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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운 엄마표 요리]김매순 씨에게 배우는 제주 토속 요리 돼지고기엿과 보말죽
사람의 입맛만큼 보수적이고 주관적인 것이 또 있을까? 이희중 시인은 “할머니가 돌아가신 후 내가 아는 으뜸 된장 맛도 지상에서 살아졌다. …장차 어머니 돌아가시면 내가 아는 으뜸 김치 맛도 지상에서 사라질 것이다”라고 했다. 집요한 그리움을 지닌, 이제는 잊혀져 가는 내 고향 내 할머니와 어머니의 맛.
어린 내가 들어가고도 남을 만큼 커다란 가마솥 일곱 개가 우리 집 마당에 나란히 걸리는 날, 그날은 보나마나 납평날(납일 臘日이라고도 하며, 사전상으로는 동지 후 셋째 미일 未日을 말한다. 예전에 민간이나 조정에서 조상이나 종묘 또는 사직에 제사 지내던 날)이다. 내 고향인 제주에서는 길일인 납평날, 즉 음력 동짓달이 큰달이면 섣달 열여덟날, 작은달이면 섣달 열아흐레날 엿을 고면 아주 맛있고 약이 된다고 해서 어머니는 납평날이면 하루 종일 엿을 고셨다. 신식 음식은 못하셔도 된장, 간장을 비롯해 떡, 옥돔, 자리돔젓, 풋마늘장아찌, 들깨죽, 표고죽은 기본이고 어머니 손이 닿으면 맛없던 음식도 맛이 살아나게 만드셨던 우리 어머니. 특히 어머니의 엿 고는 솜씨는 박사급이었다. 나는 아들 여섯인 집안의 고명딸로 귀여움을 독차지하며 자랐다. 몸이 하도 약해 어머니는 아들들보다 더 귀하게 먹여 키워주셨는데, 그 먹을거리 중 하나가 바로 엿이었다. 납평날이면 일곱 개의 가마솥에 쇠꼬리엿, 돼지고기엿, 닭엿, 꿩엿, 무엿, 익모초엿, 늙은호박엿 이렇게 일곱 가지 엿을 고셨다. 고기가 부드럽게 씹히는 달콤한 엿을 먹어보았는가? 먹을 것이 부족했던 옛날에는 아이들 영양 간식이나 허약 체질을 위한 보양식으로 엿만 한 것이 없었다. 거기에 쇠꼬리, 돼지고기, 닭, 꿩 같은 귀한 고기 살까지 넣었으니, 그 정성과 영양이야 더 말해 무엇하리. 게다가 새벽 이슬 맞힌 무엿을 먹으면 기침이 가라앉는다고 해서, 익모초엿은 여자 배 아픈 데 좋다고 해서, 그리고 늙은호박은 배꼽이 하늘을 향해 달린 것만이 약이 된다고 하며 하나뿐인 딸을 위해 이런저런 엿을 고셨다. 이 정도 되면 그것은 이미 달콤한 간식이 아니라 보약이었다. 납평날뿐 아니라 평일에도 엿을 자주 고아주셨기 때문에 일 년 내내 집 안에 엿이 떨어져본 일이 없다. 제주는 육지와 달리 쌀이 나지 않기 때문에 차좁쌀로 엿밥을 짓는다. 엿기름가루와 섞어 엿기름물을 내고 그 물을 끓여 넘치지 않도록 정성껏 저으며 온종일 달여야 쫀득한 엿이 완성된다. 요즘 내가 어머니의 방식대로 엿을 골 때면 ‘엿기름물이 끓어 넘치면 엿이 맛없다’시던 어머니 말씀이 생각난다. 어쩌다 집안에 큰일이 있어 돼지를 잡는 날이면 나만을 위한 특식을 마련할 정도로 어머니의 딸 사랑은 유별났다. 돼지 뒷다리, 앞다리, 머리 살, 갈비 살 등 온갖 부위 살을 조금씩 떼어 메밀가루에 섞은 뒤 대창에 넣어 순대를 만드셨는데, 오빠들이 안 볼 때 몰래 방이나 광으로 나만 들어오라고 하셔서는 “네가 돼지 한 마리를 다 먹는 셈이다. 그러니 너는 이제 건강하다” 하시며 입에 넣어주셨다. 아마도 그때 먹은 엿의 기운으로, 또 돼지 한 마리를 담은 순대의 기운으로 지금까지 건강하게 살고 있는 것 아닐까.

