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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의 고향을 찾아서_영동] 와인코리아 윤병태 대표의 ‘샤토 마니’ 코리안 테루아가 녹아 있는 대한민국 와인의 성지
국내 ‘최초’이자 우리나라 ‘유일’의 와이너리인 충북 영동의 와인코리아. 포도 재배부터 와인 양조에 이르기까지 모든 과정을 직접 생산한다. 명실공히 국산 와인의 자존심인 ‘샤토 마니 Château Mani’의 매혹적인 향기를 찾아 영동으로 떠난다.

폐교를 개조해 외국의 샤토 같은 분위기를 자아내는 와인코리아 건물.

토요일 오전 9시, 서울역 2층 여행센터 앞에는 와인 열차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모여 있다. 외국인 그룹도 눈에 띈다. 매주 화요일과 토요일에 운행되는 서울발 영동행 새마을호는 와인 테마 열차다. 기차 여행의 낭만과 와이너리 투어를 결합한 프로그램이다. 로맨틱한 카페처럼 꾸며진 객차(레드 와인, 화이트 와인 등의 이름이 붙은) 내에서 진행되는 와인 테이스팅과 레크리에이션에 동참하며 웃고 즐기다 보니 어느새 2시간 20분이 훌쩍 지나 영동역에 도착한다. 외관을 커다란 포도 그림으로 장식한 버스로 옮겨 탄 후 10분가량 이동하니 마치 동화 속 성처럼 지어진 와인코리아 건물이 모습을 드러낸다.

(왼쪽) 어둡고 서늘한 지하 숙성고에는 1백여 개의 오크통 속에서 100% 국산 샤토 마니 와인이 세월과 함께 천천히 숙성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유일하게 포도 재배부터 와인 양조까지 직접 생산하는 시스템을 갖춘 와인코리아. 법인명은 와인코리아(주)농업회사법인이며, 윤병태 대표이사를 비롯한 영동군 내 포도 재배 농민 6백여 명이 주주다. 와인코리아의 시작은 1994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산악지대인 탓에 마늘, 콩, 깨 등 밭작물로 근근이 생계를 잇던 가난한 마을이 포도 재배에 성공한 후 부촌으로 변모한 게 그즈음이다. 하지만 너도 나도 포도를 재배하다 보니 과잉 생산으로 인해 포도 값이 바닥까지 떨어졌고, 결국 효자 작물이던 포도가 애물단지로 전락했다. 당시 윤병태 씨는 국내 굴지의 대기업 총수 수행비서를 지내다 낙향해, 영동 땅 60만 평에 터를 잡고 기업체 연수원과 호텔을 활발히 운영하며 그야말로 돈을 긁어모으고 있었다.
“포도 과잉 생산을 어떻게 극복할까 고민하던 중 도지사를 만난 자리에서 제가 영동 포도로 술을 빚어 젊은이를 공략하면 어떻겠냐고 제안을 했어요. 그 말 한마디가 계기가 돼 종잣돈 5천만 원과 저장고를 짓는 데 7천만 원을 지원받아 와인 사업을 시작하게 됐습니다. 토종 와인 생산에 도전했다 처음에는 두말할 것도 없이 실패했어요. 그 다음엔 큰 항아리 6백 개를 모아 설탕 붓고 막걸리에 포도를 버무려 술을 담갔어요. 이 술로 포도축제 기간에 시음 이벤트를 했는데 그때 문제가 터졌어요. 효모란 놈이 36~37℃를 가장 좋아하는데, 그게 딱 인체 온도잖아요. 그 술을 마신 사람들 뱃속에서 효모가 포도당을 만나 엄청나게 자연 발효하기 시작한 겁니다. 수백 명이 배탈, 설사, 구토로 기절하거나 쓰러지는데, 정말이지 머릿속이 하얘졌습니다. 저의 무지가 결국 엄청난 사고를 불렀지요.”

잘나가던 사업을 접고 와인에 투신했지만 성공이 어디 그렇게 쉽게 얻어지는 것이던가? 지금 생각하면 얼굴 빨개질 정도로 창피한 에피소드도 있다. 와인 테이스팅에서 향을 설명할 때면 복숭아, 자두, 초콜릿, 커피부터 장미, 버터, 가죽, 심어지어는 고양이 오줌까지 별별 단어가 다 등장한다. 그 미묘한 숙성법의 차이를 모른 윤 대표는 포도주를 숙성하는 항아리별로 각기 다른 향의 원재료를 넣고 와인에 그 향이 은은하게 배기를 기다리며 실험했다. 심지어 ‘고양이 오줌 향’을 위해서는…(그 다음 문장은 상상에 맡긴다)!
아찔한 경험과 숱한 실패 이후, 그는 와인 강국 프랑스로 와인을 배우러 떠났다. 다른 이의 5분의 1 정도밖에 안 되는 임금을 받고 프랑스 와인 공장에서 기거하며 일했다. 말이 안 통해 그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포도 수확, 발효 탱크 청소 같은 궂은일뿐이었다. 프랑스인들은 그가 영어로 질문하면 다 알아들으면서도 프랑스어로만 대답할 정도로 심보가 고약했다. 뭐 하나 친절하게 가르쳐주는 법이 없었지만 그렇다고 거기서 포기할 그는 더더욱 아니었다. 그는 8시간 작업 분량을 2~3시간에 끝마친 후 여러 공정을 두루 경험하며 어깨 너머로 와인 제조 공정을 익혔다. 한 와이너리당 짧게는 한 달 길게는 세 달 정도씩 머물며 3년 동안 몸으로 체득한 와인 제조 프로세스를 바탕으로 한국에 돌아오자마자 공장을 설립했다. 드디어 우리 땅에서 키운 포도로 순수 국산 와인을 만들게 된 것이다.

