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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리빙디자인페어]목수 이정인과 화가 이재은 씨의 홍천 시골살이 나무와 벗하며 자연을 디자인하다
지난여름의 끝자락, 소격동 선 컨템퍼러리 갤러리에서 열린 이정인ㆍ이재은 씨의 <나무와 풀> 기획전은 가구를 만들고 풀 그림을 그리는 작가 부부의 소박한 자연주의 삶과 철학을 담은 전시였다. 전시회 마지막 날, 마침 출판사와 미팅이 있어 갤러리에 들른 부부와 오랜만의 서울 나들이에 따라나선 아홉 살 중규와 여섯 살 완규를 만났다. 엄마와 헤어스타일이 꼭 닮은 두 아이의 반짝이는 까만 눈동자를 마주하니 진짜 자연과 벗하며 살고 있는 이 가족의 시골살이가 궁금해졌다.

적게 갖고 풍요롭게
다시 부부를 찾은 것은 뜨거운 여름을 다 보내고 가을이 무르익어가는 어느 화창한 날이었다. 강원도 홍천의 큰골마을. 매일 아침 여섯 시면 어김없이 하루를 시작하는 이 바지런한 가족은 서울 손님을 기다리기가 지루했던지, 혹여 길을 잘못 들지는 않을까 염려되었는지 집으로 오르는 언덕길 아래까지 마중 나와 서성이고 있었다. 깻잎, 고구마, 오이밭을 지나 비탈길을 오르니 멀리에서도 한눈에 시선을 잡아채는 빨간 지붕의 흙집이 나타난다. 서울에서 태어나고 자란 부부가 강원도 홍천, 그것도 내촌의 산골에 들어와 전원생활을 하는 이유가 무얼까. “위에 염증이 생기는 크론병을 앓고 있었어요. 환경오염과 스트레스 등을 원인으로 추정할 뿐, 뚜렷한 치료법이 없는 희귀 난치병이었지요.” 남편 이정인 씨의 몸이 보내는 소리 없는 경보에 이재은 씨는 산골행을 결심했다. “도시에 살면 결국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죠. 처음에는 경기도 양평과 광주 등을 알아보았는데 개발이 한창이라 도시와 크게 다를 것 같지 않았어요. 차라리 아예 깊은 산으로 들어가는 게 어떻겠느냐 물었지요.” 맑은 공기를 마시며 직접 농사지은 정성 깃든 음식을 먹고 살자고, 단지 아픈 걸 치유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진짜 흙을 밟으며 사는 자연인으로 돌아가자는 이재은 씨의 설득으로 시작한 자연생활.

(왼쪽) 목수 이정인 씨와 풀 그림 작가 이재은 씨, 그리고 두 아들 중규와 완규.

7년이라는 시간이 지난 지금, 원인과 치료법을 찾을 수 없던 희귀병이 거의 완쾌되었다. 어디 그뿐이랴. 손볼 일투성이인 조각보 같은 시골집을 뚝딱뚝딱 고치다 목공의 묘미에 푹 빠진 남편은 나무 가구를 만드는 ‘나무꾼’이 되었고, 소나무 길을 거닐며 작은 곤충과 풀잎을 관찰하던 아내는 숲 속의 ‘선녀’가 되었다. 서울에서 미술 교사로 일하던 선녀와 나무꾼은 어느새 밭을 일궈 토마토, 오이, 고구마 등의 먹을거리를 손수 농사짓고, 필요하면 흙을 개어 뚝딱뚝딱 집을 짓는 진짜 농부가 되었다. 소비가 미덕인 현대 사회에서 스스로 농사짓고, 웬만한 것은 만들어 쓰는 일은 어쩌면 시곗 바늘을 거꾸로 돌리는 일과 마찬가지일 수도 있다. 그렇지만 그 거꾸로 가는 시간 속에서 부부는 새로운 진리를 얻었다. 항상 무언가를 원하는 마음은 언제나 목마르고 부족하지만 갖고 싶은 것이 줄어들면 마음은 그만큼 넉넉해진다는 것, 바로 자연인으로서 느리게 사는 즐거움을 말이다.

