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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안 창가에서 뉴욕 스타일로 농사짓기 ‘창가 농부’의 충만한 삶
분주한 도시 생활에 염증을 느끼고 패스트푸드에 미각을 잃은 뉴요커가 궁여지책으로 생각해낸 ‘집 안 농사법’. 햇볕이 잘 드는 창가에서 수경 재배로 작물을 키우는 ‘윈도 팜 시스템’은 기대 이상의 유익함을 가져다주었다. 탄소 발자국을 줄인 친환경 먹을거리를 얻는 것은 물론 지역사회의 소외된 계층에게 일자리를 내주고, 아이들에게 물리ㆍ화학ㆍ지구과학ㆍ생물 교육 효과까지 기대할 수 있는 윈도 팜. 이 보물덩어리를 국내에 소개한 세라 킴의 아파트로 여러분을 초대한다.

뉴욕은 분주와 열망으로 가득 찬 도시다. 백 안에 운동화를 넣고 다니며 출퇴근 시간을 이용해 운동을 벌충해야 하고, 비싼 렌트비 때문에 집 안의 부엌을 없애고 그 공간까지 활용해 여럿이 함께 살아야 하는, 그래서 하루 세끼를 패스트푸드로 때우고, 그 대가로 비만과 당뇨를 앓아야 하는 숨가쁜 도시. 뉴요커로 산다는 건, 화려한 삶과 성공을 얻는 대신 정신적 여유와 육체적 건강은 내려놓아야 하는 일이다. 뉴욕에서 그래픽 디자이너로 활동하는 브리타 라일리 Britta Riley와 레베카 브레이 Rebecca Bray 또한 불과 몇 년 전까지 그런 삶을 살았다. 하지만 30대 중반을 넘기면서 팍팍한 뉴욕 생활에 염증을 느끼기 시작했다. 밤낮없이 일하며 정크 푸드로 끼니를 해결하다 보니 건강은 점점 악화됐고, 사회적으론 의식 있는 아티스트로 포장되었지만 일상을 되돌아보면 환경 파괴의 주범으로 살고 있었다.

좀 더 인간답게 살기 위한 자구책이 절실히 필요한 때였다. 그러던 어느 날 라일리와 브레이는 모 잡지에 소개된 기사를 보게 됐다. 마당은커녕 생활공간조차 절대적으로 부족한 뉴욕에서 ‘로컬 푸드’를 생산해 먹을 수 있는 묘안! 햇볕이 잘 드는 창가를 활용해 수경 재배로 농작물을 키워 먹는 ‘윈도 팜 window farm’을 보는 순간 눈이 번쩍 뜨였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라일리와 브레이는 잡지 기사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윈도 팜 시스템을 개발했고, 그것을 뉴욕 시민에게 전파하기 위해 비영리단체 윈도 팜(www.windowfarms.org)을 설립했다. 2009년, 전 세계를 상대로 본격적 캠페인에 나선 윈도 팜은 실제로 뜨거운 호응을 얻었다. 가장 반응이 좋았던 지역은 유럽, 그중에서도 스칸디나비아 일대 국가에서 윈도 팜 키트가 가장 많이 팔렸다. 당시 뉴욕에 머물면서 라일리와 브레이의 행보를 관심 있게 지켜본 한국인 세라 킴은 그들과 협업해 윈도 팜 키트 설명서를 한국어로 번역하고, 국내에 ‘창가 농업’을 소개했다. 현재 부산 해운대구에 사는 그는 자신의 아파트 거실 창에 윈도 팜을 설치하고 1년째 ‘창가 농부’로 살고 있으며, 부산 YMCA와 연계해 윈도 팜 강좌를 개설, 운영 중이다.

(왼쪽) 오후 2시의 햇살이 드리운 창가에서 타임과 바질이 초록을 빛내고 있다.


(왼쪽) 구멍을 뚫어놓은 생수병을 타고 물이 똑똑 떨어진다. 
(오른쪽) 수경 재배는 배수가 잘되는 펠릿 pellet을 흙처럼 사용한다. 


