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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 여행특집]<행복> 독자 김연홍 씨 가족과 함께 떠난 1박 2일 여행 천리포 수목원의 낮과 밤
새침하고 영리한 수현이, 토실토실 알밤 같은 대현이, 자존감 강한 꼬마 아가씨 승현이 그리고 엄마, 아빠. 경기도 양평에 전원주택을 짓고 사는 <행복> 독자 김연홍 씨 가족이다. 그들과 함께한 천리포 수목원에서의 하룻밤은 일상에 쉼을 주고, 가족 간의 정을 돈독하게 해주었다.


지인의 집을 <행복>에 소개하고 싶다며 편집부로 전화를 걸어온것이 인연이 되어 <행복>과 가족 여행을 떠나게 된 김연홍 씨. 젊은 시절 그래픽 디자이너로 일한 그는 세 아이를 키우느라 현재 전업주부이자 화가로 살고 있다. 몇 년 전 남편의 사업이 어려워져 인생 경험을 톡톡히 한 그는 하루를 살아도 행복하게 살고 싶어 삶의 터전을 양평으로 옮겼다. 그곳에서 텃밭을 가꾸고 그림을 그리며 가족을 돌보는 일이 그는 즐겁고 소중한 일상이다. 대안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은 자연에 관심이 많고 자존감이 강하다.

남편 또한 양평으로 이사하면서 표정도 밝아지고 건강도 좋아졌다. 아이가 셋이다 보니 주말마다 어디론가 떠나는 게 일상이 된 지 오래. 여행은 언제나 즐겁게 마련이지만 돈이 많이 든 나머지 자구책도 마련했다. 호텔 대신 찜질방에서 잠자기. 전국에 안 가본 찜질방이 없다는 아이들은 이미 가족 여행의 고수가 되었다. <행복>이 김 연홍 씨 가족과 함께 떠난 여행지는 충남 태안군에 자리 잡은 천리포 수목원. 1박 2일 동안 머물러야 그 참맛을 느낄 수 있다는 ‘꿈꾸는 정원사’ 이동협(천리포 수목원의 사계를 담은 <정원 소요>의 저자) 씨의 조언대로 하룻밤을 지내본 소감을 들려드린다.


(왼쪽) 새벽 5시, 안개가 자욱한 소나무 길을 걷고 있는 김연홍 씨 부부.
(오른쪽) 아이들이 꽃으로 만든 인형.


수목원은 방앗간처럼 들르는 곳이 아니에요 깊은 밤 그리고 이른 새벽, 수목원에 울려 퍼지는 새소리, 개구리 소리, 벌레 우는 소리를 가만히 듣는 것만으로도 하룻밤 그곳에 몸을 뉘일 이유는 충분하다. 금융업에 종사하던 한 외국인이 사유지를 매입해 꾸민 생태 정원 천리포 수목원. 충남 태안군 소원면에 있는 이곳은 과거 개인 소유였다. 1979년 한국에 귀화한 민병갈(미국명 Carl Ferris Miller) 씨가 거금을 들여 부지를 매입하고, 적금 들 듯 조금씩 식물을 사들여 가꾼 정원. 약 60만m2(18만 평)라는 어마어마한 부지의 생태 공원이 개인 소유라는 사실에 조금 놀라기도 했지만, 식물을 사랑한 한 남자의 열정이 곳곳에서 느껴져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천리포 수목원은 총 7개 구역으로 나뉘는데, 안타깝게도 민간에 개방된 곳은 그중 하나뿐이다(그것조차 40년 만에 어렵게 개방했다). 전 세계에서 공수해온 1만 3백여 종의 수종을 보유한 이곳은 별도의 <보유 식물 목록>을 발행할 정도다. 40년 동안 사람들이 드나들 수 없었기에 식물이 잘 보존되어 있는 것은 물론이고, 바닷가와 면해 있어 해송이 기가 막히다. 또 이곳의 나무는 가지치기를 하지 않는다. 나무가 구부러지면 구부러진 대로, 가지가 땅을 향하면 향하는 대로 두다 보니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죽어서도 수목원의 거름이 되겠다던 민병갈 씨의 정원 가꾸기 철학이다.

