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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고 싶은 동네, 보호하고 싶은 마을 부암동 기행 예술가들이 부암동으로 간 까닭은
예술가들 사이에서 ‘부암동’이라는 동네 이름이 자주 입에 오르내리고 있다. 그 동네로 이사 갔다며 소식을 전하는 문화계 인사도 많아졌다. 안평대군이 별장을 짓고 심신을 단련했고, 대원군도 별장을 지었고, 현진건 선생도 닭 치며 살았던 유서 깊은 동네. 인기 드라마 <커피프린스 1호점>의 ‘쓸자네 집’이 있고, 서울에서 찾아보기 드문 골목길과 동네의 정서가 남아 있는 부암동. 사람들은 왜 이 동네에 열광하는가? 도심에서 몸은 가까이, 마음은 멀리 떨어진 동네 부암동을 찾았다.

1 좁은 골목 사이로 들여다보이는 어느 집의 대문. 곳곳에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풍경을 숨기고 있는 곳이 부암동이다. 
2 아트 포 라이프의 노란 담. 담쟁이 덩굴이 타고 올라간 벽과 기둥은 부암동의 대표적인 풍경.

서울시 종로구 부암동付岩洞. 효자동에서 자하문 터널을 지나면 동네 하나가 나타난다. 왼쪽으로 인왕산, 오른쪽으로 북악산 사이의 잘록한 고갯마루에 올라서 서울을 내려다보는 동네다. 산 언저리 양옥집 담에선 황매화가 만발하고, 비디오 가게·통닭집·이용원이 오종종하게 붙어 있는 마을, 슈퍼마켓 앞 평상에 나앉은 할머니들이 햇살 아래 조근조근 담소하는 마을. 그 깊숙한 풍경으로 유명해졌을 법하지만, 베테랑 택시 기사조차 ‘부암동’이라는 이름 대신 ‘청와대 뒷동네’ ‘자하문 터널 윗동네’라는 설명을 더 친숙해하는, 숨겨진 마을이다. 지하철은 경복궁역에서 끝나고 버스도 몇 대 다니지 않으며, 아직까지 도시가스가 들어오지 않는 곳도 있고, 노래방도 PC방도 없는 동네, 건축 규제로 묶여 있는 동네가 부암동이다. 한갓진 동네로 잊혀진 줄 알았던 이 동네에 언제부터인가 변화가 일고 있다. 미끈한 갤러리가 문을 열고, 예술가들이 거처를 옮겨 오고, 트렌드와 무관할 수 없는 패션·리빙 브랜드가  메인 로드숍을 내고 있다.

본래 부암동은 조선시대 때 역관, 화원, 산관, 서리나 아전 같은 중인 계급이 모여 살았던 ‘생산’의 동네였다. 이곳에 사는 중인들은 60여 개의 시사詩社를 만들어 ‘위항문학’을 꽃피웠고 서양 문물을 가장 먼저 접한 신지식인들이었다. 실용적이되 삶의 풍류도 놓치지 않았던 그들의 전통은 면면히 이어지고 있다. 주장이든 재화든 실제 예술 작품이든 무언가를 생산해낼 수 있는 사람(중인)들이 부암동으로 모여들고 있는 것이다. 평창동 고급 주택가가 포화 상태가 되면서, 가회동과 삼청동이 강남 땅부자 습격에 허물어지는 것에 놀란 이들이 부암동을 새로운 터전으로 삼고 있는 것이다. 그 변화는 느릿느릿 스며들듯 일어났고 지금도 진행되고 있다. 2007년 가을에 우리가 만난 부암동은 야심가의 건축으로 이룩된 고래등 같은 집에서 오래되어 납작해진 집까지, 60대 조각가부터 비 오는 날이면 일을 쉬는 막일꾼까지, 삼애교회부터 기원정사까지 한데 모여 있는 동네다. 그들이 서로 조화되려 안간힘을 쓰지 않고 그냥 제자리에 서 있을 뿐인데, 그 모습이 그대로 좋아 보이는 동네다.  ‘부암동 정서’에 흠뻑 젖은 새 시대의 중인들은 이 동네에 들어오지 못해 안절부절이다. 도대체 이 동네의 무엇이 사람들을 홀리는가? 

