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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 극장] 제주 월평마을 6인조 농부 밴드 '울림 테우리'
바닷가에서 나고 자란 사람은 눈이 맑고 욕심이 없다. 헛된 기대와 희망으로 인생을 재단하지도 않는다. 매일 뜨고 지는 해처럼 하루하루를 찬란하게 살아갈 뿐이다. 겨울엔 감귤 농사를 짓고, 봄엔 백합을 키우며 자연의 순리대로 산 탓일까. 제주 월평마을 농부 밴드의 노랫소리엔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울림 같은 것이 있다.


꿈은 말하지 않는 거라고, 그저 가슴속에 묻어 두고 오래오래 지켜보는 것이라고 가르쳐준 제주 월평마을 농부 밴드 ‘울림 테우리’.

넓은 들이 반달처럼 봉긋하게 솟아올라 있다 해서 월평 月坪이라 부르는 마을이 있다. 제주도 내에서 면적이 가장 좁은 지역으로 알려진 이 마을엔 500명 남짓한 주민이 옹기종기 모여 산다. 기후가 유난히 따뜻해서 마을 주민 대부분이 과수 농업과 화훼 농업에 종사하며, 제주의 전통 생활 문화가 잘 보존되어 있어 관광객의 발길도 끊이질 않는다. 그뿐만 아니라 이 마을은 품앗이 문화나 청년회, 부녀회 활동이 활발해 마을 사람들 간의 우애가 돈독하기로 유명하다. 손바닥만 한 시골 동네가 다 그렇듯 월평마을 사람들도 옆집에 숟가락이 몇 개인지 젓가락이 몇 개인지를 훤히 꿰뚫고 사는 것이다.

요즘 월평마을 주민들 사이에서 가장 따끈따끈한 화젯거리는 6인조 농부 밴드 ‘울림 테우리’다. 제주 전통문화 가운데 하나인 ‘테우리’는 소와 말을 키우는 목동이 부르는 노래라는 뜻의 제주 방언으로, 울림 테우리란 ‘농부의 노래가 세상에 널리 울려 퍼지다’라는 의미를 품고 있다. 이 마을 청년회 회원 몇몇이 재작년에 결성한 울림 테우리는 마을 사람들의 일상에 활기를 불어넣고, 시골 사람도 문화를 누리며 산다는 걸 몸소 보여준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마을 어른들은 울림 테우리를 두고 “장가 못 간 노총각 몇 놈이 딴따라 짓을 하고 다닌다”라며 우스갯소리를 하지만, 막상 그들의 무대에 가장 열광하는 사람도 어른들이다. 마을 축제와 행사 등 몇 차례의 공연으로 제주도에서는 명물로 꼽히는 울림 테우리는 최근 일간지 문화 면에서 특집 기사로 다룰만큼 유명세를 치루고 있다. 그 이유는 그들이 전업 뮤지션이 아니라 생활형 아마추어 밴드이기 때문일 것이다.

낮에는 밭에 나가 농사를 짓고 밤에는 비닐하우스에 모여 음악을 연주하는 사람들, 지치고 피곤한 일상 속에서도 노래하는 즐거움을 버리지 않는 순수한 열정을 지닌 사람들. 사실 울림 테우리 멤버들은 밴드를 ‘결성’하기 전까지 악기는커녕 음악에조차 별 관심이 없었다. 그런데 어떻게 밴드가 됐냐고 물으신다면 ‘그 시작은 미약했으나 끝은 창대했다’고 답하겠다. 2009년 6월, 문화부 산하 단체인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에서는 생활 문화 공동체 사업의 일환으로 전국 각 지역의 주민을 대상으로 예술 활동 지원 사업을 펼쳤다. 그 시범으로 전국 16개 지역을 예술인 마을로 선정해 마을 주민들의 취미 활동을 지원한 것이다. 이에 운 좋게도 제주 월평마을이 그 16개 지역에 포함됐다.


1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철없이 방황하던 시절부터 두 사람은 쌍둥이처럼 붙어 다녔다. 베이스의 김동철 씨와 전자 기타의 강영철 씨.
2 뛰고 또 뛰고, 한 마리 새처럼 감귤밭을 날아다니던 이한수 씨.


