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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거창 이수미팜베리 베리berry 이즈 베리verry 굿!
꽃다운 스물세 살에 굽 높은 구두 대신 흙 묻은 장화를 신고 농업의 세계로 뛰어든 여장부가 있다. 짧은 서울 생활을 접고 고향 거창으로 내려가 양계 사업을 이끌던 그는 8년 전부터 복분자와 블루베리, 블랙베리를 생산하는 농부로 거듭났다. 가공품을 생산하고, 카페와 펜션까지 운영하며 6차산업을 성공적으로 이끌어가는 이수미 대표 이야기.

복분자와 블루베리, 블랙베리 등 각종 베리류를 키우는 이수미 대표(왼쪽)와 베리류로 다양한 레시피를 제안한 김윤정 요리 연구가.
내가 가장 예뻤을 때 나는 삽을 들었다
“내가 가장 예뻤을 때/ 나는 아주 불행했고/ 나는 아주 얼빠졌었고/ 나는 아주 쓸쓸했다/ 때문에 결심했다. 될수록이면 오래 살기로/ 나이 들어서 굉장히 아름다운 그림을 그린/ 불란서의 루오 할아버지같이 그렇게.” 일본 시인 이바라기 노리코의 시를 접한 건 대학 시절 소설가 공선옥의 장편소설 <내가 가장 예뻤을 때>를 읽고 나서다. 시의 제목을 그대로 따온 소설 속에서 작가는 주인공 해금의 삶을 통해 스무 살 시기의 쓸쓸함과 달콤함을 사랑스럽게, 가슴 찡하지만 희망차게 그려낸다. 친구와 눈만 마주쳐도 까르르 웃음 짓고 꽃향기만으로도 가슴 설레던 청춘 시대. 이수미팜베리 이수미 대표는 자신의 20대를 패션 디자이너의 꿈을 포기해야 했고 흙먼지를 뒤집어쓰고 있었지만, 지금의 자신을 있게 해준 값진 시절이라고 회상한다. “공부할 것 많고, 놀 것 많은 서울이 좋았습니다. 패션 회사에서 일하며 돈도 벌고 멋지게 차려입고 예쁘게 화장하고 멋쟁이로 살았어요. 그러던 중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들었어요. 혼자 남은 어머니가 우울증을 겪는 모습을 보면서 꿈을 포기하고 무작정 거창으로 내려왔지요.”

1991년 12월 31일, 2년간의 서울 생활을 정리한 이수미 대표는 시골에서 무엇을 하고 살아야 할까를 고민했다. 먹거리를 생산하는 노동의 가치와 그 당시 여성의 사회 진출을 업신여기는 시선을 이겨내고 싶어 양계 사업을 택했다. 게다가 시골에서 당장 현금이 돌아가는 일로 양계 사업만 한 것이 없었다. 그래서 이수미 대표는 가장 예뻤을 때 하이힐 대신 장화를 신고, 핸드백 대신 손에 삽을 쥐었다. 18년간 밤낮없이 일하며 어엿한 가정을 꾸렸고, 닭 4만 마리를 무항생제로 키우는 거대한 양계장의 주인이 되었다. 어느 정도 먹고살 만해졌지만 정작 금쪽같은 세 아이의 먹거리는 돌보지 못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막내 딸아이가 ‘엄마’ 하고 부르는데 혓바닥이 보라색이더라고요. 인공색소를 넣은 아이스크림을 먹은 탓이었지요. 그 순간 정신이 퍼뜩 들면서 아이를 위한 진짜 좋은 먹거리를 만들어야겠다는 열망에 사로잡혔습니다.” 그는 1990년대 남편과 미리 구입해둔 아홉산 아래 야트막한 터를 개간해 양계장을 짓는 대신 2008년부터 복분자와 블랙베리를 심었다.

메밀가루에 각종 베리를 넣고 반죽해 구운 팬케이크 위에 잼과 생과를 토핑으로 올렸다. 신맛과 단맛이 적당히 어우러진 뮤즐리 베리볼은 아이를 위한 영양 간식이나 아침 식사 대용으로 좋다.

북아메리카가 원산지인 블랙베리는 붉은빛을 띠면서 시간이 지날수록 검게 익어간다. 항산화 성분이 풍부하며, 생과 또는 잼으로 즐긴다.

