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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질랜드에서 들려주는 허브 이야기 잠 못 이루는 밤을 위한 조언
피곤해도 잠을 푹 자지 못해 괴로워하는 사람이 늘고 있다. 수면을 방해하는 여러 가지 요인을 살펴보고 허브, 식 습관, 생활 습관 등 불면증을 개선하기 위한 방법을 알아보자.

불안, 초조 등 심리적 불안이 원인인 불면증에 도움을 주는 밸러리안

뉴질랜드에 있는 나의 허브 숍을 찾는 손님 중에 ‘소화’ 다음으로 문제가 많은 경우가 ‘불면증’이다. 하루에 최소한 한두 명은 꼭 잠을 제대로 못 자는 고통을 호소한다. 연령이나 성별로 보면 갱년기 여성이 제일 많고 그다음으로 중년 남성이며 상대적으로 젊은 층보다는 중·장년층과 노년층이 많다.
이들은 대체로 의사가 처방한 수면제에 부작용을 경험했거나 건강상 그것이 좋지 않다고 느끼는 사람들이다. 실제 의사가 처방하는 수면제는 효과가 빠르고 강력하다. 그런데 문제는 잠을 자도 잔 것 같지 않으며 갈수록 투여량을 높여야만 효과가 있는 중독에 빠진다는 데 있다. 미국의 유명 가수인 마이클 잭슨도 수면제 투여 문제로 죽은 것을 보면 수면제가 지닌 민감성을 쉽게 공감할 수 있다.
수면제를 먹고 자면 왜 자도 잔 것 같지 않을까? 그것은 수면제를 먹고 잘 경우에는 REM(Rapid Eye Movement)이라고 하는 수면 단계가 생략되기 때문이다. 사람의 수면은 대개 두세 시간 단위로 깊은 수면 단계와 얕은 수면 단계 그리고 동공이 빠르게 움직이는 REM 단계의 사이클을 그리는데, 이 REM 단계에서 사람은 꿈을 꾸며 정신적인 피로감을 해소한다. 잠을 자면서 꿈을 꾸는 것은 매우 중요한 과정이다. 사람은 꿈을 꾸면서 정신적으로 불필요한 여러 가지 잡스러운 기억을 지우는데, 이렇게 잡스러운 기억을 처리해야 머리가 개운하고 정신이 맑아진다. 그런데 수면제를 복용하면 이 단계가 생략된 채 그냥 깊은 수면으로 빠져든다. 따라서 수면제를 먹고 자면 잠은 쉽게 들지만 자고 나도 개운한 느낌 없이 정신이 멍한 것이다.

허브를 통해 수면 문제를 해결하려는 사람들은 부작용 없이 자연스럽게 잠자기를 원한다. 하지만 허브도 잠을 못 이루는 근본 원인과 상관없이 편하고 자연스럽게 잠들게 해주지는 못한다. 수면에 문제가 있는 경우에는 항상 그 이면에 있는 근본 원인을 정확히 찾아내야 제대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불면증은 그 자체가 병이라기보다 어떤 문제로 인해 나타나는 일종의 증상이기 때문이다. 보통 불면증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뉘는데 하나는 잠드는 자체가 힘든 경우고 다른 하나는 잠을 지속적으로 유지하지 못하는 경우, 즉 두세 시간 자다가 잠이 깨고 한번 깨어나면 다시 잠들기 어려운 경우를 말한다.
이러한 불면증의 원인은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다. 후텁지근한 날씨, 여행으로 잠자리가 바뀌는 등의 환경 변화 때문일 수도 있고 불안, 초조, 우울증 등 정신적 스트레스가 원인일 수도 있다. 또는 알코올이나 카페인의 지나친 섭취, 기타 약물 복용의 부작용이 원인일 수도 있으며, 특정 비타민이나 미네랄 등 영양소의 부족이나 세로토닌 serotonin과 같은 신경 전달 물질의 불균형에서 그 원인을 찾을 수도 있다. 이밖에도 근육 경련이나 염증 등으로 인한 고통 때문에 잠을 못 자는 경우도 있고, 갱년기 여성처럼 호르몬 문제에 기인한 것일 수도 있다.

