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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의 고향을 찾아서 전남 장흥] 남쪽 바다 김 양식장에서 만난 박인석 씨 자연 그대로 기른 착한 김, 장흥 무산 김 맛 좀 보소
차고 매서운 바람이 부는 겨울 바다. 그 맵싸한 바람을 맞아야 건강하게 자란다는 김을 찾아 전라남도 장흥에 다녀왔다. 혹독한 환경을 좋아하는 김은 그 곁을 지키는 이의 인내심을 시험한다. 더 빨리, 더 많이 기를 수 있는 방법이 있는데도 유혹에 넘어가지 않는 장흥의 어민들, 장흥 무산 無酸 김이 돋보이는 이유는 자연 그대로의 김이기 때문이다.

(왼쪽) 장흥에서 나고 자랐으며 아버지가 김 양식을 하셨지만 본인이 이 길을 걷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는 박인석 씨. 서울에서 직장을 다니다 아버지의 병환 때문에 내려와 김 양식을 시작한 지 15년. 이제 영락없는 바다 사내인 그가 건강하게 잘 자라고 있는 김발을 들어 올리고 있다.
(오른쪽) 2008년 5월 장흥의 어민들이 한마음으로 ‘무산 김’ 양식을 선포 한 뒤 산 처리를 하지 않고 생산하는 장흥 무산 김. 단백질과 칼슘, 무기질이 풍부한 김은 1960~70년대만 해도 귀한 선물 아이템으로 여길 만큼 고급 식품이었다.


물에 씻지도, 푹 익히지도 않고, 살짝 구워만 먹는 김은 어디서 자라고 어떻게 만들어 우리 식탁까지 오는가? 깨끗한 바다에서 양심적으로 키워 청결하게 가공하는 것이 확실한가? 직접 확인하기 위해 장흥행을 결심한 날, 서울에는 기상 관측 이래 가장 많은 눈이 내렸고, 장흥의 깊고 서늘한 바다는 거센 바람으로 뭍 사람의 출입을 막았다.
“내일 새벽이라도 바람 잦아들면 작업 나가야 하니까 삭금진료소 앞에 와서 전화하십시오. 전화 안 받으면 거기서 좀 기다리시고.” 장흥군 회진면 이진목 마을의 박인석 씨. 바람 때문에 며칠째 김 수확을 못해 애태우고 있다는 그에게 취재 협조를 요청하기가 미안했지만 그 먼 거리를 약속 없이 떠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전라남도 장흥의 또 다른 이름은 ‘정남진’이다. 우리나라 지도를 펼쳐놓고 서울 광화문에서 남쪽으로 직선을 그으면 닿는 한반도의 정남쪽 끝자락이기에 이러한 별칭이 붙었다. 박인석 씨가 말한 이진목 마을의 삭금진료소는 광화문에서 399.33km, 고속도로 휴게소에 들르지 않고 정규 속도로만 가도 여섯 시간 가까이 걸리는 곳이다. 정오 즈음에 도착한 삭금진료소 앞바다에는 김 양식 마장(말뚝, 지주라고도 한다)이 빼곡히 들어서 있었고 매서운 바람이 얼굴을 할퀴었다. ‘여기까지 왔는데 김 양식장에 나가보지도 못하겠구나’ 하는 체념도 잠시, 저만치 김 채취선이 항구로 들어온다. 오전 내내 채취한 검은빛 김이 채취선 가운데 산처럼 쌓여 있었다.

파도에 일렁이는 검은 물결처럼 보이는 것은 김이 매달려 자라는 김발이다. 이렇게 바닷속에서 영양분을 먹고 자라다 썰물 때면 햇빛과 바람을 맞아야 갯병(김 엽체의 색이 변하고 시드는 병)도 물리치고 잡풀도 떨어져 나가 맛있는 김이 된다.