떨어진 꽃잎 주워 샐러드 만들어 먹고
세 아이를 키우면서 살림에 도가 튼 김연홍 씨는 떠나오기 전 ‘금방 해 먹을 수 있는 요리’ 콘셉트로 장을 봐왔다. 유기농 건강 밥상을 기대했다면 노! 마트에서 구입한 냉동식품과 레토르트 식품도 집을 나와 먹으면 다 맛있는 별미. 냉동 포장한 주꾸미볶음에 훈제 오리 포장육 그리고 김치찌개, 이 기본 메뉴에 아이들이 수목원 마당에서 주워온 꽃잎으로 만든 샐러드까지. 식사 준비 시간은 30분도 채 걸리지 않는다. 집에서는 편하게 앉아 엄마가 차려주는 밥상을 받지만 다 같이 여행 왔을 땐 아이들도 자연스럽게 엄마를 돕는다. 요리하는 엄마의 동선을 방해하지 않기 위해 욕실에서 상추와 깻잎을 씻는 수현이, 대현이, 승현이. 아이들이 무슨 이야기를 나누는지 들어봤더니 대화 내용이 예술이다. “누나 상추랑 깻잎이랑 어떤 게 더 씻기 쉬운거 같아?” “음… 나는 상추. 깻잎은 얇아서 한 장씩 씻기가 어려운데 상추는 입체적이라서 집기가 쉬워. 씻을 때 손에 닿는 느낌도 좋고.” “맞아, 나도! 근데 그거 알아? 그림 그릴 때는 상추가 더 어려운 거. 입체적이라서 시간이 오래 걸려. 표현하기도 어렵고.” 첫째 수현이와 둘째 대현이의 대화에 막내 승현이가 끼어든다. “언니, 입체적이 무슨 뜻이야?” “울퉁불퉁하다는 뜻이야. 평평하지가 않고 울룩불룩하다고.” 상추 하나를 씻으면서도 아이들의 대화는 흥미진진하다.

(왼쪽) 수목원에서 주워 모은 꽃으로 샐러드를 만드는 아이들.

안개 낀 이른 새벽 소나무 길 걷기
수목원에서 보내는 하루 중 그 아름다움이 절정을 이루는 시간은 늦은 밤과 이른 새벽이다. 이불 깔고 누워 잠을 청하면 멀리서 개구리, 부엉이 우는 소리가 들려온다. 그 소리를 배경음악 삼아 도란도란 수다 떠는 맛. 플레이 스테이션 게임을 좋아하는 아이들도 이 시간만큼은 자연의 정취에 푹 빠지고 만다. 아이들이 하나둘 잠들기 시작하니 연홍 씨는 내일 아침 아이들이 입을 옷가지를 챙기기 시작한다. 수목원의 새벽은 꽤 쌀쌀하므로 얇은 점퍼나 카디건을 꼭 준비해야 한다. 연홍 씨는 남편과 함께 새벽 5시에 일어나 아침 산책을 즐기기로 했다. 이 부부의 이른 아침 데이트에 뒤따라가보니 더없이 아름다운 풍경이 연출된다. 수백 년의 역사를 간직한 해송 사이로 두 손을 꼭 잡고 걸어가는 부부의 모습은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그림’이다. 가끔씩 서로 얼굴을 마주 보며 웃는 모습을 보면서 “부부란 저런 거구나”라고 여러 번 되뇌었다.


1
한옥 숙박 시설에서 하룻밤을 보내고 기념 촬영 한 컷.
2 소나무 길 앞으로 바라다보이는 천리포해수욕장.

3
수줍은 여인 같은 꽃.
4 우산처럼 펼쳐진 희귀한 나무 아래 아이들이 몰려들었다.


숲 해설사와 함께 걷는 천리포 수목원
아이들을 깨워 아침을 먹고 본격적인 수목원 투어에 나섰다. 현재 개방된 1구역은 1시간 30분 정도면 꼼꼼히 둘러볼 수 있다. 시골에서 자란 아이들은 숲 해설사의 설명이 끝날 때마다 질문을 쏟아냈다. “여러분, 이 풀은 털머위라는 거예요. 말곰취라고도 부르죠. 바닷가 숲 속이나 습기가 많은 곳에서 자라요.” 그러자 대현이가 묻는다. “선생님, 털머위는 먹으면 죽는 거죠?” “그런가요? 선생님도 잘 모르는데 대현이는 그걸 어떻게 알았죠?” “TV에서 봤어요. 나중에 혹시 제가 모르고 먹을 수도 있을 것 같아서 외워둔 거예요.” 대현이의 대답에 가족 모두 까르르 웃는다. 7~8월, 천리포 수목원에는 가시연꽃이 가장 예쁘게 핀다. 특히 이른 새벽 연못가에 안개가 자욱하게 끼면 누가 걸어도 ‘영화 같은 장면’이 연출된다. 6월에는 망개나무와 노랑붓꽃, 4~5월에는 매화마름이 가장 아름답게 핀다. 풀잎에 맺힌 이슬 방울 하나도 놓칠 것 없이 모두 아름다운 곳, 천리포 수목원을 걷고 있으면 ‘여기가 천국이구나’라는 생각이 절로 든다.

