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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이 되는 밥상] 3월,노영희의 철든 부엌 고추장 담그기
엄마 손은 약손, 엄마의 밥상은 약이 되는 밥상입니다. 1년 365일 엄마는 쉼 없이 무언가를 다듬고, 말리고, 빻고, 조리하며 가족의 건강을 챙기셨지요. 바지런한 엄마의 지혜로운 살림법이 요즘 도시의 아파트에서도 가능할까요? ‘마음먹기 나름’이라는 요리 연구가이자 푸드 스타일리스트인 노영희 씨가 엄마의 부엌을 추억하며 매월 꼭 해야 할 일을 알려드립니다. 정성 들인 만큼 더 건강해지는 밥상을 경험해보세요. 그 세 번째 이야기는 고추장 담그기입니다.

우리 음식을 이야기할 때 절대 빼놓을 수 없는 게 ‘장 醬’이다. 내가 ‘계절에 맞춰 살자, 철 있는 사람이 되자, 이 생각과 마음을 <행복> 독자와 함께 나누자’고 결심했을 때도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이 장 담그기라 생각했다. 한번 담그면 1년 내내 밥상의 질을 좌우하는 장이야말로 제철 밥상의 기본이라 생각한 때문이다. 지난달 난생처음 담근, 앞으로 간장과 된장이 될 장(담그는 법은 2011년 2월호 154쪽 참조)은 남산 기슭에 있는 내가 운영하는 레스토랑 옥상에 놓아두었다. 조석으로 항아리 뚜껑을 열어 햇볕을 쪼이고, 해가 지기 직전에 뚜껑을 덮는 수고는 나와 레스토랑 직원들이 번갈아 하고 있다. 장은 담가서 약 4~6주 동안 숙성한 뒤 가르는데, 이제 몇 주 뒤면 그 장을 갈라 간장을 달이고 된장을 숙성할 것이다. 물론, 그 과정도 여러분에게 상세히 소개할 생각이다.

3월은 맛 좋은 고추장을 담글 수 있는 마지막 기회 우리 음식에서 장이란 단어는 간장·된장·고추장을 통틀어 말하는데, 간장과 된장은 한 항아리(소금물에 메주를 띄워 숙성한)에서 나오지만 고추장은 엄연히 따로 담가야 한다. 고추장의 주재료는 고춧가루, 메줏가루, 곡물(찹쌀, 보리, 밀가루 등), 엿기름이다. 보통 고추장은 가을볕에 잘 익은 붉은 고추를 수확해서 햇볕에 바짝 말린 뒤 손질해 빻아 햇고춧가루가 나오는 늦가을부터 재료를 준비해야 한다. 이때 고추장용 고춧가루는 우리가 평소에 김치를 담그거나 양념을 할 때 쓰는 고춧가루보다 훨씬 고운, 얼핏 보면 붉은 밀가루로 착각할 만큼 곱고도 곱게 빻아야 한다. 고춧가루를 준비했다면 메줏가루가 있어야하는데, 메주 덩어리를 빻아 만드는 메줏가루는 장을 가장 많이 담그는 음력 정월 즈음에 품질 좋은 것을 구할 수 있다. 그런 이유로 고추장을 담그기 가장 좋은 시기가 음력 정월부터다. 날이 너무 따뜻하면 고추장이 익기도 전에 부패할 수 있으므로 양력으로 3월이 지나기 전이 고추장을 담그기에 가장 좋은 시기다.

고추장용 메주는 생김과 원료가 다르다 여기서 한 가지 짚고 넘어갈 것은 간장·된장용 메주와 고추장용 메주가 다르다는 점이다. 내 스승이자 한국 반가 음식의 연구와 보존에 일생을 바치신 故 강인희 선생님은 고추장용 메주를 빚을 때 넓적한 목침 형태의 일반 메주가 아닌, 가운데 구멍이 뚫린 흡사 베이글처럼 빚으셨다. 여러 서적을 찾아보니 베이글 모양의 고추장용 메주는 전남 순창의 비법이라 전해진다. 다른 방법으로는 일반 메주를 빚을 때 삶은 콩만 주원료로 하는 것과 달리 찹쌀, 보리 등의 곡물을 섞어서 만들기도 한다. 이렇게 곡물이 섞인 고추장용 메주를 ‘떡 메주’라 부른다.

