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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추막걸리를 빚는 구암농산의 신현길 대표 대추 향 은은한 부드러운 막걸리
지난 10월, 농림수산식품부가 주최한 ‘2010 대한민국 우리 술 품평회’에서 살균 막걸리 부문 대상을 수상한 대추막걸리를 만나러 청송에 다녀왔다. “맛과 향이 부드럽고 기분 좋게 취하는 술”이라는 입소문도 익히 들은 터였다. 멀리 일본에서도 인기가 높다는 이 술의 맛은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까?

“내 고향 청송은 첩첩산중에 있어요. 너무 멀어서 한번 다녀오려면 마음을 단단히 먹어야 하죠.” 대추막걸리 공장을 찾아가던 중 언젠가 경상북도 청송이 고향이라던 한 지인의 말이 생각났다. 그땐 지도상으로 해남이나 부산에 비하면 훨씬 짧은 거리에 있는 청송을 왜 그리 멀다고 하는지 이해가 안 되었는데, 막상 떠나보니 거리가 만만치 않았다. 서울에서 안동까지 네 시간, 안동 나들목을 빠져나와 산과 들을 오르내리며 구불구불한 국도로 반 시간 정도 달려야만 비로소 ‘청송’이라는 지명이 또렷이 적힌 이정표가 보인다. 청송 군청 홈페이지에도 “예로부터 청송을 찾는 길손은 인적이 끊긴 산길을 수백 리 이상 걸어 하늘과 맞닿은 고개를 넘거나 깊은 하천 계곡을 따라 기망 없이 걸어야만 당도했다”라고 적혀 있을 정도니 ‘멀다’는 표현에 엄살은 없었던 것이다. 거리가 먼 대신, 도착한 청송의 풍광은 가히 절경이었다. 깊은 가을답게 색색의 아름다운 옷을 입은 산과 맑은 하늘, 선선한 바람에 가슴이 탁 트였다.

경상북도 청송 靑松. 한자 뜻을 보면 알 수 있듯 청송군은 전체 면적의 80% 이상이 산이고 푸른 소나무가, 그것도 수령이 꽤 오래된 소나무가 많다. 오가는 사람이 드물어 물과 공기가 맑고, 일교차가 심하며, 타지에 비해 강수량은 적고 일조량이 풍부하기 때문에 사과 농사를 짓기에 적합한 조건을 갖추고 있다. 그래서인지 청송군 곳곳에서는 사과나무가 빼곡히 들어선 과수원에서 사과를 수확 중인 농민을 자주 목격했다.

(왼쪽) 인상주의 화가의 그림처럼 색색의 단풍이 곱게 물든 산자락 아래 홀로 서 있는 구암농산 공장. 앞쪽에 펼쳐진 7만평의 부지에는 30년생 대추나무가 2만 그루나 자라고 있다.

대추를 보고도 먹지 않으면 늙는다
올해 ‘대한민국 우리 술 품평회’에서 대상을 받은 대추막걸리를 빚는 곳, 구암농산은 청송 입구에서도 한참을 달려간 후에야 닿을 수 있었다. ‘구암농산’이라는 간판이 걸린 아담한 막걸리 공장은 높은 산 아래 너른 논밭만 끝없이 펼쳐진 곳, 앞으로는 개울이 흐르고 뒤로는 병같은 산자락이 펼쳐진 절경 속에 자리하고 있었다. 주변에 가옥이나 상점도 없는 외딴곳에 조용히 서 있는 공장 입구로 들어서니 마당에 있는 거북이 형상의 바위가 손님을 반긴다. “처음 이곳에 대추나무를 심기 위해 땅을 고르다가 나온 바위예요.

