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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따라 걷는 길] 도산구곡 예던 길
길을 따라 걷기 참 좋은 4월이다. 제주 올레길, 지리산 둘레길만큼이나 아름다운 길이 경북 안동에 있다. 청량산 자락부터 낙동강이 굽이쳐 흘러 절경을 만들어내는 물굽이 아홉 군데를 이르는 도산구곡 陶山九曲의 ‘예던 길’이 바로 그곳. 단순히 흙을 밟으며 걷는 길이 아닌 도산구곡에 산 퇴계 退溪 이황 李滉을 비롯한 선현의 ‘삶의 길’을 뒤따라 걸어보는 뜻깊은 여정이 될 것이다. 신간 <자연을 벗 삼아 군자의 길을 걷다, 도산구곡 예던 길>은 이황의 15대손인 이동수 씨와 사진작가 이동춘 씨가 함께 만든 ‘예던 길’의 친절한 안내서다. 책 속에 진짜 ‘길’이 있고, 그 길을 따라 걷다 보면 ‘인생의 길’이 보인다.

선현들이 걷던 삶의 길
우리의 삶은 예전보다 물질적으로 풍요로워졌지만 정신적 풍요는 예전만 못하다. 바쁜 일상에 쫓기며 아등바등 사느라 흙을 밟으며 여유롭게 걸을 시간도, 기회도 많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도 요즘은 우리나라 곳곳의 아름다운 길이 알려지면서 각박한 현실을 떠나 자연 속에서 스스로를 돌아볼 시간을 갖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이 늘고 있다. 길을 걸으며 ‘인생의 길’에 대해 생각해볼 시간이 분명 필요할 터. 그러자면 옛날 옛적 누군가가 삶에 대해 고민하며 걷던 흔적이 남아 있는 역사적인 길을 따라 걸어보는 것이 조금 더 의미 있지 않을까.

안동 도산구곡에 살던 선현들이 걸었다는 ‘예던 길’이 남다르게 다가오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낙동강 상류의 수려한 자연을 배경으로 물굽이마다 아름다운 마을이 자리한 도산구곡은 조선시대에 이름난 학자를 많이 배출한 지역으로, 특히 퇴계 이황이 태어난 도산면 온혜 溫鞋마을은 공자와 맹자가 태어난 곳과 같다는 뜻으로 ‘추로지향 鄒魯之鄕’이라 일컫기도 한다. 길 곳곳에 문화유산이 남아 있고, 선현들의 인생에 대한 고민과 추억이 깃든 작은 누각, 나무 한 그루까지 속 깊은 길동무가 되어준다. 이 의미 있는 길을 세상에 소개한 이는 안동시 도산면 원촌마을에서 나고 자란 이동수 씨다. 그는 선현의 자취가 남아 있는 문화유산과 함께 도산구곡의 아름다움을 더 많은 이에게 전하고 싶어 책을 펴냈다. 역사의 흔적을 따라 걷다 보면 옛사람의 이야기 소리가 들린다고 말하는 이동수 씨의 이야기에 귀가 솔깃해진다.

“군자가 아닌 사람이 없다 해서 붙여진 군자리 君子里, 어진 사람들이 사는 의촌 義村마을 등 도산구곡에는 선비들이 모여 살던 마을이 대부분이에요. 그곳의 고택들을 돌아보면 절로 마음이 정갈해지지요.” 퇴계를 비롯해 걸출한 인물들이 태어난 노송정 종택의 노송정 안쪽에는 ‘옥루무괴 屋漏無愧’라고 쓰인 편액이 하나 걸려 있다. <시경 詩經>에 나오는 구절 중 ‘상재이실 相在爾室 상불괴우 尙不愧于屋漏’에서 따온 것으로 ‘다른 사람이 보지 않는 곳에서도 늘 행동을 삼가여 하늘에 부끄러움이 없도록 하라’는 뜻이다. 그는 이 편액을 볼 때마다 마음을 다잡게 된다고.

퇴계를 비롯한 옛 선현들이 지은 수많은 시의 배경이 된 도산구곡을 걸으며 시구절을 읊어보는 것도 또 다른 즐거움이다. 퇴계와 농암은 월란길에 있는 월란사에 올라 하계와 원촌마을을 내려다보며 주로 시를 지었다. 그곳에 오르면 절로 시상이 떠오를 정도로 경치가 아름답다는 그 말이 진짜인지 궁금해서라도 예던 길을 가지 않을 수 없을 것 같다. 퇴계가 공부하기 위해 청량사로 향하던 청량산 등산로 또한 장관이라고 귀띔하는 그는 도산구곡에는 150여 개의 문화유적이 있고, 신라의 마의태자 전설과 고려 태조 왕건과 공민왕의 흔적도 남아있다며 도산구곡 자랑을 늘어놓는다.

