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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이 되는 밥상]4월, 노영희의 철든 부엌 장 가르기
장을 담그고 한 달이 훌쩍 지났습니다. 볕 좋은 날을 잡아 장항아리에서 메주와 장물을 따로 갈랐습니다. 메주가 된장이 되고, 장물이 간장이 되겠지요. 장 담그는 일도 그러했지만, 가르는 일은 더 간단합니다. 하지만 시행착오 없이 얻어지는 손맛이란 없는 법이지요. 오래 두고 먹는 만큼 정성으로 장을 돌보아야 합니다. 정성을 쏟은 만큼 더 건강해지는 밥상을 경험해보세요.

<행복> 독자들이 음력 정월 즈음에 따라 담글 수 있도록 한 달 먼저 장을 담근 게 지난 1월 10일의 일이다. 좋은 메줏덩이를 사다가 항아리에 넣고 시판생수에 3년 정도 묵혀 간수를 뺀 고슬고슬하고 달큼한 소금을 넣어 소금물을 만들어 항아리에 부은 후 마른 고추와 대추, 불에 달군 숯을 넣고 웃소금을 약간 뿌려 장을 담갔다. 그러고는 장독 뚜껑만 덮어두었다가 여닫고 했으나, 닷새 정도 뒤부터는 면포를 덮고 고무줄로 동여 맨 후 뚜껑을 열고 닫았다. 대개 유리 뚜껑을 덮는데 어머니가 하던 방식대로 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황사가 오고 비 한번 맞히면 생각이 달라질 거라는 충고가 많았으나, 정성 없이 어찌 좋은 결과물을 얻을 수 있으랴. 햇살 좋은 아침이면 부지런히 장독 뚜껑을 열어 햇빛을 쐬어주고 해가 지면 다시 뚜껑을 닫아주었다. 번거롭게 여길 수도 있지만 내게도 첫 장이라 기대감에 고단하지는 않았다. 궁금한 마음에 가끔 열어보면 가무스름하게 우러나는 장 빛깔이 신기하기만 했다. 게다가 남산의 레스토랑 옥상에 항아리를 두었더니 오브제 역할도 해 일석이조였다.

장은 일반적으로 담근 지 한 달이 지나면 장항아리에서 메주(건더기)와 장물(메주가 우러난 소금물)을 따로 가른다. 메주는 된장이 되고, 장물은 조선간장이 된다. 된장 맛을 좋게 할 건지 간장 맛을 좋게 할 건지에 따라 가르는 날이 달라진다. 소금물에 메주를 담근 채 오래 두면 둘수록 맛있는 맛이 간장으로 빠지는 것은 당연한 이치다. 담근 지 30~40일이 지나 가르면 된장 맛이 좋고, 40일을 넘겨 가르면 간장 맛이 더 좋다. 어떤 이는 25일이 지나 가른다고도 하고, 80일이지나 장을 가른다는 자료도 있으니 담근 지 얼마 만에 장을 가를지는 자기 형편에 따라 정한다.

지난 3월 12일 오후, 담근 지 60일 만에 간장과 된장으로 장을 갈랐다. 기간이 오래돼서 그런지 메줏덩이를 건지는 데 와스스 부서졌다. 열심히 메줏덩이를 건지고 장물은 체에 면포를 깔고 밭아 다시 깨끗하게 소독한 장독에 부었더니 장물이 반 독도 안 되게 안으로 쑥 들어갔다. 간장 양이 15L에 된장이 17.5kg 정도로, 이것은 콩 한 말로 메주 세 덩이를 만든 것을 항아리에 다섯 덩이 넣은 것이니 콩 두 말이 조금 안 된다. 나머지 메주 한 덩이는 맛의 차이를 보고 싶어 따로 작은 항아리에 물 7L, 소금 2kg이 약간 안 되게 따로 담았는데 된장이 4.5kg 정도이고, 간장은 4L였다. 그러니까 콩 두 말의 메주 여섯 덩이 라면 된장은 총 22kg, 간장은 19L 정도 얻는 셈이다. 간장을 찍어 먹어보니 메주 냄새가 약간 나긴 했지만 제법 맛이 났다. 확실히 메주를 많이 담근 쪽이 감칠맛이 좋지만, 식구가 단출하다면 맛이 좀 덜하더 라도 한 덩이씩 담그는 것도 좋을 듯하다.

