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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 리포트]흙, 물, 바람, 햇살, 세월이 만들어낸 이탈리아에서 만난 네 가지 슬로 푸드
간장, 된장, 김치가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슬로 푸드라면 이탈리아에는 파르미자노 레자노 치즈, 프로슈토 디 파르마 햄, 발사믹 식초, 엑스트라 버진 올리브유가 있다. 모두 전통 제조 방식을 따르며 해당 지역의 자연조건에서만 만들 수 있는 식품이다. 이탈리아는 엄격한 규정을 통과한 제품에 대해 품질 인증 제도를 운영하고 있어 누구나 믿고 먹을 수 있다. 이러한 이탈리아의 대표적 슬로 푸드 제조 과정을 직접 보기 위해 파르마와 모데나 지역 그리고 자연 농법으로 재배한 올리브로 엑스트라 버진 올리브유를 만드는 피렌체의 농장에 다녀왔다.


갓 수확한 올리브 열매가 탐스러워 보인다.

엑스트라 버진 올리브유 이탈리아의 토스카나에서는 매년 11월 초부터 올리브유를 짜기 시작한다. 요즘은 농장에서 수확한 올리브를 대형 공장에서 수거해 한꺼번에 올리브유를 짜기 때문에 각 농장마다 특색 있는 맛과 향이 많이 사라졌다. 그 점을 안타깝게 생각하던 차 이탈리아에 있는 지인이 직접 올리브유를 짜는 농장을 소개해줘 찾아가봤다.


1 이탈리아 피렌체 부근에 있는 이 농장은 자연 농법으로 기른 올리브를 나무에 올라가 일일이 손으로 수확한다.
2 올리브유를 보관하는 테라코타 항아리. 1백 년이 넘은 것들이다.
3 농부이자 첼리스트인 알베르토 씨가 수확한 올리브를 보여주고 있다.


이탈리아 피렌체 부근에 있는 이 농장은 2천 그루의 올리브나무를 고집스럽게 자연 농법으로 키워 최상의 올리브유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운 좋게도 올리브 수확 시기에 맞추어 갔기 때문에 올리브 수확부터 올리브유 짜는 과정까지 모두 지켜볼 수 있었다. 이 농장은 피렌체에서도 아름답기로 유명한 피에솔레 Fiesole 언덕에 있는데, 르네상스 시대에 지은 집과 몇백 년이 되었다는 올리브 고목이 자아내는 풍경은 가히 장관이었다. 한창 올리브를 수확하는 시기라 올리브나무 아래로 네트를 쫙 펼쳐두고 사람이 일일이 손으로 올리브를 따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기계로 수확하는 다른 곳과는 확연히 달랐다. 수확한 올리브는 일정량씩 모아 동네에 있는 기름 짜는 곳으로 싣고 간다.


4 이 농장에서 가장 오래된 올리브나무.
5 신선한 올리브유는 그 자체로 훌륭한 향신료가 된다.
6 올리브유에 담가둔 아티초크(서양 허브의 일종. 죽순과 비슷한 맛이 난다).


기름 짜는 곳에 도착한 올리브는 우선 기계로 잎을 분리한 후 올리브 열매를 물로 깨끗이 씻는다. 그다음 큰 믹서에 갈아 페이스트 상태로 만든 후 원심분리기에 넣어 기름과 물을 분리한다. 이때 착즙한 짙은 초록색 기름이 최상의 올리브유인 것이다. 이렇게 짠 기름을 농장으로 가져와 1백 년이 넘은 테라코타 항아리에 부어 보관하는데, 이렇게 항아리에 담아두면 침전물이 가라앉으면서 황금색이 도는 최상의 엑스트라 버진 올리브유 extra virgin olive Oil가 된다. 갓 짠 짙은 황금 녹색빛의 올리브유는 오일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풋풋한 풀 향이 나는데, 가볍게 구운 빵에 듬뿍 뿌려 먹으니 마치 후추처럼 톡 쏘는 매운맛도 느껴졌다. 이탈리아 요리에 꼭 필요한 올리브유는 단순히 기름의 기능뿐만 아니라 향신료서 역할도 아주 중요하다. 샐러드나 빵에 곁들여도 좋지만 요리의 마지막에 살짝 뿌리면 풍미를 더해주기 때문에 이렇게 맛과 향이 진한 신선한 올리브유를 만난다는 건 무척 즐거운 일이다.

