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에는 왕세손이 글공부를 하기 전에 조청을 몇 숟가락 드시게 했고, 과거를 보러 가는 선비도 봇짐에 조청 항아리를 넣어 갔습니다. 입시를 앞둔 수험생에게 엿을 선물하는 것도 이런 풍습이 이어진 것이지요.” 해발 600m의 강원도 정선 산자락의 산골 마을. ‘산골아짐의 수제 조청 이야기’의 김민강 대표는 조청을 만들 무와 도라지, 꾸지뽕 농사를 짓기 위해 5년 전 강릉의 왕산에서 청정 고을인 정선으로 이주했다. 사찰의 식문화와 전통 발효 식품에 관심이 많아 10여 년간 절집의 공양 준비를 도우며 살았고, 특히 식재료나 약을 구하기 어려운 깊은 암자에서 조청을 만들어 사용하는 법을 배워 그 일을 도맡아 했다. 절집 근처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산야초를 이용해 조청을 만들면 스님들은 공부를 하기 전 뇌를 깨우기 위해, 체력이 떨어지거나 피곤할 때, 요리에 자연의 단맛을 더할 때 그 조청을 사용했다.
강원도 정선의 해발 600m 산기슭에 목재로 암자처럼 단아한 집을 짓고 살며, 부뚜막에서 참나무로 불을 때 조청을 만드는 김민강 대표와 하미현 요리사.
조청의 이러한 효용은 불가는 물론 우리나라 민간에서 예부터 전해 내려오는 지혜가 아닌가. 수험생이 있거나, 오랜 기침에 시달리거나, 허약 체질에 고민하는 가족이 있거나, 감기에 걸렸는데 약을 먹을 수 없는 임산부가 그에게 불가의 전통 방식으로 조청을 만들어달라는 부탁을 많이 했다. 몇 년 전부터는 그 요청이 더 많아져 거절하기가 힘들었고 그렇다고 조청만 만들며 살 수도 없는 행복한 궁지에 빠졌다. 조금 만들어 이웃과 나누어 먹는 것이야 삶의 낙이지만, 매번 많은 양을 부탁하는 사람들이 미안한 마음에 비용을 지불하면서 식품업이라는 법적 기준을 따라야 했기 때문이다.
600m 청정 고랭지에서 농사지은 건강한 식재료
“절집에서는 자연 그대로 자란 깨끗한 산야초로 조청을 만드니 법적 기준에 맞는 시설을 갖추는 것보다 좋은 식재료를 구하는 게 중요했어요. 그런 전통 방식으로 무 농사를 지을 땅을 찾아 청정 지역으로 이름난 정선 지역을 수개월 돌아다닌 끝에 지금 이곳을 찾았습니다. 이 땅에 들어서는 순간 마음이 편안했어요. 겹겹이 산맥이 이어지는 풍경이 아름다우며 무엇보다 일교차가 큰 600m 고랭지라 병충해의 염려가 적어 화학약품이 없어도 자연 그대로 농사가 잘되는 곳이지요.”
산 아래 아랫집이 있고 저 멀리 윗집이 있는 산간 마을에 암자같은 집을 지었다. 부뚜막과 창고를 만들었으며 김장무와 적 색무, 홍도라지와 오랫동안 그 약성을 공부해온 꾸지뽕나무를 심었다. 뽕나뭇과의 낙엽 활엽목인 꾸지뽕은 절집에서 전통적으로 뿌리, 가지, 잎과 열매를 하나도 버리지 않고 사용하던 약용식물로, 성질이 따뜻해 몸이 으스스하고 감기 기운이 느껴지는 날 뜨거운 잎차를 마시면 땀이 나면서 개운한 기분이 든다. 손발이 찬 사람과 부인병으로 고생하는 여성에게 좋고, 고혈압 과 당뇨에도 도움을 주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꾸지뽕나무는 온화한 지역에서 자라는 식물이라 걱정을 하며 이곳에 심었어요. 그런데 겨울에 가지가 얼었는데도 결국 옆 가지가 나오면서 그걸 이겨내고 자라나더군요. 그 생명력이 놀라 웠습니다. 지금은 꾸지뽕 농사가 잘되어 주변에서 그 비결을 물어보러 오기도 하고, 엿, 된장, 고추장, 식초, 차, 뿌리 진액 추출 등 꾸지뽕나무를 이용한 전통 식품 제조법 여섯 가지와 고춧가 루 제조 등 총 일곱 가지 특허를 출원했습니다.”