윈도팜, 과연 한국 사람들에게 인정받을까? 장맛비가 한 차례 해운대 바닷가를 휩쓸고 간 오후 2시. 아파트 창으로 눈부신 햇살이 내리 쬔다. 해안 도시에선 자주 볼 수 있는 풍경이다. 세라 킴의 아파트 거실 창에는 커튼이나 버티컬 대신 파릇파릇한 허브와 채소가 자라고 있다. 윈도 팜은 말 그대로 해석하면 ‘창문 농장’. 손바닥만 한 텃밭도 갖지 못하는 뉴요커가 궁여지책으로 선택한 실내 농법을 일컫는 말이다. 집 안에 굴러다니는 생수병을 모아 그 안에다 화분을 넣고 수경 재배 방식으로 허브나 채소를 길러 먹는 이 농사법은 도심에서 아주 유용하다. 흙을 사용하지 않아 집 안에 벌레가 꼬일 일이 없고, 창가를 활용하므로 농경지가 필요하지도 않다. 또 전구를 달면 햇볕이 잘 들지 않는 창가에서도 식물이 자랄 수 있어 건물이 밀집한 주택가나 사무 지구에서도 실현 가능하다. 한 가지 문제는 윈도 팜 키트를 사용자가 직접 만들어야 한다는 점인데, 가격도 만만치 않고 조립도 쉽지가 않다. 뉴욕의 경우 1차 조립한 제품(설치에만 2시간이 소요되고, 지역에 따라 30~50달러 정도만 내면 전문가가 설치를 해준다)을 판매하지만 아직 한국에는 시판되는 제품이 없다. DIY에 익숙지 않은 한국 사람들이 ‘창문 농사’에 성공하기란 쉽지 않다는 뜻이다(제품력과 디자인이 우수한 생활용품 브랜드 이케아가 한국에 상륙하지 못한 이유도 한국 사람들이 DIY 제품에 익숙지 않기 때문이다). 윈도 팜 전문가인 세라 킴 역시 한국 시장에 이 시스템을 소개하면서 고민이 많았다. 경제적 여유, 농사에 대한 관심, 그리고 사회 문제의식까지 갖춘 사람들이 얼마나 있을까…. 고민 끝에 선택한 방법은 먼저 윈도 팜 강좌를 열어 사람들을 교육하는 것이다. 그 과정을 통해 윈도 팜 키트를 판매하고, 설치에 관한 소소한 정보도 알려주는 것이 훨씬 효과적이라고 판단했다. 그런 과정을 거치고 나면 윈도 팜의 설치 개념이 DIYD(Do It Yourself Development)로 발전할 것이 분명했다. 스스로 만들되 더 나은 방식으로 발전하기! 그 실험 정신만이 ‘창문 농사’를 잘 지을 수 있는 열쇠이기도 하다.

윈도 팜 키트를 설치하는 데 걸리는 시간과 비용은? 윈도 팜의 기본 구성은 네 개의 유닛 unit(두 칼럼 column이 하나의 유닛)이다. 이 중 한 개의 유닛을 설치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대략 8시간(전문가들이 산정한 시간으로 뉴욕에서 판매하는 윈도 팜키트에도 명시되어 있다). 가장 기본 단 위인 네 개의 유닛을 설치하려면 적어도 하루 반나절이 걸린다는 계산이 나온다. 보기에는 간단해 보이는데 무슨 시간이 그리 오래 걸리느냐고? ‘모듈 module(생수병)’ 하나하나를 자세히 살펴보면 그 이유를 알 수 있다. 각 모듈에는 화분을 넣을 수 있도록 가운데 부분에 커다란 구멍을 뚫어야 한다. 또 모듈과 모듈을 연결하기 위해 생수병 밑바닥에도 구멍을 뚫어야 한다. 모듈에서 모듈로 물이 떨어지도록 생수병 뚜껑에도 콩알만 한 구멍을 뚫어야 하니, 시간도 공도 많이 들어가는 것이 당연하다. 구멍 뚫기 작업이 끝나면 각 모듈을 병 뚜껑 쪽에서부터 시작해 3분의 1 지점까지 하얀색 친환경 페인트로 칠한다(병의 안쪽을 칠한다). 식물 뿌리가 햇볕에 노출되면 안 되므로 빛을 차단하기 위함이다.

