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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밀의 뿌리를 찾다 금곡정미소의 앉은뱅이밀
경상남도 진주시 금곡면으로 들어서자 황금빛 밀밭이 일렁인다. 최대 50~80cm밖에 자라지 않는 이 밀은 그 옛날 보릿고개 시절부터 보리와 함께 굶주린 배를 채워주던 앉은뱅이밀이다. 수입 밀에 밀려 사라질 위기에 처하기도 했지만 3대에 걸쳐 앉은뱅이밀의 종자를 보존해온 이가 있다. 토종 밀의 가치를 알리며 묵묵히 외길을 걸어온 백관실 대표가 있는 곳, 금곡정미소를 다녀왔다.

5천 평에 이르는 밀밭에서 연간 약 3백 톤 정도의 앉은뱅이밀을 생산하는 백관실 대표(왼쪽)와 앉은뱅이밀 가루로 구수한 빵을 만드는 반영재 셰프.
그 많던 앉은뱅이밀은 어디로 갔을까
바람이 불자 드넓은 밀밭이 황금빛 물결처럼 출렁인다. 그 모습을 보노라니 박노해 시인의 시 ‛밀밭의 빵 굽는 시간’이 절로 떠오른다. “파란 밀싹이 힘차게 돋아나고 / 은빛 억새꽃이 바람에 날릴 때 / 직접 씨 뿌려 거둔 햇밀을 빻아 / 멋진 손 반죽 리듬으로 화덕에 굽는다 (중략) 갓 구운 빵 냄새가 그윽이 퍼져나가고 / 아이의 입가에는 흐뭇한 미소가 번진다 / 대지에 뿌리를 내릴 때 감사는 커지고 / 우리 삶은 ‘이만하면 넉넉하다’.” 그가 파키스탄에서 마주한 밀밭을 사진으로 담고 노래한 시는 1960~1970 년대까지만 해도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이었다. 먹거리가 귀하던 그 시절 들녘에 밀이 익어가면 아이들은 밀밭 사이를 뛰어다녔고, 밀을 불에 태워 손으로 비벼 먹곤 했다. 그런데 값싼 서양 밀이 들어오기 시작하면서 우리밀은 설 자리를 잃고 말았다. 곡식 중 쌀 다음으로 소비량이 많지만 현재 우리밀의 자급률은 기껏해야 1% 안팎이다. 수입 밀에 치이며 굴곡진 역사를 거친 앉은뱅이밀을 지켜온 이가 백관실 대표다.

“3대에 걸쳐 정미소가 달려온 시간만 족히 1백 년이 넘어요. 일제 강점기에 기계 제조술을 배운 할아버지는 1916년 경남 고성에 정미소를 세우셨죠. 1964년 아버지가 정미소를 진주시 금곡면으로 옮겨왔습니다. 할아버지는 장손인 제가 금곡정미소를 이어가길 원했고, 중학교를 졸업하자마자 학업을 포기하고 일을 도왔어요. 그때는 정미소 일이 너무 싫었는데, 돌이켜보니 가업을 잇길 잘했다는 생각이 드네요.”

어린 그가 정미소 일을 배울 때만 해도 앉은뱅이밀은 경남 서남부 지역인 진주와 고성, 함안, 사천, 남해에서 전통적으로 재배했다. 그 당시 국내 밀 자급률은 15~20%에 달했다. 하지만 1984년부터 상황은 급격하게 변했다. 값싼 수입 밀이 유입되면서 정부는 밀 수매를 중단했다. 애써 농사짓지 않아도 밀이 넘쳐날 지경에 이르니 1990년도에는 밀 자급률이 0.05%까지 떨어졌다. 문을 닫는 정미소도 부지기수였다. 상황의 심각성을 느낀 정부는 1991년부터 우리밀 살리기 운동을 전국적으로 펼쳤다.

“우리밀 살리기 운동의 주인공은 조상 대대로 길러온 앉은뱅이밀이 아니었어요. 대형 제분 공장에서 가공하기 쉬운 수입 개량종인 금강밀을 채택했었죠. 진짜 문제는 금강밀 자체가 딱딱한 경질밀이라 맛이 없다는 거였어요. 전이나 칼국수, 수제비를 만들어 먹으면 맛 차이가 확연하게 나는데 부드럽고 담백한 앉은뱅이밀의 맛을 따라올 수가 없었어요. 이 맛을 아는 사람들은 매년 이곳을 찾아왔지만, 대중에겐 금강밀로 인해 우리밀은 맛없다고 낙인찍혔어요. 덩달아 앉은뱅이밀도 타격을 받았지요.”

