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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컨테이너 가드닝] 사뿐사뿐 정원으로 내딛는 발걸음, 도시 농부의 하루
세상에 이토록 다양한 정원이 있었던가? 도심에 차린 정원 잔치에 봄보다 이른 여름이 찾아온 것 같다. 시름일랑 모두 잊어버리고, 풋풋한 정원의 향에 흠뻑 취해본다. 한국공예·디자인문화진흥원이 오랜 시간 계획해온 그린 문화 네트워크가 <도시 농부의 하루>란 이름으로 세상에 나왔다.


오경아 씨를 중심으로 모인 가드너들. 왼쪽부터 김봉찬 씨, 임종기 씨, 서수현 씨, 최원자 씨, 권춘희 씨, 오경아 씨.

가든 디자이너 오경아 씨는 지난 두 달간 잠 잘 시간도 없이 전시 하나를 준비했다. 전시 제목은 <도시 농부의 하루>. 한국공예·디자인 문화진흥원이 주최하고, 2011년 KCDF갤러리가 여는 첫 번째 기획 전시다. 사실 도시 농부란 말은 도시 정원사와 비슷하다. 오경아 씨는 참여 작가를 섭외하고, 한국과 영국의 많은 작가를 만나며 전시 전체를 연출하면서 또 많은 것을 배웠다고 얘기한다. 6년간 영국에서 정원에 대해 공부한 그가 오히려 배운점이 많았다는 전시라니 사뭇 기대가 앞섰다.

“우리의 도시 환경 속에서 정원 문화의 정착이 가능할까? 그런데 저는 매우 희망적으로 ‘그렇다’ 믿었고, 전시에서도 그 해답을 찾으려 노력했습니다. ‘이 삭막한 도시 환경 속에서도 정원은 가능하다’고 작은 느낌표 하나 찍은 듯해요. 보시는 분들에게도 작은 정원 아이템 이 내 집이나 아파트에서도 가능하구나, 용기를 가지시는 계기가 되길 바라요. 이번 기획 전시는 만드는 정원, 보는 정원, 읽는 정원, 듣는 정원, 그리는 정원으로 나눴어요. 우리는 정원을 만들 수 있는 기회가 많지 않기에 그 방법은 더 다양해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오경아 씨는 햇볕이 잘 들어오고, 통풍이 가능한 실내라면 어디든 정원을 만들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대표적인 것이 아파트로 베란다를 확장하기보다 실내 정원을 만들어 완충 공간으로 활용하고, 옥상에 작은 텃밭 정원을 만들어보는 등 평소 지나치기 쉬운 공간 어디에든 정원을 만들 수 있다고 조언한다.

그는 전시를 오픈하고 얼마 뒤 다시 영국으로 떠났다. 사진으로 보는 정원, 책으로 읽는 정원, 그림으로 그려보는 정원. 그가 남겨 놓은 정원을 보며 우리에게 전하려는 메시지가 무엇인지 살펴보자.


비닐이나 쌀자루로도 손쉽게 화분을 만들 수 있다.


서랍장 화분. 맨 윗칸엔 셀프 워터링 시스템을 만들어 식물을 기른다.


4명의 가든 디자이너가 제안하는 정원
누구나 손쉽게 연출할 수 있는 테이블 위한 뼘 텃밭에서 옥상 정원까지 집 안팎을 푸르게 물들이는 방법을 소개한다.


1 서수현 씨 베란다가 자라는 테트리스 가든
테트리스는 주어진 퍼즐을 사용해 여러 방향으로 돌려가며 제한된 공간을 채워나가는 게임. 이런 퍼즐의 이미지를 형상화한 ‘테트리스 가든 tetris garden’은 좁은 공간을 효율적으로 활용해야 하는 도심형 베란다 공간에 적합한 디자인이다. 사각형의 크고 작은 컨테이너를 원하는 방향으로 옮겨 자신만의 공간을 구성하고, 형태에 따라 색다른 정원을 만들 수 있다. 또 실내의 자투리 공간에 컨테이너를 활용해 조그만 손바닥 정원을 만들 수도 있다. 비록 작은 정원이지만 도시인의 스트레스를 해소해 줄 오아시스가 된다.