어떤 음식이든 재료가 좋아야 맛도 좋은 법. 고추장을 담그기에 앞서 고운 고춧가루는 시골에 사는 언니에게 부탁해 택배로 받았다. 메줏가루는 고심 끝에 신세계백화점 강남점에서 열린 메주 바자회를 찾아가 구입했다. 처음에는 그냥 ‘메줏가루’라고 쓴 제품을 선택했는데, 어딘가 불안해 판매하는 분께 여쭤보니 고추장용은 일반 메줏가루가 아닌 ‘떡 메줏가루’를 구입해야 한다고 일러주셔서 그 제품으로 구입했다. 이 떡 메줏가루는 목침처럼 생긴 메주에 2~3개의 구멍을 뚫은뒤 찹쌀 반죽을 메워 넣어 말린 것을 곱게 빻아 만들었다는 설명이었다. 육안으로 보기에는 일반 메줏가루보다 훨씬 곱게 빻았다. 참고로 신세계백화점의 ‘신세계-대한주부클럽연합회 공동 주최 메주 바자회’는 3월 3일까지 열리는데, 이곳에 가면 100% 국산 콩으로 빚은 재래식 손 메주와 메줏가루를 구입할 수 있다. 고추장용 떡 메줏가루는 1kg에 2만 2천 원이다.

초보의 좌충우돌 고추장 담그기 재료를 준비한 후 고추장을 제대로 담그기 위해 지금껏 내가 공부하면서 메모한 레시피와 요약 노트를 전부 뒤졌다. 인터넷 정보와 참고 도서도 많이 읽었다. 지난번 담근 장 기사를 읽고 물과 소금 비율이 잘못 계산되었다는 지적을 해주신(결국 소금을 더 넣어야 했다. 자세한 내용은 다음 페이지 하단 참고) 베테랑 요리 선생님께 자문도 구했다. 내 스튜디오에 요리와 스타일링 수업을 받으러 오는 어르신께도 여쭤보았다. 그런데 모든 자료를 모아보니 방법, 재료, 분량이 모두 제각각이었다. 결국 평소 모시던 연세 많으신 여러 선생님께 수차례 전화를 해야 했고, 돌아온 답은 ‘김치 담그는 법이 집안마다 다르듯 고추장 담그는 법도 천차만별이다. 또 목적에 따라 다르다’였다. 대체로 생선회를 많이 먹는 경상도 지방은 묽고 달게 담고, 찌개를 많이 끓이는 경기도 지역은 달지 않고 되직하게 담근다. 또 완성한 고추장 위에 덧소금을 뿌리는 집도 있고, 메줏가루를 뿌리는 경우도 있었다.

여러 의견을 들은 뒤 고심 끝에 취할 것만 추렸는데, 내 고추장은 되직하고 달지 않은 경기도식에 가깝게 만들고 싶었다. 조청이나 엿 대신 엿기름만 사용하고 천연의 단맛을 보충하기 위해 대추 고 膏를 넣기로 했다. 각각의 재료 분량은 가장 여러 번 언급된 비율에 따랐다. 그렇게 담근 고추장 레시피를 공개한다. 처음이라 신중하게 담그느라 중간에 간을 보고 또 아는 선생님께 전화하고, 다시 간을 보고 하면서 마신 물이 1리터는 되지 싶다. 조언을 해주신 분들은 “네가 담근 고추장 익으면 연락해라. 꼭 맛보고 싶다”고 말씀하셨다. 완성한 뒤 맛을 보았는데, 아직 채 익지 않았지만 잘만 익히면 정말 맛있는 고추장이 될 것이라 예상할 정도로 꽤 괜찮다.