CCTV 설치해놓고 서로 감시하며 기른다
우리 식탁에 오르는 김은 서해와 남해에서 양식을 한다. 자연에서 스스로 나고 자라는 김은 없고 김 포자(씨앗)를 김발에 붙여 기르는 양식 김만 있다. 김 양식법은 지주식과 부유식 두 가지로 나뉜다. 마장을 박고 김발을 걸어 양식하는 지주식은 옛날부터 전해온 전통 양식법으로 밀물과 썰물의 차가 큰 곳에서만 가능하다. 지주식으로 양식을 하면 매일 바닷물이 빠져나간 뒤 하루 서너 시간 이상 공기 중에 매달려 있으면서 매서운 바람을 맞고 햇볕을 쬐며 김이 마르고 젖기를 반복한다. 바다 양분을 먹고 자라는 김은 공기 중에 노출될수록 성장 속도가 더디지만 해풍에 단련될수록 맛은 좋아진다. 현재 많은 양식장에서 김을 기르는 방식인 부유식은 김 생산량을 늘리기 위해 지주식을 개량한 것으로 김발을 스티로폼에 매달아 바다에 띄워 양식하는 법이다. 양식하는 내내 바닷속에서 기르기 때문에 김의 성장 속도는 빠르지만, 일반적으로 지주식에 비해 맛이 떨어지고 잡풀이 함께 자란다는 단점이 있다. 그래서 많은 김 양식 어민들은 부유식 재배를 할 때 산 酸 처리를 한다. 산 처리란 바다에 잠겨 있는 김발에 산이 들어간 성분의 약품을 뿌려 파래, 매생이, 감태 등의 잡풀이 김에 붙지 못하게 하는 것으로 농사를 지을 때 제초제나 농약을 뿌리는 것과 비슷한 작업이다. 산 처리를 하면 김을 깨끗하게 기를 수 있을 뿐 아니라 윤기나 색도 좋고 포자도 잘 붙어 생산량이 많고 수확 시기도 빨라진다.

바람 맞고 햇볕 보며 자라야 하는 김을 바닷속에 가둬두는 것도 꺼림칙하지만 ‘산 처리’라는 단어가 내심 마음에 걸렸다. 오래전 일부 영세 어민이 김 양식에 사용할 수 없는 불법 물질, 공업용 염산을 뿌려 문제가 된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이 경우 김에 사용한 염산은 바다에서 모두 씻겨 나가기 때문에 김에는 남지 않지만 바다를 오염시킨다). 김에 산 처리를 하는 것은 바다와 사람 모두에게 안전한가? 정부에서 허가받은, 인체와 바다 환경에 무해한 유기산(정식 명칭은 김활성처리제다)을 쓰면 아무런 문제가 없다. 우리나라는 물론 일본에서도 김을 양식할 때 대부분 산 처리를 한다.
장흥의 김 양식장에서도 지주식보다는 부유식으로 양식하는 어민이 훨씬 더 많다. 그런데 특이한 점은 장흥의 부유식 김은 햇볕을 쬔다는 것이다. 어민들은 3~4일에 한 번씩 배를 타고 김밭에 나가 스티로폼 박스를 위아래로 뒤집어가며 김발을 일정 시간 동안 공기 중에 노출시킨다. 게다가 지주식이든 부유식이든 간에 장흥에서 생산하는 모든 김은 공업용은커녕 유기산 처리도 하지 않는다. 오래도록 그렇게 키워왔고, 그래서 장흥의 바다가 깨끗하단다. 수많은 김 양식 지역 중에서 장흥을 찾은 이유가 여기에 있다.
“장흥은 전통적으로 산 처리를 거의 안했는데 2008년에 ‘무산 無酸 김’ 양식을 선포하고, 어민들끼리 모여서 ‘장흥 무산 김 주식회사’까지 만들었어요. 더 철저하게 관리하기 위해 CCTV까지 설치해두고 서로 감시하며 독려하지요. 산 처리 하지 말고 양심적으로 기르자고요.”
새벽부터 바다에서 일했다는 박인석 씨(작년까지 이진목 마을 어촌 계장이었다)가 부둣가로 돌아왔다. 콧물이 얼어붙을 정도로 추운 날씨지만 배 속 깊은 곳이 뜨끈해 추운 줄 모르겠단다. 오랜 기다림 끝에 올해 처음으로 햇김을 수확했기 때문이다.

