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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지선, 함성욱 씨 부부의 별난 아파트 우리집은 2년째 DIY 중
멀쩡한 아파트의 벽과 바닥을 뜯어내고 손에 연장을 든 지 벌써 두 해째. 유해 마감재 걱정으로 시작한 일에 가구 만드는 취미까지 가세하여 이토록 일이 커졌다. 벽 마감부터 몰딩은 물론 부엌 가구, 책장, 문짝까지 직접 완성했다는데, 조만간에는 공사가 끝나지 않을 이 집을 ‘작가주의 DIY’라 부를 만하지 않을까.
경기도 용인의 한 아파트 19층. 현관을 들어서자마자 문 없는 신발장을 가린 알록달록한 천이 눈에 들어온다. 신발을 벗고 집 안으로 들어서면 뻥 뚫린 벽면 구멍과 당황스럽게 마주친다. 그 정체는 온갖 전선이 복잡하게 들어앉은 뚜껑 없는 전기 박스. 뿐만 아니다. 커버가 없어 손이 쑥 들어가는 전등 스위치, 주방 천장에 태연하게 옛 흔적을 남기고 있는 둥근 후드 구멍도 있다. 휑한 거실에는 테이블 없이 의자만 세 종류요, 침실 옆 화장실은 숯을 칠한 위로 나무 패널을 붙이는 중이라 공구와 나무판이 널려 있다. 반년 전 이 집을 처음 방문했을 때보다 진척이 되긴 했으나, 대책 없이 의기충천한 이 부부의 집은 여전히 공사 중이다. 잠시 머물렀다 가는 임시 거처도 아니건만 어수선한 집 안 풍경에도 개의치 않고 이들은 내 손으로 집을 완성하리라는 꿈을 꿋꿋이 지키고 있다. “이 아파트로 입주해 들어오면서 벽과 바닥을 뜯은 것이 작년 4월인가요? 벌써 2년째로 접어드네요. 겁 없이 이 대공사의 시작을 저질렀던 그때, 우리가 잠시 정신이 혼미했었던 거죠.”

결혼 5년 차에 접어드는 사이좋은 젊은 부부는 새로 지은 이 아파트로 작년 초 이사를 왔다. 하지만 중후한 체리목을 중심으로 장식된 고루한 인테리어는 그들의 취향과 전혀 맞지 않았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새 아파트 마감재에서 배출된다고 하는 온갖 유해 물질이 걱정이었다. 그래서 집 안 공기를 신선하고 안전하게 유지해줄 환기 시설을 설치하고자, 또 이왕이면 친환경 마감재로 개비할 요량으로 호기롭게 천장을 뜯었다. “크게 어려울 것 있을까 생각했죠. 결혼 전까지 주택에 살았는데 그때 워낙 이것저것 집수리할 일이 많았거든요. 아버지와 같이 수시로 고치고 두드리고 했으니까요.” 남편 함성욱 씨는 그때만 해도 공사가 이렇게 오래 걸릴 줄은 전혀 예상도 못했다고 고백한다.

1 이 부부의 야심작으로 다리의 비례미가 최고의 매력인 주방 테이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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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색으로 빛나는 비즈 조명등은 장지선 씨 작품. 이종명 가구의 비즈 조명 클래스에서 배운 솜씨다.
3 서재의 수납장들 역시 직접 만든 것으로, 서랍 정면의 아름다운 나뭇결이 감상 포인트다.

DIY의 실험장, 비싼 수업료 치른 집 공부
이들은 벽과 바닥, 천장에 원래 시공되어 있던 마감재를 모두 뜯어내고 백지 위에서 모든 것을 시작했다. 다 뜯어낸 집의 가장 밑바탕에는 새집의 유해 물질을 줄여주고 원적외선과 음이온을 방출해준다는 액상 숯을 칠했다. 아침 7시부터 저녁 8시까지 하루 온종일 열심히 칠했는데도 거의 20일 가까이 걸렸다. 그동안 네다섯 벌의 옷이 까맣게 물들었다. 일단 숯을 칠한 바탕 위에 속칭 ‘빠데’라고 하는 퍼티putty를 발라 면을 정리하고, 서재는 파란색, 주방은 밝은 초록색, 거실은 베이지색으로 도장했다. 부지런히 기본 바탕을 만든 것뿐만 아니라 전문가 못지않은 디자인적 기교도 부렸는데, 거실 천장은 전체적으로 높게 우물천장을 올려 꽃무늬 벽지를 발랐고, 서재와 주방 등 공간의 경계가 되는 부분 벽에는 멋스럽게 아치로 모양을 냈다. 공간 하나하나마다 이 아마추어 공사꾼 부부가 설레는 마음으로 꿈꾸며 작업했을 풍경이 눈에 선하다.

