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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촌목공소 이정섭 씨의 가구 갤러리 두메산골에서 아름다운 나무 가구가 성장한다
강원도 홍천에서 가구를 만드는 목수 이정섭 씨가 자신의 가구 목공소 옆에 새롭게 갤러리를 열었다.참나무, 호두나무, 물푸레나무 등 나무의 질감을 간결하고도 매력적으로 살린 그의 가구는 이제 그가 직접 구상하고 지은 전용 갤러리에서 제 멋을 뽐내고 있다.


1서울 한복판이라면 꿈도 꾸지 못했을 널찍한 공간에 이정섭 씨는 자신의 손끝으로 완성한 아름다운 나무 가구들을 원하는 방식으로 마음껏 전시해놓았다. 
2 간결하고 단아한 멋을 보여주는 내촌목공소의 가구. 
3 내촌면에 들어서서도 꼬불꼬불한 흙길을 따라 한참을 들어가야 이정섭 씨가 문을 연 가구 갤러리가 나온다. 휴대폰조차 터지지 않을 정도로 깊은 산골이다.

이정섭 씨의 가구를 만나려면 강원도 홍천군 내촌면에 들어서서도 산중으로 난 흙길을 따라 한참을 더 들어가야 한다. 과연 무엇이 있기는 할까 싶은 그곳에 수더분한 산세와 어우러진 내촌목공소와 갤러리 건물이 자리 잡고 있다. ‘목수’ 이정섭 씨는 간결한 형태 속에 나무 고유의 아름다운 질감과 색을 고스란히 담아 가구를 만든다. 굳이 스스로를 ‘목수’라 이르는 것은 나무 가구 만드는 일이 감각적인 ‘디자이너’의 작업보다는, 부지런히 나무를 켜고 다듬는 가운데 숙련되는 ‘장인’의 노동과 닮아 있는 까닭이리라. 내촌면의 ‘내耐’ 자가 인내할 내 자라 마음에 들었다 하니 그의 업業과 성품이 일맥상통한다. 이곳 홍천에 터를 잡고 가구를 만들어온 지도 벌써 5년. 그 시간 동안 그의 가구는 조금씩 매체와 전시를 통해 알려지며 세간의 주목을 받았고, 이제 ‘내촌목공소 가구’ 하면 관심 있는 사람들은 ‘아, 그 원목 가구!’ 하며 고개를 끄덕일 정도로 세상에 이름을 얻었다. 이 같은 일이 벌어지는 동안, 그의 목공소 옆으로 건물이 하나 더 들어섰다. 시원스러운 천장과 단아한 마감으로 완성한 가구 갤러리가 바로 그것이다. “제가 직접 구상하고 만든 공간에 제 가구를 놓고 보여주고 싶었어요. 아직 완전히 제 의도대로 꾸며놓지는 못했지만 침실, 거실, 서재 등 각각의 공간을 연출해놓고 제 가구가 어떻게 멋스럽게 어우러지는지 보여주기 위해서지요.”

가구부터 공간까지 ‘내촌목공소 스타일’로 갤러리는 가로로 긴 직사각형 형태의 2층 건물로, 시멘트 위에 투명 에폭시로 마감한 바닥, 콘크리트 벽돌로 쌓은 1층, 미색으로 매끈하게 마감한 2층, 서까래를 그대로 드러낸 삼각 나무 지붕으로 구성된다. 깔끔하고 단아한 내부 마감은 꼭 그의 가구를 닮았다. 자칫 차갑고 건조해 보일 수 있는 바닥과 벽의 콘크리트 소재는 지붕의 따뜻한 나무 색감과 길게 늘어뜨린 노란 알전구 조명으로 온기 있게 보완된다. “콘크리트와 나무가 만나면 서로가 모두 부각되는 효과가 있어요. 창백한 콘크리트와 따뜻하고 인간적인 나무 소재는 각각 서로의 장점을 강조해주면서 조화를 이루기 때문이지요.” 장식 없는 심플한 마감재, 시원스러운 복층 구조로 절제미와 여백을 동시에 살린 이 갤러리는 내촌목공소 가구 특유의 매력을 전하는 훌륭한 배경이 되어준다. 나무의 특성과 자신의 가구를 가장 잘 아는 그가 직접 완성한 공간이니 오죽 제대로 만들었을까.