10여 년간 <행복이 가득한 집>의 사진기자로 일하면서 ‘한국적인 것’에 흠뻑 빠져 지낸 이동춘 씨도 이번 책 작업에 함께했다. “안동 고택 촬영 중 절밥을 먹으러 따라간 용수사에서 때마침 도산구곡문화 연대 발대식을 하고 있었고, 그것이 인연이 되어 도산구곡의 풍경을 사진에 담기 시작했어요. 낙동강 굽이마다 드리워진 아름다운 풍경 만큼이나 그 속에 담긴 옛 문화와 사연이 가슴에 와 닿았지요.” 그가 꼽은 최고의 길은 농암 종택이 자리한 가송리 마을길, 길고 낮은 산자락과 들꽃이 만발한 풍경이 압권이란다.
산자락이 낮아 걷기 편안하고 마을 사람 모두가 친절한 길 안내자가 되어주어 누구나 쉽게 걸을 수 있는 예던 길. 선현들이 사색을 하며 걷던 이 길을 따라 걷다보면 인생의 고민과 걱정에 대한 해답을 얻을지도 모른다. 생각만으로도 벅차고 설레는 여정이 아닌가.

책 따라 타박타박
<자연을 벗 삼아 걷다, 도산구곡 예던 길>

도산구곡의 문화유산을 관련 인물의 일화와 업적으로 풀어낸 역사서 같은 길 안내서. ‘예던 길’을 걷기 전에 읽어두면 한 걸음 한 걸음이 더욱 소중해진다. 도산구곡 구간마다 찾아가는 길, 돌아오는 길, 잠잘 곳과 먹을 곳, 지도까지 자세히 나와 있어 초행이라도 떠나는 길이 든든하다. 안동 시내버스 시간은 물론 어디서 갈아타고, 얼마나 걸리는지까지 꼼꼼하게 수록했으며, 고택 이용에 대한 정보도 빼놓지 않았다. 그뿐만 아니라 안동댐 건설 이후 물에 잠긴 마을의 문화유적을 보존하기 위해 노력해온 후손들의 이야기도 들을 수 있다.

1 구간 운암길 운암곡에서 수많은 선비를 만나다
도산구곡 중 첫 번째 물굽이인 운암곡을 둘러보는 길이다. ‘마을에 군자 아닌 사람이 없다’하여 ‘군자리’라는 이름이 붙은 외내마을부터 선비에게 어짊과 의로움을 가르치던 예안향교까지, 운암길을 걷다 보면 절로 선비가 된다.
2 구간 월천・농암길 그리워 만나려면 물가로 다시 오리
도산구곡 두 번째 물굽이부터 네 번째 물굽이까지 강물을 거슬러 올라가는 길이다. 물가에 자리 잡은 한적한 다래마을을 시작으로 옛 강마을의 흔적을 만날 수 있고, 선비들의 시조 배경이 된 낙동강 절경을 만끽할 수 있다.
3 구간 탁영길 모진 절개, 맑은 향기 너무나도 잘 알기에
탁영길은 퇴계의 숨결이 살아 있는 길이다. 도산서원부터 퇴계가 생을 마감하고 영면한 묘소를 지나, 퇴계의 후손들이 청빈한 선비의 자세를 지키며 살아온 원촌마을까지 역사의 장면들이 발길을 붙잡는다.
4 구간 백운길 세상사 다 잊고 그림 속으로 들어가다
도산구곡의 풍광이야 모두 아름답지만 그중에서도 제7곡과 8곡 사이가 으뜸이다. 퇴계가 청량산을 오갈 때 걷던 이 길에는 백운지, 미천장담, 경암, 한속담, 학소대 등의 절경이 내내 길동무가 되어준다.
5 구간 청량산길 맑고 깊은 산에는 이야기도 깊어라
산길이기는 하지만 낮고 긴 능선을 따라 천천히 오를 수 있는 등산로. 청량사를 시작으로 퇴계가 머물며 공부하던 청량정사를 지나면 신라의 문장가 최치원, 명필 김생의 흔적도 만날 수 있다.
6 구간 월란길 선생을 비춘 저 달, 나에게도 비추어주오
단사부터 부포까지 안동호를 바라보며 강마을을 걷는다. 마을 일부가 물속에 잠겨 오랜 세월 동안 함께한 문화유적을 잃거나 옮겨야 하는 아픔을 경험한 곳이다. 퇴계의 제자인 김사원의 유서 由緖가 깃든 월란정사 月瀾精舍, 한석봉이 휘호한 편액이 걸려 있는 부라원루 浮羅院樓 등이 보존되어 있다.
7 구간 영지산길 진정한 은자에게 영지산을 바치다
산림과학박물관에서 영지산을 넘어 용두산 자락에 깃든 용수사까지 갔다가 다시 국망봉을 넘어 온계리로 내려오는 길. 강을 끼고 걷는 길은 아니지만 대신 청정한 산의 정기를 한껏 받을 수 있다.
8 구간 퇴계길 퇴계의 삶, 그림처럼 펼쳐지다
퇴계의 삶을 좇는 길이다. 선생이 태어난 노송정 종택을 시작으로 어린 시절 즐거운 시간을 보낸 시냇가, 은퇴 후 고향으로 돌아와 후학을 가르치기 시작한 계상서당, 선생의 사당을 모신 퇴계 종택까지 두루 볼 수 있다.
9 구간 명상길 자연을 벗 삼아 군자의 길을 걷다
태백산맥 줄기의 청량산길을 따라 걸으며 사색을 즐길 수 있는 명상길. 청량산의 탁필봉을 오르며 정신 수양을 하던 옛 선비의 모습이 아른거리는 이 길을 걷고 나면 몸은 가뿐해지고 마음은 풍요로워진다.
글 기원재 기자 사진 이동춘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11년 4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