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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과 거제를 잇는 거가대교를 타고 떠난 여행 거제에서 느낀 봄의 조짐
거제에 내려갔다. 된추위가 기승을 부리는 서울을 탈출했다는 표현이 더 적합하겠다. 거제 역시 혹한의 계절에서 온전히 비켜나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남해의 섬에는 이미 봄기운이 당도한 상태였다. 봄의 기운은 옅고 희미했지만 그것만으로도 큰 위로가 되었다. 구조라마을의 매화나무가 첫 꽃망울을 터뜨렸다.

거제시 일운면의 구조라초등학교에는 더 이상 아이들이 등교하지 않는다. 학교는 10여 년 전 문을 닫았다. 아이들의 웃음이 사라진 교정은 서바이벌 게임장의 차지가 됐다. 퇴락한 학교 건물 옆에는 세 그루의 매화나무가 식재돼 있는데, 이들이 참으로 영특하다. 대한 민국의 어느 나무보다 빨리 꽃 소식을 전하기 때문이다. 폐교에 발을 들여놓은 것이 지난 1월 9일 일요일 오후. 곧바로 나무들에 바싹 다가섰다. 망울만 맺힌 매화나무는 아직 헐거워 보였다. 몸피는 여위었고, 수피는 꺼칠했다. 하지만 유심히 들여다보니 앙상한 가지 위에 새끼손톱만 한 꽃이 서너 송이쯤 피어 있다. 거제에 오기 전 미리 살펴본 어느 선배 기자의 기사에 따르면 이 나무들은 지난해에도 거의 비슷한 날짜에 처음으로 꽃을 내밀었다고 한다. 엄동과 설한에 굴하지 않고 해마다 때를 맞춰 찾아오는 어린 생명들이 경이로웠다. 며칠 후 꽃망울들은 팝콘처럼 타닥타닥 터지며 봄의 도래를 알릴 것이다.

흔히 봄이 되면 수많은 사람이 특정한 꽃이 천둥처럼 울리는 군락지를 찾아 나서는데, 나는 가끔 꽃이 모든 것을 집어삼키는 그런 풍경이 꼭 아름답게 보이지만은 않는다. 봄꽃은 두말할 나위 없이 감동적이지만, 들불처럼 일어난 봄꽃의 향연 속에서 나는 속수무책일 때가 많다. 꽃놀이를 위해 구름처럼 몰려든 사람들 틈바구니에서 나는 꽃에 집중할 수가 없고, 내 무딘 감각은 꽃 무더기 너머의 또 다른 풍경에 가 닿을 수가 없다. 그리하여 봄이 되면 나는 종종 봄꽃을 피해 다닌다. 봄꽃이 때로는 주체스레 느껴지는 것이다. 그래서일까, 옛 구조라 초등학교의 세 그루 매화나무가 더욱 애틋하게 느껴졌다. 단출한 나무들은 보는 사람을 압도하지 않았으며, 블랙홀처럼 주변 풍경을 빨아들이지도 않았다.

(왼쪽) 엄청나게 큰 너럭바위인 신선대에서 내려다본 풍경. 부지런한 강태공들이 갯바위에서 세월을 낚고 있다.

어느 노부부가 반평생에 걸쳐 가꾼 농원 봄은 꽃으로 말을 거는데, 봄꽃들 가운데 가장 열없어하는 것은 매화도 산수유도 벚꽃도 진달래도 아닌 붉은 동백이다. 무성하고 푸른 잎사귀로 몸을 다소곳이 두르고 있는 까닭에 조금만 떨어져 있어도 낯빛이 온전히 드러나지 않는다. 가만가만 다가서야 얼굴을 붉힌, 그 고결한 자태를 오롯이 감상할 수 있다. 발그스레한 꽃잎이 노란 꽃술을 감싼 채 햇살을 받은 모습은 요염하기까지 하다. 동백은 그야말로 ‘숨김의 미학’이다.

대표적인 봄의 화신인 동백 冬柏은 기실 겨울 꽃이다. 3월 중순경 절정을 맞지만 한겨울 추위가 맹위를 떨치는 1월부터 꽃망울을 터뜨리기 때문이다. 봄에만 피는 고창 선운사의 춘백 春栢과는 다르다. 거제시가 거느린 60여 개의 섬들 가운데 동백나무가 많기로 유명한 곳이 지심도다. 그런데 이제 지심도에서 호젓함을 취하기란 민망한 일이 되어버렸다. 각종 언론 보도에 실려 너무 알려진 탓이다. 유명한 것과 호젓함은 양립이 불가능한 것처럼 보인다. 그에 비하면 예구마을 뒤편의 공곶이는 아직 외지인들의 발걸음이 성긴 편이다. 최근 들어 ‘거제8경’으로 지정되긴 했지만, 찻길이 나 있지 않은 덕분에 아직도 평온함을 유지하고 있다.

