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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길 따라 떠나는 계절 여행 2009년 슬로시티로 인증받은 경남 하동 여행기
경남 하동은 꽃길과 물길을 따라가는 여정입니다. 섬진강을 따라 꽃길이 펼쳐지고, 남해 바다를 굽어볼 수 있는, 천혜의 절경을 지닌 곳이지요. 2009년 국제슬로시티연맹이 슬로시티로 인증한 아름다운 마을 하동. 정원사 이동협 씨가 경남 하동의 아름다운 꽃길과 물길 감상 정보를 전합니다.


형제봉 능선 길에서 바라본 천년의 정원 무딤이들, 5월이 오면 산에는 분홍 철쭉, 들에는 청보리와 보랏빛 자운영, 길에는 연록의 신엽으로 절정의 풍경을 보여준다.

“강 끝/ 하동에 가서/ 모래 위를 흐르는 물가에 홀로 앉아/ 그대 발밑에서 허물어지는 모래를 보라/ 바람에 나부끼는 강 건너 갈대들이/왜 드디어 그대를 부르는/ 눈부신 손짓이 되어 그대를 일으켜 세우는지.” - 김용택의 <강끝의 노래> 중
시인은 겨울이 오면 섬진강 끝 하동에 가보라고 노래를 했지만 꽃 피는 봄이 오면 거꾸로 길을 따라 강물을 거슬러 올라가기를 권하고 싶습니다. 전북 진안에서 출발해 남도를 굽이굽이 지나 구절양장으로 흘러 내려온 섬진강. 전남 구례읍에서 길을 만나 하구인 하동읍까지 나란히 흐르고, 화개에 이르러서는 쌍계사 계곡에서 내려온 화개천과 만나 비로소 그 외연을 장쾌하게 넓히며 강 끝 하동포구로 흐릅니다. 그 강물의 여정을 따라가는 길이 국도 19호선입니다. 왕복 2차선의 좁은 길에는 심은 지 30년이 넘은 벚나무들이 꽃 터널을 이루고 있습니다. 또 밭과 낮은 산비탈에는 매실, 배, 밤, 감을 재배하는 과수원과 녹차 밭이 연이어 펼쳐져 있지요. 이 길은 3월이 오면 피기 시작하는 산수유에 이어 매화가 강 좌우에 흐드러지게 피고(강 건너 매화로 유명한 광양 다압마을), 4월에는 벚나무 가로수가 화려한 벚꽃 터널을 이루는 데 이어 과수원에 배꽃이 피며, 5월엔 논이랑의 자운영과 산자락의 철쭉꽃, 초여름엔 밤꽃, 그리고 가을엔 대봉감과 차꽃까지… 이른 봄부터 늦가을까지 강을 따라 쉼 없는 꽃 풍경을 감상할 수 있지요. 그래서 하동 사람들은 이 길을 꽃길이라 부르고, 하동읍에서 화개장터까지의 구간을 ‘꽃길 칠십 리’라는 서정적인 이름으로 부르며 사랑하고 있습니다. 이 길은 미술사학자 유홍준 선생이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에서 “이 땅에서 가장 아름다운 길”이라 소개한 곳이기도 합니다. 하동읍에서 화개로 향하는 꽃길에서 푯말을 발견합니다. “섬진강 이대로 영원히 흐르고 싶습니다. 섬진강 그리고 하동”. 강과 꽃길에 대한 하동군민의 애정과 자부심이 진하게 배어납니다. 하지만 유명세로 해마다 꽃구경 철이 되면 길은 심한 교통 체증을 빚고 있습니다. 그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도로를 확장하기 시작했습니다. 다행히 꽃그늘을 만들던 아름드리 벚나무들은 그대로 보존됐지만, 넓어진 도로가 어디 신작로의 추억이 담긴 백년 옛길의 정취를 살릴 수 있겠습니까? 그 꽃길의 마지막 여정과 풍광을 담기 위해 올봄에는 꼭 하동에 가보길 권합니다. 아름다운 꽃길을 감상하기 위한 정보와 요령을 전합니다.


1 해를 안고 서쪽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꽃길 칠십 리. 해 저무는 섬진강과 꽃의 광채로 아득하고 아스라하다. 강을 사이에 두고 왼쪽은 전남 광양시이고 오른쪽은 경남 하동군이다.


2 다압마을 매화꽃 풍경.

하동송림과 하동공원의 아침 하동읍에 위치한 송림과 공원은 길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있습니다. 하동8경 중 백사청송白沙靑松이라 불리는 송림은 숲이 천연기념물로 지정될 정도로 오래되고, 소나무들은 수려하며 청정한 기운으로 가득합니다. 산책과 명상이 어울리는 곳입니다. 바로 옆 섬진강 하구에 물안개가 드리워지는 운수 좋은 아침을 만나면 배병우 사진작가만큼은 아니더라도 그림 같은 소나무 사진 한 장 건질 수도 있습니다. 야트막한 동산인 하동공원도 있습니다. 산이 낮아도 사통팔달이라 멀리 하동포구와 남해바다를 구경할 수 있고 지리산 형제봉 끝 줄기 외둔을 걸쳐 내려오는 섬진강의 유장한 물줄기, 꽃길과 산록을 한꺼번에 볼 수 있는 곳입니다.

