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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新 전원일기- 귀촌사례]귀농 3년차 ‘봄이네’ 가족 마을 공동체의 삶을 기록하는 ‘출판인 농사꾼’
자본과 불균형의 거대도시 서울을 떠나 소박한 시골로 ‘귀농’한 3인 가족, 봄이네. 그들은 단순히 생태주의나 자연주의 흐름에 기댄 ‘귀촌’이 아니라 노동 집약적인 삶으로의 회귀, 지속 가능한 삶의 실천, 권력과 자본을 거부한 소박한 아나키스트로서의 정신까지 포함한 온전한 ‘귀농’을 꿈꾸고 있다.

에어컨도 없이 무더운 여름을 보내지만 얼굴엔 미소가 가시질 않는 봄이네 가족.

그리스의 철학자 플라톤은 아크로폴리스 정상에서 내려다본 아테네를 사람이 살기에 가장 좋은 유토피아로 꼽았다. 지리적으로 볼 때, 산악지대인 아테네는 산꼭대기부터 바다까지의 거리가 짧아 여러 종류의 농업과 산업이 발달했고, 필요로 하는 식량의 대부분을 자급자족할 수 있었다. 플라톤이 아테네를 지목했듯 우리에게도 젖과 꿀이 흐르는 이상향의 마을이 존재한다. 박경리 선생의 대하소설 <토지>의 배경이기도 한 경남 하동군 악양면은 삼면이 산으로 둘러싸여 있으며 섬진강의 지류인 악양천이 면의 중앙을 따라 흐르고 그 주위에 넓은 평지가 펼쳐진 기름진 고장이다. 총면적 중 농경지 면적이 30%에 이르기 때문에 벼ㆍ보리ㆍ밀 같은 주곡 작물이 풍성하고, 감ㆍ매실ㆍ녹차ㆍ밤ㆍ취나물ㆍ고사리ㆍ토란 등의 지역 특산물이 생산돼 예부터 부촌으로 손꼽힌다. 그 때문일까. 귀농을 꿈꾸는 사람들이 가장 먼저 답사를 떠나는 곳이 악양이다.
서울에서 다섯 시간을 쉬지 않고 ‘밟아야’ 만나는 ‘귀농의 메카’ 악양은 봄이네 가족의 안주인 서혜영(33) 씨의 고향이기도 하다. 열다섯 되던 해 중학교를 졸업하면서 자연스럽게 객지 생활을 시작했으니 결혼 직전까지 15년을 시골에서, 15년을 도시에서 산 셈이다. 남편 전광진(36) 씨 역시 일찍부터 귀농을 염두에 두고 전국 방방곡곡을 돌아다녔다. 두 사람은 인문 아동 도서를 전문으로 출판하는 ‘보리출판사’에서 편집자로 함께 일하며 오래전부터 귀농의 꿈을 키웠다. 아이들에게 농사의 의미나 삶의 이치를 깨우쳐주는 책을 만들다 보니 하루 빨리 고향으로 내려가 땀 흘리며 농사짓고 자연과 호흡하며 살고 싶은 마음에 엉덩이가 들썩였다. 사람 사는 일이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흐르게 되어 있다면 아마 이 부부의 삶도 순리처럼 자연으로 회귀할 운명이었던 것일 게다.

1 인문 아동 도서가 가득한 상추쌈출판사. 마을 사람들의 열린 도서관이다.


2 해질 무렵, 밥 짓는 냄새가 구수하다.