조각가부터 백수까지  부암동 사람들
숨은 예술가들이 많은 동네인데도 평창동이나 양평처럼 예술가 마을이 될 수 없는 이유는 이곳의 예술가들이 ‘재야’의 성향을 띤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토박이들이 증언하기를 이 동네에서 살아가려면 자아가 강하고 평판에 신경 쓰지 말아야 한다고 한다. 부암동에서 만난 수많은 예술가들은 취재를 거부했고, 이 동네가 너무 유명해지는 것에 우려를 표시했다.

끝내주는 전망이 나를 사로 잡는다 - 목인박물관 김의광 관장
한참을 들어간 골목의 굽이, 과연 무엇이 있을까 싶은 외진 곳에 목인박물관 김의광 관장의 카페 ‘산모퉁이’가 자리 잡고 있다. 그의 집은 압구정동. 하지만 부암동에 반해 3년 전 무작정 전망이 멋진 이 집을 구해 뚝딱뚝딱 고쳤다. 자신의 목조각 수집품을 모아 박물관을 만들 정도인 그는, 이 집에도 마당이며 집 안에 귀한 돌조각과 가구를 놓았다. 이곳이 근린생활지구인 까닭에 본의 아니게 카페까지 열었다. “산모퉁이 이름 어때? 누구는 촌스럽다고도 하는데 나는 딱 좋아.”


멋진 전망이 매력적인 산모퉁이(02-391-4737).은발의 곱슬머리에 동그란 안경을 쓰고 ‘KFC 할아버지’처럼 기분 좋은 웃음을 짓는 김의광 관장은 유머가 넘치는 인물. 산모퉁이 대문 밖에 나와 카페 홍보를 위한 ‘삐끼’ 활동도 마다 않는다.

정말로 산모퉁이라 할 만한 높고 깊은 골목이건만 의외로 그의 카페에는 손님이 꽤 많다. 부암동의 대표적인 산책로인 백사실 초입인 탓도 있지만, 인기리에 방영 중인 MBC 드라마 <커피프린스 1호점>의 촬영 장소이기 때문이다. ‘한성’ 역의 이선균 씨 집으로 나왔던 이 공간을 보고 싶어 하는 팬들의 발길이 심심치 않게 이어진다. 촬영 소품이 세팅되어 있는 내부를 환호하며 구경하고, 아이스커피 한 잔 마시며 땀을 식히다 돌아간다. 이곳의 커피 맛, 첫 모금에 확 퍼지는 풍부한 향이 예사롭지 않다 싶더니만, 부암동의 유명한 커피집 클럽 에스프레소에서 배운 솜씨로 커피까지 공급받아 만든 것이란다. 클럽 에스프레소의 마은식 사장님이 때마침 산모퉁이에 들렀다. “경쟁 업체인데 커피 공급해도 되겠어요?” “경쟁 업체는 무슨…. 그냥 이웃인데.”

김의광 관장이 가장 사랑하는 부암동의 모습은 운치 있는 자연경관. 집에서 이곳으로 오는 길, 북악스카이웨이를 지나노라면 왕이라도 된 듯 눈 아래 펼쳐지는 전망에 하루가 흐뭇해진다. 백사실 계곡, 북악산 산책로에서 만나는 손때 묻지 않은 자연 그대로의 오솔길도 그가 아끼는 부암동의 속살이다.


장응복 씨는 스니커즈를  신고 부암동 산책길을 뛰는 것을 즐긴다. 땅을 밟으며 받아들인 산 기운 때문인지 얼굴이 한결 환하다.