강물을 거슬러 올라가야 하는 꽃길 하동읍에서 화개장터에 이르는 섬진강 구간은 강물이 서쪽에서 동쪽으로 흐릅니다. 강물이 태양의 흐름과 반대로 향하니 강물을 거슬러 올라가면 자연스레 역광의 풍광이 눈앞에 나타나지요. 꽃이나 연둣빛 이파리들은 측광이나 역광으로 보는 것이 제격입니다. 섬진강을 거슬러 올라가는 ‘꽃길 칠십 리’는 이러한 광선 조건에 안성맞춤이라 여행자에게 찬란하고 화사한 봄 풍경을 선사합니다. 특히 해 질 녘 섬진강의 반짝이는 강물과 산란하는 꽃의 광채는 아득하고 아스라합니다. 잊고 있던 추억과 시상 詩想을 떠올려보면 어떨까요?


3 복사꽃 핀 하동 포구의 절경. 복사꽃 필 때 하동 포구 마을의 숭어 맛이 가장 좋다.


4 청보리 일렁이는 무딤이들. 들과 산과 마을이 푸른 안개에 서려있는 산시청람山市靑嵐(동양산수 8경 중 제1경)의 풍광이다.

천년의 정원, 무딤이들 8경 원래 강물이 드나드는 저습 지대를 뜻하는 하동군 악양면의 무딤이들(무딤들이라고도 함)은 우리 국토의 정맥인 백두대간의 마지막 지점인 지리산 형제봉과 시루봉, 칠성봉이 삼면을 둘러싸고 있고, 들판 끝에 섬진강이 흐르며 강 건너 백운산 맞은편에 위치한 긴 깔대기형 분지로 면적이 80만 평에 이릅니다. 이 땅은 섬진강 하구의 유일한 거대 들판으로 유사 이래 곡식을 재배해 사람을 먹여 살리며 한 번도 그 용도가 바뀐 적이 없는, 2000년의 역사를 가진 양식의 땅으로, 인간의 농경 중에서도 논농사의 윤작(돌려짓기)이 만들어내는 거대한 캔버스의 8경이 있습니다. 이는 겨울을 인내한 봄의 청보리밭이 1경, 자운영 꽃이 2경, 갈색 보리밭이 3경, 모내기를 위해 80만 평의 논에 물을 담은 색이 4경, 여름 벼의 초록 물결이 5경, 가을의 황금 들판이 6경, 추수 뒤 빈 들판의 무색이 7경, 그리고 은혜로운 눈 풍경을 담은 천년의 정원까지 모두 8경이지요. 이 정원을 감상하기 위해서는 꽃길 위에서 바라봐도 좋고 들길을 걸으면서 봐도 좋습니다. 또 미점마을의 활강장(패러글라이딩)이나 부춘마을의 형제봉 근처 활강장에서 산과 강과 길과 들판이 함께 어우러진 절경을 감상하는 방법도 있습니다.


5 무딤이들을 둘러싼 악양의 30개 마을을 잇는 느린 마을 길을 걸어보기를 권한다. 돌담길에서 만난 동백꽃.

꽃비 내리는 길과 월춘 越春의 밤 벚꽃이 절정을 이루는 4월 초, 꽃길을 차를 타고 여행하는 것은 아이러니한 일입니다. 특히 주말의 경우는 더욱 그러하지요. 싱그러운 봄나들이가 아니라 고생길이 훤하게 보입니다. 24km에 달하는 꽃길은 전국에서 상춘객을 태우고 온 차량으로 주차장을 방불케 하고, 이 거리를 주행하는 데는 족히 한나절은 걸릴 것입니다. 꽃비 내리는 날은 어떨까요? 국도 19호선을 뒤덮은 벚꽃이 섬진강 강바람에 일제히 낙화하며 난분분 휘날리는 꽃비 내리는 날이 있습니다. 아마도 벚꽃이 절정으로 피고 일주일 뒤 즈음이 되겠지요. 비가 내리고 바람이 강하게 부는 날, 벚꽃은 날리고 배꽃은 아지랑이처럼 피어오릅니다. 아름드리 벚꽃 터널에서 ‘월춘장비(쌍라이트, 시인 박남준의 조어)’에 휘날리는 꽃눈과 꽃비를 맞으며 영원히 추억할 수 있는 행운의 봄밤을 만드시길 바랍니다.

* 무딤이들 8경, 꽃 풍경 등에 대한 더 자세한 내용은 꿈꾸는 정원사 이동협 씨의 블로그(blog.chosun.com/ydh208)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황여정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10년 4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