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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배령 세쌍둥이 엄마 이하영 씨 산속에서 깨달은 자연주의 살림법
세쌍둥이와 강아지 세 마리, 노루와 물까치가 어울려 노는 곰배령 산자락. 매연과 소음 가득한 도시에서 벗어나 딱 일주일만 무공해 인간으로 살고 싶다면 이곳을 찾아라. 산골 생활 17년의 내공으로 자연주의 살림법에 도가 튼 이하영 씨가 무공해 밥상과 유기농 생활용품을 만드는 비법까지 전수해줄 것이다.


산에서 얻은 약초는 캔 시기와 장소 등을 기록해두는 것이 좋다. 이하영 씨는 짬이 날 때마다 말려둔 약재를 분류해둔다.

귀농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시골에 내려가 제2의 삶을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인기를 모으고 있다. TV 다큐멘터리에도 소개된 바 있는 ‘곰배령 세쌍둥이 엄마’ 이하영 씨는 이제 준연예인이나 다름없다. 본인 스스로도 ‘얼굴이 알려져 어딜 가나 사람들이 알아본다’는 농담을 던질 정도니까. 그는 얼마 전 17년간의 자연생활을 되 돌아보는 의미에서 <여기는 곰배령, 꽃비가 내립니다>를 출간했다. 국문과 출신답게 곰배령의 사계절과 그곳에서 만난 인연에 대한 에피소드를 문학적인 필치로 그려낸 에세이집. 그의 책에 매료돼 곰배령을 찾아간 날은 오랜 기다림 끝에 봄이 찾아온 4월의 어느 날이었다.
그런데 서울에서 세 시간을 달려 강원도 인제군 곰배령 설피밭을 찾아갔을 때 당혹감을 감출 수 없었다. 사방 천지가 눈으로 뒤덮여 있었고 등골이 오싹할 정도로 한기가 서려 있는 마을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내 ‘대한민국에 이런 별천지가 있었구나’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신비한 아름다움을 간직한 곳이기도 했다. 설피밭에서도 유난히 외떨어진 펜션 ‘풀꽃세상’은 도시 생활을 모두 잊고 딱 일주일쯤 자연에 파묻혀 지내고 싶을 때 도피처로 삼기에 그만인 곳이다.
곰이 배를 하늘로 향하고 누워 있는 모습이라고 해서 이름 붙은 곰배령은 강원도 인제군에 위치한 우리나라 최고의 오지다. 국내 최대의 야생화와 산나물 군락지로, 특히 설피밭은 한겨울에 눈이 너무 많이 내려 설피(눈 신발)가 없으면 꼼짝을 못 한다고 해서 그렇게 부른다.
이하영 씨가 이곳에 정착한 건 지금으로부터 17년 전. 이화여대 국문과를 졸업하고 산을 좋아하는 남자와 결혼해 세쌍둥이를 출산한 직후였다. 어릴 때부터 산에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해온 그는 그렇게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귀농을 실천했다. 곰배령에 내려온 첫해에는 심각한 고민에 빠지기도 했다. 1년 중 절반은 겨울인 심심산골에서 세쌍둥이를 키우며 자연에 적응하는게 결코 녹록한 일은 아니기 때문이다. 몇 해의 혹독한 겨울이 지나고 산골 생활도 안정기에 접어들 무렵 그는 민박집을 짓기로 결심했다. 캐나다산 통나무로 지은, 천장이 높은 안채에는 세쌍둥이와 함께 살 보금자리를 마련했고, 그 옆으로 황토 자재로 마감한 아늑한 펜션 풀꽃세상을 지었다. 거대한 숲을 배경으로 그림처럼 펼쳐진 지상낙원. 그곳은 ‘풀꽃세상’이라는 이름과 아주 잘 어울렸다. 풀꽃세상에서 가장 매력적인 점은 주인장 이하영 씨의 자연주의 살림법이다. 그가 <행복> 독자들을 위해 실생활에 응용할 수 있는 살림법 몇 가지를 공개했다.

