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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촌 사람들의 자연주의 삶]프랑스 남프랑스 몽토방의 미셸과 비비안 부부
피레네 산맥 근처의 몽토방에서 평화로운 노년을 보내고 있는 미셸과 비비안 부부. 20여 년 전, 1830년에 지은 폐가를 사들여 고치고 다듬은 부부에게 이 집은 그야말로 보물이다. 직접 나무를 잘라 만든 가구에 고서적과 동전, 메달 같은 골동품 컬렉션까지, 시간의 더께가 내려앉은 이곳에서 ‘집’에 대한 생각을 곧추게 된다.

(왼쪽) 19세기에 지은 집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꼼꼼하게 관리한 미셸과 비비안 부부의 집. 전면에 보이는 의자는 고철을 사다가 비비안이 직접 만든 정원 벤치다.
(오른쪽) 여름이면 마당의 체리 나무에는 온 식구가 먹고도 남을 만큼의 체리가 열린다. 미셸이 수확하는 체리는 비비안의 자랑인 잼이 되어 파리의 아들 집까지 간다고.



1 과감하게 빨간색을 칠한 복도에는 르네상스풍 가구를 놓았다.
2 다양한 빈티지 병으로 장식한 부엌.


가족의 이야기와 추억이 담겨야 진짜 집 하늘이 맑은 날이면 아스라이 피레네 산맥이 보이고, 흙으로 만든 기와가 붉은빛으로 물드는 도시. 나무와 숲이 내뿜는 초록빛으로 마음까지 물이 들 것만 같은 이 도시, 몽토방은 화가 앵그르 Ingres가 태어난 곳이다. 또 피레네 산맥을 지척에 둔 이 지방은 위로는 보르도를, 아래로는 툴루즈를 두고 있어 프랑스에서 가장 살기 좋은 동네로 손꼽힌다. 남프랑스의 햇살과 피레네 산맥 너머 스페인의 낭만적인 감성, 서쪽으로 펼쳐진 바다의 풍요로움까지 더해져 살기에 이만한 곳이 없을 것 같다.
앵그르 뮤지엄에서 멀지 않은 곳에 달콤한 체리 꽃으로 둘러싸인 아름다운 3층 집이 있다. 드넓은 정원에는 세이지, 바질, 로즈메리, 레몬그라스 등의 허브가 마치 들풀처럼 여기저기 자라고 있다. 이 지방의 특산물이기도 한 라벤더 향기가 코를 찌른다. 노란 타일이 깔린 테라스에는 정결하게 손질한 하얀 커튼과 꽃무늬 쿠션이 얌전히 놓여 있다. 오랜 시간을 두고 손질한 티가 역력한 이 집의 주인은 37년을 해로한 노부부, 미셸과 비비안이다.
이들이 이 집을 구입한 건 결혼한 지 16년이 되던 해였다. 1830년에 지은 이 집은 제대로 건사하지 않아 무너지기 직전이었던 터라 헐값에 구입할 수 있었다. 아무것도 없는 맨바닥에 매트리스만 놓고 이곳에서 생활을 시작했다. 인테리어 디자이너에게 의뢰하기보다는 가족의 손으로 집을 완성해나가는 게 프랑스인의 특징이기도 하다. 그래서인지 프랑스에서는 ‘인테리어 전문점’에서도 완성품이 아닌 타일이나 나무 같은 재료와 공구를 판다. 미셸과 비비안은 주말마다 두 아들을 데리고 바닥부터 천장까지 직접 고치고 만들어나갔다. 인테리어에 남달리 관심이 많아 요즘도 서너 권이 넘는 인테리어 전문 잡지를 구독하는 비비안이 인테리어 디자이너 노릇을 했다. 그래서인지 이 3층 집에는 구석구석 이야기가 스며 있다. “이 벽난로는 벼룩시장에서 발견한 건데 집까지 가지고 오느라 얼마나 애를 썼는지 몰라요. 차에 실을 수가 없어서 인부를 불러야 했지요. 그래도 18세기에 만든 진짜 돌 벽난로를 구하다니 운이 좋았던 거지요.” 겨울이면 나무를 때 온 집 안에 훈기를 불어넣어주는 벽난롯가에는 비비안이 직접 재봉질을 해 만든 쿠션이 얌전히 놓여 있다. 벽난로에 기대어 앉을 수 있는 쿠션 자리는 아마 겨울이면 이 집의 최고 명당일 테다.


