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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이 되는 밥상]1월, 노영희의 철든 주방 조청 달이고 두부 만들며 설맞이하기
엄마 손은 약손, 엄마의 밥상은 약이 되는 밥상입니다. 1년 365일, 엄마는 쉼 없이 무언가를 다듬고, 말리고, 빻고, 조리하며 가족의 건강을 챙기셨지요. 바지런한 엄마의 지혜로운 살림법이 지금, 도시의 아파트에서도 가능할까요? ‘마음먹기 나름’이라는 요리 연구가이자 푸드 스타일리스트 노영희 씨가 엄마의 부엌을 추억하며 매월 꼭 해야 할 일 몇 가지를 알려드립니다. 들인 정성만큼 더 건강해지는 밥상을 경험해보세요. 그 시작은 조청 달이기와 두부 만들기 그리고 숙주, 콩나물, 움파, 미나리 기르기입니다.

얼마 전부터 슬로푸드라는 개념이 미디어와 사람들의 입에 자주 오르내린다. 지난해 가을 이탈리아에서 열린 슬로푸드 대회에 직접 다녀왔는데, 그곳에서 본 진정한 슬로푸드란 그 지역에서 난 제철 재료로 만든 음식 그리고 그 음식을 소중하게 여기는 문화였다. 의미가 그와 같다면 옛날 우리 어머니들의 밥상이야말로 진정한 슬로 푸드일 것이다. 1년 365일 제철에 난 것을 갈무리하고 저장하던, 그 부지런한 손끝에서 완성되는 음식은 한없이 지혜로웠다.

시간과 불의 맛, 조청 달이기
그중 이맘때 꼭 하던 일이 조청 달이기였다. 설탕이 귀하던 때라 음식에 단맛을 내는 데 조청은 꽤 유용하게 쓰였다. 조청이 있어야 고추장도 담글 수 있고, 떡도 찍어 먹고, 약과나 유과 등도 만들 수 있었다. 그래서 어머니는 섣달(음력으로 한 해의 맨 끝 달)에 조청을 달이며 설 준비를 시작하셨다.
내가 혼자서 조청을 처음 달인 것은 2009년이었다. 문득 엿기름과 쌀가루가 눈에 들어와 쌀가루를 물에 풀고, 엿기름 물을 만든 다음, 둘을 섞어 삭히고, 달였다. 의욕과 달리 결과는 아쉬움투성이였다. 이런 일을 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이 불 앞을 지키는 것 아닌가. 포르르 끓어 넘치고, 중간에 밖에 나가느라 불을 끄는 등. 온전히 집중하지 않은 탓에 색이나 농도가 어머니의 조청과는 영 달랐다.
그리고 2010년, 두 번째 조청을 달였다. 결과는? 색과 농도, 맛 모두 마음이 뿌듯할 정도로 완벽하다. 2009년과 다른 점이라고는 불 앞을 잘 지킨 것뿐인데 이렇게 맛있는 조청이 완성된 게 마냥 신기했다. 조청 달이기는 재료의 계량, 엿기름 물 진하게 빼기, 멥쌀 죽 잘 젓기가 관건이다. 계량은 레시피를 참고하고, 엿기름 물은 단물이 끝까지 나오도록 꼭꼭 주물러 짠다. 멥쌀 죽은 처음엔 끈기가 생기며 주걱에 들러붙지만 계속 젓다 보면 쌀가루가 엿기름 물에 삭으면서 눌지 않는다. 주걱에 쌀가루가 묻지 않으면 그때부턴 가끔씩만 저으면 된다. 그러다 보면 어느새 양이 줄고, 점점 조청 색을 띠기 시작한다. 우리 할머니는 “좁쌀 거품이 일고 있네, 홑이불 거품이 일어야 엿이 된다”고 말씀하셨다. 보글보글 좁쌀 크기의 거품이 잦아들고 너울너울 홑이불 덮은 듯 막이 생기면 불을 끄라는 말씀이다.
엄두가 나지 않을 수도 있지만 막상 해보면 이처럼 쉬운 일도 없다. 어린 친구들이 밸런타인데이 때 초콜릿 만드는 공력에 비하면 이건 일도 아니다. 단지 시간이 많이 들어 지치고, 생각보다 완성된 양이 적어 서운할 순 있다. 그래도 조청의 자연스러운, 은은한 단맛을 맛보고 나면 마음이 풀릴 것이다.

조청은 말랑말랑한 가래떡을 찍어 먹으면 그 맛이 정말 잘 어울린다. 가래떡을 살짝 구우면 더 맛있는데 200℃로 예열한 오븐에 약 30분 정도 구우면 겉은 바삭, 노릇하고 속은 쫀득한 가래떡구이가 된다.