거른 메주를 손으로 대충 으깨서 콩알이 반 정도 남게 했다. 된장찌개 끓일 때는 콩알이 입안에서 뒹구는 게 제맛 아닌가. 된장은 지금 먹는 것보다 10% 정도 질다 싶으면 적당한데, 보통은 장을 가르며 나온 장물을 여기에 붓는다. 그런 다음 소독한 항아리에 8부 정도 담고 꼭꼭 눌러 편편하게 해줘야 햇볕을 고루 잘 받을 수 있다. 여기에 콩이나 보리를 삶아 넣기도 하는데 집안에 따라 방법이 제각각이다. 여러 자료와 주변의 요리 전문가에게 여쭤보니 찹쌀 풀을 쑤어 메줏 가루를 넣어 섞기도 하고 고추씨를 고루 뿌리는가 하면 웃소금을 치기도 하는데, 장을 가르는 봄보다는 가을쯤에 섞는 게 상할 염려가 없단다. 기억을 더듬어보면 어머니는 강낭콩 잎이 무성해지면 뜯어다 된장 위에 덮어두며 안 좋은 게 생기는 것을 막는다 하셨다. 일단은 그냥 두고, 여름이 되면 그리 해보기로 했다.

간장은 체에 면포를 깔고 맑은 장물만 밭는다. 손으로 휘휘 저으면 더 잘 내려간다. 이렇게 내린 장물은 달이는 방법과 달이지 않는 방법이 있다. 어머니는 늘 밖에 솥을 안치고 장물을 달이셔서 장 가르는 날이면 집 안에 짭조름하면서도 구수한 냄새가 진동했다. 하지만 달이지 않는 게 영양 손실이 적을 것 같아 우선 달이지 않기로 했다. 장을 달이는 이유는 보관하기 수월하기도 하거니와 잡균이나 곰팡이가 끼지 않게 하기 위해서다. 흰곰팡이는 건져내면 되지만 검은곰팡이는 장맛을 상하게 하므로 반드시 장물을 달여야 한다. 나는 처음 담근 장인데도 곰팡이 하나 없이 황금빛이 먹음직스러워 달일 필요가 없었지만, 만약 장물을 달여야 한다면 팔팔 끓이지 말고 은근한 불에 서너 시간가량 달이는 게 좋다. 간장을 달일 때도 역시 ‘대추와 통북어 달인 물을 섞어서 달이면 감칠맛이 난다’ ‘육수를 넣고 달이면 맛있다’ 등 집집마다 비법이 넘쳐나지만 좋은 메주를 썼으니 간장만 달여도 좋을 듯하다. 그보다 나처럼 장을 달이지 않았다면 차후 관리를 잘 해야 한다는 게 주변 어른들의 말씀이다. 해가 좋은 날에는 장독 뚜껑을 열어 해를 보이고, 빗물이 들어가지 않으면서 통풍이 잘되게 해주어야 한다.

장 담그는 일도, 가르는 일도 어찌 보면 간단하다. 하지만 실제로 해보면 발효 음식이 늘 그렇듯 생각처럼 쉽지만은 않다.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나름대로 손맛을 길러야 한다. 처음 담가보는 것이니 기본 맛을 아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내 식대로 해보고 실패하면 다시하면 될 일이다. 뭔지 모르지만 뿌듯한 이 느낌은 직접 담가보는 이만이 누릴 수 있는 행복이다. 이웃 아니면 자매끼리 같이 담가서 나눠 먹으면 더 좋은 장맛을 볼 수 있을 것 같다. 이러다 내가 담근 장이 너무 맛있어 죄다 퍼 나르는 건 아닐지 벌써부터 웃음이 난다.


1 지난 1월 10일 음력 정월보다 한 달 미리 담근 장.
2 메주 겉면이 곰팡이 없이 황금빛이다.
3 장항아리에서 건져낸 메주를 손으로 대충 으깨서 콩알이 반 정도 남게 한다.
4 된장은 지금 먹는 것보다 10% 정도 질다 싶으면 적당한데, 보통은 장을 가르며 나온 장물을 부어 섞는다.
5 소독한 항아리에 8부 정도로 담고 꼭꼭 눌러 편편하게 해준다. 그래야 햇볕을 고루 잘 받을 수 있다.
6 간장은 체에 면포를 깔고 맑은 장물만 밭는다. 손으로 휘휘 저으면 더 잘 내려간다.
7 맑은 장물을 소독한 항아리에 붓는다.

진행 및 구술 정리 신민주 기자 사진 김용일 기자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11년 4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