백 대표는 앉은뱅이밀의 수요가 없어지자 창고에 쌓인 3백 포대를 갈아서 쇠먹이로 내준 적도 있단다. 그럴 때마다 마음을 다잡아가며 버텨온 세월이 자그마치 50년이다. 그는 약 5천 평이 넘는 밀밭에서 앉은뱅이밀을 생산하고 있다. 종자를 보급하고 밀의 품질을 유지하기 위해 채종포(씨받이밭)도 운영한다. 직접 생산한 밀과 인근 농가와 계약 재배한 밀까지 거둬들이면 연간 생산량이 3백 톤에 이른다. 게다가 앉은뱅이밀을 제분할 수 있는 제분기가 있는 곳은 금곡정미소가 유일하다.


토종의 가치를 인정받다
“앉은뱅이밀은 조상 대대로 내려온 순수 토종 밀입니다. 오랜 세월에 걸쳐 이 땅의 기후와 풍토에 적응해왔기 때문에 병충해에 강해요. 50년 넘도록 농사지으면서 한 번도 탈이 난 적이 없죠. 10월 말에서 11월 초에 파종한 뒤 따로 농약을 치지 않아도 잘만 자라요. 유기농 재배가 가능한 것도 이 덕분이지요.”

백관실 대표는 밀밭을 겨우내 그대로 두었다가 6월이 되면 밀타작을 시작한다. 망종이 지나면 뿌리가 말라버리기 때문에 대개 일주일 내로 수확을 끝낸다. 그렇게 수확을 마치면 크기가 작고 불그스름한 황토색 알맹이가 모습을 드러낸다. 이를 깨끗하게 씻어 건조기에 넣고 바짝 말린다. 농약을 사용하지 않아 습기가 남아 있으면 벌레가 생기기 때문이다. 이 과정까지 거쳐야 비로소 밀가루를 만들 채비가 끝난다.

밀을 가루로 곱게 빻는 것은 제분기의 몫이다. 1천8백여 평에 이르는 정미소에는 총 일곱 대의 제분기가 있다. 빛바랜 색이 세월을 말해주기라도 하듯 제작한 지 반세기가 지난 것들이 대부분이다. 그중 한 대는 1백 년이 지났는데도 멀쩡하게 돌아가는 것이 신기할 정도. 제분기는 모두 할아버지 때부터 직접 나무로 만든 것으로 내부에는 조부가 고안한 기계식 맷돌이 설치되었다.

1 금곡정미소에는 총 일곱 대의 제분기가 있는데, 할아버지 때부터 직접 만든 것이다. 50년이 훌쩍 넘은 제분기를 통해 금곡정미소의 역사를 엿볼 수 있다. 2 앉은뱅이밀의 껍질은 불그스름한 황토색을 띤다. 3 부피와 찰기가 일반 밀과 다른 앉은뱅이밀은 기계식 맷돌이 장착된 제분기로 빻아야 한다. 기계식 맷돌이 남아 있는 곳은 금곡정미소가 유일하다. 4 반영재 셰프는 앉은뱅이 밀로 만든 통밀가루, 백밀가루 등을 사용해 갖가지 빵을 선보였다. 씹을수록 구수하고 입안에서 단맛이 맴돈다.
“나무를 고집하는 이유는 밀가루도 숨을 쉬어야 하기 때문이에요. 쇠로 만든 제분기는 통풍이 원활하지 않아 습기나 열이 발생해요. 게다가 앉은뱅이밀은 연질밀이에요. 이로 깨물면 쉽게 으깨지죠. 부피와 찰기가 다르기 때문에 일반 제분기로는 앉은뱅이밀을 갈 수가 없어요. 반드시 앉은뱅이밀용으로 제작한 기계식 맷돌로 갈아야 합니다.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돌아가는 맷돌이 앉은뱅이밀을 곱게 빻아주지요.” 

과거 우리밀 농사가 어려워지자 대부분의 정미소가 수입 밀에 맞춘 제분기로 바꿨는데, 이곳만은 꿋꿋하게 기계식 맷돌을 고집해왔다. 그러다 보니 앉은뱅이밀을 제분할 수 있는 곳은 금곡정미소가 유일한 것이다. 앉은뱅이밀은 2013년 국제슬로푸드본부가 이끄는 ‘맛의 방주’ 에 승선하면서 더욱 주목받고 있다. 맛의 방주란 문화와 전통이 있지만 사라질 위기에 처한 음식을 알리고 지켜나가는 운동을 말하는데, 앉은뱅이밀은 조상 대대로 재배해온 토종 종자로서 그 가치를 인정받은 것이다.