파르미자노 레자노 치즈
농업이 주를 이루던 우리나라가 콩을 발효해 된장, 간장을 담갔다면 목축이 주를 이룬 서양에서는 우유를 숙성시켜 치즈를 만들었다. 그중에 이탈리아 사람들이 첫손에 꼽는 치즈가 ‘치즈의 황제’라 불리는 파르미자노 레자노 parmigiano reggiano 치즈다. 파르미자노 레자노 치즈로 인정을 받으려면 한정된 지역에서 만든 것이어야 하는데, 이탈리아 북부 파르마 Parma, 레조에밀리아 Reggio Emilia, 모데나 Modena, 볼로냐 Bologna, 만토바 Mantova 지역에서 만든 치즈만 인정하며 다른 나라나 지역에서 만든 것은 파르미자노 레자노 치즈라 부를 수 없다. 이유는 유럽연합(EU)이 정한 PDO(protected designation of origin: 원산지 호칭 보호)의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PDO는 이탈리아어로 D.O.P(denominazione di origine protetta)라고도 한다. 이 치즈를 만드는 공방에는 고유 번호가 있다. 일종의 생산자 이력제인 이 번호는 모든 치즈에 새겨져 있기 때문에 번호만 봐도 어느 공방에서 만든 치즈인지 바로 알 수 있다. 관리가 철저한 만큼 오랜 시간 공들여 만드는 파르미자노 레자노 치즈는 8세기 이상 이어져온 100% 자연 치즈로, 장기 숙성 과정을 거치는 점이 가장 큰 특징이다. 치즈를 만든 뒤 보통 12~36개월 정도 숙성한 후 먹는데, 가장 오래된 치즈로는 10년 이상 숙성한 제품도 있다. 대표적인 파르미자노 레자노 치즈의 유사품으로는 녹색 통에 들어 있는 미국산 ‘파르메산 치즈’가 있다. 흔히 피자 위에 뿌려 먹는 이 치즈는 자연 숙성 치즈가 아니고 대량생산을 위해 인공 첨가물을 넣은 가공 치즈이므로 파르미자노 레자노 치즈와 혼동해서는 안 된다.


1 숙성 중인 파르미자노 레자노 치즈.
2 공방의 고유 번호와 파르미자노 레자노 협회에서 인증한 합격 도장이 찍힌 치즈.


파르미자노 레자노 치즈를 만드는 재료는 참 간단하다. 신선하고 품질이 좋은 우유와 소금 그리고 레닛rennet(우유를 응고시키는 효소) 이외에는 어떠한 것도 넣지 않는다.
치즈를 만드는 첫 번째 과정은 우유를 모으는 일로 평균 38kg의 치즈 한 덩어리를 만드는데 600리터의 우유가 필요하다. 우선 큰 원추형 통 안에 우유를 넣는데, 지방 함유량을 조절하기 위해 치즈를 만들기 전날 짠 우유의 지방을 빼서 300리터 정도를넣고 나머지 절반은 다음 날 아침에 짠 우유를 그대로 넣는다. 여기에 유청(whey: 우유가 치즈로 분리될 때 나오는 투명하고 황록색을 띤 용액)을 넣고 따뜻하게 데운 다음 레닛을 넣고 20분 정도 응고시킨다. 어느 정도 응고되면 스피노 spino라고 부르는 대형 거품기 같은 것으로 휘휘 저은 다음 잘게 부순다. 그러면 통 안에 쌀알 굵기의 몽글몽글한 치즈가 떠오른다. 치즈가 응고되는 상태를 보면서 온도를 조절해가며 10분 정도 그대로 두면 치즈가 커다란 덩어리로 뭉쳐져 통 안에 가라앉는다.