조청
재료
(완성 약 250g~300g) 쌀가루 10컵, 물 4L, 엿기름 600g(물 10컵)
만들기
1 쌀가루에 물 4L를 부어서 푼다.
2 엿기름을 면 주머니에 담고 물 10컵을 부은 다음 꾹꾹 주물러 물을 빼고 남은 찌꺼기는 버린다.
3 큰 냄비에 ①의 쌀가루 푼 것을 붓고 엿기름 물의 3분의 1을 부어서 주걱으로 계속 저으면서 끓인다.
4 끓어오르면 큰 그릇에 쏟아서 따끈할 정도로 식힌 다음 나머지 엿기름 물을 붓고 섞는다.
5 ④를 다시 냄비에 부어서 약한 불로 약 2시간 정도 가끔씩 저으면서 삭힌다. 국물을 떠서 흘렸을 때 맑은 국물이 주르륵 흐르고 주걱에 남은 쌀무거리가 거칠하면 다 삭은 것이다. 이때 끓어오르는 거품을 계속 걷어내야 조청이 깔끔하다.
6 ⑤를 고운 면 주머니에 넣어서 꽉 짠 다음 솥에 붓고 끓인다. 처음에는 센 불에서 끓이다가 불을 줄여서 뭉근하게 달인다.
7 잔거품이 일다가 큰 거품이 생기면 거의 다 된 것이다(엿은 더 달여 찬물에 떨어뜨렸을 때 바로 굳으면 다 된 것이다).


믿고 먹을 수 있는 손두부 만들기
조청을 달인 어머니가 그다음 하는 일은 두부 만들기였다. 두부는 그대로도 먹지만 설날 떡국에 넣는 만두 재료로도 쓰이기 때문에 넉넉하게 만들곤 했다. 나도 가끔씩 손님이 오면 직접 만든 두부를 대접하곤 한다. 손쉽게 살 수 있는 두부를 굳이 왜 만드냐고? 포장지에 쓰여 있는 깨알 같은 글씨를 읽어보라. 주원료인 콩부터 소포제, 유화제 등 알 수 없는 이름 때문에 마음이 불편해질 것이다. 올해부터 건강한 밥상을 차리기로 결심했다면 두부 포장지에 쓰여 있는 ‘부드러운’ ‘고소한’ 등에 현혹되지 말고 직접 만들어보자. 집에서 두부를 만들 땐 콩, 물, 간수만 있으면 된다. 만드는 법은 곱게 간 콩물을 광목 자루에 넣고 짜서 나온 콩물을 끓인 뒤 간수를 넣어 굳히는 법과, 곱게 간 콩물을 거르지 않고 그대로 끓인 다음 광목 자루에 걸러 굳히는 방법이 있다. 첫 번째가 널리 알려진 방법이지만 두 번째, 즉 거르지 않은 콩물을 끓여 만든 두부가 윗길이다.

어머니는 항상 “콩물을 먼저 끓인 뒤 광목에 걸러야 훨씬 고소한 두부가 되고, 물도 잘 짜진다”고 말씀하셨다. ‘선무당이 장구 탓한다’고 두부 틀이 없어 포기할 요량이라면 컴퓨터부터 켜자. 검색창에 ‘두부 틀’을 써넣으면 나무 뚜껑까지 있는 스테인리스 스틸 두부틀, 신안군 신의도에서 만든 천일염 간수(약 70모 분량), 광목 자루, 면포 등을 세트로 묶어 판매한다. 가격은 3만원대인데, 한번 구입하면 오래 두고 쓸 수 있으니 저렴한 편이다. 그것도 아깝다면 집에 있는 광목과 채반이면 충분하다. 나는 딤섬 틀이 있어서 그걸 이용하는데, 광목을 채반이나 딤섬 틀에 깔고 간수 넣은 콩물을 부은 뒤 오므려 묵직한 것을 올려두면 깔끔한 사각은 아니지만 손맛이 느껴지는 꽤 멋스러운 두부가 완성된다. 게다가 만두소용 두부라면 모양은 상관없다. 대신 오래 눌러 물기가 쫙 빠진 두부를 만들면 따로 물을 짜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편리하다.


두부
재료
(약 2모 분량) 메주콩 2컵, 물 8컵, 간수 20~30cc
양념장 재료 진간장·움파 송송 썬 것 2큰술씩, 고춧가루·통깨 1/2큰술씩, 참기름 1작은술
만들기
1
콩은 찬물에 불려서 곱게 간다.
2 바닥이 두꺼운 냄비에 ①과 물을 붓고 저으면서 끓인다.
3 면 주머니에 ②를 부어 국물만 빼낸다.
4 ③에 간수를 넣고 한 번만 살짝 섞어서 그대로 두었다가 콩물이 몽글몽글 엉기면 면 보자기를 깐 틀에 붓고 면포로 윗부분을 덮어 무거운 것으로 눌러 물기를 뺀다.
5 따뜻할 때 그릇에 담고 양념장을 곁들여낸다.