1 호두나무로 만든 단아한 테이블과 의자. 벽에 걸린 그림은 그가 1999년에 그린 것이다. 당시 심취해 있던 지하철 공간에서 본 광고판을 모티프로 작업한 그림이다.
2 가구 하나를 완성하는 데는 보통 일주일도 걸리고 보름도 걸린다. 나무 상태에 따라 제작 기간이 달라지는데, 원목 가구 만드는 일은 재료가 되는 나무의 근육과 조직을 찬찬히 뜯어보고 그 힘의 질서를 가구 모양에 맞게 재편하는 일이라고 한다. 
3 여백이 많고 깔끔하게 마감된 갤러리 공간은 내촌목공소 가구 특유의 매력을 한껏 살려준다.

이 갤러리는 이정섭 씨의 또 다른 전환점이다.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나무라는 소재를 이해하고 점차 가구 만드는 데 물이 오르면서 유명해진 것이 첫 번째 시기라면, 이제부터는 좀 더 시장성 있는 고급 가구로 자리매김하고 집 전체로까지 확대되는 ‘내촌목공소 스타일’을 선보이고 싶다는 것. “제가 가구를 만들기 전에는 한옥 만드는 대목大木이었잖아요. 그래서 궁극적으로는 가구부터 건물까지 집을 통째로 제 솜씨로 완성해보고 싶습니다.” 자연 소재 그대로를 살린 질감, 담담하면서도 정갈한 형태로 대변되는 내촌목공소의 ‘미학’은 머지않아 ‘집’으로도 만나볼 수 있을 전망이다. 이 또 다른 시작을 위해 그는 좀 더 제대로 된 공간에서 그의 가구를 상시적으로 전시할 필요성을 절감했다. 그 결과 탄생한 것이 바로 이 갤러리이다. 취지는 충분히 납득이 가나, 도시 한복판은 못 되더라도 어찌하여 아스팔트 도로조차 없는 강원도 두메산골에 갤러리를 세웠을까. 3천 명이 채 안 되는 내촌면 인구가 그의 가구를 보여주고 싶은 전부는 아닐 텐데 말이다. “내촌으로 사람들을 불러들이고 싶어요. 문화의 불모지인 이곳이 저의 내촌목공소와 갤러리를 거점으로 조금씩 재미있는 공간이 많아져서 언젠가는 사람들이 스스로 찾아오는 문화 마을이 되게 하는 것이 저의 꿈입니다. 그리고 또 하나 중요한 것은 목공소를 지었을 때와 마찬가지로 훨씬 경제적인 비용도 이유가 되고요.”


1,3 높은 복층 천장 구조를 활용해 가구를 전시해놓았다. 
2 여백이 많고 깔끔하게 마감된 갤러리 공간은 내촌목공소 가구 특유의 매력을 한껏 살려준다.
4 돌은 나무 못지않게 그가 좋아하는 자연 소재. 이곳저곳에서 마음에 들어 주워 온 돌을 가구와 함께 놓았는데, 갤러리에서 유일하게 비일상적인 연출이 가미된 공간이다. 
5 갤러리 2층에는 야외 공간도 마련해두었다. 여기 놓인 테이블과 의자는 작품이라기보다는 그냥 이곳에서 술을 마실 때 사용하려고 놓아둔 ‘막가구’라고.