세상에 버릴 것은 없지
시골 길을 달리다 보면 집 한 귀퉁이에 작은 나무 토막을 가지런히 쌓아놓은 집이 눈에 들어온다. 땔감이나 군불용으로 준비한 장작더미인데, 다가올 겨울을 준비하는 집주인의 마음이 느껴져 괜스레 마음이 따뜻해지는 시골 풍경이다. 부부의 집 역시 여느 시골집과 마찬가지. 산비탈 위에 터를 잡아 멀리 겹겹이 병풍 친 산자락이 시원하게 바라다보이는 전망 좋은 대청마루 아래에는 나뭇조각이 빼곡히 채워져 있다. 이는 거실 한쪽에 놓인 커다란 난로의 땔감으로 쓰는 것이다. 이정인 씨는 연통 달린 난로가 아궁이 불로는 어림없는 시골집의 찬 겨울 웃풍을 훈훈하게 데우는 데 최고라는 설명을 덧붙인다. 일교차가 큰 가을과 매서운 겨울 추위를 몇 해 겪으면서 나름대로 답을 찾은 생활의 지혜. “가구를 만들고 남은 조각은 바짝 말라 실내에서 태워도 연기가 많이 나지 않고, 또 남은 재는 모아 자연 퇴비로 사용할 수 있어요.”

재미있는 것은 나뭇조각을 쌓아두는 것 역시 중요한 인테리어 요소가 된다는 점이다. 쪽마루 위 좌식 테이블에는 돌과 늙은 호박 등을 얹어두었는데, 조각처럼 모양이 예뻐 오브제라 해도 손색없을 정도. “보통 흠집 난 것, 찌그러진 것, 구부러진 것이 식탁에 오르죠. 꼬부라진 오이와 가지, 토마토만 골라 먹으며 우리도 진짜 농부가 다 되었네 하며 허허 웃어요.” 왜 진짜 농부는 예쁜 건 못 먹는다고 하지 않던가. 부부는 모양이 빼어나게 예쁜 것은 테이블이나 창가 위에 조르르 두고 흐뭇하게 바라보거나, 손님이나 서울 식구들에게 선물로 보낸다. “밭농사는 묘한 구석이 있어요. 농번기의 지독히 더운 날은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처럼 괴로워요. 그러다 서늘한 바람이 불어와 드디어 농사철의 끝이 보이기 시작하면 저절로 안도의 한숨이 나오는데, 막상 일 년 농사가 끝나고 나면 이대로 밭과 이별하고 돌아서야 한다는 사실이 어딘지 모르게 아쉬워 자꾸 미적거리게 돼요.” 겨울에는 자주 생각의 날개를 펼치는데, 대개는 먹을거리에 관한 것이다. ‘내년에는 이런 걸 심자. 3년 후에는 이런 모습이 되겠지’ 하는! 흙 속에서는 아무리 마음이 급해도 혼자만 앞서갈 수 없고, 아무리 느긋해도 혼자만 머물러 있을 수도 없다. 시행착오를 거치며 더불어 함께 가는 것이다. 천천히, 한 걸음씩.

(오른쪽) 여느 시골집처럼 월동 준비가 한창이다. 마루 아래 나무 땔깜을 조르르 쌓아두었다.