(왼쪽) 초가집을 그대로 복원한 숙소.


(왼쪽) 풀잎에 맺힌 이슬도 완벽한 그림이다.
(오른쪽) 새벽 안개가 짙게 깔린 연못가 풍경.


수목원을 둘러보는 사이 종이컵에 계속 무언가를 주워 담던 수현이는 잠깐 쉬는 사이 벤치 위에다 꽃과 잎으로 인형을 만들었다. 수현이가 커다란 잎으로 뼈대를 만들면 승현이가 작은 잎사귀와 꽃잎으로 디테일을 표현했다. ‘두 여자’의 인형 만들기에 선뜻 끼어들기가 어색했는지 대현이가 누나 귀에다 대고 한마디 한다. “나한테도 뭐 좀 시켜.” “저리 가, 망치지 말고!”

이른 아침부터 일어나 준비한 탓에 오전 10시가 좀 넘어 수목원 투어를 마쳤다. 입구에서 출발해 다시 입구로 돌아나오니 어느새 관광객이 북적인다. 주말이면 하루 평균 3천 명의 관광객이 방문한다고 하니, 가족과 함께 나들이를 떠날 예정이라면 가능한 한 주말은 피하는 것이 좋겠다. 만약 주말밖에 시간이 안 된다면 이른 새벽부터 서두르는 것이 좋다. 수목원이 가장 아름다운 시간은 새벽 5시와 6시 사이다. 아무도 없는 천리포해수욕장 풍경을 감상할 수 있는 시간도 딱 이때다. 7시가 넘으면 수목원에 머무는 사람들이 하나둘 산책을 나오기 때문에 고요함이 사라진다.

수목원을 개방하면서 주변에 맛집도 많이 생겨났으니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들러보자. 유명인들도 일부러 다녀간다는 천리포횟집(041-672-9170)은 지역적 특색을 아낌없이 보여주는 곳이다. 갱개미회무침과 갱개미찜 그리고 두루치기는 둘이 먹다 하나 죽어도 모르는 별미다. 별이네수산(041-672-7891), 관해수산(041-672-2118)은 저렴한 가격에 신선한 회를 먹을 수 있는 곳이다. 허가받은 어선만 잡을 수 있는 태안 꽃게를 맛볼 수 있는 서해활어센터(041-675-4800)는 사람들이 줄 서서 먹는 맛집이기도 하다. 방문하기 전 전화로 예약과 가격 흥정을 해두는 것이 좋다.

천리포 수목원
주소
충청남도 태안군 소원면 의항리 875
숙박 천리포 수목원 안에는 직원 숙소와 게스트 하우스를 포함해 총 8채의 가옥이 있다. 천리포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위성류집, 낭새섬이 보이는 한옥 해송집, 사철나무집, 초가집, 배롱나무집, 벚나무집, 측백나무집, 단풍나무집이 그것이다. 숙박료는 가옥에 따라 다른데 평균 15만~20만 원 선이다. 일행이 많다면 천리포 수목원 연수원을 이용할 수도 있다. 숙박 예약 시 숲 해설도 같이 예약하는 것이 좋은데, 약간의 추가 비용이 있다.
예약 041-672-9982, www.chollipo.org

행복한 가족 여행 만들기 10계명
하나 여행을 준비하면서 아이와 함께 지도 공부를 하자 아이와 함께 지도를 펴 들고 원하는 여행 코스를 짜보자. 여행을 결정한 순간부터 동행자, 일정, 경비, 맛집 정보를 찾고 지도를 펼쳐라. 지도 위 길 위에서 나만의 정보가 보일 것이다.

가족 여행의 목적지는 온 가족이 편안한 장소를 선택하자 여행은 무작정 나서야 제맛이라는 생각을 한 적 있다. 보통 이런 생각은 혼자 떠나는 여행일 경우다. 원시림처럼 겹겹이 산속에 뿌리를 둔 계곡 트레킹이나 자동차가 가지 못하는 오지 마을을 찾아갈 때처럼 야릇한 설렘을 느낄 때 말이다. 그러나 동행자가 있거나 가족이 함께 나서는 여행은 편안하고 안전한 게 최고다.

확실한 콘셉트가 있는 숙소로 예약하자 여행의 재미와 즐거움을 보장받으려면 편안한 잠자리를 중심으로 움직이는 것이 좋다. 잠자리가 편해야 여행에 대한 만 족도도 높다. 특히 어린아이와 동행할수록 ‘수영장이 있는 펜션’ ‘갯벌 체험을 즐길 수 있는 숙소’ 등 확실한 콘셉트가 있는 곳을 예약하자.