(왼쪽) 뽕잎 한 줌 넣어 지은 잡곡밥은 향이 좋고, 황태 육수에 재래 된장을 넣고 끓인 된장국은 둘이 먹다 하나가 죽어도 모를 정도다. 입맛이 없는 날엔 복분자 효소와 고추장으로 무친 민들레나물, 돌나물과 양파가 아삭아삭 씹히는 물김치로 입맛을 돋운다.

자연주의 밥상의 핵심은 ‘요리에 아무 짓도 안 하기!’

방송 출연이 잦아지면서 풀꽃세상을 찾는 사람이 점점 더 많아졌고, 손님을 위해 맛있는 밥을 짓고 제철 농산물로 찬을 만들면서 이하영 씨의 손맛도 점점 깊어졌다. 둘이 먹다 하나가 죽어도 모를 그의 밥상을 받으면 이 유쾌한 아줌마의 ‘얼렁뚱땅 요리법’이 더욱 궁금해진다. 양념통부터 밥그릇, 숟가락까지 두서없이 분주한 그의 부엌을 처음 봤을 땐 ‘과연 이 아줌마한테 밥을 얻어 먹을 수 있을까’하는 의심마저 들었다. 그런데 한 시간도 안 돼 뚝딱 차려낸 밥상엔 오랜 산 생활에서 무르익은 그만의 요리 비법이 숨어 있었다.
그가 주장하는 자연주의 요리법의 포인트는 다름 아닌 ‘음식에 아무 짓도 안 하기!’ 인터뷰를 핑계로 부엌에 숨어든 나는 찬찬히 그의 손놀림을 살펴봤다. ‘그냥 된장찌개에 묵은 김치 꺼내서 고슬고슬한 밥과 함께 먹자’던 이하영 씨는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점심 밥상을 차리기 시작했다. 재래시장에서 산 옹기 항아리에서 쌀을 꺼내 설설 씻더니 눈대중으로 물을 맞추고 뽕잎 한 움큼을 휙 뿌려 전기밥솥의 취사 버튼을 누른다. 아침에 뒤뜰에서 캔 민들레를 뿌리 끝 부분만 살짝 칼로 잘라내 흐르는 물에 철철 씻은 다음, 마지막 헹구는 물에 식초 몇 방울 떨어뜨려 싱싱함을 살려낸다. 새콤달콤한 맛이 입맛을 돋우는 민들레나물은 고추장과 복분자 효소만 넣어 가볍게 무쳐낸 것.

그가 차려준 밥상에서 가장 별미로 꼽는 것은 된장국이다. 신선한 황태 대여섯 마리를 넣고 곤 육수에 직접 담근 된장을 풀어 자글자글 끓이다가 호박과 무를 도톰하게 썰어 넣고 어슷하게 썬 파와 두부를 고명처럼 얹는다. 보기엔 아주 평범한 된장국이지만 그 맛은 황태의 시원함과 된장의 구수함이 어우러져 환상적이다. 여기에 고로쇠 수액을 기본으로 하고 돌나물과 양파를 넣어 만든 걸쭉한 물김치를 곁들이면 밥숟갈을 내려놓기 전 시원하게 갈증을 해소할 수 있다. 고기 한 점 없이 소박하게 차려낸 ‘이하영표 청정 밥상’. 그의 요리는 그의 삶처럼 물 흐르듯 자연스러웠고 청정 지역 곰배령의 기운처럼 담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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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성초, 당귀, 우엉, 다시마 등을 말려 갈아두면 음식은 물론 화장품 만드는 데에도 활용할 수 있다.
2 산에서 겨울을 나려면 립밤이 필수. 벌꿀 밀랍으로 만든 립밤은 입가를 촉촉하게 보호해준다.
3 이하영 씨가 그린 수묵화에 “아침 햇빛 녹여 연꽃 향기 만드네”라는 구절이 적혀 있다. 숲 속에서의 사색이 만들어낸 아름다운 문장이다.

