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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연보다 더 기까운 공동체 가족] 뉴욕 주의 생태 공동체 이타카 에코빌리지 노 임팩트 맨'이 사는 세상
핏줄로 묶여 모든 걸 ‘무조건’ 함께 해야 하는 혈연 집단이 아니라 ‘필요한 만큼만’ 함께 하는 ‘따로 또 같이’ 가족이 공동체 가족입니다. 혈연의 한계를 넘어 의식주 생활과 가사 노동, 여가 문화를 공유하는 공동체 마을에서 우리 가족의 미래를 엿보고 싶습니다. 자신과 타인을 똑같이 존중하고 배려하는 공동체 가족의 이야기입니다.


지구에도, 자연에도, 사람에게도 ‘영향력 제로’인 인간으로 살고 싶다면 이타카 에코빌리지 주민들의 삶에 귀 기울여보라. 세상 어느 것에도 나쁜 영향을 끼치지 않으며 지속 가능한 삶을 살기 위해 모인 사람들. 뉴욕 북부에 위치한 생태 공동체 이타카 에코빌리지는 ‘노 임팩트 맨’이 사는 세상이다.


1 아담하고 평화로운 이타카 에코빌리지.


2 텃밭에서 농작물을 캐낸 마을 주민.

뉴욕 주 북쪽에 위치한 핑거 레이크 Finger Lakes 지역은 하늘에서 내려다보면 마치 진흙에 찍은 듯한 거대한 손 모양을 하고 있다. 손바닥처럼 생긴 온타리오 호에서 길쭉한 손가락 모양 호수들이 남쪽으로 뻗어 있고, 그 호수들 사이에 위치한 가파른 산들이 무성한 숲을 이룬다. 1만 년 전, 두께 3.2km에 달하는 빙하에 의해 형성된 이 지역은 자연과 문명이 조화를 이룬 생태 지역 이타카를 향해 뻗어 있다. 이타카에 상주하는 인구는 3만 명, 인근에 위치한 대학교 학생만 해도 2만 4천 명이 넘는다. 이 지역이 세계적으로 유명해진 시기는 1990년대 후반으로 생태 공동체 ‘이타카 에코빌리지 Ithaca Eco-village’가 조성되면서부터다. 미국의 유명한 라이프스타일 매거진 <오가닉 스타일>은 2003년 10월호에서 이타카 에코빌리지를 ‘북동부에서 가장 건강한 도시’라고 지목하며 “코넬 대학과 이타카 대학의 학생과 교수진, 포도주 양조업자, 유기농 농장주, 자연보호 운동가, 예술가 등이 각자의 개성을 살려 조화를 이루고 있는 마을. 이곳에서는 연극, 정치, 예술 축제가 한데 어우러진 공동체가 실현되고 있다”고 평가했다.
전 세계에는 이미 수만 곳이 넘는 생태 공동체가 존재한다. 경쟁적으로 자원을 소비하며 지구를 망치는 삶 대신 인간에게 주어진 안락한 자연 속에서 지속 가능한 삶을 살겠다고 다짐한 사람들의 세상. 이른바 ‘노 임팩트 맨 No Impact Man’이 사는 곳이다. 그중에서 가장 모범적인 사례로 꼽히는 곳이 바로 핑거 레이크의 이타카 에코빌리지다. 1998년 세계 주거상 최종 후보지에도 오른 이 마을은 놀랍게도 경제력이 없던 싱글 맘 리즈 워커에 의해 조성되었다. 남편과 이혼하고 혼자 아들을 키우며 도심 속에서 외로운 나날을 보내던 그는 아들이 무심코 던진 한마디에 역사에 길이 남을 ‘거사’를 벌이게 되었다.
어릴 때부터 유난히 집 밖에서 놀기를 좋아한 리즈의 아들 대니얼은 ‘자연의 소년’이라는 별명을 얻을 정도로 숲과 동물을 사랑했다. 그러던 어느 날, 학교에 갔던 아들이 눈물 자국이 말라붙은 얼굴로 돌아와 이렇게 말했다. “엄마, 동물들이 멸종하는 건 모두 사람들 때문이에요. 동물들이 불쌍해요. 나는 차라리 사람들이 멸종하고 동물들이 살아남았으면 좋겠어요.” 생태학 수업 시간에 빠른 속도로 멸종해가는 동물에 관해 배운 아이가 그 사실에 놀라 울음을 터뜨렸다. 리즈는 그런 아들을 보며 인간이 지구에 존재하는 하나의 종으로 살아남으려면 더 이상 환경 파괴적인 삶을 살아선 안 된다는 깨우침을 얻었다.
리즈 워커가 ‘아들의 바람’을 이루기 위해 실천한 일은 생태 공동체를 만드는 것. 오랜 학습 끝에 그가 선택한 마을은 코넬 대학이 위치한 이타카 지역에서 2.5km 떨어진 웨스트 힐이다. 웨스트 힐은 주변 경치가 아름답고 토양이 비옥하며 완만한 평야지대여서 집을 짓기 위해 나무를 베어낼 필요도 없는 친환경 지역이라는 점이 그의 선택에 확신을 주었다. 장소를 결정한 다음, 그는 미국 전역에 있는 2백여 곳의 생태 공동체를 방문해 각종 토론회를 열고, 지역 교육자, 종교인, 환경 운동가, 언론인 등을 만나 여러 가지 일을 도모했다. 복잡한 일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토지 구입 비용부터 마을을 조성하는 데 드는 자금을 모으는 일, 마을을 어떤 방향으로 꾸밀 것인지 정하는 일, 마을에서 함께 살아갈 주민 그룹을 선정하는 일 등 그가 책임질 것투성이였다. 사실 리즈는 이타카 에코빌리지 조성 과정 중 몇 번이고 이 일을 포기하려고 했다. 하지만 그때마다 아들을 생각했고, 장장 13년이라는 오랜 세월에 걸쳐 5백여 명의 주민들로 구성된 온전한 생태 마을이 탄생하게 되었다.