2 임종기 DIY 샐러드 바 정원
작은 공간에서도 수직 공간을 이용한 정원을 만들 수 있다. 임종기 씨의 샐러드 바 정원은 두 개의 기둥 사이에 허브를 길러서 직접 요리에 이용하는 도심형 미니 정원이다. 힘을 지탱하기 위해 구조목을 사용하고, 마감재를 쓰다 버린 공업용 목재 팔레트와 재활용 목재를 이용해 구성했다.

식물을 기르는 정원 식탁.


3 김봉찬 씨 돌과 쇠, 식물을 품다
도시적 소재(쇠, 시멘트 등)를 갖고 자연을 느끼게 할 방법을 모색하던 김봉찬 씨는 물이 흐르는 형상을 표현해보기로 했다. 물이 떨어지는 계곡의 라인을 형상화해 쇠로 만든 구조물속에 돌을 넣어, 마치 물이 흐르듯 돌을 쌓고 흘려 정원을 꾸몄다.
꽃이나 나무를 여백 없이 가득 채운 답답한 정원 대신 여백의 미를 살려 식물을 품은 정원을 만든 것. 시멘트의 석회 성분은 알칼리성이 강해 식물이 자라는 데 독이 되므로 산성이 강한 피트모스를 시멘트에 섞어 중화했다. 이렇게 만든 시멘트 함에 돌과 식물을 넣어 더욱 멋진 정원을 완성했다.

4 최원자 씨 옥상이 자란다
KCDF갤러리 옥상 가득 텃밭을 일군 최원자 씨. 옥상 정원은 1년에 3번 정도 바꿔주는데, 현재 쌈이나 샐러드로 먹을 수 있는 엽채류, 허브 등을 심은 키친 가든으로 꾸몄다. ‘뜰과 숲’의 권춘희 소장이 도면을 그리고, 두 사람이 함께 야생화를 직접 골랐다고. 최원자 씨는 대량 생산으로 인해 화학비료를 많이 사용해 죽은 땅엔 건강한 식물을 기를 수 없다고 말한다. 그는 ‘컴포스트 빈’이라 부르는 비료집에 낙엽, 쓰레기를 짚이나 쌀겨와 섞어 1년간 숙성시킨 후 만든 천연 비료를 사용한다. 키친 가든을 디자인할 때 중요한 것은 컬러의 조화. 왼쪽은 오렌지(금잔화, 메리골드)와 하늘색(히아신스, 무스카리, 물망초), 오른쪽은 노란색(수선화, 팬지)과 보라색(양배추, 보라색 팬지), 뒤쪽엔 보라색(타임, 라벤더)과 은색(은숙, 램스이어)을 차례로 심었다.

(오른쪽) 모종을 보관하는 콜드 프레임.

<도시 농부의 하루> 전에서 발견한
이색 정원용품

1 무당벌레 모양의 귀여운 물뿌리개. 정원에 즐거움을 주는 이 제품은 가든 디자이너 오경아 씨의 소장품이다.
2 직접 손으로 짠 PVC와 플라스틱 소재의 바구니는 김혜영 씨의 작품. 보라색 7만 원, 녹색 8만 원.
3 물뿌리개의 디자인도 스타일시해졌다. 잔잔한 패턴이 덮인 스틸 물뿌리개는 오경아 씨 소장품.
4 방수가 되는 레인코트 화분 커버와 무릎 덮개. 레드와 옐로 화분 커버 1만 5천 원, 무릎 덮개 4만 5천 원.
5 무거운 물건을 옮길 때 사용하는 목재인 팔레트 판으로 만든 조경. 나무판 사이 식물이 자라나는 재활용 아이디어.
6 못 쓰는 액자나 거울 프레임을 재활용해 넝쿨식물 지지대를 제작한 ‘자라나는 그림’. 장효성, 황지현 씨 작품.
7 임종기 씨의 정원 식탁에 사용한 신문지말이용 나무 기둥. 신문지를 말아서 화분을 만드는 데 도움이 되는 도구다.
8 투박한 장갑 대신 플라워 패턴 장갑으로 가드닝도 상큼하게 해보면 어떨까. 장갑은 오경아 씨 소장품.
9 선반 아래 걸린 앞치마와 토시는 김기은 씨의 작품. 가방을 만들고 남은 가죽을 활용해 제작한 것으로 앞치마 4만 원, 토시 4만 원. 갈고리는 지푸라기를 모을 때 사용하는 것으로, 마지막에 흙을 고르는 작업을 할 때 많이 이용한다.
10 펼치면 러그가 되고, 모으면 가방이 되며, 접으면 바구니가 되는 다용도 펠트 패브릭은 김혜영 씨 작품.
11 초등학생들이 삽에 자신들이 바라는 정원 모습을 그려 넣었다.
12 도자와 오브제가 공존하는 화분을 제안하는 나유석 씨의 토끼 화분.
13 청바지 뒷주머니에 식물을 담아 화분을 만든 재미난 아이디어.


