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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를 위한 가드닝 축제, 첼시 플라워 쇼 신종 장미부터 우주인의 정원까지
지난 5월 마지막 주, 영국 첼시에서 세계적인 규모의 가드닝 박람회 ‘첼시 플라워 쇼’가 열렸다. 수많은 관람객이 인산인해를 이룬 가운데 6백 여 팀이 다채로운 정원 디자인을 선보였는데, 올해 두드러진 경향은 자연과 인간의 미래를 고민한 작품이 많았다는 것이다.

1, 5 무수한 관람객으로 발 디딜 틈 없었던 첼시 플라워 쇼.
2 정원용 삽부터 형형색색의 장화, 넓은 정원을 운치 있게 장식할 조각품까지 온갖 다양한 정원 용품을 한자리에서 만나볼 수 있다.
3 빈센트 반 고흐의 이미지를 정원으로 만든 ‘빈센트의 정원 Le Jardin de Vincent’. 프로방스 지방의 느낌이 강한 이 가든은 실제 고흐가 살던 집을 많이 되살렸다. 그리다 만 붓꽃 그림이 놓인 이젤, 의자, 구두 같은 소품이 고흐를 추억하게 만든다.
4 꽃잎을 모티프로 디자인한 정원 ‘웨스트 랜드West Land’. 꽃잎 형상을 한 정원용 의자 또한 시선을 끌었다.

영국은 정원의 나라다. 집에 정원이 없는 것은 몸에 영혼이 없는 것과 마찬가지라 비유하는 그들이고 보면 가는 곳마다 공들여 꾸며놓은 정원을 만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정원을 좋아하는 만큼 관련 산업이 매우 발달했는데 특히 정원과 관련한 박람회는 그 종류와 규모, 내실 면에서 경탄할 정도. 그중 으뜸은 영국 왕립원예협회가 개최하는 ‘첼시 플라워 쇼Chelsea Flower Show’. 올해로 85회째를 맞은 이 박람회는 가든 디자이너, 시공자, 가드너에게 그야말로 세계 최고라 불리는 잔치이다.

매년 5월 마지막 주 5일간 열리는 첼시 플라워 쇼의 기획과 준비는 대략 18개월 전부터 시작된다. 런던의 로열 호스피털 옆 공원에서 열리는 이 행사에는 6백여 명의 작품 출품자와 마케터들이 참여하는데, 가운데 대형 천막을 중심으로 다채로운 정원을 설치한다. 50평 정도의 땅에 이상적인 정원을 꾸미는 ‘쇼 가든Show Garden’, 독창적인 아이디어가 돋보이는 ‘시크 가든Chic Garden’, 도시 공간에 적용 가능한 ‘시티 가든City Garden’, 주택의 안뜰에 어울리는 ‘코트야드 가든Courtyard Garden’ 등으로 나누어져 분야별로 6~20개 정도의 작품을 선보인다. 특히 올해는 옥상을 활용하는 ‘루프 가든Roof Garden’ 분야가 새로 마련되었다. 각 분야별로 골드, 실버길트, 실버, 브론즈 등의 메달을 수여하며 전체 참가작을 통틀어 ‘베스트 가든’을 선정하는데 그 경쟁은 상상을 초월한다. 가든 설계도와 식재 계획서, 자금 조달 계획 그리고 시공한 가든의 완성도 등으로 종합 평가를 하는데, 여기서 수상하면 그야말로 원예계의 ‘스타’가 되는 것이다.

그래서 영국 내의 기성·신인 디자이너는 물론 전 세계에서 활동하는 수많은 가든 디자이너들이 도전장을 내민다. 박람회의 명성에 걸맞게 BBC를 비롯한 많은 방송에서는 박람회장 안에 방송 스튜디오를 설치하고 하루에도 몇 차례씩 생중계를 하며 입장권을 구하지 못한 사람들에게 박람회장의 열기를 전달해준다. 8만 ~9만 원 정도의 비싼 가격에도 몇 달 전에 이미 모든 입장권이 매진되고, 입장 인원수를 제한했음에도 박람회장 안에 방송 스튜디오를 설치하고 하루에도 몇 차례씩 생중계를 하며 입장권을 구하지 못한 사람들에게 박람회장안의 모든길은 인산인해를 이룬다. 무슨 목적이 있어서라기보다 그냥 꽃이 좋고 꾸며놓은 정원을 보는게 좋아서 몰려든 사람들. 새로 개발한 장미의 색과 향에 대해 처음 본 사람들끼리 토론을 나누는 모습은 놀랍고도 부러웠다.


6 스웨덴의 식물학자 린네의 탄생 3백 주년을 기념해서 만든 작품 ‘린네에게 바침’.
7 영국암연구소의 ‘캔서 리서치 가든’. 참나무 조각을 조형적으로 배치, ‘함께 암을 이겨내자’는 메시지를 담았다.

