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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쌍리의 매실 편지] 꽃 옆에 서면 사람도 봄이 된다
지난달 풀 냄새, 매실 냄새, 된장 냄새 가득한 홍쌍리 여사의 첫 번째 글을 읽고 많이들 감동하셨지요? 이번 글엔 매화꽃 진 자리에서 맴도는 냄새, 가신 임 그리워하는 냄새가 날 겁니다. 앞서 보낸 남편에게 띄우는 두 번째 연서니까요. 아, 그 전에 야생화들이 홍 여사님에게만 들려준 이야기를 먼저 읽으셔야겠네요. 다 읽고 나면 홍쌍리 여사가 청매실 농원에서 꼭 해보기를 권한 야밤의 ‘꽃욕’, 대기를 채운 꽃향기에 마음과 몸을 푹 담가보는 ‘꽃욕’이 하고 싶어지실 겁니다.



내 이뿐 꽃잎 딸들아
봄비 내리는 소리에 뽀시시 얼굴을 내미는 내 딸 꽃 아가들아!
흙이불 덮고 긴긴 겨울잠 잘 자고 세상 밖에 나와보이꺼네 어뜬노?
아가들아, 봄 빗물 좀 마시고, 정신 차려서 세상 구경 좀 할라카먼 봄비에 낯도 좀 뽀독뽀독 씻고, 빨강 파랑 노랑 꽃 이뿐 화장 해라. 봄바람에 잘 놀다가 꽃잎 얼굴에 먼지 앉으면 소낙비에 목욕함서 제발 좀 싸우지 마라. 키 작은 보라색 제비꽃이 자꾸 운다 아이가.
“키 큰 벌개미취꽃 언니, 니만 왜 소낙비에 세수하고, 니 손발 씻은 더러운 물은 키 작은 내보고 씻어라 하노?” 바라보던 노랑 씀바귀꽃이 “야이 가수나들아, 시끄럽다. 자꾸 싸우지 말고 우리 씀바귀꽃맹쿠로 자식 좀 많이 낳아서 큰 동네를 만들어 살아보래이. 다른 꽃 가수나들은 우리 씀바귀 속에서 절대 못 산다. 너들은 빨리 자식을 많이 낳을 생각 안 하고 싸움은 왜 하노? 못난 년들! 목욕할 때마다 싸울 그 시간에 내 같으면 자식 하나 더 만들겠다.”
가만히 듣고 있던 클로버가 “싸우지 말고 조용히 하래이. 시끄럽다고 사람들 안 올라. 가수나들아, 사람들 하는 소리 들어보이까네 ‘제비꽃은 앙증맞게 이쁘고 씀바귀는 노랑 병아리같이 이쁘다’고 함서도 그냥 지나가지만 클로버는 책 속에 곱게 모셔놓고 사랑해주고, 클로버꽃으로 왕관을 만들어 쓰고 행복해한데이. 그 순간 클로버 나는 얼마나 행복한지 너거는 모를 끼다.”
씀바귀는 “클로버 니들은 사람들에게 사랑받지만 늦가을 찬 서리에 아픔을 못 이겨 말라죽지 않나. 그때 씀바귀 우리도 마음이 아팠다. 클로버야, 우리 씀바귀는 흙이 꽁꽁 얼고 눈이 쌓여도 죽지 않고 겨우내 얼어 있다가 초봄에 나물 해 먹으면 사람 건강에 제일 좋은 보약 아이가. 그라고 노랑 씀바귀꽃을 머리에 꽂으면 주름진 할매도 얼마나 이뿐지….”
샘이 난 도라지꽃도 왕관을 만들어 엄마 머리에 씌워놓고, 얼굴에 입맞춤해줌서 “엄마 힘들면 찾아오래이. 엄마 손 잡고 놀아줄게, 시원한 바람결에 춤춰줄게. 엄마가 울면 엄마 딸 도라지는 엉엉 울어불 끼다.”
“아가들아, 너들이 내 딸 되어줘서 고맙고 너들이 있기에 이 엄마 행복하단다. 이뿐 내 딸 꽃잎들아.”