“2013년 9월 5일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맛의 방주 미디어 데이에 참석한 적이 있어요. 사람들이 제 손을 잡으며 우리밀을 잘 지켜줘서 고맙다고 말하는데, 그 순간 기분이 묘하더군요. 처음으로 ‘아, 내가 잘 살아왔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책임감도 느꼈고요.”

그 후 앉은뱅이밀에 대한 인식도 확연히 달라졌다. 전국에서 앉은뱅이밀을 재배하려는 이가 늘었으며, 유명 호텔과 레스토랑, 베이커리 등에서 구매 요청이 쏟아졌다. 그는 앉은뱅이밀로 백밀가루와 통밀가루, 누룩, 국수 등을 만들어 판매한다.

금곡정미소에서 생산한 앉은뱅이밀가루와 우리밀 국수.

구수한 향과 단맛의 조화
고등학생 시절부터 빵을 배워온 반영재 셰프는 4년 전 처음으로 앉은뱅이밀을 알았다. 그는 평생 농사를 지어온 아버지의 모습을 보며 우리밀을 손수 재배해 빵을 만들고 싶었다. 그러다 보니 온통 밀밭 천지인 전남 구례를 드나들었고, 우연히 금곡정미소와 토종 앉은뱅이밀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그길로 금곡정미소를 찾아가 백관실 대표와 인연을 맺었다.

“앉은뱅이밀을 처음 보자마자 살아 있는 듯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밀 특유의 깊고 구수한 향이 너무 좋았어요. 그 당시는 유기농 밀로 빵을 만들었는데, 앉은뱅이밀로 빵을 만들고 싶어서 1년 가까이 연구했지요.”

그는 일반 제빵용 백밀가루는 빵을 안정적으로 만들기 위해 체계화된 밀이며, 맛이 다소 밋밋하다고 말한다. 반면 앉은뱅이밀은 오랜 시간 동안 우리 땅에 적응해오면서 고유한 맛과 풍미를 지니게 됐다는 것이다.

“앉은뱅이밀은 담백함 정도가 일반 밀과 차원이 다릅니다. 풍미도 진하고요. 대개 밀은 글루텐 함량이 높아 쫄깃한 식감이 강한데, 이 밀은 글루텐 함량이 낮아요. 쫄깃함은 떨어지지만 소화가 잘되고 먹고 나면 속이 더부룩하지 않지요. 그런데 글루텐 함량이 낮으면 반죽이 부풀어 오르는 힘이 약해 빵을 만들기가 어려워요. 이 부분을 보완하려면 반죽을 여섯 시간 정도 발효시키는 것만으론 부족하죠. 그래서 하루 전날 반죽한 뒤 저온에서 열두 시간 정도 발효시키고 발효종도 쓰지 않아요.”

반영재 셰프는 주로 통밀가루를 사용해 빵을 만들며 백밀가루로 쿠키와 스콘 등을 만든다. 이날은 더벨로의 대표 메뉴인 통밀 100%로 만든 빵과 통밀가루과 우리밀가루를 1:1 비율로 섞어 만든 빵, 통밀가루 10%와 밀기울을 이용한 팥빵을 선보였다. 통밀빵의 경우 쫄깃함은 떨어지지만 씹을수록 구수하며 단맛이 강하게 느껴졌다. 팥빵은 음성 팥을 끓여 만든 소를 넣었고, 지나치게 달지 않아 먹기 편했다. 그는 빵에 대추고를 바르고 치즈와 햄을 넣어 만든 샌드위치도 선보이면서 빵을 맛있게 먹는 데 답은 없다고 단언한다. 자신이 좋아하는 음식과 함께 먹는다면 제일이라고. 백관실 대표는 빵을 만들어 앉은뱅이밀의 맛을 알리는 반영재 셰프를 볼 때마다 고마움을 느낀다. 그에 보답하기 위해서라도 지금처럼 앉은뱅이 밀을 지켜나갈 것이다.

요리 반영재(더 벨로, 070-4226-3976) 촬영 협조 금곡정미소(055-754-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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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김혜민 기자 | 사진 이경옥 기자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16년 7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