내 가구에 내 삶 모두가 담겨 있다
이 집에 다녀간 이들은 한결같이 집이 참 아늑하고 좋다며, 가족을 쏙 빼닮았다고 이야기한다. 겉모습은 여느 시골집과 다르지 않지만 집 안으로 들어서면 단아한 목가구가 적재적소에 배치되어 소박한 시골집에 썩 잘 어울리는 것을 볼 수 있다. 모두 이정인 씨가 직접 만든 것으로 직접 사용해봐야 불편한 점을 보완하고 새로운 아이디어가 떠오른다는 그는, 첫 작품은 모두 써본단다. 오랜 시간 책상에 앉아 일러스트 작업을 하는 아내를 위해 의자 등받이를 좀 더 높게 만들고 앉은뱅이책상을 아이들이 스스로 들 수 있을 만큼 폭이 좁고 가볍게 만드는 등 모두 직접 사용해보고 보완한 부분이다. 집 옆에 작은 흙집 두 채가 딸려 있는데, 이는 이정인 씨가 거금 14만 원을 들여 직접 지은 ‘쇼룸’이다. 마을 이장님께 공짜로 흙을 얻고 계곡 옆에 지천으로 굴러다니는 돌멩이를 가져다 지은 이 작은 쇼룸안에는 갤러리에서 본 목가구를 전시하고 있다. 목가구 작업은 지난 2006년부터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처음 산골에 들어왔을 때는 아내와 책상에 마주 앉아 그림을 그렸어요. 하루 종일 얼굴을 맞대고 있으니 토닥토닥 다투기도 많이 했지요. 그러다 홍천의 한 목공소에서 나무 다듬는 법을 배우기 시작했어요. 아내는 생활에 필요한 가구를 뚝딱 만들어내는 지금이 훨씬 좋대요.” 그림 그리는 것 이상으로 나무를 만지는 것이 매력적이라는 이정인 씨. 소재만 다를 뿐 비례감을 찾고, 형태감을 만드는 것은 그림과 크게 다를 바 없다. 그 뒤로는 인터넷으로 나무 가구 만들기 등의 자료를 모아 독학으로 목가구를 만들기 시작했다.

(왼쪽) 세밀화를 그리는 이재은씨의 작업 공간은 거실 한쪽에 마련했다.

온갖 고초를 겪으며 성장하는 나무의 생태만큼 나무를 다루는 작업 또한 끝없는 인내가 필요한 일이다. 우선 최소 5~6년의 실내 건조 기간을 거쳐야 한다. 나무는 팽창과 수축을 반복하기 때문에 가구를 만들 때는 수분이 거의 없는(함수율 12%) 바짝 마른 목재가 좋다. 나무의 물성을 이해하는 것 또한 중요하다. 호두나무와 물푸레나무, 참나무 등은 수종이 단단해 다듬는 데 오랜 공을 들여야 한다. 생육이 느린 만큼 결(나이테)도 많은데, 투명 오일을 바르면 원목 그대로의 나무 색이 유지되고, 앤티크 오일을 바르면 나뭇결이 좀 더 도드라지는 묵직한 스타일이 완성된다. 수종이 부드러운 미송 나뭇조각은 연필꽂이, 와인 홀더를 만들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다. “나무는 작은 토막 하나도 버릴 게 없어요. 작은 소품을 만들고도 남은 조각은 땔감으로 요긴하게 쓰니 마지막 사라지는 순간까지 세상에 도움을 주고 가는 거죠.” 요즘 부부는 내촌 아이들을 위한 생태 예술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이정인 씨는 아주 쉬운 목공예 수업을, 아내 이재은 씨는 시골 길을 다니며 풀벌레를 채취하고 그림을 그린다. 이재은 씨가 풀과 곤충 세밀화를 그리는 것은 일종의 사명감에서 시작한 일이다. “아이들을 키우면서 환경오염과 기후 변화로 지금 사라져가는 곤충, 풀 등을 더 늦기 전에 많이 기록해두어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이재은 씨는 아이들의 그림이 다소 삐뚤빼뚤해도 굳이 고치라고 하지 않는다. 그 자체로 더욱 사랑스러운 그림이기에.

(오른쪽) 사람을 가장 먼저 생각하는 이정인 씨 가구의 가장 큰 수혜자는 가족이다. 첫 작품은 무조건 가족이 직접 사용해보고 부족한 점을 보완한다.



1 서울 손님이 온 기념으로 오랜만에 게임기 놀이를 허락받은 형제. 방문 너머로 티격태격 소리가 나자 아빠가 외친다. “얘들아, 나가서 놀아. 씩씩하게 울지 말고 뚝!”
2 쪽마루 위 콘솔 겸 벤치 위에는 늙은 호박과 주워온 돌, 들꽃을 놓아 무심한 듯 장식했다.
3 된장찌개, 장아찌, 방금 딴 오이와 풋고추로 뚝딱 차려낸 이재은표 자연 밥상.
4 내촌 큰골마을 뒷산 소나무 숲에서 풀과 들꽃 소재를 찾는 이재은 씨. 아이들은 여름과 가을에는 곤충 채집에 열을 올린다.