3 마을 여성들의 폐경을 축하하는 전통 의식.


4 공동 노동을 하면서 마음이 뿌듯한 마을 사람들.

모든 커뮤니케이션은 이메일로! 이타카 에코빌리지 안에는 삶을 단순하고 소박하게 만드는 최적의 시스템이 마련돼 있다. 이타카의 어른들은 관리팀, 야외 활동팀, 재정팀, 요리팀, 설거지팀, 커먼하우스 청소팀 등으로 나눠 일주일에 2~4시간씩 자원봉사 활동을 한다. 공동의 일이 있으므로 사람들은 오해와 충돌 없이 원활하게 소통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해야 했다. 집집마다 돌아다니며 얼굴을 보고 대화를 나누거나 전화로 소통하다 보니 때로 오해가 생기거나 때로 얼굴을 붉히는 일도 생겼다. 그래서 생각해낸 것이 ‘이메일 커뮤니케이션’이다. 마을 사람들에게 공지 사항이 있을 땐 ‘어나운스 리스트 announce list’를 만들어 단체 메일을 보낸다. 가령, 장을 보러 가거나 은행 업무를 봐야 할 때 마을 사람들과 시간을 정해 함께 움직인다. 오후에 볼일을 보러 나갈 거라면 오전 10시쯤 어나운스 리스트를 보내 사람을 모은다. 메일을 보내고 나면 1시간 안에 볼일이 있는 사람들에게 속속 회신이 온다. 누가 차를 가져갈 것인지, 돌아오는 시간은 언제인지 등의 세부 사항도 이메일로 교류한다. 서면으로 소통을 하다 보니 서로 예의를 갖추고, 감정이 섞이지 않아 오해나 충돌도 한결 사라졌다. 또한 유인물이 줄고, 전화비도 절약됐으며 교통비가 몇 배 절감되는 건 두말할 나위가 없다.

