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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 서울리빙디자인페어]웰메이드 원목 가구를 꿈꾸며 가구장이 유정민
가구 디자이너 유정민 씨는 소문대로 욕심 없이 가구를 ‘잘’ 만드는 젊고 패기 넘치는 디자이너다. ‘밀로드’라는 자신의 브랜드를 론칭하고 1주년을 맞은 지난 연말, 단단히 결을 다지고 있는 그를 만나러 암사동 작업실을 찾았다.


디자이너 유정민 씨의 암사동 작업실. 창고를 개조한 작업실은 직접 나무를 재단하는 ‘공장’과 사무실, 쇼룸으로 구성되었다.

값비싼 오리지널 빈티지 체어의 가죽이 상할까 봐 전전긍긍한다는 A씨, 근사한 나무 테이블을 샀는데 테이블 위에 김치 얼룩이 생길까 봐 밥은 교자상에 차린다는 B씨…. 실제 가구를 사용하며 흔히 들을 수 있는 웃지 못할 에피소드다. 세계적으로 이슈를 만들어내는 디자인도 중요하지만, 우리가 실생활에서 사용하는 가구의 요건을 따져보면 오일 피니싱 마감이 꼼꼼한지, 책을 아무리 많이 꽂아도 휘지 않는 하드 우드를 사용했는지, 앉았을 때 허리가 닿는 부분이 편안한지 등이 기준 아닐까? 제아무리 멋진 테이블이라 하더라도 본연의 기능을 다하지 못하는 가구보다는 질 좋고 실용적인 가구를 들이고 싶은 것이 현실적 바람일 터.
수입 가구 브랜드 위주의 시장에서 ‘나무 작가’라는 타이틀을 단 신진 가구 디자이너가 속속 등장하고 ‘블루칩 가구 디자이너’라는 말까지 생긴 요즘, 진정으로 소비자가 원하는 가구를 선보이는 내실 있는 신진 가구 브랜드를 찾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왼쪽) 1mm 차이를 가지고 고심하는 목수의 손. 밀로드에서 제작하는 모든 가구에는 유정민 씨의 손길이 닿아 있다.
(오른쪽) 미니멀한 테이블과 선반으로 꾸민 코너 공간. 패브릭 작가 이선영 씨의 딸 유진 씨의 작품이 가구와 잘 어우러진다.


저는 나무를 짓는 목수입니다 아파트에서 생활하는 현대인은 집 안 분위기를 따스하게 바꿔주는 나무 가구를 선호한다. 더욱이 질 좋은 원목을 사용하고 실용적인 디자인도 신경 쓴, 합리적인 가격의 원목 가구라면 더할 나위 없을 듯. 최근 주목받는 신예 가구 디자이너 유정민 씨는 이 조건에 부합하는 ‘웰메이드’ 원목 가구를 선보인다. 패브릭 작가 이선영 씨, 수니앤보 곽현정 이사 등이 동시에 추천한 인물이라 궁금하던 차에 마침 자신이 만든 가구로 집을 꾸몄다는 반가운 소식이 들려왔다. 눈 소식이 잇따른 새해, 암사동 작업실을 한달음에 찾아가 만난 그는 스스로를 가구 디자이너가 아닌 밀로드 Millord의 대표라 소개한다.
“명함에 디자이너로 쓸까, 작가로 쓸까 고민도 했어요. 사실 직원 한명과 저, 고작 두 명뿐인 회사지만 10년 후에는 누구나 갖고 싶어 하는 가구 브랜드로 키우겠다는 바람이 담겨 있지요.”

유정민 씨는 대학에서 산업디자인을 전공했다. 버튼만 누르면 모든 것이 만능인 디자인을 최고로 치는 제품 디자인에 별다른 매력을 느끼지 못한 그는 막연히 ‘나무’라는 물성에 대한 호감 때문에 가구 디자인으로 전향했다. 친구들이 모두 제품 디자이너로 입사할 때 그는 작은 공방에서 목공을 배웠다. 그러다 한 일본 가구 디자이너의 홈페이지에서 ‘칼 펠라 가든’이라는 가구 학교에 관한 글을 읽었다. “칼 펠라 가든은 스웨덴의 칼 발름 스탠이라는 굉장히 유명한 가구 디자이너가 세운 학교지요. 그곳에서 공부한 학생들이 졸업 전시를 하면 전 세계에서 이 작품을 사기 위해 몰려든다고 합니다. 졸업생은 마지막 순간에 자신이 만든 가구를 팔면서 가격부터 홍보 방향까지 스스로 결정하는데, 소비자와 소통하는 과정 또한 중요하다는 것을 강조하는 거죠.” 가구를 만드는 기술, 디자인에만 집중하는 것이 아닌, 궁극적으로는 소비자가 원하는 가구를 만들 수 있도록 마케팅 능력까지 키워주는 커리큘럼에 감동을 받았다는 그는 졸업 작품 가구를 제작해준 인연으로 홍대 앞 공방에서 3년간 근무하며 마케팅 감각을 익혔다. 또 가람 가구 학교, 우드 스튜디오를 거치며 본격적으로 목공을 배웠다. 그렇게 내실을 다진 다음 지난해 초 집성목 대신 질 좋은 원목을 소재로 모던하면서도 심플한 디자인 가구를 선보이겠다는 일념으로 밀로드라는 가구 브랜드를 론칭했다.