탐스러운 보랏빛에 매료되다
“복분자를 손으로 한 줌 쥐어 꽉 짜면 보라색 과즙이 뚝뚝 떨어져요. 그 빛깔이 어찌나 곱던지 땅과 햇볕, 물이 이리도 잘 키워 색깔을 만들어냈을까 싶더라고요. 자연이 내준 맛과 색을 더 많은 사람과 나누고 싶었습니다.” 이수미 대표는 가장 먼저 복분자와 블랙베리를 재배하기 시작했고 순차적으로 블루베리와 산딸기, 아로니아 등 베리류 품목을 늘려갔다. 닭만 키워봤지 농사를 지어본 적이 없던 터라 유기농법으로 작물을 기르는 게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그럴수록 몸으로 부딪쳐가며 익혔다. 매년 겨울이 되면 아홉산에서 가져온 부엽토와 친환경 돼지 축사에서 공수해 온 분뇨를 고루 섞어 발효시켜 퇴비를 만든다. 이를 밭에 뿌려 유기물이 풍부한 땅으로 일군다. 봄이 되면 가지치기를 해서 새순이 잘 돋을 수 있는 조건을 만들어준다.

농약을 사용하지 않는 탓에 잡초를 일일이 손으로 뽑아내고, 병충해와 싸워 이겨내야 하는 일도 필수다. 지극정성으로 농장을 돌보니 이곳의 모든 작물은 토양 속 건강한 영양분과 천연 지하수를 흡수하고, 풍부한 햇볕을 받으며 무럭무럭 자라나 뜨거운 여름이 되면 알차고 영근 열매로 보답한다. 매년 6월 초부터 빨간 산딸기가 모습을 드러내고, 중순에는 블루베리, 말에는 복분자(현재 갱신 기간이라 복분자는 올해 농사짓지 않고 땅을 쉬게 한다), 7월 초에는 블랙베리와 아로니아가 열린다. 산딸기와 복분자 등 모든 베리류는 과피가 얇아 쉽게 무르기 때문에 손으로 수확한 후 한 시간 이내 급속 냉동해 보관한다. 지금 한창 수확철인 블루베리와 블랙베리는 맛 또한 일품이다. 따자마자 입에 넣으면 톡 하고 터지면서 달콤한 향과 새콤한 맛이 조화롭게 어우러진다. 이수미팜베리는 2009년 무농약 인증을 시작으로 2015년과 2016년 유기농산물 인증을 획득했다.


6차산업의 산실로 거듭나다
이수미팜베리는 진액과 잼 등 생과를 활용해 만든 다양한 상품도 선보인다. 베리로 더 많은 사람과 소통하고 싶은 이수미 대표의 집념과 열정의 결과물이다. 그는 경남대학교 식품공학과에 다니면서 베리류 활용법을 고민하면서 6차산업이라는 큰 그림을 그려나갔다. “블랙베리는 항산화 물질 중 하나인 안토시아니딘anthocyanidin을 100g당 598mg이나 함유했습니다. 특히 씨는 성분 분석 결과 오메가-3가 풍부하고 피를 맑게 해주는 효과가 있어요. 여러모로 건강에 이롭고 생과로 먹어도 맛있지만 씨의 까끌까끌한 식감을 꺼리는 이들도 있지요. 그래서 2012년부터 직접 잼이나 진액을 만들어보면서 씨를 통째로 가는 방법을 찾아보기 시작했어요.” 그는 트럭에 블랙베리를 10kg씩 싣고 경기도 외곽에 있는 기계 공장이란 공장은 죄다 돌아다녔다. 마음에 드는 분쇄 기계를 찾지 못해 포기하려던 찰나 맷돌 방식을 적용해 씨까지 통째로 갈아주는 기계를 발견했다. 이 기계를 이용해 블랙베리와 블루베리, 복분자 등을 곱게 갈아 오랜 시간 발효시켜 달큼한 맛이 나면서 까끌까끌한 식감이 전혀 없는 부드러운 진액을 만드는 데 성공했다. 그의 비법이 담긴 가공장은 쉽게 공개하지 않는다고. 85℃에서 압력을 가해 수분을 빼낸 뒤 남은 수분 함량에 맞게 설탕을 첨가해 만든 복분자와 블랙베리 잼도 인기가 높다.