텍스타일 디자인으로 우리나라 고유의 미감을 모던하게 선보이는 모노컬렉션의 장응복 대표. 세련된 감각의 최첨단 지대인 청담동을 무대로 활약하던 그가 이곳 부암동에 작은 둥지를 틀었다. “한 달 반쯤 전 이곳에 ‘피치 블러섬 파라다이스Peach blossom paradise’라는 새 브랜드의 로드숍을 냈어요. 이름을 해석하면, 복숭아꽃이 만발해 있다고 하는 ‘무릉도원’이란 의미로, 모든 이들이 꿈꾸는 생활의 모습을 디자인하겠다는 것이죠. 이 동네는 유명한 손만두집, 커피집을 다니다가 알게 됐어요.” 부암동을 오며 가며 볼수록 인왕산, 북악산과 같은 명산 사이에 숨겨진 듯 조용히 자리 잡은 동네의 정취에 매력을 느꼈고, 모노컬렉션의 새로운 도약의 거점을 이곳으로 삼기에 이르렀다. 피치 블러섬 파라다이스를 그 신호탄으로 모노컬렉션은 조만간 브랜드 라인업을 재정비할 계획이다. 편안하고 여유로우면서도 단아한 아름다움을 지닌 그의 패브릭 디자인과 이 동네의 풍경이 닮은 듯도 보인다. “저 자신도, 저의 브랜드 모노컬렉션도 제2의 시작을 위해 지금 잠시 제자리 뛰기 중이에요. 0에서부터 다시 시작한다는 마음으로 에너지를 축적하고 있습니다.” 그가 보기에는 이 동네에 어떤 정기가 흐르는 것 같단다. 화가, 조각가, 디자이너 등 예술 하는 사람들이 유난히 많이 모이는 것도 부암동 땅의 정기가 그들을 부르는 탓이지 싶다고. 예술가들이 점차 늘어나 조만간 부암동은 문화적으로 재미있는 동네가 될 것 같다고 예견한다.

피치 블러섬 파라다이스의 로드숍은 부암동 창의문 근처에 자리 잡은 구멍가게만 한 정사각형의 작은 공간. 신축이 힘든 법적인 사정으로, 내부 마감만 깔끔하게 다시 공사를 했다. 워낙에 숍이 작기도 하고 동네의 정서도 정서인지라 ‘OO상회’라고 간판을 달아야 하나 잠시 고민하기도 했다고. 그처럼 눈여겨 찾지 않으면 놓쳐버릴지도 모를 작은 공간이지만, 파리에 내놓아도 주목받을 예사롭지 않은 패브릭이 가득 차 있다. 그래서 안에서 내뿜는 잠재력은 예사롭지 않다. 마치 이 동네처럼.


1 창의문 근처 서울 성곽 옆에 자리한 그의 집.
2 작업실 외벽에는 그가 존경하는 조각가 김광호의 작품을 벽에 박아놓았다.
3 작은 조각공원으로 만든 마당은 비오는 날의 정취가 대단하다.
4 아내의 작품을 진열해 놓은 창가. 창밖으로 부암동과 세검정이 내려다 보인다.

골목길 한 귀퉁이에 거대한 발 조각이 건물에 매달려 있어 그 안을 기웃댔더니, 산신령 같은 노인이 나온다. 알고 보니 조각계 원로인 연제동 선생이다. 30년 전에 부암동에 들어와 25년 전에 작업실을 만들고 아이 둘 모두 조각가로 키웠다면서 노인이 웃었다. 군대 동기네 집 구경 왔다가 반해 식솔을 이끌고 이 산동네로 들어왔단다. “난 아침 여섯 시 반에 일어나 창의문 뒷길로 산책 가고, 마누라는 절에 기도하러 가요. 마을 전체가 다 보이는 이른 아침에도 좋고 황혼 녘에는 몽상에 흠뻑 취할 수 있어서 더 좋아요. 동네 사람들을 봐도 그리 바삐 지내는 사람 없고, 자연의 흐름처럼 살아요. 하지만 자아가 강하고 자기 중심적인 사람이 많아요. 그래서 겉치레 같은 것에 정신 팔지도 않고. 그런데 이 산의 기운을 버텨낼 수 있으려면 그래야 하는 건가?” 창의문 뒷길 언덕에 자리 잡은 그의 집은 더 눈길을 잡는다. “임금이 사는 경복궁이 너무 가까워, 이 동네에 이름난 정자가 별로 없었대요. 백성들이 높은 곳에서 궁궐 내려다보며 놀 순 없으니까. 요즘도 이 동네엔 건물 지으려면 고도제한이 있어요.