3
응고된 우유의 모양을 잡고 수분을 빼는 모습. 

가라앉은 원통형의 치즈를 큰 마 보자기 같은 것으로 두 명이 마주 잡고 떠올린다. 이 보자기를 봉에 건 채 칼로 반 잘라 두 개로 나누어 잠시 걸어두면 수분이 빠지는데, 이 덩어리를 재빨리 플라스틱 통에 넣어 3시간 정도 수분을 뺀 후 제조 연월일과 공방 번호가 쓰여 있는 제조자 ID 밴드를 2~3일 정도 치즈에 감아 성형을 한다. 그런 후 소금물에 20일 정도 담갔다가 꺼내서 최저 12개월 정도 숙성시키면 치즈가 완성되는 것이다. 치즈를 1년 이상 숙성시키기때문에 숙성실의 환경 또한 중요한데, 나무 선반이 가지런히 놓인 숙성실은 항상 17℃의 온도에 72%의 습도를 유지한다.

1년 동안 숙성을 거친 치즈는 전문 검사관이 와서 등급을 매기는데, 치즈를 망치로 두들겨 울림 소리를 듣고, 긴 바늘로 찔러 약간의 치즈를 채취한 뒤 향과 맛을 보고 합격해야 비로소 인정받게 된다. 18개월에서 24개월까지 숙성한 치즈는 ‘클라시코’ 등급을 받으며, 18개월 무렵에 다시 한 번 심사를 통과한 치즈는 최소 36개월 이상 숙성하며 ‘엑스트라’ 등급을 받게 된다.

4 한 덩어리로 뭉쳐진 우유 응고물을 두 사람이 마주 잡고 조심스럽게 들어올리고 있다.


발사믹 식초 발사믹 balsamic 식초는 모데나 근처에서 자라는 백포도 품종인 트레비아노 trebbiano로 만든다. 발사믹 식초를 만들려면 우선 포도의 즙을 짜서 그 양이 절반이 될 때까지 졸인 다음 나무통에 담는다. 처음 나무통에 담아둔 식초를 적당한 시기에 벚나무, 밤나무, 참나무, 뽕나무, 물푸레나무로 만든 점점 작은 통으로 옮겨 숙성시키면 발사믹 식초가 완성된다. 발사믹 식초는 공기로 숨을 쉬며 숙성되기 때문에 나무통마다 네모난 구멍이 뚫려 있고 하얀 면포를 씌워놓는다.

발사믹은 ‘향기롭다’는 의미로, 전통적 발사믹 식초의 최저 숙성 기간은 12년이다. 귀한 것은 50년, 1백 년 된 것도 있다. 전통 방법으로 만든 발사믹 식초는 라벨에 ‘아세토 발사미코 트라디지오날레 디 모데나 Aceto Balsamico Tradizionale di Modena’라고 쓰여 있는데, 에밀리아로마냐주의 모데나나 레조에밀리아에서 만든 것만 이 이름을 붙일 수 있도록 법으로 정해져 있다. 이 제품과 거의 같은 재료와 공정으로 만들지만 숙성 기간이 5년, 8년, 10년, 12년으로 짧은 것은 라벨에 ‘아세토 발사미코 Aceto Balsamico’라는 표기만 돼 있다.

우리나라 대형 마트에서 판매하는 발사믹 식초나 시중의 레스토랑에서 맛보는 발사믹 식초는 전통적 방법으로 만든 것이 아니고 공장에서 대규모로 생산한 식초가 대부분이다. 정확히 말해 발사믹 식초의 유사품이라고 할수 있다. 이런 제품은 숙성하지 않은 포도 식초에 착색료, 캐러멜, 향료 등을 첨가해 만든 것으로 맛과 향에서 큰 차이를 보인다.