“아무리 몸에 좋은 제품을 만들어서 판매해도 사람들은 눈으로 직접 보지 않는 이상 쉽게 신뢰하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사람들을 내 곁으로 오게 만들자고 결심했죠. 독일에서 건축을 공부한 강병기 건축가에게 의뢰해 거창 읍내가 한눈에 들어오는 지대에 집을 짓기 시작해 카페와 펜션 네 채를 지었어요. 하던 대로 열심히 농사지으면서 찾아오는 이들에게 자연이 주는 따스함과 충만함을 선물하고 싶었죠.” 그는 이곳에서 체험 교실을 운영하고 카페에서는 베리로 만든 젤라토, 진액 소스를 활용한 돈가스를 판매한다. 카페와 펜션에서 정면을 바라보면 마치 이탈리아 토스카니의 와이너리처럼 드넓은 베리 농장이 그리고 거창 읍내가 한눈에 들어온다. 그의 바람처럼 사람들은 이곳을 찾아 휴식을 취하고 그와 즐겁게 이야기를 나눈다. 그간의 노력을 증명이라도 하듯 2016 농촌 자원 사업 평가회 6차산업 수익 모델 부문에서 최우수상을 받았다.

펜션 테라스에서 내려다보면 거창 읍내와 농장이 한눈에 들어온다. 농장은 총면적이 1만 3천7백 평에 이르며 블랙베리 3천 평, 블루베리 2천 평, 산딸기 2천 평, 나머지는 복분자를 재배한다.

수확 후 한 시간 이내 급속 냉동해 신선한 상태를 유지한다.

카페에서는 베리류를 활용해 만든 잼과 진액, 젤라토 등을 판매한다.
새콤달콤하게 즐기다
<타임>이 선정한 세계 10대 슈퍼푸드인 블루베리와 블랙베리는 신이 내린 보랏빛 선물이라고 부를 만큼 영양 성분이 풍부하다. 최근 제철 과일 레시피북을 준비하고 있는 김윤정 요리 연구가는 블루베리와 블랙베리를 청으로 담가 먹거나, 디저트와 브런치 등 다양한 요리로 활용할 수 있다고 말한다. “한 개인이 베리류 과일을 노지에서 재배하면서 이렇게 6차산업을 성공적으로 이끈 사례는 찾아보기 힘들어요. 이수미 대표의 열정 덕분에 이곳 과일 맛은 훌륭합니다. 카페에서 판매하는 젤라토를 비롯해 각종 가공품도 인상적이었어요. 블루베리는 알이 단단하고 씹는 순간 상큼한 맛과 단맛이 동시에 느껴져요. 블랙베리는 주로 냉동 상태로 유통하기 때문에 생과로 맛보기가 어려운데, 아곳에서는 유기농법으로 키워 따자마자 맛볼 수가 있어요. 무더운 여름에는 메밀가루에 블루베리를 통째로 넣거나 갈아 넣어 반죽을 만든 뒤 팬케이크를 구워보세요. 메밀이 열을 식혀주는 효과가 있고, 블루베리의 새콤달콤한 맛이 떨어진 입맛을 돋워주지요.”

김윤정 요리 연구가가 제안한 또 다른 메뉴는 아침 식사 대용으로 먹기 좋은 뮤즐리 베리볼. 믹서에 블루베리와 블랙베리, 복분자, 블루베리청, 바나나, 그릭 요구르트를 넣고 갈면 손쉽게 완성! 칼로리와 영양을 모두 고려한 건강식으로도 손색없다. 그는 블루베리나 블랙베리잼을 크림치즈와 섞어 노릇하게 구운 호밀빵에 곁들이거나, 청을 탄산수와 섞어 시원한 에이드로 즐기는 것도 좋다고 조언했다. 거친 노동이 주는 묘한 희열감이 있다고 말하는 이수미 대표. 그의 최종 꿈은 타샤 할머니처럼 재미있게 나이 들어가는 삶이다. 더 좋은 먹거리를 만들고, 언젠가는 베리류를 활용한 프랜차이즈 사업으로 확장하고 싶다고. 농원을 내려다보는 그의 뒷모습에서 여전히 청춘의 싱그러움이 느껴진다.

글 김혜민 기자 사진 이경옥 기자 요리 김윤정 취재 협조 및 문의 이수미팜베리(055-945-1789)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17년 8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