(오른쪽) 15년간 한국산 와인 생산에만 전년해온 와인코리아 윤병태 대표이사.

그렇게 와인에 미쳐 산 지 어언 15년. 밑 빠진 독에 물이 아니라 술을 퍼부으며 와인 불모지에서 힘겹게 와인 공장을 운영해왔다. 그러다 긴 어둠의 터널 끝에서 빛이 보이기 시작한 것은 불과 5년 전. 윤 대표는 “이른 아침부터 사람들이 이곳을 찾아와서 보고, 체험하고, 와인을 사들고 돌아가는 모습에서 한 줄기 희망을 보았다”고 회상한다. 현재는 평균 주중 3백~4백 명, 주말에는 6백~7백 명이 와인코리아를 다녀간다. 그의 오뚜기 같은 도전 정신이 이루어낸 결과다.
입담 좋은 윤병태 대표의 안내로 와인코리아 투어를 시작했다. 건물 1층에는 와인코리아에서 생산하는 샤토 마니 와인 판매장과 치즈, 초콜릿, 커피 등을 판매하는 기프트 숍, 그리고 개인 와인 셀러가 있다. 개인적으로 와인 셀러를 대여해 본인이 소장한 와인을 보관할 수 있는 곳. 방송 녹화 차 이곳에 와서 와인 만들기를 체험했다는 한 개그우먼의 이름표가 눈에 띈다. 중앙 입구 오른편에는 와인 제조 공장이 자리 잡고 있다. 2층에 있는 와인 갤러리는 그동안 생산한 샤토 마니 와인과 레이블을 전시하고, 와인 제조 과정을 비롯한 다양한 와인 정보를 접할 수 있는 공간이다. 1층으로 다시 내려오니 달큼한 포도향이 유혹적이다. 포도향을 따라 발길을 옮기자 풍성한 포도나무 줄기가 마치 지붕처럼 천장을 덮은 와인 족욕탕에 몇몇이 둘러앉아 혹은 홀로 족욕을 즐기고 있다. 42~45℃로 따끈하게 데운 와인 탕에 발을 담근 채 서브되는 와인을 한잔 마시며 20분 정도 앉아 있으니 피로가 풀리면서 온몸이 개운해지는 느낌이다. 그 옆 체험관에는 계절에 따라 와인 만들기 또는 천연 화장품 만들기를 체험하는 프로그램이 마련돼 있다. 족욕을 끝낸 후 복도를 따라 내려가면 어둡고 서늘한 오크 숙성실이 나온다. 보물 창고처럼 커다란 오크통 1백여 개가 줄 맞춰 놓여 있는 모습이 프랑스의 유명 샤토에서 보던 풍경 그대로다. 이곳은 아메리카 오크통을 직수입해 사용한다.

(왼쪽) 와인과 치즈, 초콜릿 등을 구입할 수 있는 기프트 숍. 와인 시음도 가능하다. 
(오른쪽) 샤토 마니 와인과 이탤리언 음식을 즐길 수 있는 야외 레스토랑 ‘펠리체’.


오늘 와이너리 투어의 하이라이트는 버스로 10분 정도 이동해야 닿는 자연 토굴. 영동읍 매천리 일원에는 일제시대에 탄약고로 쓰이다가, 6·25 전쟁 때는 피난처로 쓰이던 폭과 높이 3~4m, 길이는 75m가량인 토굴 90여 개가 있다. 이 토굴은 일 년 내내 12~14℃도, 습도 80% 정도를 유지해 와인 숙성을 위한 최적의 환경을 제공한다. 현재 와인코리아의 발효 저장고로 활용되고 있는데, 총 5만여 병의 와인이 뿌연 알코올 곰팡이를 뒤집어쓴 채 순리대로 천천히 여물고 있다.
와인코리아 인근 15만 평에는 양조용 포도 품종인 모스카토, 카베르네 소비뇽, 메를로, 샤르도네 등이 마니산의 기운을 머금고 자라고 있다. 포도송이에 종이 봉투를 씌워 최소한의 약을 뿌리고(4회 이하), 밭고랑에 은박지를 깔아 일조량을 늘린다. 샤토 마니는 40곳의 포도 농가와의 계약 재배를하고 있으며, 11개 읍면의 5백60곳 농가로부터 포도를 납품받아 숙성한 다음 와인을 생산한다. 샤토 마니의 올해 매출 목표는 60억 원. 얼마 전에는 인도네시아의 한 업체와 포도 재배 및 와인 제조 기술 이전을 조건으로 매년 30만 병(약 48억 원 상당)의 와인을 수출하기로 협약했다. 그 외에도 프랑스, 미국, 일본, 중국에 와인을 수출하고 있다. 잠재적 가능성이 큰 시장인 인도네시아와 중국은 단 음식을 즐기는 습성 때문에 스위트 와인에 대한 수요가 특히 높다.