소식을 듣고 가장 먼저 ‘손을 든’ 건 마을 청년회의 다섯 남자였다. 출중한 외모와 경제력 덕분에(?) 일찌감치 유부남 대열에 합류한 김동철 씨, 딸린 식구는 없지만 700평 백합밭을 보듬고 사는 ‘꽃중년’ 강영철 씨, 감귤 농사를 지으며 부업으로 택시 운전까지 하는 실속파 강남준 씨, 토끼 같은 자식 셋에 무서운 마누라까지 주렁주렁 딸린 이한수 씨, 조그만 아파트 한 채와 버젓한 직장이 있는데도 아직 싱글이라는게 미스터리인 강경필 씨. 젊은 시절 한 번쯤 기타리스트나 드러머를 꿈꿨던 다섯 남자는 우연처럼 찾아온 기회를 절대 놓칠 수 없었다. 그렇게 음악에 대한 꿈을 현실에서 맞이한 그들은 ‘울림 테우리’라는 숭고한 이름을 짓고, 일주일에 한 번씩 백합밭에서, 감귤 창고에서 그리고 바닷가에서 가슴속에 품고 살던 열망을 노래한다.

43세 동갑내기 친구 동철이와 영철이
“하나, 둘, 셋, 넷! 별빛이 흐르는 다리를 건너 바람 부는 갈대숲을 지나 언제나 내게 언제나 내게 기다리던 너의 아파트….” 백합이 만개한 비닐하우스에 국민 애창곡 ‘아파트’가 울려 퍼진다. 박자도 안 맞고 음정도 불안하지만 노래하는 사람들의 얼굴에는 생기가 넘친다. 훤칠한 키에 주먹만 한 얼굴, 까무잡잡한 피부에 허스키한 보이스까지 형제라고 해도 믿을 만큼 닮은 점이 많은 베이스의 김동철 씨와 기타의 강영철 씨는 43세 동갑내기 친구다. 월평마을에서 나고 자란 고향 친구로 이름도 사이좋게 동철이와 영철이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방황하던 시절, 안산에 있는 비닐 제조 공장에서 일용직 노동자로 일하기도 했던 두 사람은 힘든 시기를 함께 겪어냈기에 더욱 애틋한 죽마고우다. 스물아홉이 되던 해, 동철 씨가 영철 씨를 ‘배신’하고 유부남 대열에 합류하면서 전처럼 자주 술자리를 갖진 못하지만 두 사람 사이엔 말하지 않아도 통하는 끈끈한 정이 있다.

(왼쪽) 울림 테우리의 연습 장소는 주로 강영철 씨의 백합밭. 그 음악을 듣고 무럭무럭 자란 백합 덕분에 영철 씨는 ‘마을 지주’로 불린다.

음악에는 문외한인 동철 씨를 울림 테우리 멤버로 끌어들인 것도 영철 씨다. 밴드를 결성할 당시 영철 씨는 “동철아, 너도 들어와라” 하며 툭 던졌고, 동철 씨는 “제일 쉬운 악기가 뭐냐?”라는 말로 답을 대신했다. 영철 씨의 권유로 활동을 시작했지만, 동철 씨는 특유의 넉살과 넓은 인맥으로 팀의 매니저 역할과 언론 홍보를 도맡고 있다. 하지만 무대에서만큼은 나서지 않고 받쳐주는 역할을 한다. “베이스는 다른 악기를 받쳐주는 역할을 하잖아요. 그게 저한테 잘 맞는 거 같아요. 친구들이 돋보일 수 있도록 받쳐주는 거요.” 동철 씨와 달리 평소 음악을 좋아하고 기타 연주 실력도 수준급인 영철 씨는 평소엔 별로 말이 없지만, 무대에만 오르면 카리스마가 넘친다. 영철 씨는 울림 테우리 멤버들과 꼭 한번 연주해보고 싶은 음악이 뭐냐는 질문에 망설임 없이 ‘스모키’라고 답했다. 옆에 있던 동철씨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묻는다. “그게 사람 이름이냐?”


3 임신 9개월인데도 힘든 기색 없이 촬영해 임해준 홍일점 오은경 씨. 울림 테우리 멤버 중 연주 실력이 ‘최상급’이다. 은경 씨의 애제자 강남준 씨.
4 폼 하나는 끝내주는 드럼의 강경필 씨.