근데 세검정이랑 인왕산이랑 다 내려다보이니 여기가 이름난 정자지 뭐겠어요.” 그 전망도 일품이지만 선생의 조각으로 채운 마당도 일품이고, 도예가인 아내의 작품으로 채운 집 안도 일품이다. 그리고 집 바로 앞의 창의문 산책길은 더 일품이다. 창의문 옆 서울 성곽을 따라 걷다 보면 조붓한 산골 마을이 나오는데, 이 길은 ‘고개 너머’라는 말의 마력을 느끼게 한다. ‘이 길로 가면 정말 마을이 있을까’라는 의혹과 마을까지 힘들게 가게 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걸을수록 마을이 생각한 것보다 못할 수도 있다는 염려를 ‘너머’ 뒷골에 다다른다. 그러고 나면 ‘뒷골에 있는 집과 마을의 아름다움이 곧 사라져버리는 게 아닐까’라는 불안감에 휩싸이게 된다. 육십 고개를 넘은 그는 고개 넘으며 느낀 이 모든 감정들이 바로 인생의 희로애락임을 알게 됐다. 부암동 30년살이가 그에게 준 가르침이다.

대성이용원 옆에 오렌지색 벽이 생겨나자 호기심에 괴로워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그 옆 갤러리 유리창에 음화가 내걸리자 동사무소 직원이 찾아와 ‘사진을 떼라’고 통고했다. 민원이 하도 많이 들어와 업무가 마비될 지경이라는 거였다. 이렇게 ‘진한’ 일화를 남기며 입성한 이승희 씨. 그는 ‘호기심에는 책임감이 따른다’는 삶의 철학을 완성하기 위해 이 동네로 침입했다. 1956년에 지은 건물에 4평짜리 카페와 더 작은 갤러리 ‘호기심에 대한 책임감(이하 ‘호기심’)’을 열고 그냥 세상을 ‘지켜보았다’. 가로세로 3m의 초미니 전시장에, 관계자도 상주하지 않고, 밤 11시까지 불 밝혀놓는 갤러리. 커뮤니케이션 디자인 전문가인 그에게 이 갤러리만큼, 이 동네만큼 ‘체험, 삶의 현장’은 없다. 이곳에서 사는 일 자체가 바로 새로운 커뮤니케이션 미디어인 것이다. “궁금해하고 참견하고 챙겨주는 ‘동네 어르신 문화’라는 게 살아 있는 동네예요. 배타적이지만 매듭이 풀리면 누구보다 친밀해지죠. 호기심을 가진 사람이 많아서 슬쩍 들어와 그림 보고, 비평하고 돌아가요.” 인터뷰 도중 길 가던 동네 용접공 할아버지가 손을 흔들자 강감찬 장군 같은 목청으로 그가 소리쳤다. “형! 이따 창의문 옆에서 메추리 고기 구워줄 거지?” www.curiosity.co.kr

