유기농 시나몬 그리고 칼바도스를 조금 넣어 만든다. 맛은 매우 단데 자연 그대로의 단맛이라 부담스럽지 않고 오히려 입안을 상큼하게 정리해주는 느낌이었다. 디저트로는 피스타치오 크렘 브륄레에 에스프레소를 곁들였는데, 진하고 부드러운 맛이 서로 잘 어울려 기분 좋게 마무리해주었다. 한 번에 손님을 많이 받지 않고 좋은 재료만 엄선해 사용하는 것은 정말 ‘제대로’ 만든 요리를 선보이기 위해서라는 이구치 씨. ‘아무리 요리 솜씨가 뛰어나도 자연의 맛을 넘어설 수는 없다’고 생각하는 그의 요리 철학이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듯 하다. 문의 www.cheziguchi.com


1, 2 샐러드 바에서 다양한 채소를 맛볼 수 있는데, 자연 재배와 유기농 채소를 구분해 놓았다.


3 볏짚에 넣어 자연 숙성시킨 낫토. 맛과 향이 우리의 청국장과 비슷하다.

세련된 자연식을 선보이는 곳, 내추럴 하모닉
‘내추럴 하모닉 Natural Harmonic’은 일 년 전 일본의 요리 잡지에 소개된 것을 보고 예약하지 않고 갔다가 낭패를 본 적이 있다. 이른 시간에 가서 당연히 식사를 할 줄 알았는데, 이미 예약으로 만석이었던 것이다. 내추럴 하모닉은 본래 자연 재배 농산물 등 안전성이 높은 건강에 좋은 식품을 유통하는 회사다. 이곳에서 운영하는 레스토랑은 몸에 좋은 건강식을 선보일 뿐만 아니라 맛과 스타일도 세련된 곳으로 유명하다. 몇 개의 체인을 운영하는데 우리가 간 곳은 도쿄 근교에 새로 오픈한 레이크 사이드라는 대형 쇼핑몰 1층에 자리해 있었다. 이곳은 널찍한 야외 테라스가 있고 바로 옆에 자연 재배 농법으로 키운 작물을 파는 그라노 Grano라는 가게도 함께 운영하고 있었다. 레스토랑에 들어서니 나무에 천연 페인트를 칠해 자연스러운 질감을 살린 바닥, 천연 염색한 천으로 커버링한 의자, 무표백 냅킨, 80년 이상 된 일본의 전통 가옥에서 사용했던 나무로 만든 테이블 등 공간에서부터 자연 느낌이 물씬 풍겼다.


4, 5 도쿄 근교의 쇼핑몰 1층에 있는 내추럴 하모닉은 가급적 자연 재배 농법으로 키운 작물을 사용한다.



샐러드와 전채 요리를 뷔페식으로 운영하는데, 자연 재배 농법 채소와 유기농 채소를 구분한 것, 소스에 사용한 기름이나 조미료 등을 하나하나 직접 보여주면서 자세하게 설명하는 모습에서 대단한 자부심을 느낄 수 있었다. 샐러드 바에서 신선한 샐러드를 마음껏 먹은 후 메인 요리를 주문하면 7분도 현미밥에 미소시루와 몇 가지 요리를 맛볼 수 있다. 특히 미소시루가 인상 깊었는데 자연 발효로 만들었다는 미소는 그동안 먹어본 일본의 미소보다 우리나라 된장에 가까운 맛이었다. 또 볏짚에서 자연 숙성시킨 낫토는 냄새가 거의 없고 맛이 순한 일본의 일반 낫토와 달리 맛과 향이 우리나라의 청국장과 비슷해 더욱 놀랐다. 이곳은 음식 외에 맥주와 사케, 발효주, 와인 등도 맛볼 수 있으며 설탕 대신 메이플이나 아가베 시럽을 사용해 자연스러운 단맛을 낸 쿠키와 타르트 등의 디저트도 다양하게 마련되어 있다. ‘자연식’이란 채소만 풍성한, 소박한 상에 거친 질감의 음식만 있다는 고정관념을 단번에 물리친 곳. 맛도 있고, 분위기도 세련된 데다 술까지 즐길 수 있으니 자연식에 거부감이 있는 사람도 자주 찾을 수밖에 없는 곳이다. 문의 www.naturalharmony.co.jp


1 농부의 사진을 전시해놓은 다다미방. 손님은 이곳에서 식사를 한다.