조청을 만들기 위해 고랭지에서 직접 농사지은 김장무와 자색무.
서리 맞은 무 조청, 홍도라지 조청, 생강 조청이 산골아짐의 수제 조청 이야기의 대표 상품이지만 꾸지뽕 조청, 꾸지뽕 열매 조청, 마가목 조청과 조릿대 조청 등 정선 산골의 천연 산야초를 이용해 만든 조청도 많은 호응을 받고 있다. 농사부터 조청 만들기까지 모든 과정을 전통 방식 그대로 김민강 대표가 직접 한다. 자연 그대로 재배한 무는 “서리를 세 번 맞아야 약성이 뛰어나다”라는 선인들의 지혜를 좇아 서리를 세 번 맞은 후에 수확하고 겨우내 조청 만들 무는 저장고에, 봄에 조청 만들 무는 땅에 묻어둔 후 무를 다 사용하면 조청도 품절된다.
무를 씻고 자르고 얇게 썰어 솥에 안쳐 배숙을 만들 듯이 장작불에 중탕을 하면 진한 갈색의 무즙이 나온다. 보통은 쌀 조청을 만든 후 거기에 무즙을 넣어 무 조청을 만들기도 하지만, 자연 그대로의 약성을 중요시하는 김민강 대표는 물 한 방울 넣지 않는다. 갈색 무즙 자체에 엿기름을 풀고 그것을 갓 지은 밥에 부어 당화시킨 후 짤주머니에 넣고 일일이 손으로 짜낸다. 그 진액을 참나무로 불을 지핀 가마솥에 넣고 불 조절을 해 달이
면서 절집 방식 그대로 혼자서 조용히 조청을 만든다. 무의 찬 성질은 무 조청에 생강과 홍도라지를 넣어 보완하는 것도 산골 아짐의 수제 조청 이야기 제품만의 특징이다.
사람의 마음이 좋은 먹거리를 만든다
“무 조청은 김장무와 안토시아닌이 많다고 알려진 자색무를 3:1 비율로 섞어서 만듭니다. 홍도라지는 쓴맛을 중화하고 사포닌을 비롯한 유익한 약성을 높이기 위해 스님들이 하는 대로 구증구포를 합니다. 아홉 번 찌고 정선의 햇빛에서 아홉 번을 말리는 데만 20여 일이 걸리는데, 그동안 도라지가 투명한 갈색에서 진한 갈색으로 점점 변해가지요. 생강은 봉동 지역에서 깨끗하게 농사지은 토종 생강을 지인에게서 구하고 쌀 조청을 만
든 후 생강즙만 넣어 생강 조청을 만듭니다.”
일일이 손으로 직접 만드는 정성을 들이니 저 큰 솥으로 한가득 끓여도 겨우 600g짜리 스무 병이 나온다. 그 조청을 김민강 대표가 직접 병에 담아 스티커를 프린트해 붙인다. 소문을 듣고 전화로 주문한 고객에게 택배로 보내는 방식으로 판매한다.
“산골에서 농사짓는 사람은 좋은 제품이 있어도 외부에 소개하는 방법을 잘 몰라요. 간혹 포털 사이트에 소개해주려는 사람이 이런 산골까지 찾아와 제품 사진을 찍어가지만, 사진만 멋있게 선보이고 어떤 마음과 과정으로 조청을 만들었는지는 고객에게 잘 설명하지 못해서 아쉬웠어요. 스티커 디자인이 촌스럽다고 하는 분도 있었지요. 다행히 올해 정부 지원 프로그램에 선정되어 홈페이지를 만드는 법을 배우러 다닙니다. 사람 손으
로 깨끗하고 좋은 전통 식품을 만드는 것은 결국 사람 마음에 달린 일이에요. 내 입으로 들어가는 식품이니 내 마음에도 깨끗 하게 키우고 만들고 싶은 게 산골에 사는 아짐의 욕심이지요.”
1 조청을 만드는 솥에 불을 지피는 참나무는 강원도의 깊은 산에서 베어낸 선별목 땔깜이다. 2 직접 재배한 홍도라지는 절집에서 스님들이 하듯 구증구포 과정을 거쳐 조청으로 만든다. 약성은 높아지고 쌉싸름한 맛이 줄어들어 어린이가 먹기에도 좋다.