어머니의 키친 가든, 채소 기르기
어머니의 부엌에선 늘 무언가 자라고 있었다. 특히 채소가 귀하고 비싼 겨울철엔 더 부지런히 기르셨다. 나도 어머니를 닮았는지 앞마당과 스튜디오 곳곳에 채소나 나무 가꾸기를 즐긴다. 대부분 먹을 수 있는 것이지만 식탁을 장식할 때 사용하는 등 쓰임이 있는 것이란 점도 어머니와 똑 닮았다. 어머니가 이맘때 꼭 기르던 채소가 움파, 미나리, 콩나물, 숙주였다. 움파는 겨울 김장을 끝낸 순간부터 화분에서 자랐는데, 김장 때 뿌리가 있는 대파를 많이 구입해 뿌리 쪽으로 3~4cm가량 남기고 잘라 쓴 다음 나머지는 모두 화분에 심었다. 그러고는 하루에 한두 번 정도 물을 주면 속에서 노란 연둣빛의 파가 참 예쁘게 올라오는데, 이 파의 이름이 ‘움파’로 일반 대파보다 여리고 달아 먹기에 좋았다. 나 역시 김장을 마치면 파를 심어두곤 움파를 똑똑 따다 국을 끓이거나 전을 부쳐먹는다. 화분이 없는 경우 옹기나 스티로폼 상자에 길러도 무난하다. 뿌리만 흙에 심어두면 알아서 자라니 이만큼 재배하기 쉬운 채소가 또 있을까 싶지만 움파보다 더 식은 죽 먹기가 미나리 키우기다.

뿌리가 있는 미나리를 사다 윗부분만 먹고 6~10cm가량 남긴 것을 물에 담가 창가에 두면 그대로 잘 자라기 때문이다. 어머니가 겨울철 싱싱한 채소를 먹기 위해 기르시던 콩나물과 숙주는 나 역시 어려서 보기만 했을 뿐 한 번도 시도해보지 않다가 이 겨울 들어 처음으로 길러봤다. 콩나물은 콩나물콩, 메주콩, 쥐눈이콩으로, 숙주는 녹두로 기른다. 재료 수납장에 쥐눈이콩과 녹두가 있어 일단 각각 물에 불렸다. 만 하루가 지나니 통통히 잘 불었고, 부어놨던 물이 잦아들면서 톡톡 싹이 나기 시작했다. 그런데 여기부터 콩나물에 문제가 생겼다. 쥐눈이콩에 싹이 덜 난 것이다. 그래도 잘 자라길 빌며 쥐눈이콩과 녹두를 각각 물이 잘 빠지는 시루에 천을 깐 후 담고 빛을 차단하기 위해 검은 천으로 덮어뒀다. 그러고는 하루 5~6번씩 시간 간격을 두고 물을 흠뻑 줬는데, 이론상으로는 잘 자라야 하는데 결과적으로 콩나물은 실패했다. 묵은 콩을 썼기 때문일까? 아니면 수돗물을 바로 줘서? 옛날 어른들은 시루 아래로 흘러내린 물을 받아 다시 부어주곤 하셨다. 그러면 더 통통하고 고소한 콩나물과 숙주로 자란다고 하셨다. 같은 환경이었고, 똑같이 수돗물을 바로 준 숙주는 하루가 다르게 무럭무럭 자라더니 녹두를 불린 지 일주일 만에 먹을 수 있는 크기가 되었다. 수확해 먹어보니 맛도 연하고 고소하다. 아무래도 묵은 콩이 실패의 이유인 듯해 콩나물은 햇콩을 사다 다시 길러볼 계획이다. 콩나물 재배 성공기는 다음 호를 기대하시길.


숙주 기르기
1
녹두를 24시간 정도 물에 푹 담가 불린다.
2 물에서 건져 따뜻한 곳에 하룻밤 두면 사진처럼 녹두 껍질이 톡톡 터지면서 싹이 나온다.
3 밑에 구멍이 뚫린 시루에 물이 잘 통하는 천을 깔고 싹이 난 녹두를 담는다. 검은 천으로 씌워 빛을 차단하고 하루 5~6회 정도 물을 흠뻑 준다.


움파, 미나리, 실패한 콩나물
1
뿌리가 달린 파의 흰 부분을 넉넉히 남겨 흙에 심어 두면 이렇게 예쁜 움파가 자란다. 일반 대파보다 연하고 맛이 달아 어느 음식이든 잘 어울려 한번쯤 꼭 길러볼 만하다.
2 어머니는 이 미나리를 나박김치 담글 때 쓰고, 탕 끓일 때 넣고, 겨울 화전을 부칠 때 꽃잎 대신 붙이셨다. 나 역시 창가에 두고 기르면서 급하게 음식에 넣거나 장식할 때 똑똑 따서 쓴다. 키친 가든이 뭐 별건가. 서양 허브 기르기보다 훨씬 쉽고, 우리 음식에 유용하게 쓰이니 움파와 미나리 기르기는 한번쯤 꼭 해보자.
3 실패한 콩나물. 다시 길러볼 계획이다.

* 더 많은 정보는 <행복이 가득한 집> 1월호 150p를 참조하세요.

진행 및 구술 정리 이화선 기자 사진 이우경 기자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11년 1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