(왼쪽) 좌식 공간, 입식 공간 모두 잘 어울리는 소파 테이블.

“지금 생각해보면 프로덕트 디자인을 배운 것이 밑거름이 된 것 같아요. 만약 처음부터 가구 디자인을 전공했다면 여느 작가처럼 ‘아트퍼니처’를 꿈꿨겠지요. 하지만 산업디자인을 전공했기 때문에 편리함과 실용성을 고루 갖춘 디자인을 추구하고, 매스 프로듀스는 아니더라도 어느 정도의 양산을 염두에 두고 작업을 합니다. 따라서 손맛이 묻어나면서도 동일한 퀄리티의 제품을 만들 수 있지요.”

(왼쪽) 담백하게 꾸민 쇼룸. 현란하지 않은 디자인인데도 눈을 뗄 수 없게 만드는 힘이 바로 밀로드 스타일이다.
(오른쪽) 거실 책장에는 그가 좋아하는 디자인 체어 모형과 디자인 서적이 가득하다.


만드는 사람과 만든 물건은 닮아 있다 밀로드에서 생산하는 가구에는 모두 그의 손길이 닿아 있다. 그는 단순하면서도 군더더기 없는 원형에 가까운 디자인을 선보인다. 의자면 의자, 테이블이면 테이블, 서랍장이면 서랍장 이렇게 직관적인 디자인을 선호한다. 암사동 작업실과 쇼룸에서는 오리지널 퍼니처와 오더 메이드 퍼니처를 모두 만날 수 있는데 보통은 원하는 디자인을 가지고 오는 손님이 많다.
이때는 소비자가 원하는 포인트를 찾아 디자인은 밀로드의 색깔로 각색한다. “얼마 전에 테이블을 주문한 한 고객은 소반처럼 솟은, 두꺼운 디자인의 다리를 원했어요. 오래 사용하려면 심플해야 한다고 조언했죠. 처음 디자인을 스케치해 보여드렸을 때는 너무 밋밋한 것 같아 걱정했지만, 막상 받아보곤 무척 만족하셨습니다.” 만드는 과정이나 공정이 모두 수작업으로 이루어지는 것을 알기 때문에 특별히 컴플레인을 하는 경우는 없단다. 가구는 북미산 하드 우드를 사용하는데 나무가 단단하고 결과 색감이 아름다운 것이 특징이다. 찬찬히 들여다보면 무척 선이 가는데, 하드 우드는 탄성과 밀도가 높기 때문에 얇게 만들어도 튼튼하다고. 테이블 상판과 다리를 연결할 때는 심재를 쓰거나 깎아서 끼워 맞추는 과정을 거친다. 마무리로 천연 식물성 오일을 5회 정도 덧칠해 완성. 우레탄 같은 화학 도료를 사용하는 것보다 나무의 자연스러운 질감은 살면서 촉감은 무척 부드러워진다.

(왼쪽) 한적한 주택가에 자리한 작업실의 모습.
(오른쪽) 자신이 디자인한 가구로 꾸민 거실 풍경. 그의 가구는 실용성을 유지하면서 전체적인 비례감이나 하드웨어와의 조화 등 심미적인 부분까지 놓치지 않은 것이 특징. 암체어는 오크 소재에 가죽을 더한 것으로 고급스러운 분위기를 완성해준다.


이 모든 공정은 밀로드 자체 내에서 수작업으로 이루어진다. 기계를 쓰는 일보다는 손 쓰는 일이 많아 전기세가 채 5만 원이 나오지 않는다고 설명을 덧붙였다. 보통 디자인만 하고 공정은 목수에게 맡길 수도 있지만, 그는 디자인을 하고 그것에 맞춰 목공 기술을 습득하는 과정 자체를 즐긴다. 그래야 디자인에 따라 구현되지 못하는 기술을 개선하고, 사용할 때 편안한 기능까지 꼼꼼히 챙길 수 있다는 것. 그가 디자인한 한 의자는 등받이가 허리선밖에 오지 않는데도 실제 앉아보니 무척 착용감이 편했다. “편한 의자를 만들기 위해 큰맘 먹고 핀 율 Finn Juhl의 암체어를 하나 샀지요. 등이 닿는 부분과 엉덩이가 닿는 부분, 그 미세한 각도를 알아야 편한 의자를 만들 수 있으니까요.” CD 장은 오디오 앰프에서 볼 수 있는 방열판에서 모티프를 얻어 디자인했다. 바로 그가 추가하는 직관적인 디자인의 대표적 예라고 할 수 있다.