다음은 모듈과 모듈을 철사로 잘 연결해 천장에 고정하는 일이다. 미국에선 군인들이 목에 거는 ‘군번 줄’을 사용하는데, 모듈의 무게가 상당하다 보니 줄이 끊어지는 경우가 많다. 세라 킴 역시 군번 줄을 사용했다가 거실 바닥이 물바다가 된 경험이 있어 최근에는 군번 줄 대용으로 단단한 철사를 쓰고 있다. 이 모든 작업이 문제 없이 끝났다면 워터 펌프 시스템을 장착할 차례다. 얇고 투명한 워터 파이프를 맨 아래 수조에서부터 시작해 맨 위의 모듈 구멍까지 연결한다. 이때 중요한 것이 맨 위 모듈 구멍 안쪽으로 파이프를 끼워 넣을 때 파이프가 꺾이지 않도록 잘 구부려야 한다는 점이다. 만약 파이프의 어느 한 부분이 꺾여 물이 잘 순환되지 않으면 농사를 망치게 된다. 파이프 설치까지 마쳤다면 워터 펌프 시스템을 작동하면 된다. 맨 아래 모듈에 절반쯤 물을 채우고(이 모듈은 수조 역할을 한다) 워터 펌프를 켠다. 아무 문제 없이 설치했다면 수조에 담긴 물이 워터 파이프를 타고 수직 상승해 맨 위의 모듈에 물을 전달할 테니, 그 물이 생수 병 뚜껑에 뚫린 구멍으로 똑똑 떨어지면서 아래, 그 아래 모듈로 천천히 전달될 것이다. 워터 펌프는 기계가 작동하다보니 약간의 소음이 날 수 있다. 이 소리가 거슬린다면 15분 혹은 30분 간격으로 타이머를 맞추는 것도 방법이다. 세라 킴의 아파트에 설치된 네 개 유닛을 만드는 데 든 비용은 약 40만 원. 하지만 집에 굴러다니는 재활용품을 활용하면 비용을 상당히 줄일 수 있다.

(왼쪽) 윈도 팜 시스템을 한 눈에 보여주는 단면도. 생수병 다섯 개가 연결된 기둥 두 개가 하나의 유닛이다.


아이처럼 애지중지 키운 허브를 ‘수확’하고 있는 세라 킴.


윈도 팜에 숨겨진 지구적 사고와 생태학적 식생활 로 테크 놀로지(재활용)와 하이 테크놀로지(에어 리프팅 시스템)의 절묘한 조합. 뉴욕과 유럽의 의식 있는 젊은이들이 윈도 팜에 관심을 갖는 이유다. 앞서 언급했듯이 윈도 팜을 가정 내에 설치하려면 품이 많이 든다. 뉴욕의 경우 키트를 만드는 과정이나 설치 서비스를 노숙자나 장애인에게 맡겨 사회적 일자리를 창출하고 있다. 또 키트 제작 과정을 아이들에게 공개해 물리ㆍ화학ㆍ생물ㆍ지구과학 교육을 자연스럽게 실시한다(실제로 뉴욕에서 판매하는 윈도 팜 키트 중에 ‘스쿨 키트’가 있다). 식물이 햇빛을 따라 굽는 굴광성이나 물이 에어 펌프를 타고 수직으로 상승했다가 자유 낙하하는 물리 개념을 어렵지 않게 설명할 수 있는 것이다. 세라 킴이 부산 YMCA를 통해 윈도 팜 교육 과정을 개설한 궁극적인 이유도 이와 같은 지구적 사고와 생태학적 식생활을 전파하기 위함이다. “아이들 교육, 사회적 일자리 창출, 믿을 만한 먹을거리 확보, 그리고 식물을 키우는 즐거움까지, 윈도 팜이 가져다준 혜택은 정말 큽니다. 이 아이디어를 잘 활용해 부산 시민들에게도 유익한 일을 도모하고 싶어요. 부산 동구 쪽엔 아직도 월 2만 원을 내고 쪽방에서 생활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거리에서 폐지나 재활용품을 줍는 어른들도 많고요. 윈도 팜의 수요가 점차 늘어나면 그분들과 함께 일할 거예요. 사무실 밀집 지역이나 아파트에도 윈도 팜을 설치하고, 외국처럼 온실로 꾸민 레스토랑도 열고요. 그렇게 뻗어 나가면서 윈도 팜 공동체를 키우다 보면 도심의 수은주도 뚝 떨어지지 않을까요?”

흙이 아니라 물에서 자란 채소가 과연 맛있을까? 윈도 팜의 가장 큰 특징은 수직의 버티컬 방식을 사용해 수경 재배로 작물을 키운다는 점이다. 로컬 푸드의 미덕은 각 지역의 토양과 기후의 영향을 받고 자란 농작물을 먹는 것이고, 그런 의미에서 수경 재배 작물에 대한 의심을 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 문제에 대해 세라킴은 이렇게 설명한다. “한국 사람들은 흙에서 키워야 영양소가 충분하다고 생각하죠. 물론 맞는 말입니다. 그런데 이런 면도 있어요. 땅에서 자란 식물은 스스로에게 필요한 영양분을 얻기 위해 주변 식물과 싸움(struggling)을 합니다. 생존을 위해서죠. 반면 수경 재배는 물속에 영양제를 넣어주므로 식물이 그것만 흡수하면 되죠. 생존을 위해 싸우지 않아도 되니까 흙에서보다 2배 이상 빨리 자라고, 또 흙에 있는 여러 가지 중금속도 흡수하지 않아 믿을 수 있어요. 벌레가 생기지 않도록 관리만 잘하면 농약을 치지 않고 허브나 채소를 키워 먹을 수 있다는 것도 장점이에요. 마트에 가면 유기농 인증 마크가 붙은 제품이 널려 있지만 솔직히 믿을 수 없잖아요. 흙에서 키운 농작물이 그토록 푸르고 깨끗하게 자라는 건 불가능하거든요. 제가 직접 해본 결과, 수경 재배는 그 어떤 로컬 푸드보다 근원(origin)이 확실합니다. 내가 농약을 안 뿌리고 집 안에서 키운 것이니까요. 수경 재배 작물이 비싼 이유도 그 점 때문일 겁니다(국내에서도 수경 재배가 이루어지지만 값이 비싸 생산된 농작물은 거의 대부분 일본으로 수출된다).”