“공사 시작하기 3개월전부터 이런저런 정보도 찾아보고 계획도 세우고 했는데, 이 모든 사전 준비가 실제 공사에 들어가자 거의 무용지물이 되더라구요. 실제 공사에는 경험을 통해 배운 것이 필요했어요. 작업을 하다가 막힐 때면 공사 중인 다른 동 아파트의 인부를 찾아가 물어보기도 수 차례였죠. 중간 중간 작은 실패도 있었어요. 패턴만 보고 결정한 복도의 꽃무늬 벽지는 실제 집 안에서 어울리지 않고 너무 튀는 바람에 결국 다시 페인트를 칠했지요.” 꽃무늬 벽지는 아내 장지선 씨가 고른 것으로, 그는 이상하게도 옷을 고를 때는 꽃무늬를 고르는 법이 절대 없건만 패브릭이며 벽지 등 집과 관련된 아이템에서는 크고 화려한 꽃을 보기만 하면 합리적인 사고가 정지되고 그만 꽃무늬를 선택하고 만다고.

1 아직 티테이블을 만들지 못해 거실에는 소파와 의자, 풋 스툴만 덩그러니 놓여 있다,
2, 4 침실 문과 조명등은 직접 만든 것. 벽지는 장지선 씨가 세덱에서 골라 시공했는데 야채 전분을 재료로 만든 벽지용 천연 접착제, 에코픽스를 사용했다.

이처럼 때로 충동적인 결정이 후회를 낳은 일도 있었지만, 집 안 단장에 쓰인 각 제품을 선택하기까지 많은 조사가 뒤따랐다. ‘시작을 하면 끝을 보는 성격’인 함성욱 씨는 인터넷과 책은 물론 인테리어 박람회가 열리는 곳마다 쫓아다니며 공부하고 또 공부했다. 넓은 박람회 전시장을 서너 시간 돌아다닌 끝에 괜찮은 제품 한두 개를 발견하는 식이었다. 직접 시장 조사를 하니 인테리어 업체를 통해 구하는 것보다 훨씬 저렴하게 자재를 구할 수 있었다. 시공까지 제 손으로 했으니 비용이 절약된 것은 당연. 원래 아파트에서 이 정도 공사를 하려면 어느 정도 비용이 든다는 얘기를 인테리어 업계 사람에게 들었는데, 이들 부부는 그 4분의 1도 안 되는 저렴한 비용으로 이를 완성했다. 물론 거기에 들인 시간과 노력을 계산한다면 큰 이득은 아닐지도 모르겠다며 부부는 웃는다.

3 메이플 상판이 따뜻함을 전하는 부엌 가구 역시 손수 완성한 것이다.


서재의 책장은 가장 최근에 완성한 것이다. 문학 전집부터 만화책까지 다양한 책이 꽂혀 있다. 벽의 페인트칠 또한 직접 했는데, 그들이 선택한 페인트는 제너럴피니쉬사와 메퍼드사의 제품으로 솔벤트를 함유하지 않은 것은 물론 도장 시 냄새 또한 전혀 없었다고.

식탁, 수납장, 문짝까지 공방에서 만들어 나르다
거실 바닥에 원목 마루를 까는 것으로 집의 바탕 화장을 대략 마친 후, 그 안을 직접 만든 원목 가구로 채우기 시작했다. 부부는 이 집으로 이사 오기 직전부터 가구 공방을 다니며 DIY 가구 만들기에 빠지기 시작한 터였다. 거기에 새집 공사가 불을 붙인 셈. 테이블, 스툴 같은 가구는 물론 책장, 부엌 가구, 각 방의 문짝과 거실 소파까지 이들은 넘치는 의욕으로 직접 제작을 결심했다. 집과 20분 거리인 공방을 매일같이 드나들며 모자이크를 맞추어나가듯 하나씩 가구를 완성해나갔다. “가구를 만드는 가장 첫 단계로, 이것이 엘리베이터와 현관문을 통과할 수 있는 사이즈인가를 고민해야 했죠. 처음에는 자재와 페인트를 실어 나르더니 그다음에는 공방 트럭으로 가구를 실어 나르고…. 아마 이웃 사람들이 대체 저 집에서 무엇을 하나 싶었을 거예요.”

1 드레스룸의 문은 애시로 만든 것이다.
2 장미목과 자작나무의 질감을 조화시켜 만든 화장실 문.
3 시멘트 독을 빼기 위해 아파트의 모든 구조물을 뜯고 시멘트 위에 바로 액상 숯을 발랐다. 참숯 페인트 전문 업체인 수채선의 제품을 사용했다.
4 주방 수납장의 내부 서랍은 종류별로 테이블웨어를 보관하기 편리하도록 칸을 나누어놓았다.