또한 수면을 계속 유지하지 못하는 불면증의 원인으로 저혈당증, 즉 수면 중 혈당치가 떨어지는 경우를 꼽을 수 있다. 인간의 뇌는 글루코스 glucose, 즉 당분을 주요 에너지로 사용하는데, 보통 저녁 식사 이후 다음 날 아침까지 장시간 동안 외부로부터 당을 공급받지 않은 채 버텨야 한다. 주로 이 시간에 인간은 수면을 취하게 되는데 식사를 하지 않고도 이 시간을 문제없이 보낼 수 있는 것은 간에서 저장 당분을 공급해 혈당을 일정하게 유지해주기 때문이다. 그런데 간 기능에 문제가 있을 경우 혈당이 일정하게 유지되지 못해 뇌가 안정적 수면 상태를 지속시키지 못하는 것이다.
애초에 잠드는 것이 어려운 전형적인 불면증에 좋은 허브로는 패션플라워 Passionflower를 들 수 있다. 패션플라워는 뿌리를 제외한 꽃과 잎, 줄기 등을 모두 사용하며 서양에서는 전통적으로 불안, 초조, 신경 불안정 등에 이용해왔고 과로나 정신적 염려 등으로 잠을 못 자는 경우에도 사용해왔다. 잠을 지속적으로 유지하지 못하는 경우에 좋은 허브로는 한국에서 감초로 알려진 리쿼러시 Liquorice가 있다. 감초는 주로 뿌리를 쓰는 데 옛말에 ‘약방의 감초’라는 말이 있듯 한약 처방에서 감초는 매우 흔하게 사용된다. 그것은 감초가 지닌 단맛이 약의 쓴맛을 보완해주기 때문인데, 서양 허브 처방에서도 약의 맛을 돋우기 위해 감초를 첨가하는 경우가 많다. 감초가 수면 유지에 효과가 있는 것은 아마도 혈당 조절에 좋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단, 서양 허브학에서는 고혈압인 사람에게는 감초를 사용하지 않는다.

신경 안정 효과가 있는 홉스

불면증 개선을 위해 허브를 처방할 때는 반드시 그 원인이 무엇인지 찾아내고 그에 맞는 허브를 함께 배합하는 것이 기본이다. 예를 들면 불안, 초조감이 심할 경우에는 카바 Kava나 바코파 Bacopa와 같은 허브를 추가하고, 근육 경련이 심할 때는 크램바크 Cramp Bark를, 관절염 등으로 고통이 심하면 보스웰리아 Boswellia나 데블스 클로 Devil’s Claw를 함께 사용한다. 갱년기 증상으로 인한 불면증인 경우는 세이지 Sage, 와일드 얌 Wild Yam, 블랙 코호시 Black Cohosh 등을 함께 써야 효과가 있다. 이런 다양한 경우에 대해서는 다음에 기회가 있으면 살펴 보기로 하겠다.
불면증의 근본 원인이 무엇이든 일반적으로 서양 허브학에서는 수면을 도와주는 효능을 서더티브 sedative, 즉 신경 안정 효능이라고 한다. 이런 효능이 있는 허브로는 앞서 말한 패션플라워 외에 캘리포니아 포피 California Poppy, 자메이카 도그우드 Jamaica Dogwood, 멕시칸 밸러리안 Mexican Valerian, 밸러리안 Valerian, 홉스 Hops 등을 꼽을 수 있다. 이 중에서 캘리포니아 포피와 자메이카 도그우드는 주로 신경통처럼 신경 기관의 통증으로 잠을 못 자는 경우에 더욱 적합한 허브이고, 멕시칸 밸러리안과 밸러리안은 불안, 초조 등 심리적 불안이 원인일 경우 더욱 효과가 있다. 허브 숍을 찾는 손님 중에 고교생 딸을 둔 엄마가 있는데 딸이 시험 때만 되면 심리적 스트레스로 잠을 제대로 못 잔다고 호소해 밸러리안 농축액을 먹였더니 효과가 좋다며 시험 때만 되면 이를 찾는다. 홉스는 신경이 너무 긴장해 잠을 못 자는 경우에 적합한데, 전통적으로 홉스를 말려서 베개 속에 넣어 베고 자면 그 향이 수면을 도와준다(실제 냄새를 맡아보면 별로 향기롭지는 않다). 이들 허브와 관련해 주의할 점은 자메이카 도그우드는 임신부가 사용해서는 안 되며, 홉스는 우울증이 있는 사람이나 유방암 환자는 피해야 한다. 한국에서도 쉽게 구할 수 있는 캐머마일도 신경 안정 효과가 있으므로 저녁 식사 후 캐머마일 차를 한 잔 마시면 숙면에 도움이 된다.

불면증 해결을 위해서 허브 외에 숙면에 도움을 주는 여러 가지 영양소를 섭취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대표적인 영양소는 비타민 B와 B₃, 마그네슘으로 모두 수면과 직접 관련 있는 신경 전달 물질인 세로토닌 생성에 주요한 역할을 한다. 세로토닌 결핍은 주로 불안, 초조 등으로 인한 불면증을 유발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또 갱년기 여성의 경우에는 칼슘과 마그네슘의 균형 있는 섭취가 중요한데, 이는 골다공증 예방과 불면증 개선에 모두 필요하다. 마지막으로 어린아이 불면증에는 생선 오일(오메가 3)이 도움이 되므로 활용하면 좋다.

글을 쓴 최성웅 씨(swchoi80@hanmail.net)는 한때 <행복이 가득한 집> 기자와 <워킹우먼> 편집장 등을 역임하며 변화무쌍하게 살았다. 도시 생활에 지치고 자연이 그리웠던 그는 현재 뉴질랜드에서 최대한 느리게 살며 메디컬 허벌리스트로 활동하고 있다. 뉴질랜드 메디컬 허벌리스트 협회 정식 회원이며 클리닉을 겸한 허브 숍 ‘The Herbal Shop & Clinic’을 운영하고 있는 그는 시간이 날 때마다 집 근처 강가의 산책길을 거닐며 마음 비우는 일을 즐긴다.

이화선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10년 8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