(왼쪽) 수확한 타임을 그늘에 잘 말려서 빻은 다음 작은 유리병에 보관한다.
(오른쪽) 우유와 유산균으로 만든 요구르트에 타임 한 스푼을 뿌려 먹으면 소화가 잘된다.


어떤 허브 키우실래요? 윈도 팜에서 키울 수 있는 식물은 다양하다. 허브 계열은 대부분 수경 재배가 가능하고, 방울토마토, 고추, 딸기, 방아 같은 다양한 채소와 과일도 키울 수 있다. 세라 킴이 키우고 있는 농작물의 종류는 약 15가지. 그는 지난 1년간 ‘창가 농부’로 살면서 허브의 달인이 되었다. “이탈리아 음식에 바질이 많이 들어가죠. 한국인이 가장 많이 쓰는 허브 중 하나도 바질이고요. 참 재미있는 건 감자볶음밥에 바질을 넣으면 햄 맛이 난다는 거예요. 감자를 씹고 있는데 햄을 씹고 있는 듯하죠. 집에서 쉽게 만들어 먹을 수 있는 파스타 중에 봉골레가 있는데, 사실 이탈리아 식당에서는 봉골레에 바질을 잘 안 넣어요. 그런데 집에서 이것저것 만들어 먹다 보니 봉골레와 바질이 의외로 잘 어울려요. 말리지 않고 생으로 한 잎만 넣어도 풍미를 돋우죠. 수프나 스튜에는 타임이 잘 어울려요. 아침 대용으로 인스턴트 수프를 먹을 때 타임의 생가지를 조금만 잘라 넣어보세요. 정통 레스토랑에서 먹는 수프 맛이 난다니까요. 소화가 잘 안 되는 분들에게는 레몬 밤이 효과적이에요. 홍차를 마실 때 레몬밤 잎을 따서 물에 살짝 씻은 다음 잔 위에 띄우고 2~3분 후에 드셔 보세요. 소화에 아주 좋습니다. 제가 가장 즐겨 만드는 음료는 요구르트예요. 유산균과 우유를 섞어 요구르트를 만든 다음, 말려서 간 허브를 한 스푼 뿌려 먹으면 허기도 가시고 소화도 잘돼요.”

그는 허브를 잘 키우려면 가지치기를 잘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모든 식물은 새순이 돋아나는 바로 윗부분이나 옆 부분을 잘라줘야 영양분을 빼앗기지 않고 잘 자란다. 가위를 사용해 깨끗이 잘라줘야 식물이 스트레스를 안 받고 잘 자랄 수 있다. 세라 킴은 오랜 경험으로 터득한 몇 가지 고급 정보도 알려주었다. 방울토마토를 키울 때 주의할 사항은 인공적으로 수분을 해줘야 한다는 것. 실내엔 벌이나 곤충이 없으므로 전동 칫솔을 활용해 수술을 자극하면 수분에 성공할 수 있다. 벌레가 잘 생기는 고추 등의 작물을 키울 땐 베이킹 소다액을 뿌려 박멸하는 것이 효과적이다.

집 안에 윈도 팜을 꾸미고 ‘창가 농부’로 살고 싶다면
국내에서 윈도 팜 강좌가 열리는 곳은 아쉽게도 부산 해운대구 YMCA밖에 없다. 강좌 스케줄을 알아보고 싶다면 psymca.or.kr을 방문하거나 부산 YMCA로 문의(051-440-3345, 담당 김현정 간사)한다. 세라 킴이 운영하는 블로그(windowfarms.tistory.com)를 둘러보면서 스스로 윈도 팜 키트를 만들어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라일리와 브레이가 만든 뉴욕의 비영리단체 윈도팜(www.windowfarms.org)에 접속하면 미국이나 유럽 사람들이 가꾸는 윈도 팜 정보를 얻을 수 있다.



자료 제공 www.windowfarms.org

글 정세영 기자 사진 민희기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11년 8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