<도시 농부의 하루> 전이 열리고 있는 KCDF갤러리.


자연과 호흡하기 위한 그린 문화 네트워크 <도시 농부의 하루>전을 기획한 한국공예·디자인문화진흥원의 최정심 원장은 누구보다 앞서 업사이클링과 도심 정원을 실천해온 사람이다. 그가 원장으로 부임한 이후 가장 먼저 시작한 것이 인사동 골목길을 되살리는 것.
윌리엄 모리스가 바우하우스 운동으로 손맛을 재현했듯이, 궁과 시장으로 둘러싸인 거점 인사동을 살리자는 프로젝트였다. 취임식을 대신해 골목길 반상회를 열었고, 11번의 반상회를 거쳐 주민 협의체를 구성해 ‘인사동 르네상스’에 대한 의견을 모았다. ‘크래프트&그린’ 이란 프로젝트를 갖고 종로 구청장을 찾아가 그린 아카데미를 설명했고, 설득 끝에 시행 지원도 받아냈다. 그 후 최정심 원장은 식물을 실은 카트를 광화문 광장이나 공터에 두고 움직이는 정원으로 업사이클링 아이디어를 제안하기도 했다. 이 외에도 공용 주차장 유닛 Unit 하나에 작은 쌈지 공원을 만들고, 인사동 11길에 있는 갤러리들과 협업해 녹색 파사드를 조성했다. 건물에 옥상 텃밭을 가꾸고, 바른 먹을거리를 판매하는 장터인 파머스 마켓을 퍼뜨리는 등 그린 문화 네트워크를 전파하고 있다.

<도시 농부의 하루>전은 그린 문화 네트워크를 알리자는 취지에서 시작되었다. 단순히 작품을 전시한다는 의미에서 벗어나 물이 쏟아지듯 그린 문화의 관심이 펌핑 효과를 내길 바라는 마음에서 비롯됐다. 자연보호라는 말은 쉽지만, 그것을 어떤 방식으로 풀어낼지 아이디어를 내는 것은 쉽지 않다. 그저 자연을 보호하고, 아끼기만 해서 얼마나 오랜 시간 효과를 볼 수 있을까? 그런 의미에서 최정심 원장은 실천 가능한, 도시와 함께 나아가는 방향을 제시한 게 아닐까. 아직 정답이라 단언할 수 없지만, 도심에 자연의 주체로 끌어들인 것은 새로운 시도라고 생각 한다. 이 글을 읽는 독자 역시 주차장에 공원을 만들고, 옥상에 텃밭을 만들면 그것이 그린 문화 네트워크에 동참하는 것 아니겠는가.

(왼쪽) 카트 정원과 함께한 한국공예・디자인문화진흥원 최정심 원장.


학교 주변에 정원을 세우는 ‘블록팟’ 프로젝트는 최진식 씨가 디자인했다. 이 프로젝트는 2009년부터 시작했다.

도시 농부가 되고 싶으신가요?
도심에서 자연을 보다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을 몸소 실천하고 싶지만, 그 방법을 모르겠다면 KCDF 도시텃밭 디자 인 아카데미의 문을 두드려보자.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공예·디자인문화진흥원에서 운영하는 커리큘럼이다. 교육과정은 꽃을 가꾸고 나무를 관리할 수 있는 이론 강의, 현장 학습, 토론 등으로 구성되며 도시 텃밭을 조성하는 것에 필요한 실질적인 지식을 습득할 수 있다. 문의 02-398-7942, www.kcdf.kr

 

 

촬영 협조 한국 공예 디자인문화진흥원(02-398-7900)

진행 배효정 기자 사진 이우경 기자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11년 5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