3 아들들이 어린 시절 만든 곤충 표본과 미셸의 도자기 컬렉션으로 장식한 코지 코너.
4 빨간 가죽으로 대담하게 마감한 안락의자와 프로방스풍 장식장이 잘 어울린다.



5 경쾌한 민트 그린 컬러로 지중해다운 느낌을 살린 큰아들 방. 바닥에는 프로방스풍 타일을 깔았다.

중세 유럽 스타일과 18세기의 루이 15세 스타일, 프로방스 스타일이 골고루 조화를 이룬 가구는 모두 단단한 호두나무로 만든 것들이다. 섬세한 조각이 예사롭지 않은 가구를 찾아낸 이야기도 흥미롭다. “미셸이 어린 시절을 보낸 시골 마을이 여기서 멀지 않아요. 그 마을 근처에 한 농부가 살고 계세요. 어린 시절부터 미셸을 잘 아는 그분은 손재주가 보통이 아니라서 집 한쪽에 공방을 차려두고 가구를 만들어 팔아요. 배운 것도 아닌데 말이죠. 파리의 아르데코 박물관에서 옛 가구의 도면을 구해다가 그야말로 옛날 방식 그대로 처음부터 끝까지 손으로 직접 만든 가구예요.”
그러나 이 집에는 그 농부의 가구만 있는 것은 아니다. 붙박이장 형태의 옷장과 책으로 가득 찬 책장은 미셸이 직접 나무를 잘라 만들었다. 두 아들의 방에 놓여 있는 책상은 모두 미셸의 조부모님이 쓰시던 옛 물건이다. 주말마다 열리는 벼룩시장이나 창고 세일을 찾아다니며 구한 가구들도 있다. 그야말로 놓인 한 점 한 점마다 가족의 이야기와 추억이 담긴 가구들인 것이다.
미셸은 골동품 컬렉터라 할 만큼 다양한 수집품을 가지고 있다. 그중에서도 그가 가장 좋아하는 것은 고서적과 옛날 동전 그리고 메달이다. 거실 한편을 가득 채운 미셸의 고서적 중에는 17세기에 인쇄된 초판본도 많다. 지금은 그 가격을 따질 수 없을 만큼 비싼 것이 되었지만 젊은 시절만 해도 돈을 여투어두었다가 살 만한 가격이었다고 한다. 그렇게 사 모은 소품을 어느 것 하나 허투루 다루지 않고 소중하게 간직하고 정리하는 작업만으로도 미셸의 하루는 바쁘다. 고서적을 구하러 다니면서 덤으로 따라온 명사들의 편지 컬렉션도 미셸의 자랑이다. 커버를 씌워 정성스럽게 보관하고 있는 편지의 주인 중에는 나폴레옹부터 에밀 졸라에 이르기까지, 우리가 그 이름을 익히 알고 있는 사람도 꽤 많다. 미셸의 컬렉션 외에도 집에는 벽마다 그림과 데생이 가득하다. 가격보다는 그저 작품이 좋아 하나씩 구입한 것들이다. 벼룩시장을 다니며 구한 도자기는 생활 자기로도 쓰고, 장식품으로도 쓴다. 이제는 다 자라 독립한 아이들이 선물한 작품도 많다. 이 접시는 우리 둘째가 열 살 때 직접 고른 거예요. 지금은 멀리 살고 있지만 볼 때마다 그 아이가 떠오르죠. 가족이 하나하나 사 모은 소품이 집 안 여기저기를 장식하고 있어 가족이 모일 때마다 화제가 끊이지 않는다.

6 로마 시대의 동전부터 19세기 동전까지, 미셸은 동전 수집가이기도 하다.


1 빨간 트알 드 주이 toile de joy 텍스타일로 경쾌하게 장식한 작은아들의 방에는 빨간색과 어울리는 회색 페인트를 칠한 붙박이 책장을 만들었다.


2 화사한 병아리 같은 노란색이 햇빛을 가득 머금은 거실. 마당에서 꺾어 온 꽃은 거실을 꾸미는 데 없어서는 안 될 소재.