예구마을에 차를 세워놓고 언덕을 따라 한 땀 한 땀 걷기 시작했다. 내 몸이 놓인 지점이 높아질수록 예구포구는 멀어져갔다. 숲길로 접어들자 나무들이 겨울바람에 쓸려 윙윙거렸다. 녹음이 호령하지 않는 겨울 숲은 그리 관능적이지 않았으며, 나무에는 아직 수액이 오르지 않은 듯했다. 숲에서 빠져나와 일군의 무덤들을 지나자 공곶이가 모습을 드러냈다. 산비탈을 따라 동백나무와 종려나무가 무성했다. 해안까지 숲 터널이 이어져 있었고, 그 아래 돌층계가 삐뚤빼뚤 놓여 있었다.

처음부터 이곳에 초록 융단이 깔려 있었던 것은 아니다. 믿기지 않지만 한 노부부가 40년 넘는 세월 동안 애면글면 일궈놓은 결과물이다. 1956년 공곶이와 처음으로 대면한 부부는 10년 동안 도시 생활을 전전하다 1969년 운명처럼 이곳에 터를 잡았다. 그러고는 호미와 곡괭이를 손발 삼아 야산을 일구기 시작했다. 동백과 종려나무를 비롯한 50여 종의 꽃과 나무를 심었고, 흙길에는 330개의 돌계단을 놓았다. 부부의 생애가 고스란히 배어 있는 농원의 규모는 4만 5000여 평인데, 그중 수선화 재배 면적만 2000여 평에 달한다. 1월 초순에 찾은 터라 수선화가 피워 올리는 노란색의 아름다운 물결을 목도 할 수 없었다.

공곶이에서 길을 되짚어 내려와 예구포구에 잠시 머물렀다. 겨울의 포구는 침묵했다. 꼼짝하지 않는 고깃배에서도 별다른 소리가 나지 않았다. 바쁜 가운데 잠깐 얻어낸 틈이 아니라, 일이 없어 한가한 모양새였다. 예구포구에서 움직임이 있는 것은 하늘의 갈매기뿐이었다. 해가 이울기 시작하자 하늘도 바다도 햇빛에 물들어 점점 더 붉어졌다. 공곶이와 더불어 흘러온 노부부의 반평생을 곰곰이 생각해보니 근육노동의 위대함이 새삼스러웠다.

(오른쪽) 거제의 숨은 명소로 일컬리는 공곶이의 분홍 동백. 수줍은 낯빛이다.


(왼쪽) 해질녘의 예구포구. 겨울의 포구는 적막함으로 충만했다. 
(오른쪽) 도장포 바람의 언덕에 설치된 풍차. 기상 상황에 따라 회전 속도를 인위적으로 조절한다.


학동해변의 사내아이. 자연적으로 닳거나 깎여 모서리가 무뎌진 돌들이 깔려 있다.


둥근 돌과 파도의 경쾌한 실랑이 거제도는 많고 많은 남해의 섬들 중 가장 큰 섬이다. 전국적으로 따져보더라도 제주도 다음으로 크다. 그런데 굴곡이 심한 지형 탓에 해안선 길이는 제주도보다 훨씬 길다. 이 구절양장의 해안선을 따라 도로가 나 있기 때문에 길에 올라서는 순간 곧 해안 드라이브가 된다. 특히 섬의 서남부 해안인 구조라에서 여차에 이르는 구간이 장쾌한 풍경을 거느리고 있어 사람들이 많이 찾는다.

도로변에 차를 멈추고 여차몽돌해변으로 내려갔다. 햇빛에 비쳐 반짝이는 잔물결이 간지러웠다. 앞바다에 점점이 떠 있는, 해를 등진 섬들은 실루엣으로 빛이 났다. 어떤 이들은 작은 배를 띄우고 바다에서 물고기를 낚고 있다. 몽돌해변과 낚싯배와 섬들이 어우러진 모습이 먹으로 짙고 옅음을 이용해 그린 한 폭의 수묵화 같았다. 영화 <은행나무 침대>가 이곳을 거쳐갔다. 미단 공주가 가야금을 띄워 보내는 장면과 궁중 악사가 황 장군의 칼에 목숨을 잃는 장면에 배경을 제공했다. 고적한 해변에서 사랑 때문에 목숨을 잃은 악사의 슬픔과 사랑에 눈먼 장군의 시기심은 잘 떠올려지지 않았다.