2 일본 농가의 부엌을 재현한 레스토랑의 주방. 앞쪽의 샐러드 바는 커다란 가마솥에 얼음을 채워 만들었다.

톡톡 튀는 아이디어가 즐거운 곳, 농가의 부엌
빽빽하게 들어선 건물과 젊은이들로 넘쳐나는 신주쿠 한복판에 일본의 농가를 옮겨놓은 듯한 인테리어의 음식점이 있다. 신주쿠의 젊은이들에게 큰 인기를 끌고 있는 이곳은 건물 4층에 자리했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리자마자 작은 채소 가게가 눈에 들어오는데 다양한 채소는 물론 씨앗도 판매한다. 이 채소 가게를 지나면 모던한 분위기의 바가 나오고 바를 지나면 비로소 구니다치 팜에서 운영하는 ‘농가의 부엌’이 눈에 들어온다. 안으로 들어가니 레스토랑 이름처럼 진짜 ‘농가의 부엌’처럼 꾸민 곳이 이 레스토랑의 주방이고, 주방 앞쪽으로는 얼음을 가득 채운 커다란 가마솥을 걸어두었는데 얼음 위에 신선한 채소를 가득 진열해 샐러드 바로 이용하고 있었다. ‘농가’라는 인테리어 콘셉트는 곳곳에 숨어 있다. 한쪽에 있는 비닐하우스에서는 피망이 자라고, 주방 옆으로는 우리나라 시골집의 사랑채와 비슷한 형태의 다다미방이 있다.


3, 4 레스토랑 한쪽의 채소 가게에서는 채소는 물론 씨앗도 구입할 수 있다.


5 다다미방 앞 신발장에는 칸마다 서로 다른 채소 이름이 적혀 있다.

신발을 벗고 들어가는 이 방의 입구에 놓인 신발장에는 칸칸마다 채소 이름이 쓰여 있어 자기 신발을 어떤 채소 칸에 넣었는지를 기억하면 찾기가 쉽다. 농가의 부엌은 신주쿠뿐 아니라 다른 도시에도 지점을 두고 있다. 언뜻 채식 레스토랑처럼 보이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다. 단품 메뉴는 채소, 육류, 어류의 비율을 손님 취향대로 정해 주문할 수 있는 시스템이 꽤 흥미로웠다. 샐러드 바의 채소는 이곳에서 제공하는 세 가지 소스에 찍어 먹는데, 과일과 채소 두 가지 소스에 나머지 하나는 소금인 암염을 낸다. 난생처음 채소를 소금에 찍어 먹었는데 채소 본연의 맛을 더 깊이 느낄 수 있어 인상적이었다. 또 기억에 남는 것은 노른자가 하얀색에 가까운 달걀이었다. 유전자 조작 위험이 있는 옥수수 대신 쌀 등 유기 농산물 사료를 먹인 닭이 알을 낳으면 이처럼 노른자가 흰빛이란다. 비린맛이 적고, 고소해서 따뜻한 밥에 간장을 넣어 함께 비벼 먹으니 꽤 맛이 좋았다. 도시 사람들에겐 낯선 농업과 농부를 재미있게 해석해 즐거운 공간으로 꾸민 농가의 부엌. 음식 맛보다는 채소에 대한 호기심과 재미를 주는 레스토랑으로 젊은 사람들이 채소를 친숙하게 여기고 식재료의 중요성을 일깨워준다는 점을 높이 살 만한 곳이다. 문의 www.noukanodaidokoro.com

이화선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09년 11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