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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의 고향을 찾아서] 전남 신안군 가거도 신통방통한 식재료 건해삼
우리나라 최서남단에 있는 섬, 마지막 남은 청정 해역으로 꼽히는 섬, 전남 신안군 가거도. 세계적 ‘해삼 벨트’로 꼽힐 만큼 명품 해삼이 나는 곳이고, 그 해삼이 억센 섬 햇살을 만나 건해삼으로 다시 태어나는 곳이다. 가거도 건해삼의 영양·품질·맛을 보장한다는 뱃사람, 장인, 호텔 주방장 이야기.


국토 최서남단의 작은 섬 가거도의 여름은 분주하다. 세계 최고 품질을 자랑하는 해삼이 바로 이곳 인근 바다에서 잡히기 때문이다.


한국전쟁도 소식으로만 들었다는 먼 섬, 가거도

매끼 밥상에 르는 수산물이 죄 자연산인 곳이 있다. 다희네 아침 반찬도, 이장님네 안주도, 마당에서 꾸덕하게 마르는 생선도 모두 자연산이다. 양식이자연산으로 둔갑하는 일도 없거니와 아예 양식 수산물이 존재하지도 않는다. 우리나라 최서남단에 있는 가거도 풍경이다. “물결이 세서 양식을 하려야 할 수가 없어요. 섬 주위에 양식장이 없지, 뭍에서는 한참 멀지… 그랑께 물은 억수로 맑고, 고기는 신나게 살지.” 10여 년 전 가거도에 들어와 정착한 선주船主 임세국 씨는 이렇게 억센 바다를 본 적이 없다.

바다가 살찌우는 생명을 철마다 거둬들이면서 이런 생각이 든다. ‘이 바다에서 적응하고 대대손손 살아온 것들은 보통이 아니여. 꼭 지 바다를 닮았어.’가거도는 멀기도 먼 섬이다. “어르신들이 하시는 얘기가 있어요. 한국전쟁도 소식으로만 들었다고. 저 멀리 울리는 포성으로 ‘어느 바다에서 해전이 일어났나’ 했다고.” 어촌계 회장 정석규 씨의 말이다. 우스갯소리가 아니란다. 하기야 예로부터 ‘아름다운 섬’이라는 뜻의 ‘가가도嘉佳島, 可佳島’로 불리다가, 1896년부터 ‘가히 살 만한 섬’이란 뜻의 ‘可居島’로 명명했다는 이야기만 들어도 그렇다. 멀어서 신비하니 아름답고, 하도 험해서 사람이 거주할 만은 하다라고 지명을 통해 언급한 것이다. 가거도 바다에서 난 것은 다 맛있다.

그중 5월부터 7월 초까지 최고로 꼽는 것은 해삼이다. 이즈음 해녀들은 새벽부터 저녁까지 물 마를 새가 없다. 해녀 김추삼 씨가 새벽 바다에 들어간 지 30분쯤 지나 터질 듯이 불룩한 망태기를 끌어 올렸다. 그 순간, 어선에 타고 있는 육지 사람들은 난리가 났다. 어른 팔뚝만 한 해삼을 눈으로 보면서도 믿기지 않았으니. “해삼은 여기 것이 젤로 좋아. 크기도 하지만, 맛이 진해.” 제주도에서 시작해 강원도, 남해 등지를 거치며 평생 물질을 해왔다는 김추삼 씨의 자랑이다. 바로 썰어서 맛을 봤다. 오도독, 깨무는 것과 동시에 혀에 착 달라붙었다. 눈이 감겼다. 더 말해 무엇하랴. 바다, 늘 그리운 바다의 맛이다. 가거도 뱃사람들은 말한다.

“가거도 해삼을 다른 곳 해삼과 비교하지 말라”고. 이렇게 쫀득하고, 풍미가 기막힌 해삼은 없다고. 그러니 뱃사람들은 해삼을 양식하고 싶은 심이 날 법하다. “5~6년 전엔가, 양식을 해볼까 싶어서 새끼 해삼을 1억
원어치 이곳에 뿌렸어요. 그런데 죄 쓸려갔는지 죽었는지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말았어요. 이 바다는 당최 자연산만 허락하는지 원….” 해저 가두리 사업을 하는 게 꿈이었다던 임세국 씨의 실패담이 안주 삼아 오갔다.