무력한 인간으로 버텨낸 삶에 ‘옐로카드!’ 봄이 아빠 전광진 씨와 봄이 엄마 서혜영 씨가 귀농을 결심한 건 2008년 봄, 그들에게 ‘부양가족’이 생겼다는 사실을 알고 나서였다. 상황은 이랬다. 서혜영 씨는 보리출판사에 다니며 책 만드는 재미에 푹 빠져 지냈지만 조직 생활이 영 맞질 않아 괴로워했다. 친구들조차 “너 같은 성격에 4년 이상 한회사에 다니는 게 기적이다”라고 말할 정도로 서혜영 씨는 조직 생활에 맞지 않는 타입이다. 하지만 책 만드는 일을 포기할 순 없돌어 회사에 사표를 내고 프리랜서 편집자로 활동할 마음을 서서히 굳혀갔다. 그 결심이 확고해지던 어느 날, 그는 당시 남자 친구이자 직장 동료이던 전광진 씨에게 기획하고 있던 출판물을 인수인계하고 과감히 사표를 냈다. 그리고 다음 날, 뜻밖에도 임신 사실을 알았다. 결혼은 차후의 문제였지만 앞으로 태어날 아이를 위해 대안이 필요했다. 박봉으로 둘째 가라면 서러운 출판업계에 몸담은 30대 초반의 남녀에게 평생 책임져야 할 부양가족이, 그것도 ‘덜컥’ 생겼다는 건 꽤 심각한 문제였다. 결혼해서 아이도 낳을 생각이었고, 시골로 내려가 농사지으며 살려던 것도 사실이지만 그건 아주 장기적인 계획이었다. 계획이야 어찌 됐든 눈앞에 닥친 현실을 생각하니 마음이 급했다. 아이에게 물려줄 재산이 많은 것도, 그렇다고 서울에서 남부럽지 않게 사교육 시켜가며 아이를 키울 수 있는 입장도 아니었다. 무엇보다 그럴 마음이 없었다. 그동안 아이들을 위한 책을 만들면서 쌓아온 신념에도 어긋나는 일이었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아이의 인생을 절름발이로 만들 순 없다는 것이었다.


3 ‘봄이’라는 태명을 가진 아진이.
4 봄이네 화장실.


서혜영 씨는 젊은 시절 두 차례 인도를 여행하면서 스스로 얼마나 무력한 인간인가를 절실히 깨달았다. “제가 할줄 아는 거라곤 허리춤에 찬 ‘복대’에 돈을 채우는 일밖에 없다는 걸, 그복대를 잃어버리면 나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걸깨달았죠. 그때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내 삶이 바뀌어야 겠구나. 살아가는 터전을 바꾸는 것만으로도 삶이 확 달라질 수 있겠구나.” 여행에서 돌아온 서혜영 씨는 인간이 마땅히 쓰고 살아야 할 ‘노동력’이나 마땅히 생각하고 살아야 할 ‘생활의 지혜’를 일상에서 실천하며 살아보기로 결심했다. 세탁소에 맡기던 옷을 직접 수선한다거나 옥탑에 살면서 상추나 고추 같은 채소를 길러 먹는다거나 몸이 좀 고달프더라도 가전제품 사용을 최소화해 원시적인 삶으로 돌아가보는것. 실제로 생활 패턴을 바꿔보니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이 너무 많다는 것을 깨달았다.
“사실 성인이 된 후 귀농한 사람은 아무리 노력해도 농사일이나 노동이 몸에 배질 않아요. 저희도 3년째 농사를 짓고 있지만 해가 바뀌면 작년에 어떻게 농사를 지었는지 까마득해요. 어렸을 때부터 한평생 농사짓고 노동해온 마을 어르신들처럼 절대 안 되죠. 마을에 살고 계신 어른들이 몇 십년 안에 돌아가시면 우리 농사법이나 시골 생활의지혜를 아는 분들이 영영 사라지는 거잖아요. 봄이는 그분들과 공존하기 때문에 후손에게 징검다리가 되어줄 수 있을 거예요. 제 부모보다는 더 나은 생활인으로 살아가겠죠. 봄이에게 부모로서 해줄 수 있는 건 그것밖에 없다고 생각해요.”


전광진 씨가 직접 설계하고 지은 상추쌈출판사.

거대주의에 반대되는 ‘소박주의’ 자신이 속한 사회에 애정을 가지고 적극적으로 참여하며, 자연을 파괴하지 않고 생태적으로 살아가는 사람. 서혜영, 전광진 씨가 귀농 후 3년 동안의 시골 생활을 이야기할 때 힘주어 말한 대목도 그것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봄이네 가마을 사람들과 섞여 공동체 삶을 체험하고 노동의 본래 의미를 생각하며 사는 것. 그들이 ‘귀촌’이라는 말을 거부하고 ‘귀농’이라는 말을 고집하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다. ‘귀촌’이라는 말은 왠지 농사를 짓지 않겠다는 말처럼 들려 거북스럽다. 그들은농업만으로 아이를 키우고 생계를 유지할 수 없다는 현실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귀농을 결심한 직후 집보다 논을 먼저 산 것은 반드시 논농사를 지으며 살겠다는 각오였다. “우리는 평당 얼마를 주고 논을 샀지만 실제로 논이 지닌 가치는 돈으로 환산할 수 없어요. 논이 논이 되기까지의 시간을 생각해보세요. 밭은 산비탈을 일궈서도 밭이 되지만 논은 그렇지 않아요. 수십 년간 물을 대고, 다지고 다지고 또 다져서 탄생한 노동 집약의 결과물이죠. 그런데 논이 점점 사라지고 있어요. 그나마 농사를 짓던 어른들도 기력이 달리니까 논을 밭으로 갈아버리죠. 하지만 수십 년에 걸쳐 다져진 논에 중장비가 들어오고 논이 밭이 되면 복구하기가 힘들어요.”

