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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런공에 사는 로버트 리디코트 씨 부부 친구와 집은 오래될수록 좋다
조각가인 사위와 함께 한국에서 여러 차례 공동 전시회를 연 아티스트 로버트 리디코트 씨. 그가 호주에서도 아름답기로 소문난 울런공에 위치한 30여 년이 넘은 집에 <행복>을 초대했다. 가족의 역사를 보여주듯 딸들의 사진을 진열해놓고, 여행지에서 구입한 컬렉션을 소박하게 전시한 집에서 사랑보다 진한 가족애가 느껴진다.

며칠간의 시드니 다운타운 취재로 호주 사람들의 라이프스타일을 대략 가늠할 수 있었지만 어딘지 성에 차지 않았다. 초원 위 그림 같은 집을 볼 때면 감탄사가 절로 나오다가도 ‘저 집 안은 어떻게 꾸며져 있을까?’라며 호주 사람들의 주거 문화가 궁금해 안달이 났다. 현지 가이드의 말에 의하면 호주 사람들은 한번 정착하면 오랫동안 한집에서 머무르면서 조금씩 고쳐가며 산다고. 호주 스타일의 오래된 집은 어떤 모습일까? 집의 속내가 마냥 궁금했다. 여여한 하늘, 순연한 바람 그리고 그 자연 속에 폭 싸인 듯한 지은 지 30년이 넘은 집. 낡으면 낡은 대로, 칠이 벗겨지면 벗겨진 대로 지긋하게 나이를 먹은 호주 스타일의 이 집에 드디어 취재팀이 초대를 받았다.
가장 호주다운 풍경을 간직한 곳, 울런공 한국에서 활동하는 조각가 최진호 씨의 소개로 찾은 울런공 Wollongong의 집. 호주 원주민 말로 ‘물고기 향연’이라는 뜻인 울런공은 시드니 남쪽으로 약 80Km 떨어진 뉴사우스웨일즈에 있는 해안 도시다. 도시라고 명명했지만 사실 정확하게 말하면 우리나라의 작은 어촌 같은 목가적인 분위기의 마을이라고 하는 게 더 잘 어울린다. 묵직하게 웅크린 한기가 영락없이 가을을 알리는 날씨에 달랑 번지수 하나 적혀 있는 메모를 들고 간 집에는 가을빛이 완연했다. 선한 미소를 머금은 백발의 할아버지가 문을 열었다. 우연찮게 건너온 울런공이라는 작은 도시를 너무 사랑해 이곳에 30여 년이 넘게 둥지를 틀고 있는 울런공의 지킴이, 로버트 리디코트 Robert Liddicoat 씨다. 그는 “남쪽에서 부는 바람이 너무 세서 비가 오면 집 뒤편에 도랑이 만들어질 정도였습니다. 그래서 집 뒤편으로 나무를 많이 심었더니 바람이 잦아들었고, 어느덧 세월이 흘러 그 나무들이 무성해져 이렇게 수목원 같은 집이 되었습니다”라며 자신의 집을 소개했다. 온통 나무로 둘러싸여 입구가 어딘지 좀처럼 찾기 쉽지 않은 이 집은 무엇보다 집 뒤편으로 펼쳐진 너른 정원이 인상적이다. 30여 년 전, 울런공 예술 학교의 교수로 재직하면서 이곳에 둥지를 튼 로버트 리디코트씨 부부는 울런공은 평생 떠날 수 없는 도시라고 단호하게 말한다. 캔버라, 시드니 시내 등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여러 번 거처를 옮겼지만 울런공만큼 자연이 사람을 매료시키는 곳은 없었기 때문이다. 세 개의 산과 광대한 바다가 도시를 둘러싸고, 무엇보다 시드니와 캔버라 등 다른 도시로 관통하는 고속도로가 잘 뚫려 있어 부부는 자식들과 왕래하는 데도 이만한 곳이 없다고 덧붙여 말한다.

(왼쪽) 일흔 살이 넘었지만 여전히 예술에 대한 열정이 넘치는 로버트 리디코트 씨 부부.


1 아늑하게 꾸민 노부부의 서재. 책상도, 액자도 네 귀가 닳아 세월의 더께가 느껴진다. 
2 수십 년간 로버트 리디코트 씨가 그려온 그림으로 가득한 아틀리에. 그 안에 홍콩의 거리도, 서울의 가회동도 있다.



3 부부가 함께 여행을 다니며 수집한 소품들. 

증개축을 거듭하며 지켜온 집 로버트 리디코트 씨는 “우리 집 거실에서 정면으로 보이는 산 풍경 좀 보세요. 얼마나 아름다운가요. 캠블라, 니보, 키아라 세 개의 산이 동시에 보인답니다. 사람들이 내게 작업할 때 영감을 어디에서 어떻게 얻느냐고 묻는데, 저는 별다른 게 없어요. 여기 이 소파에 앉아 차 한잔 마시며 창밖 풍경을 보며 쉬는 게 전부예요”라고 말한다. 집은 두 채로 나뉘어 있는데 나무로 지은 집은 30여 년 전부터 있던 것이고, 그 옆에 벽돌로 지은 집은 도자기 작업을 하는 아내를 위해 10여 년 전 그가 새로 증축한 것이다. 그곳의 1층은 아내를 위한 스튜디오, 2층은 자신의 작업실로 꾸몄다. 젊은 시절 부부에게 집은 그저 여행 중간에 들러 이곳저곳에서 구입한 컬렉션을 풀어놓는 전시장과 같았다. 그러나 차츰 나이가 들어 거동이 불편해져 여행을 많이 하지 않으면서부터 부부는 집의 역할을 다시 고민했다. 여기저기에 뿔뿔이 흩어져 있는 딸들이 한자리에 모일 때, 세상살이에 지친 자식에게 부모가 해줄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은 자연 속에서 안온한 쉼을 안겨주는 집을 내주는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이 집의 컬렉션 1호는 가족사진이다. 아이들의 어릴 적 모습을 담은 액자가 테이블과 벽면을 빼곡하게 채우고 있다. 오랫동안 여행하면서 수집한 진귀한 컬렉션이 많은데도 부부의 가장 소중한 컬렉션은 가족사진과 가족 초상화다.