내촌에서 가구를 만들고 있지만 이정섭 씨가 항상 이곳에만 머무는 것은 아니다. 업무상 필요하면 서울도 가고, 미국도 간다. 지난 1년여간은 ‘신사유람단’이라도 된 듯 시간이 허락할 때마다 세계를 두루 구경하고 다녔다. 미국의 조지 나카시마 공방을 비롯해 유명 가구와 관련된 곳이 대부분이었다. 미국은 물론 유럽, 일본 등 세계 곳곳을 둘러본 후에 그에게는 확고한 자신감이 생겼다. “서양의 촉망받는 디자인 재원들은 거의 플라스틱 가구 디자인을 하는 공업 디자이너죠. 장인 정신으로 원목 가구를 만드는 이들도 있지만 거의가 과거의 답습에 그치거나 산업적인 안목이 없어요. 내촌목공소 가구가 도전해볼 만하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게다가 지금 세계의 디자인 트렌드는 ‘미니멀’이고 동양의 미적 감각이 열광적인 숭배를 받습니다. 일본 건축가 안도 다다오는 아직 살아 있음에도 ‘건축의 전설legend of architecture’로 소개될 정도니까요. 같은 동양이어도 우리가 보여줄 수 있는 것은 일본과 또 다르죠. 우리나라 가구는 비례감이 참 아름답습니다. 한옥을 보세요. 밖에서 본 인방선의 비례가 얼마나 간결하고 우아합니까. 이것이 자연스레 학습되어 있는 한국 사람은 최고의 가구를 만들 수 있어요.”

1 물푸레나무로 만든 책상.
2 레드오크로 만든 낮은 탁자. 장식을 더하지 않고 나무 자체의 결을 살리는 것 만으로도 충분히 아름답다.
3 호두나무로 만든 선반. 위에 놓인 그림은 그의 유일한 이웃인 작가 이진경 씨의 작품이다. 이진경 씨의 그림은 자신의 가구와 잘 어울려 곧잘 함께 전시한다고.
4 뭉툭한 손톱 경계선으로 까맣게 때가 낀 손, 마르고 호리호리한 몸매는 그의 인상을 검박하게 만든다. 하지만 이정섭 씨는 세계를 무대로 다부진 꿈을 꾸는 야심가이기도 하다. 연신 피워대는 줄담배는 그의 유일한 취미이자 호사.

아름다운 못이 있으면 박겠다 세계 시장 조사를 마친 그는 꼬불꼬불한 내촌면으로 돌아와 야심 찬 꿈을 위한 준비를 착착 진행하고 있다. 요즘 관심사는 가구에 한국적인 비례, 보다 정제된 비례를 담아내는 것. 그리고 또 하나는 나무에 쇠, 돌 등의 소재를 결합하는 것이다. 흔히 가구 업계에서는 못 하나 쓰지 않고 오로지 나무로만 완성한 가구를 훈장처럼 자랑하지만, 그는 아름다운 못이 있다면 얼마든 박겠다고 말한다. 못을 박으면 가구가 더 안정감 있고 튼튼해지는 효과가 있기 때문이다. 쇠에 이어 돌 또한 그가 관심을 가지고 있는 소재다. 반들반들한 둥근 돌이 수면에서 솟아오르듯 상판에 결합된 테이블은 어디에서도 보지 못한 매혹적인 곡선미를 보여준다. 내촌 생활에서 그가 부가적으로 얻은 수확은 자연물에 대한 깊은 이해가 아닐는지.

이곳에서 그의 일상은 단순하다. 아침 7시 반에 일어나 씻고 밥 먹는 것 빼고는 밤 10시까지 계속 가구를 만든다. TV도 없고 변변한 오락거리도 없다. 라디오가 외부와 소통하는 유일한 채널. 흡사 수도하는 삶 같다. 밤이 되면 칠흑 같은 어둠뿐인 이곳에서 외롭지는 않을까? “북적대는 사람들 속에서 살아도 외로운 순간은 있잖아요? 저는 여기서 나무 만지는 일이 제일 재미있고 행복합니다.” 하기야 짬뽕도 얼큰하게 잘 끓이고, 지천에 널린 봄나물로 비빔밥도 곧잘 차려내는 그이니, 걱정은 접어도 될 듯하다.
문의 033-433-5573





손영선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07년 4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