자연에서 얻은 재료로 오가닉 화장품 만들기
성공적인 귀농 생활을 하려면 시골에서도 공부의 끈을 놓지 말아야 한다. 이하영 씨의 설명에 따르면 각 지역 군청에서는 산 생활에 도움을 주는 강좌가 많이 열린다. 또 해당 강좌를 듣고 나면 자격증 시험을 볼 수 있다. 이 과정은 자연에서 얻을 수 있는 약초와 벌꿀, 꽃을 비롯한 식물 등을 실생활에 효과적으로 응용할 수 있는 정보를 제공할 뿐만 아니라 귀농한 사람들에게 전문성을 장려하는 좋은 제도다. 이하영 씨 또한 약용식물 관리사, 숲 해설가, 다도 사범 등의 자격증을 가지고 있다. 대부분의 자격 시험이 실생활에선 무용지물이지만 시골에선 정반대인 셈이다.
깊은 산 속의 계곡 주변에서 주로 피는 산목련(함박꽃)은 매년 5~6월쯤 봉오리를 틔우는데, 꽃이 피기 직전에 꽃봉오리를 따서 그늘에 말린 후 공기가 통하지 않는 용기에 담아 보관하면 훌륭한 차가 된다. 눈부시게 청아한 산목련을 뜨거운 물에 두 송이만 띄워 우려낸 차는 비염과 축농증에 효험이 있고, 비 오는 날 끓여 마시면 가라앉은 기분을 북돋워주는 효과도 있다. 숲 속에서 쉽게 얻을 수 있는 각종 약재는 잘 말려두었다가 가루를 내어 보관하면 음식은 물론 유기농 화장품 재료로도 널리 활용할 수 있다.
이하영 씨는 어성초, 당귀, 계피나무, 솔잎, 삼백초 등을 곱게 갈아 작은 통에 보관해둔다. 나중에 쓰려고 꺼냈을 때 뭐가 뭔지 헷갈릴 수 있으므로 해당 약초의 이름을 적은 스티커를 뚜껑에 붙여둔다. 벌꿀을 재배하고 남은 밀랍은 하나도 버리지 않고 화장품이나 관절 연고를 만드는 데 사용한다. 겨울이 긴 산 생활을 하다 보면 입술이 건조해지기 때문에 립밤이 꼭 필요하다. 밀랍, 시어버터, 올리브유를 섞어 간단하게 만들 수 있는 립밥 역시 여러 통에 나눠 담아 온 가족이 함께 쓴다. 밀랍, 페퍼민트, 아르간 오일 등으로 만든 호랑이 연고 또한 벌레가 많은 산 생활의 필수품. 곤충에 물린 데나 타박상, 찰과상 등에 바르면 즉시 효과를 볼 수 있다.
자연에서 얻은 재료로 건강한 밥상을 차리고 산과 들에서 캐낸 약초와 식물로 생활용품을 만들어 쓰는 지혜. 물 흐르듯 자연과 순환하며 삶을 이끌어가는 그의 모습은 무공해 그 자체였다. 자동차 매연으로 스모그가 잔뜩 낀 날, 컨디션이 바닥까지 떨어져 푹 쉬고 싶은 날, 그렇게 도시 생활이 지겨워지는 날, 아마도 풀꽃세상이 그리워질 것이다. 

1 비 오는 날 산목련 차를 마시면 가라앉았던 기분을 북돋아준다. 
2 이하영 씨가 혹독한 산골 생활을 견딜 수 있었던 건 세쌍둥이 다래, 도희, 나래(왼쪽부터) 때문이었다.


펜션 풀꽃세상 주소 강원도 인제군 기린면 진동리 253-1 문의 033-463-2321
예약 www.sulpi.net

정세영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10년 5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