(왼쪽) 발사믹 식초는 공기를 호흡하며 숙성되기 때문에 발사믹 식초가 담긴 나무통에 구멍을 뚫은 뒤 하얀 면포로 덮어두었다.

프로슈토 디 파르마 햄
프로슈토 디 파르마 prosciutto di parma 햄(이하 파르마 햄)의 재료는 돼지 뒷다리, 소금, 공기 그리고 시간뿐이다. 다른 슬로 푸드와 마찬가지로 인공 첨가물을 일절 넣지 않고 만든 100% 자연식품인 것이다. 파르마 햄은 재료는 간단하지만 오랜 숙성 시간과 세심한 주의가 필요한 공정을 거친다. 특히 햄을 보존하는 데 꼭 필요한 소금을 흡수하는 과정에 가장 많은 공을 들인다. 파르마 햄의 생산 지역으로 지정된 곳은 에밀리아로마냐 주를 중심으로 남쪽으로 5km까지, 동쪽은 엔쟈 강 그리고 서쪽은 스티로네 강까지로 제한되어 있다. 또 고도는 900m까지로 정해져 있다.


1 합격된 파르마 햄에 인증 마크인 왕관이 찍혀 있다.
2 숙성이 끝난 뒤 출하를 앞두고 있는 파르마 햄.
3 파르마 햄의 상태를 확인하는 검사관.


파르마 햄 만들기는 공정 하나하나마다 세심한 주의와 세월을 필요로 한다. 우선 제조 공장에 도착한 돼지 뒷다리는 여분의 껍데기와 지방을 제거한 후 둥근 모양으로 다듬는다. 그다음 소금을 뿌리는데 이 과정이 가장 중요하기 때문에 아무나 할 수 없고 오랜 경험을 가지고 있는 몇 명의 장인만이 참여한다. 소금에 절인 뒷다리는 습도를 80%로 맞춘 공간에 일주일간 보관한 후, 다시 가볍게 소금을 뿌려 15~18일간 절인다.

이때 가장 중요한 과정이 매일 온도와 습도를 관리하면서 최고 책임자가 숙성에 필요한 양의 소금을 잘 흡수했는지 확인하는 것이다. 그 후 습도가 65%인 별도의 냉장실에서 3개월 정도 숙성한 후 여분의 소금을 미지근한 물로 씻어 건조실로 옮긴다. 적당히 건조되면 환기가 잘되는 숙성실로 옮겨 하나씩 매달아 숙성시킨다. 이때 언덕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파르마 햄의 독특한 풍미를 만든다. 3개월간의 1차 숙성이 끝나면 겉면의 고기가 마르지 않도록 라드를 발라 저장고로 옮긴 다음 다시 2차 숙성 과정을 거친다. 파르마 햄의 숙성 기간은 1개월에서 최고 30개월까지로 숙성이 끝난 햄의 무게는 처음 돼지 뒷다리 양의 4분의 1 정도로 감소한다.

지난 11월 이탈리아를 방문해 파르미자노 레자노 치즈, 발사믹 식초, 파르마 햄, 엑스트라 버진 올리브유까지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네 가지 슬로 푸드의 제조 과정을 직접 살펴보면서 많은 것을 느끼고 배웠다. 가장 큰 공통점은 원재료 외에는 별도로 들어가는 재료가 거의 없다는 점이다. 실제 치즈는 우유와 소금, 햄도 돼지 뒷다리와 소금, 발사믹 식초와 엑스트라 버진 올리브유는 포도와 올리브로만 만들었다. 그리고 모두 그 지역의 물과 공기, 토양과 바람, 햇살의 영향을 받으며 꽤 오랜 시간을 필요로 했다. 진리는 가장 단순한 것에 있다고 했던가. 결국 가장 좋은 음식이란 그 지역의 기운을 받은 자연에서 온 그대로임을, 자연의 순리대로 맛이 들기를 기다렸다가 먹어야 함을 다시 한 번 깨달은 유익한 여행이었다.

글 박혁신(요리연구가) 사진 박유신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11년 1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