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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 여행특집]여행 작가 이동미 씨가 제안하는 강진 순례 아이들과 함께 떠나는 ‘교과서 여행’
7월은 가족 나들이를 떠나기에 더없이 좋은 계절. 가족과 함께 좋은 추억도 만들고, 기왕이면 공부도 되는 여행을 떠나보면 어떨까. 아이들과 ‘교과서 여행’이라 이름 붙이고 다니기 시작한 여행은 한 권의 책으로 엮어낼 만큼 유익한 즐거움을 선사해주었다. 교과서에서나 본 인물들을 찾아 떠나는 강진 여행. 그 흥미진진한 역사 속으로 함께 떠나보지 않겠는가.


병영성 홍교 바로 옆에 있는 매화마름 저수지로 무릉도원이 따로 없다.


자, 그럼 지금부터 아이들과 함께 떠난 강진 ‘교과서 여행’을 추억해보려 한다. 강진은 평소 첫아이가 유독 관심을 보인 <사금파리 한 조각>에서 비롯한 여행이었다.

“엄마, 혹시 제 ‘사금파리 한 조각’ 보셨어요?” 초등학교 6학년인 딸아이가 요즘 푹 빠져 있는 책은 <사금파리 한 조각>이다. 린다 수 박 Linda Sue Park이라는 아동 문학가가 쓴 책인데, ‘목이’라는 주인공 아이가 상감청자에 대해 배우고 익히는 이야기가 무척 흥미롭다. 덕분에 어른인 나조차 고려청자에 호기심이 많이 생겼고, 초등학교 3학년인 아들은 배를 타고 떠나는 모험과 탐험에 부쩍 관심을 보인다. 아이가 학교에서 ‘17세기 조선의 존재를 유럽에 알린 책에 대해 조사하기’라는 과제를 받아온 덕분에 우리 가족은 겸사겸사 강진으로 가족 여행을 떠났다. 그리고 이와 비슷한 여행을 ‘습관’처럼 하게 된 이후 아이들과 나는 ‘교과서 여행’이라는 이름을 붙여 온 가족이 떠나곤 한다.

(왼쪽) 하멜이 항해한 여정을 그려놓은 지도.


(왼쪽) 린다 수 박의 <사금파리 한 조각> 표지.
(오른쪽) 네덜란드식 담 쌓기로 쌓은 돌담 위에 호박꽃이 정겹게 피었다.


<하멜 표류기>의 흔적을 찾아서 강진의 첫 방문지인 병영마을에서는 군대 냄새가 난다. 이 마을에 있는 병영성(사적 제397호)은 둘레가 2천8백 척, 높이는 18척, 옹성이 12개인 큰 성이다. 조선 왕조 5백 년간 제주도를 포함해 53주 6진을 총괄했으며, 당시 병영성 주위에 3천여 호가 살았다 하니 지금의 10배 규모에 달한다. 마을에 들어서면 끝도 없이 돌담이 펼쳐진다. 납작한 돌을 골라 15도 정도 눕혀 촘촘하게 쌓고 흙으로 고정한 후 다음 층은 반대 방향으로 15도 정도 눕혀 쌓았다. 커다란 돌이 듬성듬성 박혀 있는 우리의 돌담과는 다른 모습인데, 이것은 네덜란드식이다.

지금으로부터 3백58년 전(1653년), 암스테르담을 출발해 일본 나가사키로 가던 스페르웨르호는 거센 폭풍을 만나 제주도 서해안에 표류했다. 생존자 중 한 사람이 헨드릭 하멜 Hendrick Hamel(1630~1692년)이다. 제주에서 1차 탈출에 실패한 후 한양으로 압송되어 3년간 생활하다 이곳 전라 병영에 억류되었다. 1656년 하멜 일행이 처음 강진에 도착했을 때는 어떠했을까? 눈이 파랗고 머리가 노란, 그래서 짐승인지 사람인지 구분이 가지 않는 생김새에 아이들과 여자들은 멀리서 보기만 해도 도망을 쳤고 남자들은 멀찍이 돌아서 다녔다고 한다. 당시 하멜은 죄인이었기에 부역과 노동으로 돌담 쌓는 일을 했고, 겨울에는 해진 옷을 입고 수인산에 올라 땔감을 마련했다. 아이들이 뛰노는 8백 년 된 은행 나무(천연기념물 제385호) 그늘은 하멜 일행이 고단한 일을 하다 잠시 쉬던 장소다. 이후 전라 좌수영과 순천, 남원 등에 분산 배치되어 잡역에 종사하다 일곱 명이 탈출에 성공해 고국으로 돌아가 <하멜 표류기>를 발표한 것이다. 조선 생활을 시작한 지 13년 20일 만의 일이었다.