3 서리를 세 번 맞은 무 조청, 구증구포로 만든 홍도라지 조청, 강원도 봉동 지역의 토종 생강으로 만든 생강 조청이 대표 상품이다. 산골아짐의 특허 상품인 꾸지뽕 조청도 약성 조청으로 인기가 높다. 4 엿기름을 짜는 보를 깔고 수수부꾸미 와플에 생강 조청 진저 카푸치노를 곁들인 하미현 요리사의 한국식 디저트 상차림.
단맛의 시작은 조청으로
인증서보다 중요한 건 만드는 사람의 강직한 마음. 지역의 전통 음식을 공부해 요리하는 하미현 요리사는 평창에 사는 지인에게 들렀다가 이 조청을 맛보고 ‘만든 사람의 성정이 담겼구나!’ 하고 감탄했다. 사찰 요리부터 시작해 전통 식재료와 천연 양념에 관심이 많은 그는 단맛을 내는 요리 대부분에 조청을 사용하고, 외국 지인에게도 조청 자랑을 수없이 해 많은 종류의 조청을 맛본 터였다.
“우연히 맛을 보고 깜짝 놀랐어요. 맛의 깊이가 판매하기 위해 만드는 조청이 아닌 것 같았죠. 이곳에 와서 보고 이렇게 좋은 조청을 만들기 위해 자연 그대로 농사부터 손수 다 짓는다는 사실에 또 한 번 놀랐어요. 화학적으로 만든 조청은 색이 밝고 뒷맛이 단데 약성을 지닌 수제 조청은 묵직하고 뒷맛이 살짝 쌉싸름합니다. 이것으로 음식을 했을 때 배가되는 맛이 있어요. 특히 겨울 요리에는 조청을 쓸 일이 많고, 한국식 디저트를 만들 때 조청이 있으면 아주 유용해요.”
하미현 요리사는 강원도 정선 지역의 대표적 향토 음식인 수수 부꾸미를 와플처럼 만들었다. 정선에서 난 수수와 옥수수 가루에 찹쌀가루를 섞어 와플을 굽고 삶은 통팥에 두유를 섞은 크림을 만든 후 조청을 올린 근사한 한국식 디저트다. 여기에 곁들인 음료는 생강 조청 진저 카푸치노. 우유에 생강 조청을 넣어 중탕한 후 우유 거품을 얹고 계핏가루를 살짝 뿌리면 몸을 따뜻하게 하고 속을 든든하게 하는 멋진 카푸치노가 된다.
“저는 조청 애호가예요. 조청은 단당이라서 먹자마자 체내에서 바로 포도당으로 바뀌니 마치 자동차에 연료를 넣듯 이내 피로가 풀리죠. 청정 지역에서 농사지어 만든 조청은 이처럼 땅의 기운과 영양분을 고스란히 간직한 약성 때문에 건강에도 이롭지만, 요리 양념으로도 다양하게 사용할 수 있어 좋습니다.”
산골에 살고 자연 그대로 농사지으면서 지금까지 전통 식품 일곱 가지의 특허를 내고 올해 또 홍도라지 조청의 특허출원을 한 김민강 대표. 그리고 지역의 향토 요리를 응용해 현대적 미감의 맛난 요리를 개발해내는 하미현 요리사. 이 두 사람은 자연을 살피고 절집의 옛 지혜를 전해 듣고 전국의 장인을 찾아가 귀 기울이며 사는 삶의 방식이 닮았다. 묵직하지만 달고, 좋은 에너지와 이로운 약성을 함께 전해주는 강원도 정선 산골아짐의 수제 조청 이야기에는 전통과 정성 보다 훌륭한 인증서는 없다는 옛 사람들의 지혜가 담겨 있다.
정선 산골아짐이 정성스럽게 만든 약성 수제 조청은 본지 284쪽 스토리샵에서 구입할 수 있습니다.
촬영 협조 산골아짐의 수제 조청 이야기(010-3511-3411)
- 절집의 지혜로 농사지어 만드는 산골아짐의 수제 조청 이야기
-
지혜는 사람이 나이 들수록 가장 지니고 싶은 재산. 돈으로도 세월로도 도저히 살 수 없지만, 남다른 지혜를 한 움큼만 가져도 우리 몸과 마음, 관계와 인생이 씁쓸한 맛에서 훨씬 달고 편안한 맛으로 변한다. 산골아짐의 수제 조청에는 예부터 절집에서 전해 내려온 자연식의 지혜가 담겨 있다.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16년 2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