1 여행지에서 수집한 소품을 집 안 곳곳에 적절하게 배치해놓았다. 
2 부엌 선반에 살림살이를 배치해놓을 때도 색감을 염두에 둔 것이 인상적이다.



3 아이들의 어릴 적 사진, 딸이 거주하는 서울 가회동을 스케치한 그림, 아내의 초상화 등은 부부의 컬렉션 1호다.

한국의 색, 울런공의 색 로버트 리디코트 씨의 사위인 조각가 최진호 씨는 장인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매년 한국에 한 차례씩 오실 때마다 오대산, 남대문, 북촌 한옥마을 등을 저와 함께 여행하는데, 어느 날인가 남대문 시장에서 커다란 파라솔을 사셨어요. 왜 좌판의 할머니들이 봇짐 깔고 장사할 때 치는 오색 빛깔의 커다란 파라솔요. 그걸 호주까지 가지고 가시느라 짐 부칠 때도 여간 힘든 게 아니었거든요. 재작년인가 아이들 데리고 여름휴가차 장인 댁을 찾았는데, 아주 이색적인 풍경에 놀랐어요. 집 뒤편 잔디밭에 그 파라솔을 비스듬히 세워놓고 그 아래에서 두 분이 차도 마시고, 스케치도 하시더라고요. 호주에도 파라솔이 많은데 왜 굳이 그 무거운 걸 구입하셨는지 여쭤봤더니 이런 원색적인 색감은 한국에만 있는 거라고 하시더군요.” 로버트 리디코트 씨의 딸 메리제인이 한국인 남자와 결혼하면서 그는 한국과 깊은 인연을 맺었다. 한국과 호주라는 지리적 거리감, 게다가 문화적 차이는 있지만 장인과 사위가 모두 예술을 하는 이들이 아닌가. 그래서 그들은 마치 아버지와 아들처럼 친해져 예술을 논하고, 예술로 할 수 있는 좋은 일을 함께 찾아냈다.

 
1 색감을 중시하는 로버트 리디코트 씨에게 자연에 둘러싸인 테라스는 또 다른 작업실이자 휴식처다. 정면으로 키아라 산이 보인다.


2 로빈 리디코트 씨의 작품. 생활 자기보다 오브제 같은 도예 작품을 주로 만든다.
3 노부부의 2평 남짓한 소박한 다이닝 룸. 식탁 위에는 한국산 녹차가, 중국산 다기가 놓여 있다.


2006년부터 한국에서 매해 한 차례씩 사위와 함께 ‘Kimchi meets Vegemite(김치가 호주의 전통적인 음식인 베지마잇과 만났다 라는 뜻)’이라는 이름의 공동 전시를 여는 것은 물론, 불우한 환경의 아이들에게 미술 교육을 하는 의미 있는 일에 참여하기도 했다. 평생 ‘색감’에 매료돼 살아온 그에게 한국의 색은 새로운 자극이었다. “언젠가 오대산에 갔다가 깜짝 놀란 기억이 납니다. 호주의 단풍나무는 한국의 그것처럼 색이 다채롭지 않습니다. 초록색, 갈색, 노란색 정도지요. 그런데 한국의 단풍나무는 오렌지색, 붉은색 등 그 색감이 너무 다양해 충격을 받았죠.” 워낙 원색을 이용한 풍경화 작업에 천착한 그이기에 한국은 그의 새로운 작업 대상이 됐다. 그 후 그의 작업은 오대산, 경복궁, 남대문 등으로 이어졌다. 점묘법으로 아름다운 색을 표현하는 로버트 리디코트 씨는 색감을 볼 때 작업의 흥이 돋워지는 것은 물론 젊어지는 기분까지 든단다. 아내 로빈 리디코트 Robyn Liddicoat 씨는 이런 남편을 곁에서 지켜보며 자연스레 예술가의 길을 함께 걸었다. 막연히 남편처럼 싶다는 생각으로 시작한 도자기 공예. 1700년대 이슬람에서 나뭇잎 그린 것을 보고 영감을 물병에서 모티프를 얻은 티포트 등 여행지에서 얻은 영감을 접목한 특이한 작품이 많다. 마치 부식된 듯한 기법을 이용해 만든 도자기는 세월의 더께가 내려앉은 이 집에 썩 잘 어울린다. 자식들이 결혼이나 유학 등으로 부모 곁을 떠날 때 혹은 연말 즈음 온 가족이 한자리에 모일 때 며칠 동안 심혈을 기울여 완성한 그림과 도자기를 선물로 건네는 부부. 오늘도 노부부는 언제고 찾아올 자식들을 위해 정원의 잡초를 뽑고, 삐걱거리는 계단을 고친다. “내 아이들아, 언제든 안식이 필요할 때면 내 집에서 아니 우리의 집에서 쉬었다 가거라. 부부는 나지막이 되뇐다.” www.zeemo.net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10년 8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