노부부라고 하지만 이들은 화재를 전문으로 하는 손해 사정 법인을 경영하는 전문가다. 지금도 아침 6시면 일어나 일을 시작하는 평범한 생활인이다. 그 와중에도 비비안은 집 안 관리는 물론 작은 일까지 손수 챙긴다. 체리나 딸기부터 루바브, 토마토까지 이 집에는 언제나 7종류 이상의 잼이 쟁여져 있다. 비비안이 철마다 과일을 직접 따 모으거나 사들여서 만든 잼은 우리네 ‘엄마표 김치’처럼 택배 차량을 타고 아들들의 집까지 배달된다. 젊을 때 간호사로 일한 비비안은 식사 준비에도 많은 신경을 기울인다. 되도록 병원 신세를 덜 지고 건강하게 살기 위해서는 식사만큼 중요한 것이 없다고 믿기 때문이다. 아침 식사엔 꼭 몇 알의 아몬드를 곁들이고, 점심으로는 주로 오븐에 구운 흰 살 생선에 샐러드를 곁들여 먹고, 저녁은 샐러드와 채소 수프만으로 아주 가볍게 먹는다. 채소까지 키울 여력이 없어 사다 먹지만 모두 이 지방에서 재배된 농산물이다.


3 가족이 오침을 즐기는 테라스에는 자잘한 꽃무늬 쿠션들이 가득하다.
4 부부만의 간단한 식사는 부엌에 딸린 간이식당에서 한다.


또 다른 가족 별장을 만들며 이 와중에도 비비안은 요즘 또 다른 시골집을 수리할 생각에 마음이 부풀어 있다. 미셸이 어린 시절 살던 집은 원래 미셸의 조부모님이 살던 곳이다. 보통 조부모님이 돌아가시면 시골집을 파는 우리와는 달리 이들은 주말마다 들러 조금씩 집을 고쳐나갔다. 시어머니가 쓰던 방은 고스란히 남겨두고 부엌과 화장실 등 다른 생활 공간은 모두 직접 고쳤다. 얼마 전부터는 다락으로 쓰던 2층을 부부 침실로 바꾸는 계획을 세웠다. 그래서 요즘은 시간이 날 때마다 인테리어 서적을 보면서 스크랩을 하고 도면을 그리느라 시간 가는 줄 모르게 살고 있다. 나이가 들수록 자연이 좋아진다는 이 부부는 아들들이 내려오지 않아도 주말이면 으레 시골집에서 보낸다. 마치 여행을 떠나듯 먹을 것을 준비해 가서 여유롭게 지내다 오는 것이다.
이번 주말에는 파리에 살고 있는 큰아들이 두 손녀를 데리고 가족 별장에 내려오기로 했다. 자식들이 온다고 하면 먹을 것을 준비하는 우리네 어머니처럼 먹을거리도 챙기고 손녀들이 가지고 놀 장난감도 미리 옮겨둔다. 프랑스에서는 시부모님의 집을 방문한 며느리가 부엌에서 바쁘게 종종걸음을 치는 법이 없다. 자식을 손님맞이하듯 대하기 때문에 식사 준비부터 집 안 정리 정돈까지 모두 비비안의 몫이다. 점심 식사 후에는 각자 의자를 가지고 야외로 나가 늘어지게 낮잠을 잔다. 두 아들은 어릴 적부터 취미이던 경비행기를 날리거나 창고에 보관된 망원경을 꺼내 손질한다. 밤마다 별을 보는 것은 온 가족의 즐거움이다. 해 질 무렵에는 온 가족이 숲을 산책한다. 지천에 널린 꽃을 따서 집 안을 장식하고 손녀들의 꽃목걸이도 만들어준다.
햇살과 나무와 흙의 냄새가 가족의 머리 위에 맴돌고 있다. 비비안의 얼굴에는 미소가 떠오른다. 아마도 가족이 곁에 있고, 추억과 마음을 담은 집이 그 자리에 있기 때문일 것이다.

5 집에서 딴 체리와 야외에서 채집한 과일, 근처의 농부들이 직접 키운 채소가 이들의 건강 비결이다.

최혜경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10년 7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