(왼쪽) 샤토 마니의 대표 와인. 샤르도네 품종의 화이트 와인, 카베르네 소비뇽 품종의 드라이 레드, 캠벨 품종의 스위트 레드. 오른쪽 영동의 토굴은 와인 숙성을 위한 최적의 조건을 갖춰 와인의 발효 저장고로 활용되고 있다.

“샤토 마니는 일반 대중을 타깃으로 합니다. 내수용이나 수출용이나 판매되는 제품의 60~70%가 달콤하고 부드러운 와인이에요. 국산 와인이 외국 와인과 경쟁하기에는 현실적으로 무리가 따릅니다. 이미 외국 와인에 입맛이 길든 와인 전문가나 마니아들에게는 좋은 점수를 받기 어렵거든요. 일반인들에게 우리나라에서는 우리네 자연의 향을 품고 있는 독특한 와인이 탄생할 수 있다는 걸 알리고 싶습니다. 좋고 나쁘고가 아니라, 우리 테루아가 담긴 진짜 대한민국 와인 말입니다. 모든 블렌딩을 제가 직접 하기 때문에 블렌딩하기 한 달 전부터 술도 끊고 컨디션 유지에 들어갑니다.”
와인코리아가 성장하는데 결정적인 전환점이 된 것은 ‘여섯 명의 천사’(윤 대표의 표현 그대로)가 디자인한 마스터즈 콜렉션 때문이다. 뉴칼레도니아에서 만난 건축가 곽데오도르의 아이디어에서 시작된 작업. 2008년에는 곽데오도르의 12가지 콜렉션을, 2009년에는 인테리어 디자이너이자 건축가인 최시영, 조각가 오상욱, 공간디자이너 김영옥, 조형예술가 권순범 등 여섯 작가의 컬렉션을 특별 제작해 레이블마다 블렌딩 비율을 달리 해서 차별화 전략을 썼다. 와인과 예술을 결합하자 반응이 뜨거웠다. 지난 6월 말에는 영동 포도ㆍ와인 홍보대사로 히딩크를 영입하면서 그의 이름을 딴 와인 콜렉션을 론칭했다.

윤 대표가 요즘 가장 관심을 쏟는 것은 ‘와인 스파’다. 프랑스 보르도 지역의 와이너리 ‘샤토 스미스 오 라피트 Châeau Smith Haux Lafite’에서 운영하는 아름답고 평화로운 호텔&스파 ‘레 수르스 드 코달리 Les Source de Caudalie’를 롤 모델로 삼아 펜션과 와인 스파를 짓는 대형 프로젝트다. “미술관에 가면 좋은 작품을 감상하는 순간 마음이 차분해지고 경건한 느낌이 들게 마련입니다. 저는 이곳이 그런 공간이었으면 좋겠어요. 와인을 예술적 가치로 봐주셨으면 합니다. 갤러리 같은 공간에서 마음의 쉼을 얻고, 와인 스파에서 육체의 쉼도 얻는…. 그게 바로 저의 꿈입니다.”
그 꿈을 향해 또 한 번 도전을 선포한 와인코리아 윤병태 대표. 내일 지구가 멸망해도 그는 오늘 한 그루의 포도나무를 심을 것이다.

(오른쪽) 영동의 토굴은 와인 숙성을 위한 최적의 조건을 갖춰 와인의 발효 저장고로 활용되고 있다.


주소 충북 영동군 영동읍 주곡리 44-1 문의 043-744-3211, www.winekr.co.kr
와인코리아 견학 시간은 월~토, 오전 9시~오후 6시. 포도 따기, 족욕 체험, 공장 투어, 시음 등을 묶은 투어 패키지 투어는 매일 4회(10시, 11시, 2시, 4시).


와인 트레인 타고 샤토 마니 여행하기
매주 화요일・토요일 서울역↔영동역(영등포, 수원, 천안, 대전역 정차)를 오가는 특별 새마을호 열차.
오전 9시 25분 서울역 출발, 오후 9시 9분 서울역에 도착하는 당일치기 코스다. 열차 왕복 비용, 와인코리아
가든에 있는 이탤리언 레스토랑 ‘펠리체’에서의 중식, 간식, 차량비, 체험 비용 외 레크리에이션,
행사 비용 포함 8만~8만 5천 원. 예약 문의 02-454-2244150

구선숙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10년 8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