다 담근 고추장은 바로 항아리에 담지 않고 하루나 이틀 정도 그대로 두고는 지나다니며 한 번씩 저어준다. 이건 어릴 적 우리 할머니가 일러주신 방법인데 “그래야 소금이 잘 녹는다”라고 하셨다. 그러고는 고추장이 바특하게 들어갈 만한 옹기 항아리에 담아 6~8개월 정도 햇볕을 쪼이며 발효한 뒤 먹는다. 고추장보다 큰 항아리에 담으면 고추장이 맛있게 익지 않는다. 좌충우돌 끝에 완성한 내 첫 고추장은 지난달에 담근 장항아리 옆에 나란히 놓아둘 생각이다. 이 귀한 것이 익어가는 동안 고추장이 더욱 빛을 발할 민어찌개 레시피도 생각해둬야겠다. 집고추장의 진가는 무침이나 조림보다 생선찌개에서 발휘된다. 텁텁하고 들큼하지 않은 개운한 국물 맛은 역시 집고추장을 따라올 수 없기 때문이다.
다가오는 8월, 민어철이 되면 즐겨 먹는 민어찌개를 내가 직접 담근 고추장으로 끓일 생각을 하니 마음 한구석이 어쩐지 뿌듯하다. 역시 음식 만들기는 꽤 즐거운 일이다.


노영희의 고추장 레시피


주재료
찹쌀가루 1kg, 엿기름 300g, 떡 메줏가루 300g, 고춧가루 600g, 대추 300g, 소금 300g, 물 5.2L(1컵=200ml)
만들기
1 냄비에 찹쌀가루를 담고 물 10컵을 부어 잘 푼다.
2 커다란 볼에 엿기름과 물 5컵을 담고 잘 주물러 불린다.
3 ②의 엿기름물을 고운체에 걸러 건더기는 버리고 밭은 물만 준비한다.
4 ①의 찹쌀물 냄비에 ③의 엿기름물을 섞어 젓는다.
5 ④의 냄비를 불에 올리고 주걱으로 잘 저어가며 끓인다. 한번 끓어오르면 불을 약하게 줄인 다음 잘 젓는다. 쌀가루가 손에 잡히지 않고 다 삭으면 그대로 뭉근하게 졸인다. 참고로 ①의 양이 3kg, ③의 양이 700g이었는데 약 1.5kg이 될 때까지 졸였다.
6 커다란 푼주로 옮겨 서늘한 곳에서 잘 식힌다.
7 다른 냄비에 대추와 물 10컵을 담고 불에 올려 한소끔 끓으면 약한 불로 줄여 물이 다 잦아들 때까지 조린다.
8 ⑦의 대추를 고운체에 내려 대추 고만 준비한다. 완성한 양은 약 500g이었다.
9 분량의 고춧가루, 떡 메줏가루, 소금을 준비한다.
10 ⑥의 푼주에 떡 메줏가루를 넣어 고루 섞는다.
11 메줏가루가 어느 정도 잘 섞이면 고춧가루를 넣어 섞는다.
12 재료가 잘 어우러지면 ⑧의 대추 고를 넣어 섞는다.
13 물 1컵에 소금 200g을 넣어 잘 푼 후 ⑫에 넣고 힘껏 저어 섞는다.
14 간을 보고 싱거워 소금 100g을 더 넣어 잘 섞었다.

*참고로 고추장을 젓는 데는 꽤 많은 힘이 필요하다. 완성한 고추장의 무게가 3.5kg이었는데, 주걱으로 젓기에 버거울 정도였다. 옛날처럼 많은 양을 담그면 할머니 말씀처럼 부엌에 드나들면서 한두 번씩 계속 저어야 완성했겠지 싶다.

진행및 구술 정리이화선 사진 이우경 기자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11년 3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