이 거북 바위의 이름을 따서 우리 회사 이름도 구암 龜岩이라고 붙였습니다. 장수를 상징하는 거북이처럼 오래도록 좋은 대추를 키우고 싶은 바람도 함께 담았지요.” 신현길 대표가 운영하는 구암농산은 본래 막걸리 공장이 아닌 7만평 부지에 2만 그루의 대추나무를 기르던 대추 농장이었다. 사과가 잘되는 땅은 대추 역시 잘 자라는 법. 청송에서도 맑은 바람이 불고, 약수가 흐르기로 유명한 주왕산 기슭에 자리 잡았으니 30년 전에 심은 대추나무에는 해마다 알이 굵고 실한 대추가 주렁주렁 열렸다.
“저희 농장이 전국 최대 규모입니다. 제가 대추 농사를 짓기 시작했을 무렵 모 기업에서 1만 5천 그루를 심었다는 소식을 듣고, 제가 1등을 하고 싶어 그보다 5천 그루를 더 심었지요.”

(오른쪽) 구암농산의 신현길 대표. 인터뷰 끝에 그는 농장의 모든 식구들과 이 사업이 가능하도록 만들어준 경북 도청, 청송 군청, 경북대학교 등 많은 분께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호탕하게 웃는 그는 농업 분야에서는 보기 드문 사업가 기질을 지녔다. 지금의 농장 부지 근처를 지나다 아름다운 지형에 반해 땅을 매입했고, 사과와 함께 지역의 대표 작물인 대추나무를 심었다. 대추나무의 수명은 200년 이상 되고, 큰 나무 하나가 75kg의 대추를 생산하니 다른 농사보다 훨씬 수익이 좋을 거란 계산도 있었다. 실제 이 농장에서 해마다 수확하는 대추는 생대추 25kg들이 상자를 기준으로 약 5천 상자 정도 된다.
“대추를 보고도 먹지 않으면 늙는다는 말을 들어보셨나요? 대추는 예로부터 맛이 좋고 건강에도 좋아서 과실수 중 으뜸으로 쳤지요. 옛 의서에도 ‘대추를 오래 먹으면 몸이 가벼워지면서 늙지 않는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게다가 청송은 대추 농사를 짓기에 매우 좋은 조건을 갖추고 있어요. 청송 대추는 다른 지역의 대추보다 껍질이 얇고 당도가 높습니다.”

몸에 좋은 과실이고, 수입도 높일 수 있을뿐더러, 지형 조건도 딱 맞아떨어져 대추 농사를 시작했지만 처음부터 대추 농사가 쉽지는 않았다. 그렇다고 포기할 수도 없어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책을 읽으며 농사를 배우고, 대추에 대해 연구를 거듭했다. 그가 읽은 대추와 농사 관련 서적만 100여 권이 넘는단다.
“15년 전인가 청송에 병충해가 돌아 주변의 대추나무들이 죽어갔어요. 그때 미리 예방을 잘해둔 우리 농장의 대추나무는 끄떡없었지요. 그 후 대추에 대한 공부를 더 열심히 했어요. 알면 알수록 대추가 사람 몸에 참 좋더군요. 먹을수록 젊어지고 건강해지는 이 좋은 대추를 먹는 방법이 몇 가지 없다는 점이 참 안타까웠죠.”

대추나무를 심기 위해 땅을 고르던 중 발견한 거북이 형상의 바위. 덕분에 큰 고민 없이 ‘거북 바위’라는 뜻의 ‘구암’을 농장 이름으로 지었다.