이렇게 하나씩 완성된 가구들이 휑한 집을 채우기 시작했다. 무작정 필요한 가구를 만든 것이 아니라 나름대로 공간별 테마 나무를 정했다. 서재는 참나무, 주방은 단풍나무, 드레스룸은 물푸레나무 등으로 각기 다른 나무의 질감을 살리자는 의도. 아름다운 나무 가구가 놓인 멋진 집을 꿈꾸며 부부 합작으로 열심히 나무를 켜고 다듬어 가구를 만들었다. 그 노력의 결과로 탄생한 이들 최고의 역작은 부엌 가구. 이 집의 부엌에는 기성 주방 가구가 단 한 하나도 없다. 원래 있던 주방 가구를 싹 치우고 유럽의 농가를 연상시키는 부드럽고 따뜻한 느낌의 나무 가구를 ‘ㄷ’ 자 형으로 직접 만들어 짜 넣었다. 적지 않은 주방의 공간 스케일과 개수대, 가스레인지, 수납장 등 각기 다른 용도를 소화해야 하는 부엌 가구의 특성상 결코 쉽지 않은 작업이었다. 하부장을 넉넉히 만들어 그릇을 수납하도록 하고 필요할 때 이동형으로 쓸 수 있도록 수납장 하나에는 바퀴를 달았다. 장마다 각각 다르게 생긴 문과 개수대 상판의 바랜 듯 정겨운 색의 타일은 부엌에 아기자기한 멋을 더한다. 여기에 이들이 들였을 땀과 노력이 얼마나 컸을지, 보지 않아도 짐작이 간다.

이 같은 주방을 배경으로 위풍당당하게 놓인 단풍나무 테이블은 이들 부부가 가장 좋아하고 자랑스러워하는 야심작. 밝고 따뜻한 나뭇결과 반듯하고 안정적인 형태를 자랑하는데, 특히 테이블 다리에 주목해야 한다. 유난히 굵고 튼튼해 보이는 다리가 상판과 이루는 비례미는 이 테이블의 진정한 매력이라고. “자세히 보면 집의 이곳저곳에서 아마추어의 한계가 드러납니다. 서랍이 꽉 안 닫히는 것도 있고, 주방 가구 상판의 나무가 갈라진 부분도 있어요. 벽의 페인트칠도 경계면의 마감을 보면 전문가가 한 것과 달리 매끈하지 못하죠. 하지만 그런 것들 또한 우리 부부에게는 추억이 담긴 멋이 됩니다.”

이들은 작년 연말 호주로 여행을 다녀왔다. 요즘은 어디를 가도 집만 눈에 들어와서 호주에서도 멋있고 좋다는 집 구경을 실컷 하고 왔다. 비싼 수업료를 치른 이 아파트 다음으로 이들의 보금자리가 될 집은 주택이기를 바란다고. 그때는 아파트라는 한계 때문에 못했던 것들을 원 없이 해볼 예정이다. 하지만 그것은 먼 나중의 일. 당장 이 아파트 공사를 마치는 데만도 앞으로 1년은 더 걸릴 듯하다. 욕실 마감도 마저 해야 하고, 거실 테이블도 만들어야 하고, 책장도 더 만들어야 한다. 이들이 꿈꾸는 모든 것이 완성되면 <행복> 독자에게 그 소식을 다시 전할 수 있기를.


DIY 가구 만들기, 어디서 배울 수 있나?
우드 스튜디오 장지선·함성욱 부부가 가구를 배우고 만드는 곳. 세 명의 사진 전문가가 목공 일을 좋아하는 취미가 같아서 함께 경기도 용인에 낸 공방. 이제 거의 목수가 다 된 이들이 슬라이딩 톱, 샌딩 테이블, 먼지 집진 시설까지 갖춘 1백 평 남짓의 공간에서 오크, 체리, 월넛 등 고급 가구재를 사용해 가구를 만들고 가르친다. 문의 031-261-3004, woodstudio.co.kr 헤펠레 목공방 세계적인 가구 하드웨어 공급사인 독일 헤펠레사의 노하우를 살려 운영하는 목공방. 독일 본사에서 목공 기계, 목재, 천연 페인트 등 품질 좋은 제품을 공급받아 운영한다. 전국 30개 지점을 운영 중. 문의 031-760-7600, www.hafele.co.kr 내가 만드는 가구 젊은 가구 디자이너들이 모여 시작한 원목 주문 가구 전문 업체로, DIY 목공학교를 운영한다. CD장·좌탁 만들기 기초 과정과 수납장·콘솔 만들기 심화 과정 클래스를 운영한다. 문의 031-959-7893, www.my-diy.co.kr 아름다운 가구 만들기 젊은 여성 회원이 많은 편으로 기본적인 공구 다루는 법부터 가구 만드는 과정까지 차근차근 배울 수 있다. 문의 02-333-6418, www.bf-diy.com


손영선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07년 5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