드럼과 ‘수다’를 맡고 있는 강경필 씨
동철 씨와 영철 씨에 비해 상당히(?) 동안으로 보이는 강경필 씨 역시 43세다. 조그만 아파트도 한 채 있고, 버젓한 직장에도 다니며, 성격이 곰살맞은 완벽한 남자지만 아직 여자 친구가 없다. 그의 올해 목표는 울림 테우리 공연을 보고 그에게 홀딱 반하는 여자를 만나는 것. 밴드에서 가장 멋있는 포지션인 드럼을 담당하고 있으니 그의 바람이 실현 불가능해 보이지는 않는다. 하지만 음악 취향은 조금 바꿔야 할 듯하다. 그가 평소에 즐겨 부르는 노래는 뽕짝, 18번은 송창식의 ‘왜 불러’다.

하지만 강경필 씨는 입담이 좋아 무대 위에서 애드리브가 강하다. 작년 10월 31일 울림 테우리가 ‘월평마을 페스티벌’에서 첫 공연을 선보였을 때 준비한 노래는 딱 세 곡이었다. 난생처음 하는 공연이라 멤버들 모두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지만, 경필 씨는 무대에 오르자마자 마이크를 잡고 “만약 앙코르를 외치시면 준비한 노래가 세 곡밖에 없기때문에 부른 노래를 또 불러야 합니다. 앙코르는 자제해주세요”라고 말해 폭소를 자아냈다. 그의 이러한 당부에도 마을 어른들은 덩실 덩실 춤을 추며 앙코르를 외쳤고, ‘나 어떡해’ ‘아파트’ ‘빗속의 여인’ 이 세 곡의 레퍼토리는 무한 반복되었다.

요즘 강경필 씨의 가장 큰 고민은 울림 테우리의 인기가 날로 달로 높아지는 것이다. 장난삼아 시작했는데 일이 너무 커졌다. 언론사에서 취재 요청이 들어오면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다. “밴드라고는 하지만 연주할 수 있는 곡이 다섯 손가락 안에 꼽고 한 달만 손 놓으면 그것도 까먹는데, 날카로운 기자들 앞에서 무슨 할 말이 있겠어요. 가끔은 ‘내가 이걸 왜 시작해서 이 고생이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해요. 하지만 드럼 실력이 조금씩 나아지고 한 곡을 완전히 연주할 수 있게 됐을 땐 그래, 이 맛이야, 그러면서 또 한 고비를 넘겨요.”

울림 테우리의 홍일점 오은경 씨와 건반의 강남준 씨
“전셋값이 너무 올라 싼 지역을 찾다 보니 월평마을이 눈에 띄더라고요. 처음 이 마을로 이사 왔을 땐 마음고생이 심했어요. 집주인 할머니가 멸치랑 쌀을 훔쳐 갔다고 누명을 씌웠거든요. 한번 소문이 나니까 저를 바라보는 시선이 곱지 않더라고요. 물론 지금은 오해가 풀렸고 아무 문제 없이 잘 지내고 있어요.” 울림 테우리의 여섯 번째 멤버이자 홍일점인 오은경(33세) 씨의 말이다. 낯선 마을로 이주해 마을 사람들의 텃세에 시달릴 때 그의 손을 꼭 잡아준 것은 울림 테우리였다. “제가 들어갔을 땐 이미 다섯 명의 멤버가 포진한 상태였어요. 다 남자인 데다 저보다 나이도 한참 많아서 아저씨, 아저씨 그렇게 불렀죠. 그러다 조금씩 친해지면서 삼촌, 오라버니 그렇게 부르게 됐고요. 이제는 제 남편도 멤버들하고 친해져서 같이 술 마시러 다니고 그래요.” 똑소리 나는 살림꾼이자 두 아이의 엄마인 오은경 씨는 성가대 반주자로 활동하면서 오랫동안 피아노를 연주해온 ‘실력파 뮤지션’이다. 기타를 배우고 싶어 밴드 활동을 결심했지만, 멤버들의 부탁으로 건반을 맡게 됐다.