제주에서는 음력으로 2월 초하루부터 15일까지 영등할머니에게 올리는 영등굿을 한다. 해녀와 어부를 위해 베푸는 굿인데, 이때는 벌레 생긴다 해서 빨래도 일체 못 삶게 하고 반드시 바다에 가서 제를 올린다. 신기하게도 맘씨 좋은 영등할머니가 오시면 날씨도 좋고 전복, 보말(고동의 제주 방언), 소라, 미역 등이 풍부해지고, 성질 고약한 영등할머니가 오시면 이상하리만치 전복과 소라의 빈 껍데기만 남는다. 어릴 적 나는 해녀인 어머니를 따라 바닷가에 나가 맘씨 좋은 영등할머니의 선물인 전복도 따고 보말도 따곤 했다. 전복, 옥돔, 참복, 다금바리 등 제주에는 유명하고 맛 좋고 값비싼 해산물이 많지만 내 기억 속에는 참으로 서민적인 보말이 영등굿과 함께 더 크게 자리 잡고 있다. 껍질이 원추형으로 딱딱한 보말은 ‘보말고둥’이라고도 하는데, 제주 토박이들은 전복보다 더 즐겨 먹는다. 썰물 때 물이 다 빠진 뒤에 큰 바윗돌을 오빠와 힘을 합해 뒤집어보면 새카맣게 보말이 붙어 있었다. 그 보말을 한 바가지 따 와서 삶은 뒤 살을 쏙쏙 빼 먹으면 그렇게 맛있을 수가 없었다. 어머니는 졸깃한 보말 살과 내장을 넣어 푸르스름하면서 노란빛이 도는 보말죽을 쑤어주시곤 했는데, 은은한 바다 향이 도는 별미 중의 별미였다. 지금도 제주 토속 음식점에 가면 보말죽, 보말국, 보말칼국수 등을 맛볼 수 있다. 내 건강의 원천이었던 제주식 돼지고기엿과 보말죽 만드는 법을 소개한다.

제주의 토속 음식으로 돼지고기엿과 보말죽을 소개한 김매순 씨. 어머니가 만들어주셨던 귀한 음식들은 건강은 물론 손맛도 전수해 그는 전국요리대회에서 금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이 칼럼은 궁중음식연구원 한복려 원장의 추천과 도움을 받았습니다. 그는 평소 우리나라 각 지역의 다양하고 특색 있는 토속 음식이 잊혀져 가는 현실이 안타까웠다고 말합니다. 매달 궁중음식연구원 지미재 회원과 함께 어머니와 고향의 맛을 추억하고 소개할 예정입니다.175제주의 토속 음식으로 돼지고기엿과 보말죽을 소개한 김매순 씨. 어머니가 만들어주셨던 귀한 음식들은 건강은 물론 손맛도 전수해 그는 전국요리대회에서 금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제주식 돼지고기엿과 보말죽 만들기

돼지고기엿
재료 돼지고기(사태) 400g, 차좁쌀 1.6kg, 엿기름가루 700g, 물 6리터, 된장 1/2큰술, 양파(소) 1/2개, 대파 1/3대, 생강 1톨

만들기
1 차좁쌀을 깨끗이 씻어 조리로 일어 건진 뒤 조밥을 아주 질게 짓는다.
2 그릇에 밥을 담고 따뜻할 때 엿기름가루를 넣어 골고루 섞은 뒤 물을 붓는다.
3 30~40분 후에 ②를 면주머니에 담아 잘 주무른 뒤 채에 밭쳐 엿기름물을 준비한다.
4 엿기름물을 솥에 담아 중간 불에서 저으면서 끓인다. 넘치지 않도록 주의한다.
5 냄비에 된장을 풀고 돼지고기와 양파, 대파, 생강을 넣어 끓이다가 돼지고기가 반 정도 익으면 건져서 얼른 물에 헹군다.
6 ⑤의 돼지고기를 끓고 있는 엿기름물에 넣어 완전히 익힌다.
7 푹 익은 돼지고기를 꺼내서 잘게 찢고, 엿기름물은 넘치지 않도록 저으면서 중간불에서 계속 끓인다. 8 엿기름물이 반 정도 졸았을 때 찢어놓은


보말죽
재료
보말 600g, 불린 쌀 1컵, 참기름 11/2큰술, 물 61/2컵, 소금 2/3큰술

만들기
1 쌀을 깨끗이 씻어 1시간 이상 물에 불린 뒤 물기를 뺀다.
2 보말은 바락바락 문질러 씻어 여러 번 깨끗이 헹군다. 끓는 물에 보말을 살짝 데친 뒤 꼬치를 이용해 속을 빼낸다.
3 보말 살 사이사이에도 모래가 들어 있기 때문에 여러 번 씻어 모래를 빼낸 뒤 물을 11/2컵 넣고 손으로 바락바락 주무른다.
4 ③을 면보자기에 걸러 보말 물을 받고 보말 살은 따로 둔다.
5 두꺼운 냄비에 참기름을 두르고 보말 살을 달달 볶아 그릇에 담는다.
6 보말 살을 볶았던 냄비에 참기름을 두르고 ①의 쌀을 볶는다.
7 ⑥에 ④의 보말 물과 물 5컵을 넣고 저으면서 끓인다.
8 쌀이 거의 퍼지면 볶은 보말 살을 넣고 저으면서 5분 정도 끓이다가 소금으로 간한다.

구선숙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09년 3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