거제도에는 유난히 몽돌로 이뤄진 해변이 많다. 이름도 요란한 학동흑진주몽 돌해변도 그중 하나다. 모가 나지 않고 둥근 모오리돌들이 파도와 끊임없이 실랑이하는 곳이다. 몽돌밭에 두 발을 딛고 서서 해조음을 음미했다. 가슴이 미세하게 뒤척였다. 한 아이가 물수제비를 떴으나, 팔 힘이 약한 아이의 손을 떠난 돌은 수면을 꿰뚫지 못했다. 대학생으로 보이는 일군의 사람들이 주고받는 대화가 해변에 왁자하게 퍼졌다.

학동에서 14번 도로를 따라 남진하다 7번 지방도로 갈아타니 얼마 지나지 않아 도장포마을에 닿았다. 마을의 이름이 돈을 받고 도장을 새겨주는 가게와 무슨 인연이 있는지는 알 길이 없었다. 왼편 바람의 언덕과 오른편의 신선대는 도장포마을을 찾는 목적이 되어준다. 바닷가에 자리한 거대한 바위 신선대의 이름을 유추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신선이 내려와 풍류를 즐길 만큼 주변 경관이 빼어나다고 해서 이런 이름이 붙었거나, 혹은 바위에 서면 신선이 된 듯한 기분이 든다고 해서 이런 이름을 얻었을 것이다. 이 너럭바위에서 제를 올리면 벼슬을 얻는다는 전설도 내려온다고 한다. 시루떡처럼 켜켜이 쌓인 바위의 층들은 시간의 퇴적층이다. 손댈 수 없고 만질 수 없는 장구한 시간의 흐름이 그곳에 눌어 붙어 있었다. 신선대에 서서 시선을 아래로 떨어뜨리니 바다에 낚싯대를 드리운 강태공이 여럿 보였다. 그들에게 신선놀음이란 곧 바다낚시가 아닐까 생각했다.

바람의 언덕의 주연배우는 바람과 언덕 그리고 풍차였다. 바다를 향해 돌출된 언덕에는 거센 바닷바람이 끊임없이 밀려들었다. 사방이 열린 언덕에서 바람을 피할 도리는 없었다. 풍차는 확실히 이국적이면서 또 어딘가 생뚱맞아 보였다. 엄밀하게 짚어내자면 바람의 언덕의 풍차는 풍차가 아니다. 바람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전기에 의해 작동하기 때문이다. 언덕에서 풍차를 올려다보는 것도 나쁘지 않았지만, 뒤로 물러나 멀리서 바라본 풍경이 더 아름다웠다. 특히 형형색색의 지붕을 얹은 채 산발치에 알알이 박혀 있는 집들과 풍차의 어울림이 그럴싸했다.

(오른쪽) 외포항 부두횟집의 대구탕. 대구 조업 금지 기간인 1월에 외포항은 오히려 특수를 맞는다. 전국에서 유일하게 어획이 허락된 곳이기 때문이다. 항구의 좌판마다 어른 팔뚝보다 큰 대구들이 넘쳐난다.


외포항의 대구 말리는 모습.


1 형형색색의 지붕을 얹은 채 알알이 박혀 있는 집들과 풍차의 어울림을 그럴 듯하다. 
2 신선대에 오른 사람들. 거제의 바닷바람은 거셌지만 뾰족하게 날이 서 있지는 않았다. 
3 공곶이의 동백꽃. 겨울 추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기어이 꽃망울을 터뜨렸다.


입맛 돋워주는 바다의 진미 일찌감치 잠자리를 털고 일어나 해뜨기 전 장목면 외포항의 모습과 새로운 명소로 떠오른 거가대교의 일출을 카메라에 담는 것이 애당초 계획이었다. 하지만 뜻을 이루지는 못했다. 해가 바뀌어도 달라지지 않는 게으름 때문이었는데, 결국 점심 무렵에야 외포항을 찾았다. 외포항 위판장 입구에 쓰여 있는 ‘새벽을 여는 사람들’이란 문구를 쳐다보는 것이 쑥스러웠다. 눈을 감고 외포항의 첫새벽을 떠올렸다. 항구는 꼭두식전부터 왁실덕실할 것이다. 밤새 잡은 해산물을 가득 실은 배들이 속속 도착할 무렵, 항구의 새벽은 배들이 내뿜는 엔진 소리만큼이나 박력이 있을 것이다. 어부들이 기세 좋게 꿈틀거리는 생선을 삽으로 퍼 올리는 모습이 눈에 선했다.