“엄마, 하멜 아저씨는 네덜란드 사람이잖아요. 나는 여기 오니까 네덜란드라는 나라가 궁금해지는데, 네덜란드 사람들도 우리가 궁금했을까요?” 아이가 묻는다. “그럼, 그 당시 출간된 <하멜 표류기>는 신비한 동양 이야기를 담아 유럽 사회를 뒤흔들 정도로 인기가 많았대. 유럽 사람들도, 네덜란드 사람들도 우리가 무척 궁금했을 거야. 그러니까 책이 많이 팔렸겠지?”

고려청자의 비밀을 만나다
고려청자의 현주소를 볼 수 있는 곳은 강진고려청자박물관과 고려청자도요지다. 우리나라는 일찍이 도기를 만들어왔는데 1000℃가 넘는 온도에서 단단한 도기를 굽기 시작한 건 삼국시대부터이며, 비취빛의 고려청자 기술이 절정에 달한 것은 12세기 전반에 이르러서다.

“아빠, 엄마, 고려청자 만드는 것을 직접 볼 수는 없을까요?” “물론 볼 수 있지. 고려청자의 최고봉은 상감기법으로 만든 거야. 상감 기법은 성형, 정형, 조각, 장식 등 여러 과정을 거쳐 만드는 것인데, 이곳에는 과정별로 고려청자를 만드는 전문가가 있단다.”

아이의 청에 이끌려 강진청자자료박물관으로 향했다. 그곳에선 가히 장관이 펼쳐진다. 표면에 무늬를 파고 그 속에 흰 흙 또는 검은 흙을 넣어 메운 후 구우면 푸른 바탕에 백색과 흑색 문양이 완성된다. 고려만이 지닌 독창적 기술로 고려 도공은 상감기법을 이용해 청자 위에 날아가는 학과 청초한 국화, 구름 등을 표현했다. 유약 바르는 모습만은 볼 수 없는데 청자의 가장 중요한 과정이라 공개하지 않는다. 고려 왕조를 빛낸 청자는 강진을 기반으로 성황을 이루었는데, 전국 4백여 기의 가마터 중 1백88기가 강진군 일대에 밀집해 있고, 대구면 일대에만 약 60만m2(18만 평) 규모로 존재하며, 현존하는 국내 국보와 보물급 중 80%가 용운리 일대에서 생산한 것이다. 흙과 기후 등 청자를 굽기 위한 여건뿐만 아니라 신라 말부터 중국과 무역을 해오던 지리적 이유 때문이다.

(왼쪽) 날아가는 학 모습을 그려 넣은 청자.

영랑 생가에서 살아 있는 시와 조우하다
고려청자 제작 과정을 본 후 강진읍 남성리에 자리 잡은 영랑 생가로 향했다. 1903년 1월, 김종호 씨의 장남으로 태어난 영랑은 강진에서 보통학교를 졸업하고 상경했다. 독립운동을 주도하다 옥고를 치렀고 일본에 다녀온 후 <시문학>을 통해 본격적인 작품 활동을 펼쳤다. 영랑이 생전에 발표한 작품의 수는 약 80여 편. 그중 60여 편이 이곳 생가에 머물던 시기에 쓴 것이다. 문간채를 지나면 왼쪽으로 영랑의 시에 등장하는 우물과 마당 가득 심어진 모란이 눈에 띈다. 영랑의 시 ‘모란이 피기까지는’이 절로 읊조려진다. 장독대를 지나면 영랑이 시를 쓰던 사랑채가 고개를 내민다. 약간 비뚤게 지은 이 건물은 ‘사개틀린 고풍의 툇마루에서’라는 시에 등장한다. 방 안에는 글을 쓰는 영랑의 모형이 있다. 영랑 생가를 둘러보고 담장을 따라 올라가니 금서당이 보인다. 이곳은 영랑이 한문을 배우던 곳이다.