‘논이웃’ 잘 만나면 농사의 절반은 성공! 농사의 ‘농’자도 모르던 봄이네 가족이 덜컥 논부터 사서 첫 농사를 짓던 해, 마을 어른들은 ‘허허’ 웃기도, ‘끌끌’ 혀를 차기도 했다. 육체노동과 자연의 순환에 익숙지 않은 도시 사람들이 첫 농사를 지었으니 그 작태가 오죽했겠는가. 그나마 밀이나 벼를 조금이라도 수확할 수 있었던 건 순전히‘논이웃’을 잘 만났기 때문이다. ‘시골에서는 논이웃이 좋아야 농사가 잘된다’라는 말이 있다. 팔십 평생 농사를 지으며 사신 마을 어른을 ‘논이웃’으로 둔 덕분에 철마다 무슨 일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위기가 닥쳤을 때 어떻게 하면 순리적으로 대처할 수 있는지 등을 차근차근 배워나갈 수 있었다. 그러면서 어른들에게 배운 또 하나의 가르침은 ‘농사일 앞에 단언을 금하라’는 것이다. “마을의 어떤 어른도 농사일을 가르쳐주실 때 ‘어떻게 해라’가 아니라 ‘나는 이렇게 한다’고 말씀하시죠. 가만히 듣고 있으면 그 말 자체가 얼마나 아름다운지 몰라요. 비유도 머리에 쏙쏙 들어오고요.”

지혜가 많은 어른들은 마을에서 벌어지는 공동의 과제를 처리하는 방식도 체계적이고 민주적이다. 가령, 마을에 공동 화장실을 짓기위한 회의가 열렸다고 해보자. 집집마다 한사람씩 참여해 의견을 내고 투표를 통해 결
론을 내는 마을 회의에서 어른들은 자기주장을 고집하거나 독단적인 결단을 내리지 않는다. 오히려 젊은 사람들이 미처 생각하지 못한 핵심적 문제를 짚어내고,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구체적인 방법을 제시한다. 어른
들의 입을 통해 나온 말은 철저히 경험과 체득에서 우러나온 것이어서 이해가 쉽고 설득력이 높다. 어른들 속에 섞여 생활하면서 교과서에서나 배운 풀뿌리 민주주의 역할놀이 같은 것을 새삼 배운다. 정규 교육을 받고 자란
우리는 습관적으로 머리로 생각하고 배운 대로 행동한다. 하지만 어른들은 자연의 순리대로 인간 생활의 토대가 되는 방법을 가르쳐주신다. 그분들이 살아 계실 때, 그 오래된 지혜를 기록해두는 것. 그 생생한 기록을 책으로 엮어 후손들이 읽을 수 있도록 하는 것. ‘상추쌈출판사’를 지은 것도 모두 그 때문이다.