1 집 옆 작은 쇼룸. 나무 가구는 이 흙집 쇼룸 안에서 흙과 함께 숨을 쉰다.
2 <은하철도 999>처럼 기차가 은하수로 뻗어나가는 즐거운 상상. 테이블은 이정인 씨의 최신작이다.
3 소나무 숲을 지나 집에서 10여 분쯤 걸어가면 가구를 짓는 공방이 있다. 그의 손때와 작업 흔적이 묻어 있는 도구와 스케치, 남은 나뭇조각에서 지난 5년간 작업에 매진한 그의 땀방울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다. 
4 호두나무와 물푸레나무, 참나무 등 가구 만들 때 사용하는 나무는 5년 이상 바짝 건조시킨다.


만들고, 그리고, 먹고, 마시는 지극한 행복
이 부부를 소개해준 선 컨템퍼러리의 이명진 관장은 “홍천에 갈 때 꼭 연락하라”며 세 번이나 당부했다. “꼭 식사를 하고 오세요. 이재은 씨 음식 솜씨가 아주 좋아요. 밥을 두 그릇씩이나 먹게 되니까요. 저도 꼭 같이 가요.” 그 말은 틀림이 없었다. 점심시간이 되자 이재은 씨는 부엌에서 찬을 준비하고, 이정인 씨는 잰걸음으로 밭에 가더니 오이와 풋고추를 딴다. 풋고추 송송 썰어 넣은 된장찌개, 엄나무순과 오갈피로 담근 장아찌, 고추장박이 버섯장아찌, 묵은 김치, 오이무침 등 소박하지만 푸짐한 한 상이 뚝딱 차려졌다. 자연발효 음식은 동네 어르신들이 하는 양을 어깨너머로 하나둘씩 보고 배워 담근 것이란다. 

(왼쪽) 다래 나무가 장식된 참나무 콘솔 테이블.

가족의 건강 관리 비법은 그다지 특별한 것이 없다. 좋은 음식과 귀한 물을 먹는 게 첫 번째다. 그들에게 먹는 일은 섬김의 철학이 되었다. 직접 농사지은 귀한 재료에 건강한 양념을 사용해 상에 내기까지 무엇 하나 허투루 하는 법이 없다. 그렇게 만든 음식은 선하고 정직해 고봉밥을 먹어도 속이 더부룩하지 않고 소화도 잘된다. 매일 마시는 물은 숯을 넣고 끓여 준비하는데 아침마다 한 잔씩 마시면 몸과 마음이 정화되는 기분이라고. “얘들아, 안에 있지 말고 밖에 나가서 놀아라.” 아빠는 밥을 먹고 방 안에서 뛰노는 아이들에게 밖에 나가 흙놀이를 하라고 말한다.
서울에서는 여간해서 듣기 힘든 말이다. 외딴길이지만 풀과 나무가 벗해주니 나가 놀아도 걱정할 일이 없다. “과중한 사교육 시간표로 바쁜 일주일을 보내는 도시 아이들을 보면 축 늘어진 스펀지 같다는 생각을 할 때가 많아요. 가끔은 햇볕도 쬐어야 하는데 말이지요.” 이정인 씨는 참다운 공부는 마음을 키우는 공부라고 말한다. 공부란, 배움이란 삶 그 자체이기에 아침에 눈을 뜬 순간부터 잠자리에 들 때까지 보고, 듣고, 느끼고, 생각하는 매 순간이 바로 배움의 연속이라 여긴다. 부부는 오후 시간이 되자 잠자리채를 챙겨 들고 아이들과 함께 소나무 숲으로 산보를 나선다.
이들의 소박한, 그러나 자연을 향한 경건한 마음으로 어우러진 삶은 작품을 통해 만날 수 있다. 담담한 멋을 발하는 이정인 씨의 목가구와 어린 시절의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이재은 씨의 꽃과 풀 그림 속에는 오늘도 산골 오두막의 작은 이야기들이 소곤소곤 펼쳐진다.

(오른쪽) 지난 8월 소격동 선 컨템퍼러리 갤러리(02-720-5728)에서 열린 <나무와 풀> 전시. 손으로 터치하면 LED 조명이 들어오는 책상은 전시 내내 주목을 받은 작품이다.

글 이지현 기자 사진 이우경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10년 11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