여행 준비물은 최대한 간편하게 싸라 여행 준비물을 떠올릴 때 여행용 가방이 나 옷, 화장품 등 세세한 준비물을 온종일 챙기는 사람이 많다. 하지만 실제 여벌 옷과 모자, 물, 지도, 내비게이션, 카메라만 준비하면 곧바로 여행을 떠나도 된다. 최대한 가볍게 집을 떠나도록 하자.

다섯 아이가 좋아하는 체험을 선택하자 휴가철에는 길에서 시간을 버리기 쉽다. 잠자리를 중심으로 가까운 거리에 있는 체험거리를 골라보자. 여름에는 조개잡이나 갯벌 체험, 계곡 천렵, 산에서는 나물 캐기 등 즉석에서 온 가족이 함께 할 수 있는 체험이 많다. 아이는 단순하게 볼거리를 보고 이동하는 여행에 쉽게 싫증을 낸다. 하지만 직접 몸으로 즐기는 체험은 아이가 훨씬 좋아한다.

여섯 휴가철 성수기에는 바가지요금을 조심하자 7월 말이나 8월 초는 가장 붐비는 바캉스 시즌이다. 요즘은 사람들이 몰리지 않을 때, 주말에 가족 여행을 계획하는 것이 더 여유 있고, 즐거움을 얻을 수 있는 방법으로 떠오르고 있다. 모처럼 신나는 여행을 떠났다가 교통 정체와 바가지요금에 시달린다면 기분이 나빠지기 쉽다. 그래서 휴가철 성수기는 가능한 한 피하는 것이 좋다. 해외여행도 마찬가지다. 최고 성수기에는 요금도 오르고 옵션 상품이 포함되는 경우가 많다. 여행 상품을 선택할 때 여행사 담당자에게 전화나 이메일로 확인하자. 옵션 상품은 대부분 레포츠나 쇼핑이 포함된 경우가 많다. 아이는 인내심이 적어 다양한 볼거리와 놀 거리가 있어야 한다.

일곱 아이 간식비 챙기는 건 필수다 여행 준비물과 교통 정보까지 완벽하게 짰는데 막상 아이와 함께 여행을 하면 여비가 많이 든다. 아이는 즉흥적으로 마음에 드는 것을 사달라고 조르는 경우가 많아 여행지에서 뜻밖의 지출을 할 때가 많다. 그리고 간식 비용도 많이 든다. 여행 경비의 10분의 1 정도는 여분으로 준비하는 것이 좋다.

여덟 여행지에서 꼭 제철 별미를 맛보자 우선 별미를 제대로 맛보려면 몇 가지 선입견을 버려야 한다. 여행지에서 먹는 음식은 비싸다, 혹은 맛이 비슷하다는 식의 선입견은 과감히 버리자. 그런 다음에 곧바로 별미 사냥을 시작하자. 일단 별미를 찾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다. 인터넷 맛집 사이트를 검색하는 방법, 옆집 ‘순이 엄마’의 입소문 등이 있다. 하지만 실제로 여행하다 보면 막상 ‘음식점 찾아 삼만 리’하는 경우가 발생한다. 반드시 맛집 정보에 관한 책을 구입하든지 그 지역에서 먹고 싶은 음식을 미리 점검하고 이왕이면 음식점 전화번호까지 메모해 맛집 정보를 알아두자. 예약은 달리는 차 안에서 해도 늦지 않다.

아홉 아이에게 추억을 선물하자 가족 여행의 묘미는 여행지에서 체험을 즐기면서 재미있고 추억에 남는 여행을 할 수 있다는 것. 사진이나 동영상을 찍어두는 것이 좋고, 아이의 친구 가족과 함께 떠나는 가족 여행을 계획해보는 것도 좋다.

자연을 느끼고 사랑하는 법을 아이와 공유하자 가족 여행은 단순히 떠나는 것이 아니라 자연에서 가족의 행복을 찾는 여정으로 확대된다. 일상에서 벗어나 가족만이 만들 수 있는 추억과 행복을 찾아내는 일은 어렵지 않다. 바캉스를 즐기더라도 너무 욕심내지 말고 가족이 편안하게 자연과 호흡할 수 있는 여행지를 찾아 떠나면 되는 것이다. 그래서 온 가족이 떠나는 여행은 ‘행복 만들기’의 또 다른 이름이라고 해도 좋다. 올여름 바캉스부터 가족 여행 만들기를 시작해보자. 가정에 화목이 샘물처럼 솟아날 것이다.

글 유철상(여행 작가, <우리나라 가족 여행 바이블 100> 저자)



촬영 협조 천리포 수목원(041-672-9985)

글 정세영 기자 사진 김덕창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11년 7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