은경 씨와 함께 건반을 담당하는 강남준(43세) 씨는 감귤 농사도 짓고 택시 운전도 하는 투잡스족이다. 남들보다 두 배로 바쁘게 살면서도 밴드 활동을 꾸준히 하는 이유는 딱 하나다. 연습이 끝난 뒤 멤버들과 함께하는 뒤풀이의 맛! 싱싱한 회에 소주 한잔 걸치는 시간이 그에겐 사는 낙이다. “제 연주 실력요? 최하급이죠”라고 서슴없이 말하는 강남준 씨는 솔직히 음악에는 별로 관심이 없다. 그도 그럴 것이 그는 기계에 밝고 손재주가 뛰어난 이과형 인간으로, 마을에서도 ‘홍반장’으로 통하는 인물이다. 이론은 빠삭한데 연습은 안 한다고 멤버들이 구박하면 “니들이 코드를 알아?”라고 받아친다. 오은경 씨와 강남준 씨에게 울림 테우리는 꿈을 이루기 위한 목표도, 일상의 재미를 더하기 위한 취미 활동도 아니다. 울림 테우리는 힘들 때 손 내밀어준 고마운 친구이자, 무수히 많은 외로운 밤을 위로해주는 달디단 소주 같은 존재다.

음악은 사람 간의 거리를 좁혀준다고 믿는 이한수 씨
남자 멤버 중 막내인 이한수(38세) 씨는 누구보다 처절하게 밴드 생활을 해온 사람이다. 아들 하나 딸 둘, 아이가 셋인데 다들 아직 어려서 손이 많이 간다. 그러니 아내 입장에서도 매일 밤 도둑고양이처럼 집을 빠져나가는 남편이 예뻐 보일 리 없다. “밴드 하고 싶으면 이혼 서류에 도장부터 찍어!”라며 막무가내인 아내 눈치 보랴, 막내라고 이것 저것 시키는 형님들 심부름하랴, 빽빽 우는 아이들 달래가며 놀아주랴 한수 씨는 몸이 열 개라도 모자란다. 하지만 그가 밴드 활동을 계속하는 건 음악이 사람 사이의 거리를 좁혀준다고 믿기 때문이다. “밴드를 하기 전에는 마을 형님들하고 사이가 어색했거든요. 사이가 안 좋다는 뜻이 아니라, 그냥 서먹했다는 거죠. 왜 남자들끼리 그런거 있잖아요. 농사짓는 사람들은 이런 문화가 낯설어요. 그런데 자꾸 부딪치고 교류하다 보니까 어색함이 친밀감으로 바뀌더라고요. 그게 바로 음악의 힘이겠죠?” 처음엔 바가지를 긁던 아내도 남편이 무대 위에 선 모습을 보더니 흡족해하는 눈치다. 기세등등하게 이혼을 요구하던 아내는 이제 멤버들 술상에 얼큰한 생선찌개를 끓여내는 부드러운 여자로 거듭났다.

결국 우리가 바라는 건 이른 아침부터 늦은 밤까지 마을 곳곳을 누비며 촬영하고 인터뷰하면서 농부 밴드에게 조금 실망한 게 사실이다. 울림 테우리 멤버들은 연주를 잘하는 것도, 가창력이 뛰어난 것도, 그렇다고 음악을 죽도록 사랑하는 것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우연한 기회에 음 악을 접하게 됐고, 아직은 부족하고 어설픈 모습으로 사람들 앞에 선다. ‘농부 밴드’라는 특이성 때문에 언론에서 과대 포장한 것도 사실이다. 놀라운 것은 그럼에도 3년이라는 시간 동안 밴드 활동을 꾸준히 해오고 있다는 것이다. 우스갯소리로 “우리는 최하급”이라고 말하면서도 ‘밴드의 꿈’을 포기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서울로 날아오기 전 울림 테우리 멤버들과 소주잔을 기울이지 않았다면 아마도 나는 마지막 의문을 풀지 못한 채 그들을 잊었을 것이다.


(왼쪽) ‘다방커피’ 한잔 마시고 싶을 땐 월평 살롱으로!
(오른쪽) ‘올레꾼’에겐 참새 방앗간 같은 ‘송이 슈퍼’.