1 해삼은 가거도 인근 바다의 수심 15~25m 지점에서 잡힌다.
2 “잠수복 위에 티셔츠를 겹쳐 입으신 이유가 있으신지?”라는 장금승 주방장의 질문에 해녀 김추삼 씨가 이렇게 답했다. “망태기가 다 차버리면 해삼을 요로코롬 옷 속에 넣어 가지고 올라오려고!”
3 바다에서 방금 올라온 자연산 해삼. 7월 중순이면 해삼은 자취를 감춘다. 해녀들도 당최 찾을 수가 없다. 여름잠을 자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건해삼은 산삼에 비할 만하다
“해삼이 정력에 좋다”는 말은 생김새 덕에 비롯된 낭설이라고 믿는 사람이 더러 있다. 생김부터 기묘하지 않은가. 뭉툭하고 기름하며 탱탱하다. 게다가 해삼 생태는 불가사의 수준이다. 눈도 머리도 없이 단순하게 생겼는데, 이 지구에서 5억 년 동안 생존해왔고, 몸을 반으로 가르면 며칠 만에 두 마리로 재생한다니! 그러나 해삼의 효능은 낭설이나 전설 수준이 아닌, 과학적으로 증명되고 있다. 해삼은 칼슘, 인, 철분은 물론 인삼에 많은 사포닌도 품고 있다.

우리나라를 비롯한 동양권에서 예로부터 몸을 보하는 효과가 인삼과 맞먹는다 하여 바다 삼, 즉 해삼海蔘이라 불렀다. 옛사람들이 사포닌을 알았을 리 만무한데, 어떻게 인삼과의 연계성을 찾았을지 신기한 일이다. 해삼은 생으로 먹어도 좋지만, 말리면 보양식 중 보양식이 됩니다.” 서울신라호텔 중식당 팔선의 장금승 주방장은 최고의 보양 식재료로 건해삼을 꼽는다. 30년째 국내ㆍ외 명사들을 위해 보양식을 만들어온 그는 이만한 고단백에 완벽한 저칼로리 식재료가 없다고 말한다. 보양 효과가 높은 고단백 식재료는 대체로 열량이 높은데, 해삼은 희한하게도 저칼로리다. 현대인에게 그만이다.


4 건해삼을 최고 보양식으로 꼽는 서울신라호텔 팔선의 장금승 주방장. 매년 수차례 식재료의 산지를 직접
찾는다.
5 해삼 건조 과정. 40여 일 동안 자연의 섭리에 장인의 정성이 더해져 완성된다.
6 건해삼(위)과 생해삼의 크기 차이. 무게는 5%가량으로 줄어든다.


게다가 맛과 식감도 황홀하다. 한 다큐멘터리에 따르면, 생해삼을 섭취하면 체내 흡수율이 63%가량인데, 건해삼은 흡수율이 90% 이상이다. 단백질은 20배 이상, 칼슘과 철분은 50배 이상으로 흡수율이 높아진다는 것이다. 갱년기 여성과 협심증 환자에게 특히 효과가 좋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흔히 해삼을 인삼에 비유하는데, 저는 산삼에 비할 만하다고 봅니다. 생태적 측면에서도 자연산이니 인삼이 아닌 산삼이요, 말리면 영양분이 배가되니 효능 측면에서도 산삼 급이 아닌가요?” 장금승 주방장의 말이다. 건해삼의 진가는 중국 황제들이 먼저 알아보았다. 건해삼은 제비집, 상어 지느러미, 건전복과 함께 중국 4대 보양 식재료로 황제에게 진상했다. 오래전 중국이 조공을 받거나 교역을 할 때 비단과 맞바꾸던 것 중 하나가 바로 건해삼이었다.

당시 금이나 은의 가치와 맞먹은 것이다. 말리면 원래 무게의 5%가량으로 줄어드는데, 물에 불리고 끓여내면 거의 원상 회복되니 저장하기 좋은 식재료였다. 장금승 주방장 같은 요리사에게는 건조 과정을 거치며 특유의 맛과 질감이 더해지니 매력적인 식재료다. “귀한 손님이 오시면 ‘원즙 통해삼’이라는 요리를 내곤 합니다. 건해삼을 통째로 세심하게 불리고 쪄낸 뒤 데친 채소를 곁들이 파기름을 가미한 특제 소스를 뿌린 요리입니다. 돌기하나하나까지 탱탱하게 회복한 통건해삼을 보는 재미와 깃하면서도 부드러운 이중적인 맛이 매력이지요.”


장금승 주방장이 건해삼으로 만든 메뉴를 가거도 해변에 차려냈다. 건해삼을 통째로 세심하게 불리고 쪄낸 뒤 데친 채소를 곁들이고 파기름을 가미한 특제 소스를 뿌린 요리 ‘원즙 통해삼’.


하늘이 완성하는 해삼 건조 작업
가거도 건해삼이 은 이유는 원재료의 퀄리티가 훌륭하기도 하지만, 건조과정을 책임지는 장인의 솜씨와 양심 덕분이기도 하다. 학독 씨가 그 주인공으로 그는 매년 5~7월 해삼 철마다 거도에서 해삼 건조 작업을 한다. 우리나라 전역을 다니며 건해삼 작업을 해오다 10여 년 전 가거도에 정착했다. 다에서 건져 올린 해삼을 내장을 제거해 삶고, 사흘간 장해 체수분을 완전히 제거한 뒤, 다시 한 번 끓인 다음약 한 달간 햇볕에 말린다. 총 40여 일 동안 눈을 떼지 않고 꼼꼼히 챙겨야 비로소 건해삼이 완성된다.