갈라진 벽지에도 시심이 깃들어 있을 것 같은 이 방에 홍수령 씨가 산다. 작년 가을 이 동네에 둥지를 틀었으니 부암동살이 1년 차다. 도자 갤러리의 큐레이터로, 영어 캠프의 선생님으로, 공연기획자로, 사진가(한사코 사진은 취미라지만 갤러리에서 개인전도 한 번 열고 유명 컬렉터가 그의 작품을 소장하기도 했다)로 인생의 행로를 급선회하며 산 그에게 부암동은 늘임표 같은 곳이다. “내게도 언젠가 ‘시마詩魔’가 오기를 바라고 있어요. 시인으로 등단하게 되든 아니든 지금은 내 삶이 익어가고 발효되는 과정이니, 이런 동네가 딱이죠.” 환기미술관 삼거리의 표정(교차가 일어나는 곳에선 표정이 읽혀진다고)을 드디어 읽게 된 날, 인왕산 길에 눈 맞으러 뛰어나간 12월 16일 새벽, <산정묘지>의 조정권 시인(그는 ‘첫눈이 오는 날 나는 시인이 아니라며’ 흰 술잔만 기울였다고 한다)을 만난 ‘호기심’ 카페의 밤…은 시인이 되기를 힘쓰는 몽상가에게 선물 같은 순간이었다.

이렇게 나직하게 고요하게 시간을 즐기면 어느 날 벼락같은 삶의 깨달음이 정수리를 부수고 들어올 것이다. 드디어 시마가 그에게 찾아올 것이다. ‘부암동에서’라는 작자 후기가 담긴 ‘홍수령 시집’이 조만간 잉태될 것 같은 예감이 든다.



부암동 입성 전 알아야 할 것들
예술가, 디자이너, 개성 있는 숍이 모여들며 번화하게 된 삼청동의 뒤를 이어 최근에는 부암동으로 사람들이 몰리고 있다. 부암동은 삼청동이 점점 복잡해지면서 잃어가는 운치와 여유를 여전히 간직하고 있으면서 자연이 느껴지는 주변 환경, 서울 도심인 광화문과 10분밖에 걸리지 않는 위치 등으로 쾌적한 집터를 찾는 이들의 물망에 오른 것. 또한 삼청동, 가회동은 이미 포화 상태에 달했으나 부암동은 많이 개발되지 않았고 집값이 상대적으로 낮은 것도 장점. 최근 1~2년 사이 부암동이 조금씩 주목을 받으면서 시세가 올랐다지만, 삼청동이 평당 3천만~4천만 원을 호가하는 데 비해 부암동은 평당 1천만 원 정도.

이곳에 집을 살 때 감안해야 할 점은 신축이 여의치 않을 수도 있다는 것. 3년 전 부암동의 그린벨트가 해제되었으나 부암동사무소, 자하문 터널, 대성이용원을 잇는 세모꼴 땅은 지구단위계획으로 묶여 있어 개인이 대대적으로 신축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그 밖의 지역도 길이 좁은 동네 특성상 신축 시 일정 부분의 땅을 길을 위한 대지로 할애해야 한다. 대신 보수나 수리는 필요에 따라 할 수 있다. 낡고 오래된 집이 많아 새로 이주해 들어오는 사람들은 거의 개·보수를 하는 편이다. 그래서 이 동네는 낡고 오래된 집과 새로 지은 깨끗한 집이 공존하고 있다. 90~1백 평형대의 집이 많고 50평형대가 귀하다. 또 전세 물량이 많지 않고 자택에 사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동네 내에서도 세부적인 땅의 조건이 조금씩 다르다. 환기미술관 뒤쪽은 해가 잘 들고, 보은 마트 뒤쪽은 길이 좋지 않지만 대신 전망이 훌륭하다. 부암동사무소에서 오른쪽 안으로 깊게 들어가면 나오는 현진건 집터 골목은 나무가 울창하고 건물은 적어 쾌적한 환경을 자랑한다. 부암동은 산 아래쪽이라 습한 편이며, 높은 지대 특성상 도심보다 여름에 시원하고 겨울에 춥다. 전반적으로 길이 좁고 경사가 심해 주차 환경은 그리 편치 않다. 청운중학교, 경복고등학교 등 예로부터 이름난 명문 학교가 학군 내에 있다. 도움말 인왕부동산(02-394-1426)

최혜경, 손영선 ,이재희 객원 기자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07년 9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