‘밀로드’는 일본의 트러웍스라는 가구 브랜드를 롤모델로 삼고 있다. 일본은 밀로드처럼 직접 디자인하고 제작하는 브랜드가 많은데, 소규모 양산을 바탕에 둔 ‘오더 메이드’를 내세워 가구를 디자인하기 때문에 개성은 살리고 손맛 나는 가구를 만들 수 있다. 그는 일본 브랜드 트러웍스, 스탠다드 트레이드와 같은 브랜드를 한국 실정에 맞게 선보이기 위해 찬찬히 준비 중이다. “지금은 다른 맞춤 가구에 비해 왜 가격이 2~3배나 비싸냐고 묻는 소비자가 많아요. 10년 정도 지나면 소비자 역시 합판 가구, 무늬목 가구, 집성목 가구, 원목 가구가 왜 다른지 차이를 알아주지 않을까요? 천천히 한 계단씩, 10년 후를 바라보자 생각하고 있어요.”

(오른쪽) 못을 박지 않고 나무를 끼워 맞춘 그의 의자는 앉았을 때 그 진가를 발휘한다.


(왼쪽) 사이드보드가 지닌 본연의 역할과 디자인을 고스란히 담은 거실장.
(오른쪽) 시간이 지나도 질리지 않는 담백함으로 무장한 침실. 프레임의 나뭇결이 고운 대형 거울은 요가하는 아내를 위해 제작한 것.


공간으로 스며드는 가구 “일본이나 유럽에는 개인 주택이 많아요. 주택에는 주택에 어울리는 가구가 있지요. 그래서 작은 주택이 많은 일본에는 코지한 느낌을 주는 나무와 철재가 어우러진 빈티지 스타일의 가구가 많죠. 우리나라 카페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스타일인데, 그런 가구는 우리나라 아파트에 매치하면 별로 효과를 보지 못합니다.” 점점 마감재가 고급스러워지고, 12mm 초박형 LED TV, 오디오 시스템 등 첨단 기계 문화가 발달한 우리나라 가정에서 빈티지한 가구를 선택하는 일은 생각만큼 쉽지 않다. 따라서 나무라는 자연스러운
물성을 활용하되 디자인은 모던한 것을 추구한다는 유정민 씨. 또한 그는 가구만으로도 충분히 큰돈 들여 하는 레노베이션 효과를 낼 수 있다고 단언한다. 실제 24평 아파트에 전세로 거주하는 그는 패밀리룸, AV 룸, 침실 등을 가구를 활용해 꾸몄다. 현관과 거실, 작은방, 부엌이 모두 연결된 구조. 부엌 옆의 작은방은 벽이 없이 확장된 스타일로 작은 소파와 TV 장을 두어 AV 룸으로 꾸몄다. 따라서 거실은 TV를 없애고 책장과 큰 테이블, 사이드보드로 패밀리 룸을 연출했다. 가족실은 미술을 전공한 후, 지금은 퍼스널 요가 트레이너로 활동 중인 아내 하밀 씨가 요가를 하고, 음악을 좋아하는 그가 암체어에 편안히 앉아 음악 감상을 하는 휴식 공간이다.

“작가라면 항상 또 다른 무언가를 창조해야겠죠. 하지만 저는 항상 새로운 걸 만들어내기보다는 이처럼 평소에 활용할 수 있는 체계적인 디자인을 만드는 게 좋아요. 단, 공장에서 일률적으로 찍어내는 게 아니라 내 손길이 닿아 만들어지는 손맛 나는 가구를요.” 열 명 정도의 작은 회사를 꾸려, 잘 만든 가구의 가치를 알아주는 이들에게 밀로드의 가구를 선보이고 싶다는 유정민 씨. 극소수의 사람만 누릴 수 있는 아트 퍼니처를 만드는 ‘작가’와는 분명 다른 길이라는 설명을 덧붙인다. 퀄리티가 좋으면서 손맛과 그 가구가 나오기까지의 스토리까지 담긴 가구. 그가 만드는 것은 공간에서 혼자 돋보이는 가구가 아니라 좋은 공간을 만들어주는 ‘웰메이드’ 가구다.

유정민 씨가 디자인한 가구는 암사동 밀로드 쇼룸(02-426-0685)이나 홈페이지(www.millord.com)에서 주문, 제작할 수 있다. 컬렉션 숍으로는 양재동 수니앤보(02-579-9994), 청담동 굿핸드 굿마인드(02-3445-4755) 등에서 볼 수 있다. 수니앤보에는 아이 가구를 전시했는데, 미래에 아빠가 될 모습을 상상하며 만든 작품이다. 점차 아동용 가구의 비중을 넓힐 예정. 나무 소재의 소품과 가구를 선보이는 굿핸드 굿마인드에서는 배우 유해진 씨가 그가 만든 테이블을 구입하기도 했다.

글 이지현 기자 사진 이우경 기자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11년 2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