우리는 촬영을 마치고 강경필 씨의 조그만 아파트로 가서 싱싱한 회에 한라산 소주를 나눠 마시며 ‘녹음되지 않는 상태’에서 이야기를 나눴다. 녹음을 하지 않았기에 누가 그 말을 했는지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누군가 그랬다. “세상에 꿈을 가지고 사는 사람이 얼마나 있습니까?” 이 말은 꿈을 가지고 사는 사람이 많지 않다는 뜻이 아니다. 세상 모든 사람들이 꿈을 안고 살지만, 그 꿈을 이루며 사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는 뜻이리라. 농부로, 가장으로, 직장인으로 살면서 제각각의 어깨에 놓인 짐을 짊어지고 사는 사람들. 꿈 같은 건 이미 출발선에 내려놓은 지 오래인 현실 속 사람들. 하지만 꿈을 영영 내려놓은 것은 아니어서 옆에 두고 오래 지켜보고 싶은 사람들. 그들이 어떤 장르의 음악을 하고 싶다거나 누구누구처럼 유명해지고 싶다는 말을 입 밖으로 내지 않은 건, 꿈은 발설할 필요가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마음속에 두고 오래오래 지켜보면 그뿐이기 때문이다.

문득 해 질 녘 바닷가에서 그들에게 주문한 말이 떠올랐다. “자, 지금부터 여러분은 비틀스입니다. 눈앞에 수만 명의 관객이 있다고 생각하고 가장 멋진 포즈로 연주하는 모습을 보여주세요.” 그러자 누군가가 대답했다. “비틀스라고요? 아니요, 우리는 월평마을 농부 밴드 울림 테우리입니다!”

 

제주 월평마을로
걷기 여행을 떠나보세요!


마을의 지형이 마치 달의 테두리 선과 비슷한 반월형으로 생겼다고 해서 이름 붙은 월평마을은 제주도에서 가장 소박하고 아담한 마을이다. 한라산 남쪽에 위치해 있으며, 다른 지역에 비해 상대적으로 기후가 온난하고 바람이 적어 바나나ㆍ파인애플ㆍ화훼같은 비닐하우스 농업이 발달했다. 특히 감귤과 백합 생산은 전국 시장의 60%를 차지한다.

마을 서쪽 500m 지점에는 동양 최대 사찰인 약천사가 있고, 1.5km 지점에는 중문관광단지와 국제컨벤션센터가 위치한다. 또 마을 앞쪽에는 아담한 월평 포구가 있어 해안 절경을 감상하거나 낚시를 즐기기에 그만이다. 사람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숨은 볼거리로는 ‘쇠코’와 ‘볼래낭 도랭이’가 있다. 쇠코는 마치 소의 코 형상으로 생긴 코지(곶)로 바다를 향해 바위 양쪽으로 구멍이 뚫려 있어 그 안에서 파도 소리를 들으면 색다른 맛이 있다. 볼래낭 도랭이는 볼래 나무가 많은 절벽으로, 바위틈 사이로 지하수가 흘러내리고 절벽 사이에 그늘이 형성돼 처서와 백중에는 이곳에서 물을 맞으며 더위를 피하기도 한다. 아이들이 목욕하기 좋게 밀물 때 물이 들었다가 썰물 때면 웅덩이처럼 물이 고이는 물통이 있어 여름에 해수욕을 즐기러 오는 사람들이 꽤 있다.

올레길 7코스와 8코스 사이에 위치한 월평마을 내에도 볼거리가 넘친다. 2009년 예술 지구로 선정된 월평마을은 돌담이 많아 산책하기에 좋고, 제주 전통문화 유적을 마을 곳곳에서 만날 수 있다. 월평 마을회관 안에 전시해놓은 주민 50명의 캐리커처는 김수정 작가의 작품으로 관광객에게 인기 만점. ‘올레꾼’이라면 누구나 아는 송이슈퍼에서 찐빵을 맛보거나, 과거 똥돼지를 키우던 제주식 전통 화장실을 체험해보는 것도 잊지 못할 경험이 될 것이다.

(왼쪽) 입주 작가들의 작품이 마을 곳곳에 전시돼 있는 월평마을 풍경.

이 지역 숙박 시설 정보
뜨레피아 중문관광단지에서 5분 거리인 하원동에 위치한 원룸형 펜션. 그 옛날 해녀들이 바다에서 물질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던 길에 잠시 쉬어 가곤 했던 해녀동산이 바로 이곳이다.
문의 064-738-5848
약천골 모든 객실에서 바다가 보이며, 강정유원지, 성깃내계곡, 약천사를 산책할 수 있다. 중문관광단지와 천지연폭포 등이 5분 거리에 있다.
문의 064-739-9642
글 정세영 기자 사진 민희기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11년 3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