주민의 75%가 마을 내에서 파트타임으로 일하는 셈 이타카 에코빌리지에서는 마을 사람들끼리 ‘재능 나눔’을 실천하기 때문에 주민 모두가 마을에서 파트타임으로 일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마을 내에서 실제로 조사한 결과, 75% 이상이 재능 나눔을 실천하고 있다고. 이곳에 사는 사람들의 직업은 보육사, 환경 교육가, 농부, 그래픽 아티스트, 친환경 건축가, 대체의학 전문의, 프로그래머, 작가 등으로 다양하다. 그렇다 보니 서로서로 도움을 주고받을 일이 많다. 예를 들어 컴퓨터 생명공학자인 A씨는 새로운 회사를 설립할 준비를 하고 있어 로고와 명함을 만들어줄 사람이 필요하다. A씨는 옆집에 사는 그래픽 디자이너 B씨에게 명함과 로고 제작을 부탁했다. 명함과 로고 디자인을 무료로 제공받는 대신 A씨는 B씨에게 눈의 피로를 덜 수 있는 ‘생명공학적 의료 상담’을 해주었다. B씨의 친구이자 눈의 피로가 심각한 과학 작가 C씨도 A씨에게 무료 컨설팅을 받았다. 그 답례로 C씨는 A씨의 회사에서 만드는 소책자의 원고를 무료로 검토해주었다. 서로가 서로에게 재능을 나누어주는 데 소요되는 시간은 거의 비슷하다. 재능을 나누는 것이지만 마을에서만큼은 재능이 곧 화폐이기 때문에 서로에게 피해가 가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 하지만 무엇보다 의미 있는 일은 이웃이 어떤 일을 하고 사는지 알게 되고, 그것을 공유하면서 주민들 간의 유대 관계가 더욱 돈독해진다는 것이다.

친환경 건축 양식으로 지은 ‘그린 하우스’ 여린 갈대가 바람에 몸을 흔드는 잔잔한 호숫가 옆으로 단정하고 소박하게 지은 집들이 이웃하는 풍경. 이타카 에코빌리지의 주거 단지는 ‘그린 디자인’을 원칙으로 한다. 그린 디자인이란 말 그대로 자연을 훼손하지 않는 친환경 건축 양식을 뜻한다. 집을 짓는 데 사용한 재료는 물론, 냉난방 방식까지 에너지를 최대한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방법을 선택했다. 개별 주거 공간은 최대한 콤팩트하게, 단체 공간은 위치나 구조 면에서 최대한 효율적으로! 몇 가지 예를 들어 설명하면 이렇다. 첫째, 가옥을 오밀조밀하게 지어서 ‘물리적 발자국 physical footprint’을 줄이도록 노력했다. 둘째, 공동으로 사용하는 ‘커먼하우스’에 대식당, 응접실, 손님방, 아이들의 놀이방, 공동 세탁소, 작업 공간 등을 마련해 공간 효율을 높였다. 셋째, 모든 주택을 남향으로 지어 햇볕을 많이 받도록 했으며, 각 주택의 지붕에는 태양열 발전기를 설치해 그 에너지로 난방이 가능하게 했다. 넷째, 단열 기능이 있는 지붕을 만들어 여름에는 시원하게, 겨울에는 따뜻하게 지낼 수 있도록 했다. 두 채가 이웃하는 복식 가옥은 외부 벽 하나를 공유하도록 지어 건물 표면적을 줄이고 냉난방 비용을 절약했다. 다섯째, 건축 자재와 마감재를 환경친화적인 자재로 사용했다. 이 마을에서 사용하는 ‘열 회수 환기장치 heat recovery ventilator’는 이중 벽을 설치하고 그 속에 신문지를 재활용한 셀룰로오스 단열재를 채워 다 쓴 열까지 재활용할 수 있도록 만든 장치다.

토양을 비옥하게 만드는 영구적 농법 ‘퍼머컬처’ 이타카 에코빌리지에선 공동 텃밭을 가꾼다. 정원과 남쪽으로 난 울타리에는 포도와 키위, 콩뿐만 아니라 각종 덩굴식물이 자라고 있다. 마을 사람들은 농사를 지을 때 ‘퍼머컬처 permaculture’ 정신에 입각한다. 퍼머컬처란 permanent와 agriculture의 합성어로 ‘영구적인 농업’을 의미한다. 오스트레일리아의 생태학자 빌 모리슨이 주창한 퍼머컬처의 핵심은 땅을 살리고, 인간을 살리고, 이웃을 살리는 것이다. 퍼머컬처의 대표적인 경작법 ‘시트 멀칭 sheet mulching’을 그 예로 들 수 있다. 시트 멀칭은 다양한 재료로 구성된 물질을 토양을 덮듯이 까는 방법이다. 이 물질들은 화학 분해 작용을 일으켜 토양을 더욱 비옥하고 부스러지기 쉬운 상태로 만든다. 비옥한 토양이야말로 인간에게 꼭 필요한 것이다. 이타카 에코빌리지의 집을 지을 당시만 해도 이 지역 땅은 곡괭이 없이는 도저히 파지 못할 정도로 딱딱한 빙하 같았다. 이런 상황에서 시트 멀칭이 큰 도움이 됐다. 시트 멀칭은 꽤 복잡한 과정을 거친다. 우선 멀칭을 위해 마련한 재료를 여러 겹 땅에 깐다. 그다음 토양 첨가제로 사용하는 녹사(green sand)를 뿌리고, 그 위에 골판지를 깐다. 지렁이는 골판지를 매우 좋아해서 그곳에 집을 짓는다. 골판지 안에는 자연스럽게 수많은 지렁이 터널이 생긴다. 골판지 위에 퇴비를 덮고 정원에서 사용하는 뿌리 덮개용 물질을 뿌린 다음, 골판지에 구멍을 뚫어 다년생 식물을 심는다. 이 방법을 활용하면 정원 손질도 훨씬 간편해지고 토질도 좋아진다.