홍쌍리 여사는 지금도 ‘열아홉 살 바람난 가스나’처럼 삽니다. 매실나무 아래 심은 제비꽃, 도라지꽃, 씀바귀꽃, 벌개미취, 개꽃 따위가 시절마다 피어나면 그 ‘야생화 딸’들과 조석으로 눈 맞추고, 자분거리고, 도란댑니다. 꽃잎 딸들이 하는 이야기에 귀 기울였다가 글도 씁니다. “잡초 잡자고 농약 치는 게 싫어서 심었데이. 이런 걸 심으면 농약 치고 제초제 뿌리는 애먼 짓을 할 수 없데이.” 툭 던지듯 말하지만 단지 잡초나 잡자고 돈 들이고 품 들여 20년 전부터 14만 평 매실나무 아래 야생화를 심은 건 아닐 겁니다. 매화 꽃비 내리는 날이면 “꽃 밑에서 일하는 나는 천사, 여긴 천국”이라 읊는 홍 여사님, “평생 지그 어매 얼굴 한번 못 보고 사는 초롱꽃, 할미꽃은 난 싫데이”라고 하는 홍 여사님의 삶이야말로 은유로 가득한, 천생 시입니다.



한 쌍의 학처럼 살다 갈 것을

보소, 영감.
당신이 살아 계셨더라면 이 할멈과 다정히 걸었을 텐데….
당신도 나도 저 학처럼 곱고 아름답게 살아봤을 텐데….
목화 솜털처럼 머리에 흰 꽃 핀 할멈이라도 영감은 저 학보다 할멈이 더 곱게 늙어간다 할 텐데….
보소, 영감요! 나도 여자 아니요? 영감 젊은 시절에 다정한 말 한마디 한 번이라도
내 가슴에 심어주고 가시지, 왜 그냥 가셨소?
보소, 영감요! 저 섬진강 물에 내 눈물 다 씻어버리고, 강바람에 내 한숨 다 날려보내고,
은빛 모래사장에 내 발자국을 남기며, 영감 젊은 시절을 생각해봤다 아이요. 하얀 밀짚모자 쓰고
하얀 모시옷에 낚싯대 들고 고기 잡던 모습을 생각해봤다 말이요.
야속한 사람. 마음은 있어도 가슴에 다 묻어두고 표현 못 하는 영감을 이 할멈도 잘 알지만,
그래도 여자니까 가슴속에 영화맹쿠로 필름이 자꾸 돌아가는 이 순간,
당신 살아 계셨더라면 다 늙은 할멈도 정 있게 한번 살고 싶어요.
보소, 설 쇤 무같이 무덤덤히 살다 가신 영감님아.
다시는 만나볼 수 없기에 당신에게 편지라도 쓰면 마음이 조금 가라앉을까 봐 한 줄 적어봤소.
오늘따라 뒤꼍 댓잎을 흔드는 바람 소리가 밤잠을 설치게 하는구려.
살아생전 조금 더 다복하게 살다 갔으면 좋았을 것을.
무담시 보이지 않는 당신에게 넋두리 한번 해보고 싶어서 드리는 글이요.
아무 걱정 마시고 극락세계에서 편히 계시소.



홍쌍리 여사의 시댁은 논농사에 매실 농사와 밭농사까지 겸한, 사시사철 일꾼 30~40명을 둔 대농이었다지요. 하지만 1970년대 광산업에 투자했다가 기름값 폭등으로 하루아침에 돈을 날린 뒤, 그동안 피땀으로 가꾼 밤나무밭과 매실나무밭 45만 평이 빚쟁이들 손에 넘어갔답니다. 그 후 남편 김달웅 씨는 33년을 화병을 앓으며 숨도 제대로 못 쉴 만큼 힘들어하면서 살았다지요. 똑바로 서 있기도 힘들 정도로 ‘악산’인데다 척박한 땅이라 빚쟁이들이 가져가지 않고 남은 6만 평에 매실나무를 심고, 두 아들을 키우며, 남편 병 수발하며 사는 아내가 김달웅 씨는 얼마나 안쓰러웠을까요. 그래도 홍쌍리 여사는 남편이 병마와 싸우면서도 자식들 출가할 때까지 살아줘서 얼마나 고마운지 모르겠답니다. 결혼식 때 아이들 아버지 자리가 빈자리가 아니게 해줘서 정말 고마웠다는군요.

글 홍쌍리 사진 박찬우 구성 최혜경 기자 그림 소담 주경숙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11년 5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