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밭을 한국 최고의 생태 정원으로 만들어낸 이두이 씨. 그 오른팔 이지인 씨.
꽃 지는 이 가을이 되어서야 인생의 나날은 모두 꽃 같음을 알았다. 꽃 같은 인생의 향기, 떨림으로 맞으리라 작심하며 들어선 동네. 아늑한 흥정마을의 둔덕 위에 연칠화처럼 이식돼 있는 이곳은 그야말로 천지사방 꽃대궐이다. 한 무더기 꽃이 지면 다른 꽃이 또 지천으로 피어나 달마다 다른 옷을 갈아입는 생태 정원 ‘허브나라’. 그 입간판 아래에서 모녀가 붉게 웃으며 객들을 맞는다. 단정한 앞맵시가 한 세기 전 유럽 아낙을 떠올리게 하는 엄마 이두이 씨, 외화 <초원의 집> 로라를 닮은 딸 이지인 씨. ‘국내 최초의 허브 농원’ ‘환경부가 주관한 체험형 생태 관광지 20선 중 한 곳’ ‘한 해 입장객이 50만 명을 넘는 유명 관광지’…. 입소문이 자자한 이곳을 찾은 건 지난봄 이두이 씨가 글을 쓰고 이지인 씨가 그림을 그려 펴낸 <허브나라 이야기> 덕분이다. 1993년 3백 평으로 시작한 생태 정원을 1만 평으로 넓히며 이 가족이 그러모은 행복 이야기가 엄마의 글, 딸의 그림에 담긴 책이다. 가슴에 꽃다발 꽂아둔 것처럼 살아가는 이 가족의 이야기를 들으러 봉평에 왔다.
어릴 때부터 숲 속 햇살을 끔찍이도 사랑한 이두이 씨는 서울대에서 농학을 전공했고, 농사를 생의 궁극적 목표로까지 삼았다.‘사상적으로 농업을 숭배하는 남편’ 이호순 씨(한창 농촌 계몽이 불고, <사상계>라는 잡지가 주목받는데다, 함석헌 선생의 가르침에 젊은이들이 경도되던 시절이었다. 그는 농대에 들어가고 싶었지만 부모님의 소망대로 서울대 공대를 나와 삼성전기에 들어갔고, 나중에 자회사인 청주전자 CEO가 되었다)와 결혼해 옥돌처럼 빛나는 아이 둘도 얻었다. 결혼하면서 세운 약속 ‘내 집 짓기, 자동차 사기, 나이 쉰에는 자그마한 시골 농장에서 살기’를 차근차근 이루고 또 준비해갔다. 그사이 이두이 씨는 아이들이 중학교에 들어가자
서른아홉의 나이로 서울대 대학원 원예과에 입학해 석사 학위를 땄다. 우리나라에 ‘실내 조경’의 개념조차 없던 시절, 자신의 실내조경연구소를 운영한 여장부이기도 하다.
(오른쪽) 이지인 씨가 직접 칠한 새집 앞에 핀 피튜니아와 라벤더가 곱다.
49세 되는 해, 그는‘농장에서 조용히 살기’란 꿈의 첫발을 내디뎠다. 지인의 권유로 일본 치바 현의 ‘허브 아일랜드’에 다녀온 후 ‘보여주는 농사’, 농사 짓는 사람도, 찾아오는 사람도 즐길 수 있는 농사를 짓겠다는 꿈자락을 펼치게 된 것이다. 1993년 평창군 봉평면의 깊은 계곡, 소나무 군락과 철쭉이 지천인 흥정마을에 둥지 찾는 새처럼 깃들었다. “내가 49세, 남편이 51세, 둘이 합쳐 꽉 찬 1백 세였죠. 농사짓기에, 새로운 일을 시작하기에 너무 많은 나이라고요? 쉰 살은 새 출발을 하기에 가장 ‘완숙한’ 나이죠.”
1 허브나라가 다른 곳과 차별화되는 이유는 구역별로 개성 있는 테마를 만들었기 때문이다.
2 파머스 마켓 앞의 정원. 베고니아가 앙증맞게 피었다.