외포항을 지배하는 어종은 대구였다. 엄청나게 큰 대구가 위판장과 좌판에 가득했다. 한 줄로 꿰어 겨울 볕에 말리는 대구의 모습도 곳곳에서 눈에 띄었다. 겨울의 외포항에 대구가 넘쳐나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 원래 1월은 대구를 잡을 수 없는 기간이다. 산란기가 12월부터 이듬해 2월까지인 대구의 어족 보호를 위해서다. 대구가 알을 낳기 위해 떼를 지어 돌아오는 곳이 바로 거제 앞바다 진해만이다. 외포항은 대구의 산란기이자 대구가 가장 맛있는 시기에 고기잡이가 허용된 유일한 곳이다. 그러니 갓 잡은 명품 대구를 구입하려는 사람들이 방방곳곳에서 몰려들 수밖에 없다. 이즈음 외포항의 대구 가격은 3만 원 선이다. 5만 원에 두 마리를 주는 곳도 있다. 얼음을 넣어 포장해주기 때문에 서울까지 가져가는 데도 문제가 없다.

대구의 성지 외포항에는 당연히 대구 요리를 파는 식당이 많다. 생물 대구를 이용한 탕과 찜, 회 등을 먹을 수 있다. 추천을 받아 항구 뒤편에 자리한 외포식당(055-636-7205)을 먼저 찾았지만, 겨울의 별미 대구를 맛보려는 사람들로 빈자리가 없었다. 다시 항구 쪽으로 발길을 돌려 부두횟집(055-636-6098)의 문을 두드렸다. 자리에 앉아 대구탕을 주문했다. ‘대구탕 한 그릇에 무슨 1만5천 원씩이나 하지?’라는 생각은 음식을 맛보는 순간 눈 녹듯 사라졌다. 생선 한 마리가 거의 통째로 들어앉은 대구탕은 맛과 양, 두 가지 면에서 모두 흡족했다. 맑은 국물은 시원한 맛 그 자체였고, 부들부들한 대구의 살점은 서울에서 파는 여느 대구탕과는 차원이 달랐다. 처음에는 숟가락과 젓가락을 이용해 먹다가 조금 지나면서 그릇에 코를 박고 마셔댈 정도다. 속풀이 음식으로 이만한 게 또 있을까 싶다. 조만간 거제를 찾을 계획이라면 외포항에 들러 생대구탕 한 그릇 꼭 맛보시기 바란다.

대구 이외에 추천할 만한 거제 음식으로 멍게비빔밥이 있다. 멍게에 채소 서너 가지와 김 가루 그리고 참기름을 넣어 쓱쓱 비벼 먹는 음식으로, 바다의 향이 입안 가득 퍼지며 겨울철 까칠해진 입맛을 돋워준다. 사람마다 입맛이 다르겠지만 초고추장을 넣지 않고 그냥 먹어야 멍게 본연의 맛을 느낄 수 있다. 시청 인근의 백만석(055-638-3300)이 멍게비빔밥으로 문전성시를 이루는 집이다. 탱글탱글한 양식 굴도 권할 만하다. 소주 도둑이 따로 없다. 근래 들어 추운 날씨에도 거제를 찾는 사람들이 부쩍 늘었다. 지난해 12월 14일 개통한 거가대교가 결정적이었다. 거가대교는 정확히 말하자면 거가대로의 한 부분이다. 공식 명칭이 ‘부산-거제 간 연결 도로’인 거가대로는 크게 4.5km의 거가대교와 3.7km의 가덕해저터널 그리고 거가대교와 가덕해저터널을 각각 연결하는 거제와 부산의 접속 도로로 이뤄져 있다. 거제와 부산을 한 몸으로 묶어주는 거가대로가 완성되면서 거제를 찾는 부산 시민들의 발걸음이 더욱 잦아졌다. 더불어 거가대교의 웅장한 모습을 조망할 수 있는 포인트가 거제의 명소로 거듭났다. 사람들이 앞다퉈 찾아가는 곳은 장목면 유호리의 거가대교 조망공원과 유호방파제 두 곳이다. 공원에서는 거가대교의 전경을 굽어볼 수 있고, 방파제에서는 교각 사이로 떠오르는 해돋이의 장관을 감상할 수 있다. 물론 일출을 영접하기 위해서는 쨍하고 소리가 날 것만 같은 새벽의 찬 공기에 맞설 단단한 결기가 필요하지만 말이다.

(오른쪽) 장목면 유호리의 조망공원에서 바라본 거가대교의 야경. 다리는 거제와 부산 간의 심리적・물리적 거리를 획기적으로 줄여놓았다.

글과 사진 노중훈(여행 칼럼니스트) 담당 정세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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