일본 사람도 반한 은은한 핑크빛 막걸리를 개발하다
점점 ‘대추 박사’가 되어가던 그에게 2007년 운명 같은 제안이 들어왔다. 군에서 실시하는 향토 육성 사업에 참여해달라는 의뢰를 받은 것이다. 처음에는 “잘 키운 대추 판매하기도 바쁜데 무슨 가공식품이냐”며 손사래를 쳤지만 곧 사업가 기질을 발휘했다.
“이 좋은 대추를 다양한 가공식품으로 만들어 널리 알리고, 저희 농장부가가치도 높일 수 있다면 참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습니다. 곧바로 대추 가공식품 연구 용역을 의뢰하고 대추막걸리, 대추와인, 대추잼 등을 개발하기 시작했지요.” 경북대 농대와 대구보건대 식품 분야 교수들과 함께 1년여에 걸쳐 연구한 끝에 개발한 여러 아이템 중 대추막걸리의 사업성이 뛰어나 보였다. 청송 약수로 유명한 지역의 맑은 물로 담근 술의 우수성을 널리 알리고 싶은 욕심도 생겼다. 대추막걸리는 100% 우리 쌀로 정성껏 빚은 막걸리에 대추 농축액을 6%가량 섞어서 만드는데, 대추의 부드러운 단맛과 핑크빛 색감이 입과 눈을 사로잡았다. 특히 일반 막걸리는 마신 뒤 목으로 거슬러 올라오는 가스 때문에 불쾌감을 주는데, 대추 막걸리는 부드럽게 넘어가 마신 뒤에도 거북하지 않고 은근한 취기가 도는 점을 높이 평가했다. 대추막걸리를 개발한 신현길 대표는 청송군과 경북 도청에서 투자받은 재원에 자신의 사재를 더해 막걸리 연구 설비와 하루 2만 병이상 생산이 가능한 설비를 갖췄고, 관련 기술은 특허도 받았다. “그렇게 준비한 대추막걸리를 올봄에 시장에 내놨습니다. 반응이 예상보다 뜨겁더군요. 전국 이마트와 신세계백화점에 납품하게 되었고, 일본에 수출하기 시작했습니다. 즉시 생산 설비를 늘렸지요. 지금은 하루 6만 병 이상 생산이 가능합니다.”

(왼쪽) 청송의 대추는 다른 지역에서 생산한 것보다 껍질이 얇고 당도가 높다.


평소 신현길 대표가 자주 즐기는 대추막걸리의 안주인 부추 부침개와 족발.

자랑스럽게 설명하는 신현길 대표에게선 자신감이 묻어났다. 순식간에 커진 대추막걸리 사업. 지난 10월엔 농림수산식품부에서 주최한 ‘2010 대한민국 우리 술 품평회’에서 살균 막걸리 부문 대상도 차지했으니 어깨에 힘이 들어갈 만도 하다. 수확이 끝나 마른 나뭇가지만 무성한 대추밭과 일본 수출 준비로 분주한 공장을 둘러본 뒤, 막걸리 사발을 가운데 놓고 그와 마주 앉았다. 평소 즐겨 먹는다는 족발, 정구지 떡(부추 부침개의 방언)도 곁들였다. ‘콸콸’ 옹기 사발에 가득 따른 핑크빛 막걸리에서 은은한 대추향이 풍겼다. 마셔보니 과연 그의 말대로 부드럽게 넘어가고, 과하게 달지 않으며, 탄산이 강하지 않아 자연스레 입맛을 당긴다. 이 막걸리, 세계로 나아가 우리 술과 농산물의 우수성을 널리 알리는 홍보대사가 될 자격이 충분해 보였다.
“이 막걸리가 일본 현지 시음회에서 ‘부드럽다’ ‘요구르트처럼 맛이 부드럽고 알맞게 달다’ ‘기분 좋게 취한다’는 평을 받았습니다. 올 봄 수출하기 시작한 물량 모두 젊은 고객, 특히 여성들 사이에서 큰 인기를 얻고 있답니다. 매우 희망적이지요. 여러분도 한 번씩 맛보세요. 꼭 마음에 드실 겁니다.”

(오른쪽) 국내 판매용과 일본 수출용 대추막걸리 용기. 일본 수출이 활성화를 띠면서 막걸리 용기의 디자인도 새로 하고, ‘2010 대한민국 우리 술 품평회 대상’이라는 라벨도 만들어 붙였다.

* 이달에 소개된 구암농산은 경상북도 청송군의 군수로 재직 중인 한동수 님의 추천으로 진행했습니다.




글 이화선 기자 사진 김성용 기자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10년 12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