옛날에 개울이었던 곳이라 땅만 파면 돌이 나오는 밭을 일구며 손발이 밧줄처럼 거칠어졌다. 삽질, 괭이질, 돌 고르기를 웬만한 남자보다 잘하는 그를 동네 사람들이 ‘평양에서 온 여자’라고 부를 정도였다. “밭을 만드는 틈틈이 공부도 열심히 했어요. 당시 우리 나라 사람들은 허브가 뭔지도 잘 모를 시절이다 보니 외국에서 허브에 관한 책도 열심히 구해다 읽고, 허브 씨도 구해와 뿌려보기도 했어요. 라벤더인 줄 알고 심었는데 자라고 보니 히솝이었던 적도 있는 걸요. 그 후 일본과 미국의 여러 식물원과 허브 농원도 많이 둘러봤어요. 이 흥정계곡을 허브로 가득 찬 향기로운 곳으로 만들겠다는 꿈이 있어서죠.”
첫해엔 아직 직장에 몸담고 있어 주말에만 농원에 내려오던 남편도 정년 전이었는데 홀가분하게 직장 생활을 청산하고 1년 뒤 봉평에 들어왔다. 아내가 자식처럼 꽃과 나무를 가꾸고, 남편은 손끝 매운 솜씨로 집을 지었다. 허브나라에 있는 집과 펜션, 허브 박물관, 터키 박물관, 만화 박물관까지 모두 그의 손을 거쳤다. 낙엽송, 참나무 한 그루 베어내지 않으려고 지붕 끝을 오려내며 지은 집을 보고 법정 스님이 “산에 살 자격이 있다” 고 칭찬할 정도였다.
햇살 좋은 가을날 허브나라에 들르면 꽃처럼 만개한 미소의 가족을 만날 수 있다.
서울대 서양화과를 수석 입학할 정도로 재원인 딸 이지인 씨는 허브나라의 인테리어, 조형물, 벽화, 상품의 패키지 디자인, 허브나라 캘린더 디자인 등을 도맡았다. “다른 친구는 모두 작업실에서 작품에 몰두하는데 전 TV도 없는 산골에서 이게 뭔가 싶어 서울에 작업실을 만들어 나간 적도 있어요. 하지만 그곳에서도 나도 모르게 허브 그림만 그리고 있었는걸요.” 허브나라가 다른 생태 정원보다 특별한 이유 중 하나가 이지인 씨가 그린 수채화가 있어서다. 화분, 이정표, 꽃 이름표 하나하나까지 이지인 씨의 수채화로 덮여 있다.
미국 유학 중이던 장남 이승택 씨는 부모님의 ‘인생 2막’을 축하하며 ‘허브나라’라는 이름을 지어 보냈다. “그사이 우여곡절도 많았죠. 2006년엔 강원도에 큰비가 내려 정원이 형체를 알아볼 수 없게 망가지고 다리가 떠내려갔어요. 하지만 ‘복구는 새로운 창조다’란 생각으로 일주일 만에 복구해버렸죠. 처음 이곳에 정착할 땐 원주민들에게 건축법, 하천법, 산림법, 식품위생법 등 열한 가지 명목으로 고발도 당했어요. 손님을 재워드린 건 무허가 숙박업이고, 식사를 드린 게 무허가 요식업에 식품위생법위반, 수확한 허브를 말려서 포장해 판 건 식품 가공법 위반…. 그래도 마음을 다잡은 후 식당, 숙박, 농산물 도소매업 등 가능한 업종은 모두 사업 등록하고 상표, 상호도 등록하고 본격적으로 허브나라 농원이라는 브랜드를 만들어나갔죠.”
그렇게 이 가족이 새벽 5시부터 달팽이처럼 이슬에 몸 적시며 가꾼 허브나라. 지금은 1백여 종의 허브와 1백30여 종의 꽃이 계절별로 만발하는 생태 정원이 됐다. 무엇보다 허브나라는 가든 구성이 매우 독창적인데, 용도에 따라 허브를 심는 대신 테마를 살려 정원을 꾸몄다. 식물에 조예가 깊은 정원사이기도 했던 셰익스피어의 작품 속 허브를 모아 가꾸는 ‘셰익스피어 가든’, 벌과 나비가 끊임 없이 날아드는 밀원 식물로 채운 ‘나비 가든’, 강아지풀·닭의장풀· 스파이더꽃처럼 동물과 닮아 동물 이름을 딴 식물 정원 ‘보태니컬주’, 팔레트에 물감을 짜놓은 것처럼 색색깔의 꽃으로 채운 ‘팔레트 정원’ 같은 것이다. 2년 전에는 아들 가족까지 귀국해 허브나라에 터를 잡았다. 3대가 함께 모여 살게 된 것이다.