봄이네 서재이자 마을의 열린 도서관, 그리고 ‘상추쌈출판사’ 봄이네 집 안마당에는 화장실이라고 하기엔 거대하고, 도서관이라고 하기엔 작고 아담한 ‘상추쌈출판사’가 자리 잡고 있다. 두 평 남짓한 공간에 이층으로 꾸민 이 공간은 서해영, 전광진 씨가 그동안 읽고 모은 책을 모아둔 서재이자, 마을 사람들이 자유롭게 책을 빌려갈 수 있는 열린 도서관이며, 마을 공동체의 삶을 기록하는 단행본을 만드는 인문학 출판사다. 그 정체성을 잘 드러내는 ‘상추쌈’이라는 이름을 두고 친구들은 ‘한 번 들으면 평생 잊어버리지 않을 좋은 이름’라고 힘을 실어주었다. 인부를 댈 수도 있었지만 전광진 씨가 직접 설계도를 그리고 집을 지었다. 1층은 재래식 화장실 겸 서가로, 2층은 독서실을 겸한 서가로 꾸몄다. 집 안채에 수세식 화장실이 있지만 굳 이 집 밖에, 그것도 서재 안에 재래식 화장실을 따로 만든 이유는 거름을 만들기 위해서다. 봄이네를 방문한 사람은 알겠지만 이 집에선
‘작은 일’은 안채에서 ‘큰 일’은 바깥채에서 해결해야 한다. 농사짓는데 인분만 한 거름이 없기 때문에 다소 번거롭더라도 그렇게 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봄이네가 상추쌈출판사를 지었을 때, 마을 사람들은 그 정체를 궁금해했다. 하지만 이제는 봄이네 집 앞을 지날 때면 이곳에 들러 읽고 싶은 책을 빌려간다. ‘사서가 없는 도서관’이므로 대여한 책을 공책에 적어둔다. 빠르면 해를 넘기기 전에 상추쌈출판사의 첫 책이 탄생 할지도 모르겠다. 아마도 그 책에는 소박한아나키스트가 모여 사는 마을 공동체의 삶이따스하게 배어 있을 것이다. 그곳은 플라톤이 묘사한 것처럼 “건전하고 절도 있으며 몸을 단련하고 통찰력 있는 사람들이 사는 곳이다. 그들의 생활에 풍기는 향기는 짙은 장미향이나 권태로운 침상에서 풍기는 냄새가아니라, 아침 풀잎의 냄새, 발밑의 민트나 박하의 향기”일 것이다.

(오른쪽) 간식으로 내온 복숭아와 강냉이.

귀농 3년 차 전광진 씨가 공개하는블로그를 활용한 농업일지 쓰기
절기에 맞춰서 무슨 일을 했는가, 적어둡니다 해마다 연말정산을 하지만 할 때마다 새롭듯, 농사일은 한번 지나고 나면 다음해가 되어야 반복학습이 가능하다.자칫하면 귀농해서 10년 20년이 지나도록 해마다 새롭고 낯선 농사일에 허둥댈수 있다. 블로그를 맨 처음 쓰기 시작한 건 ‘작년에 무슨 일을 했는가 기억나지 않는다’라는 이유 때문이었다. 날마다 농사일지라도 적으면 더 바랄 게 없겠지만 스스로 그럴 인간이 되지 못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으므로 블로그를 선택했다. 간단하게라도 ‘무슨 일을 했나, 돈은 얼마나 들었나, 새로 쓰기 시작한 연장이나 기계를 다룰 때 주의할 것은 무언가’ 하는 것들을 적어두면 다음 해에 아주 유용하다.
사진 촬영은 최대한 자제합니다 특히, 농사일에 대한 것은 자세히 찍지 않는다라는게 원칙이다. 노래방 기계 덕에 외워 부르는 노래가 없고, 휴대전화 덕에 식구들 전화번호도 모른다. 사진을 자세히 찍을 수록 ‘나중에 사진으로 보지’ 하는 마음에정작 일터에서는 건성으로 보기 때문. 일하다 말고 사진기를 꺼내 드는 것도 농사일의 리듬을 흐트러뜨리는 일이다. 간단히 그림을 그리는 것이라면 앞으로 해보고 싶은 일이지만 사진은 아니다. 다음에 일할 때 참고자료로 쓰고 싶은 생각이 들면, 그 때는 한 번 더 해보거나 그도 아니면 글을 쓰거나 그림을 그리는 게 낫다.
토박이 어르신 말씀을 그대로 받아 적습니다 농사일을 배우기 시작하면서 놀라운 것 중 하나는, 논주인마다 일하는 방법이 다 다르다는 것이다. 해가 갈수록 논모양새 다른 것하고, 그 논 주인 일하는 스타일 다른 것하고, 그 둘이 서로 맞물려함께 보이기 시작한다. 그렇게 저마다 자기 방식으로 일하는 요령을 알려주시는데, 그게 책에서 읽은 것과는 비교할 수가 없다. 처음에 무슨 말인가 싶던 것도, 호미든 괭이든 손에 들고 논에 들어서면 ‘오호라’ 하는 소리가 절로 나온다. 농사일뿐만 아니라 사람들과 어울려 살아가는 법에 대해서도 무심히 한마디씩 해주시는 데, 그게 결국은 두고두고 곱씹을 말이 된다. 그러니 무슨 말이든 그날그날 들은 대로 적어놓으려고 한다. 녹음기를 쓰는 것은 어떨까도 생각 중이다.
*봄이네 블로그가 궁금하신 분은 haeumj.tistory.com을 방문해보세요.


정세영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10년 9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