인상적인 것은 정원에도 정치적·문화적·환경적 영향이 반영되고 시대정신이 깃든다는 점. 이미 10년 전부터 첼시 플라워 쇼에는 지구 온난화 현상이 정원에 미칠 수 있는 영향을 고려한 작품들이 쏟아졌고 지금도 그 추세는 계속 이어지고 있다. 올해의 수상작에서도 확연히 드러나는 점은 세계적인 물 부족 상황을 감안해 가뭄에 강한 정원 디자인이 대세를 이뤘다는 것. 또한 정원의 영원한 테마인 휴식과 건강을 증진시킬 수 있는 생태학적·의학적·미학적 정원도 여전히 돋보였다. 올해 최고의 화제는 최고상인 ‘베스트 쇼 가든’을 수상한 ‘브레드 스톤과 함께한 6백 일’이라는 작품. 이 정원의 가상 주인은 6백 일 동안의 우주여행을 마친 우주인인데, 단순한 상상력만으로 이 정원을 만든 것은 아니다. 실제 유럽우주국과 영국과학박물관의 협조를 얻어 화성의 토양에서도 생존할 수 있는 식물군을 8년 동안 연구, 먼 미래의 화성 생활에서 실제 재배가 가능한 식물을 사용해 현실성을 살렸다는 점에서 큰 점수를 얻었다. 금상을 수상한 ‘영국암연구소의 가든’은 ‘함께 암을 이겨내자’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전체 30m가 넘는 다섯 개의 긴 참나무 리본을 서로 연결해 ‘단합’의 중요성을 표현했다. ‘국제인권위원회의 가든’은 윤리적·사회적·환경적 책임을 강조하기 위해 지붕과 작은 연못의 콘셉트를 도입했다.

한편 ‘린네에게 바침’이라는 제목의 정원도 인기를 끌었는데, 스웨덴의 식물학자 린네Linnaeus의 탄생 3백 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만든 것으로, 스웨덴의 건축·예술·디자인·자연·원예에 대한 감성을 현대적 디자인으로 표현했다. ‘국제인권위원회의 가든’은 윤리적·사회적·환경적 책임을 강조하기 위해 지붕과 작은 연못의 콘셉트를 도입했다. 한편 ‘린네에게 바침’이라는 제목의 정원도 인기를 끌었는데, 스웨덴의 식물학자 린네Linnaeus의 탄생 3백 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만든 것으로, 스웨덴의 건축·예술·디자인·자연·원예에 대한 감성을 현대적 디자인으로 표현했다. 간결하지만 짜임새 있는 구성, 원근감을 강조한 사선 배치, 스웨덴산 화강암과 철재·목재의 적절한 매치 등이 돋보였다. 시크 가든이나 시티 가든, 코트야드 가든은 서너 평 정도의 크기로 규모는 작지만 일반인들이 자신의 집 정원을 꾸미는 데 필요한 실질적인 정보나 힌트를 얻을 수 있어 발길을 모았다. 특히 올해 새로 신설한 루프 가든은 아파트와 같은 공동주택의 ‘대안 정원’으로 관심을 모았다.

우리나라 거제시 외도의 해상 식물 공원인 ‘보타니아’의 최호숙 회장도 첼시 플라워 쇼를 방문한 뒤 이렇게 소감을 전했다. “단순히 조경물의 전시장이 아니라 삶의 한 방식으로의 정원을 제시한다는 것이 이 쇼의 매력입니다. 우리의 정원 문화를 돌아보게 하는 일종의 ‘가든 학교’ 역할을 하지요.” 그의 말처럼 첼시 플라워 쇼는 단지 흥미로운 정원들을 둘러보는 눈요기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궁극적으로 인간이 자연과 어떻게 더불어 살아야 하는가에 대해 생각해보게 한다. 세계적으로 도시화가 빠르게 진행되면서 정원은 날로 줄어들고 있는 실정이고, 아이러니하게도 초록이 줄어드는 만큼 그에 대한 인간의 열망은 인류 역사를 통틀어 그 어느 때보다도 커지고 있다. 정원 디자인은 이제 정원을 소유한 사람들만을 위한 분야로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자연을 잃어가는 인간의 갈증을 해소시키고, 인간과 자연 그리고 지구가 함께 살아갈 수 있는 가능성을 제안하는 분야라고 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첼시 플라워 쇼는 참 부럽고도 멋진 문화의 잔치가 아닐 수 없다.

첼시 플라워 쇼, 관람하려면?
첼시 플라워 쇼는 매년 5월 하순 경 5일 동안 영국 첼시 지역의 왕립병원 정원에서 열린다. 네덜란드의 암스테르담 국제 원예 박람회와 함께 세계적인 원예 축제로 손꼽히며, 해마다 놀라울 정도로 관람객이 많이 몰려 1988년부터 관람객 수를 17만 명으로 제한하고 있다. 연말에 오픈되는 홈페이지(www.rhs.org.uk) 첼시 플라워 쇼 항목에서 관람권을 예매할 수 있다.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07년 7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