(왼쪽) 팔레트에 물감을 짜놓은 듯 색색깔의 꽃으로 채운 ‘팔레트 정원’. 이호순 씨와 손자들이 정원 가꾸기 삼매경에 빠졌다.
1, 2, 3, 4 같은 식물이어도 연출하는 방법에 따라 확연히 차이가 난다.
몇 년 후면 일흔이 되는 이두이ㆍ이호순 씨 부부. 딸 이지인 씨는 하루하루 엄마의 관절이 물러지는 것 같아 슬퍼지곤 한다. 그렇지만 여전히 감사하다. 자연의 품성을 닮아 안분지족하며 사는 엄마 아빠가 있어서, ‘인생은 하루’라 생각하고 다시 오지 않을 시간을 충실히 살아온 그들이 있어서. 그건 바로 꽃과 나무와 자연이 준 선물임을 이 가족은 안다. 마음먹은 대로 자연스럽고 고요하고 부지런히 사는 일, 그래서 자연다워지고, 그래서 더 인간다워지는 일. 바로 정원이 준 깨달음이다. 정원에서의 하루는 늘 짧다. 좋은 때는 늘 짧듯이. 지천에 꽃 사태난 허브나라에도 이제 잎들이 사분사분 떨어지는 계절이 올 것이다. 그래도 이곳엔 쓸쓸한 계절은 없다. 천지사방에 박하 같은 가족의 웃음 소리 낭자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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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두이 씨가 전하는 가드닝 노하우 1 함께 심으면 좋은 ‘친구 식물’로 컴패니언 가든Companion Garden을 만드세요. 채소류와 열매 식물 중에는 함께 심으면 서로 도움을 주는 것이 있답니다. 해충은 쫓고 이로운 곤충을 불러들이기도 하고, 공생 효과가 있기도 하지요. 금송화라고도 하는 마리골드와 토마토를 함께 심으면 마리골드의 강한 향이 토마토에 쉽게 끼는 진딧물을 억제하는 효과가 있어요. 양배추와 감자를 함께 심으면 감자가 자랄 때 피해를 주는 선충을 쫓을 수 있지요. 당근과 양파, 감자와 옥수수, 쥬키니 호박과 완두콩도 마찬가지 경우입니다. 이로운 곤충을 끌어 들이는 방법도 있는데 마리골드에 잘 꼬이는 말벌은 금잔화의 수분을 돕는 식이죠. 상추와 함께 래디시를 심으면 래디시의 매운맛이 더 강해지기도 합니다. 가지와 타임, 토마토와 바질, 펜넬과 호박도 궁합이 좋은 ‘친구 식물’이지요
2 가드닝 박스를 백 배 활용해보세요. 큰 가드닝 박스에 미니 화분 여러 개를 넣어 심으면 보기도 좋고 주변도 깔끔하게 정리할 수 있답니다. 허브나라에서는 기둥이 있는 대형 가드닝 박스를 꾸며 쓰레기통이나 지저분한 장소를 가리는 용도로도 쓰고 있지요. 가드닝 박스의 중심에는 실버 베고니아, 슈림프 플랜트 (새우꽃), 페퍼민트 같은 키 큰 식물을 심으세요. 가장자리에는 키가 작으면서 줄기가 늘어지는 식물(대표적인 게 아이비 종류)을 심으면 화분 몸통을 가리는 역할까지 할 수 있답니다. 또 심는 꽃의 색깔이 어우러져야 하는데, 중심이 노랑이면 그 주변 꽃도 노랑 계열로 하는 게 좋죠. 흙은 배수가 잘되는 흙을 써야 실내에 놓아도 벌레가 생기지 않는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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