(왼쪽) 글을 쓰고 책을 읽는 ‘가짜 영랑’의 모습.
(오른쪽) 영랑 선생이 책을 읽던 금서당.


다산의 흔적을 찾아가다
강진 하면 떠오르는 또 다른 인물은 다산 정약용이다. 강진으로 내려와 처음 머문 공간은 ‘사의재 四宜薺’였다. 당시 정약용은 유배를 온 죄인이었기 때문에 주민들 중 아무도 그를 받아주지 않았다. 그런데 동문 밖에서 주막을 운영하던 노파가 다산을 측은히 여겨 방 한 칸을 내주었다. 사의재는 생각, 용모, 언어, 동작을 마땅하게 해야 한다는 뜻으로 다산이 지은 이름이다. 그가 머문 또 하나의 공간으로 만덕산 기슭의 다산초당을 들 수 있다. 강진에서 보낸 18년의 유배 기간 중 10여 년 동안 생활하면서 <목민심서><경세유표><흠흠신서> 등 5백여 권에 달하는 조선 후기 실학을 집대성했다. 산수의 조화를 위해 다산이 직접 만든 연지석가산이라 불리는 인공 연못과 솔방울로 불을 지펴 차를 끓이던 반석인 다조도 볼 수 있다. 다산이 백련사의 혜장선사와 교류하던 오솔길도 걸어보자. 신라 말에 창건했다고 전해지는 백련사는 조선 후기 8명의 대사가 머무른 사찰로 멋진 풍광과 더 불어 백련차를 맛볼 수 있는 곳이다.


다산 정약용이 머물던 사의재.


아이들과 ‘교과서 여행’을 떠나기 전에 다음 몇 가지 사항을 미리 고민해보길 바란다. 아이들과 함께 하는 여행에서 행선지 정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다. 아이들이 지루해하면 여행 자체가 즐겁지 않다. 일단 아이들이 읽은 책, 학교 교과과정 중 좋아하는 과목, 영화나 애니메이션에 등장하는 장소 등을 우선순위로 하자. 여행을 떠나기 전 아이들의 호기심을 자극하면 여행 가서 훨씬 수월하다. 아이들과 동행하는 코스는 가능한 한 일정을 느슨하게 짜는 것이 좋다. 어른에 비해 아이는 적어도 1.5배 또는 2배 이상의 시간이 필요하다.

숙소는 미리 정하지 않는 것도 방법이다. 대략 짜둔 동선에 어떤 곳이 있는지 점검하고 예약은 하지 않는다. 숙소를 정하면 그것에 맞추려고 움직이게 된다. 나 같은 경우, 펜션 대신 모텔을 선호하는데, 요즘은 모텔 1층에 가족실을 만들어두는 곳이 꽤 있다. 숙소에 들어가면 TV 코드를 미리 뽑는다. 여행지에서 TV를 보는 행동은 삼가야 한다. 한국관광공사에서 정한 굿스테이(www.bookingm.co.kr) 가족 여행 숙소를 활용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여행을 하면서 아이들에게 권유하는 것이 한 가지 있는데, ‘생각 주머니’를 만들라는 것이다. 수첩에 목걸이 줄을 달아 걸고 다니다가 자기만의 생각이나 느낌을 적고 그림을 그리는 것이다. 잊어버리거나 놓칠 수 있는 생각을 그림으로 담아두는 습관을 기르는 것이다. 여행 중 차 안이나 휴게소에서 아이들이 지루해하면 큰 글씨와 그림이 있는 동화책이나 만화책을 보여준다. 사실 차 안에서는 게임기가 ‘가장 효과적’이긴 하다. 색종이를 가지고 다니면서 입장표, 메뉴판 등을 따라 만들어보는 것도 좋다. 그렇게 만든 것을 모아두면 나중에 가족끼리 어딜 다녀왔는지 추억할 수 있다.

글과 사진 이동미(<여행 작가 엄마와 떠나는 공부 여행>저자, chorani7@chol.com

담당 정세영 기자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11년 7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