1 이타카 사람들은 집 짓기 같은 대공사도 외부 인력을 쓰지 않고 자체적으로 해결한다.


2 일주일에 한 번 마을 사람들은 커먼하우스에 모여 식사를 함께 한다.

일주일에 한 번 다 같이 모여 음식을 나누고 수다를 떤다 요리를 좋아하는 리즈 워커는 공동체 모임에서 요리팀을 맡고 있다. 요리팀은 공동체 중에서 가장 막중한 책임을 지고 있다. 짧은 시간에 여러 명이 먹을 수 있는 요리를 해내야 하고, 식이요법이나 건강 상태 때문에 주의해야 할 음식이 있는 마을 주민을 고려해 식단을 짜야 하기 때문이다. 그는 보통 일주일 전부터 식단을 만들어 게시판에 붙인다. “오늘의 요리는 ‘리즈의 유명한 두부튀김’, 감자 샐러드, 얇게 썬 토마토와 오이입니다.” 그의 요리를 맛보고 싶다면 게시판에 ‘출석 서명’을 하면 된다. 만약 80명이 서명을 했다면 리즈는 꼼짝없이 80명분의 요리를 만들어야 한다. 우선 공동 텃밭에서 토마토를 종류별로 딴다. 작은 것, 새빨간 것, 덩굴째 달린 것. 사람들의 까다로운 취향을 만족시키려면 재료도 다양해야 한다. 붉은 고추와 풋고추도 따고, 셀러리와 양파, 감자도 준비한다. 채식주의자인 데이비드를 위해 특별히 개발한 샐러드드레싱도 준비한다. 사람들에게 인기가 좋은 두부튀김을 완성한 후 정확히 오후 6시가 되면 마을에서 종이 울린다. 식사를 하기 위해 모인 사람들은 식당에서 커다란 원을 만든다. 그리고 리즈가 크게 말한다. “잠시 침묵의 시간을 가집시다. 심호흡을 몇 번 하고 긴장을 푸세요. 그리고 옆 사람의 손을 잡고 우리는 공동체임을 느껴보세요.” 기도가 끝나면 맛있게 저녁 식사를 즐긴다.

아픔과 상처마저 나누는 가족 이상의 가족 주어진 삶에 만족하며 ‘노 임팩트 맨’으로 살아가는 이타카 에코빌리지 사람들에게도 위기의 순간은 있다. 서로 돕고 나누는 삶의 방식에 익숙한 사람들은 외부로부터 전해지는 스트레스에 대한 면역력이 현저히 떨어져 있다. 죽을 때까지 함께 살 줄 안 사람들이 별거를 하거나 이혼을 하고, 좁은 마을이다 보니 사적인 아픔조차 공유의 대상이 되다 보니 고통이 배가된다. 하지만 이타카 사람들은 상대를 아끼는 마음만 있다면 인생의 큰 고비도 지혜롭게 극복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마을 여성들은 어느새 서로의 폐경을 기념하는 특별 의식을 함께 하게 되었고, 암으로 죽음을 앞둔 이웃을 위해 최후의 순간까지 축복해주는 여유를 갖게 되었다. 뉴욕이라는 대도시에서 불과 4시간 거리에 지구 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유토피아가 존재한다. 지금 당장 그들처럼 살 순 없지만, 마음속에 유토피아를 간직하는 것만으로도 큰 위안이 된다. 언젠가는 우리도 그들처럼 ‘노 임팩트 맨’으로 살아갈 날이 오지 않을까.

최혜경, 정세영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10년 8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