난학독 씨의 건해삼은 서울신라호텔에 납품한다. 어느 날, 최고급 건해삼을 찾아 수소문하던 서울신라호텔 구매팀 김경룡 과장은 난학독 씨의 건해삼이 남다르다는 소문을 듣고 찾아왔고, 그때부터 그의 건해삼 중 특등품이 처음으로 호텔에 납품되기 시작했다. 호텔에서 찾을 정도라는 얘기가 전해지자, 건조 비법을 물으러 찾아오는 사람도 많아졌다. 그럴 때면 “해삼 건조 작업은 하늘의 뜻에 달린 일”이라며 돌려보내곤 한다. “몸으로 한 땀 한 땀 익혀온 제 비법이 아까워서가 아니에요. 해수 온도, 건조하는 동안의 날씨, 삶는 동안 불의 세기 등은 하늘이 관장하는데, 하늘 앞에 겸허히 일할 수 있는 사람을 찾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에요.”


1 불린 건해삼을 데친 뒤 슬라이스해서 오이와 흑식초로 버무린 ‘건해삼냉채’.
2 불리고 데친 건해삼 속에 다진 새우를 채운 뒤, 한 입 크기로 잘라 전분을 입혀 튀긴 다음 채소와 양념을 더한 ‘일품해삼’.
3 ‘양삼탕兩蔘湯’ 바다의 삼과 육지의 삼을 함께 넣어 끓인 탕이라는 뜻. 쇠고기 양지와 토종닭을 12시간 정도 끓인 진한 육수에 불린 건해삼, 인삼, 관자, 자연 송이 등 귀한 보신 재료를 넣고 중탕으로 4~5시간 은근하게 끓였다. 재료의 맛과 영양소가 육수와 어우려져 건더기는 물론 국물까지 마시면 이만한 보양식이 없다.


순수하지 않은 마음으로 배운 기술은 언젠가 빗나가게 마련. 실제 중국에서는 형상을 손쉽게 고정하기 위해 해삼을 삶는 과정에서 응고제를 첨가한다거나, 중량을 부풀리기 위해 설탕을 과다하게 넣거나, 좋은 상품으로 둔갑시키기 위해 색소를 넣기도 하여 문제가 되고 있다. 난학독 씨가 한없이 낮은 마음으로 임하게 된 것은 수없이 실패한 덕분이기도 하다. 처음 시작하고 3년간 수억 원을 날렸다. “세심한 감각과 타이밍이 필요한 작업이거든요.

제대로 간을 하지 않고 햇볕에 말려 해삼이 녹아 없어지거나, 끓이는 시간이나 온도를 못 맞춰 상품성이 떨어진다거나 하는 시행착오를 셀 수도 없이 많이 겪었지요.” 그가 실패하고 집에 돌아오면 웅크린 채 뒤돌아 앉아 있던 날을, 아들 난세문 씨는 기억한다. 이제는 아버지를 도우며 대를 이어 건해삼을 만들고 있다. “바다라는 자연에서 첫 생명을 얻은 해삼이, 태양이라는 또 다른 자연을 만나 두 번째 생명과 힘을 얻은 셈이에요. 부활의 귀재 해삼, 어찌 끌리지 않겠어요?”

가거도 미식 여행을 꿈꾼다면
전라남도 신안군 흑산면 가거도리, 목포에서 145km 떨어진 우리나라 최서남단으로 서울에서 출발한다면 최소 2박 3일의 여정을 짜는 것이 좋다. 서울 출발을 기준으로 가장 빠른 교통편은 용산역에서 KTX를 타고 목포에 간 다음 가거도행 여객선을 타는 방법이다. 가거도 현지 숙박은 민박과 모텔이 전부다. 음식점은 따로 없고, 비용을 추가해 숙소에서 운영하는 식당을 이용하는 식. 대표적으로 가거1구 선착장 바로 앞에 있는 가거비치모텔(061-246-5757)은 어촌계 회장 정석규씨가 운영하는 곳으로 기본 반찬 가짓수도 많고, 인심도 후하다. 가거2구에 있는 다희네민박(061-246-5130)은 가거도 선주 임세국 씨가 운영하는 곳으로, 미리 얘기하면 그날 잡은 제일 좋은 해산물로 저녁 메뉴를 구성해준다.

취재 협조 서울신라호텔 팔선(02-2230-3366) 

글 나도연 사진 민희기 | 담당 박유주 기자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13년 8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