지속 가능한 어업을 위한 가치 있는 김
장흥의 김 양식장은 회진면 앞바다에 모여 있다. 바닷속에 박은 마장의 끝이 보일 정도로 맑디맑은 이 바다에서 박인석 씨는 부유식이 아닌 전통 방식 그대로인 지주식을 고집해 김을 양식한다.
지주식 양식은 김발이 공기 중에 떠 있는 시간이 많아 산 처리를 하려 해도 할 수가 없다. 생산량은 산 처리를 한 부유식, 무산으로 기른 부유식, 지주식 순으로 낮아진다. 왜 생산량이 가장 적은 지주식 양식을 고집하는가.
“아버지가 김 양식을 하셨습니다. 우리 이진목 마을은 조수간만의 차가 커서 지주식으로 키워도 김이 잘 자랍니다. 굳이 바꿀 필요가 없어요. 지주식이 옛날 아버지 때부터 해온 방식이고 저도, 이 마을 사람 모두 당연히 그렇게 키워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김 양식은 가을에 시작한다. 10월이면 굴 껍질에 붙어 있는 김 포자를 사다 김발에 붙이고, 바다에 마장을 박고 김발을 건다. 그리고 12월 중순에서 말경이 되면 수확을 시작한다. 처음 채취하는 김은 우리가 ‘돌김’이라고 부르는 약간은 거칠고 도톰한 김이다. 한 번 채취 하고 나면 지주식의 경우 30일, 부유식은 20일이 지나야 다시 채취가 가능하다. 생산 방식에 따라 김이 자라는 속도에 차이가 나기 때문이다. 두 번째 생산하는 김부터는 ‘참김’이 김발에 붙는다. 참김은 시장에서 흔히 재래 김, 김밥 김으로 통용되는 김들인데, 돌김에 참김이 섞인 두 번째 김과 첫 참김에 돌김이 약간 섞인 세 번째 김이 두께나 바삭거림이 적당하고 향이 진해 제일 맛이 좋다.
(왼쪽) 장흥 회진면 앞바다에서 김을 수확하고 있는 어부들. 채취선 가운데의 채취기가 김발을 훑고 지나가며 김을 수확한다
(오른쪽) 야속한 바람 때문에 며칠간 애만 태우다 올해 첫 햇김을 수확하는 날. 채취선에서 올라오는 물 김이 마냥 반갑기만 하다.


“가을에 김발을 걸어두면 추운 겨울 내내 김이 자랍니다. 언제까지 채취가 가능한지는 우리도 알 수가 없어요. 바다가 따뜻해지면 바로 죽어버리니까요. 대략 3월경이면 김 농사가 끝납니다.”
차디찬 겨울 바다에서만 자란다는 김. 김이 자라는 모습을 가까이서 보기 위해 작업선을 타고 김밭으로 나갔다. 작업선은 채취선과 달리 배 위에 아무런 장치도 없다. 이 배는 김발을 실어 나르거나 양식장을 관리하는 데 사용한다. 파도 따라 일렁이는 김발의 물결이 선명하게 보이는 양식장, 그 가운데를 지나는 한 척의 채취선이 한창 작업 중이다. 채취선 위에 설치한 채취기가 김발을 훑으며 수확한 김을 배 중앙으로 모았다. 작업선을 운전하던 박인석 씨가 채취선을 향해 목소리를 높인다. “미안하네! 내가 금방 사진 찍고 합류할 것이야. 잠깐만 수고하시오.”
마장 박기, 김발 걸기, 수확하기 등 김 농사도 여느 농사와 마찬가지로 사람 손이 많이 필요하다. 한적한 어촌이라 일손 구하기가 어려우니 상부상조할밖에. 이진목 마을은 네 가구가 한 조를 이뤄 서로 품앗이한다.
“네 집서 똑같이 김밭을 가꾸고 각 집의 김밭을 돌면서 작업합니다. 그렇게 안 하면 일손이 달려서 일을 할 수가 없어요.”

함께 일하고, 수입이나 사는 모습도 비슷해 가족이나 진배없다는 마을 사람들은 겨울에 김 양식을 하고 봄부터 가을까지는 바다에 나가 생선을 잡는다. 시간이 허락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김 양식만으로는 수입이 턱없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20년 전 아버지가 작업하던 때나 지금이나 김 값이 같아요. 기술이 발달해 생산량이 늘어나긴 했지만 형편이 나아지진 않았죠. 손 많이 가고 생산량 적은 무산 김은 값을 더 처줘야 하는데….”
김 가격이 하향평준화 된 우리나라에서 장흥 무산 김은 일반 김에 비해 가격이 약간 높은 편이다. 장흥군이 무산 김의 우수성을 널리 알리기 위해 텔레비전 광고도 하고 직접 판매는 물론 풀무원과 MOU(협력 협약서)를 체결해 도시에서도 적극적으로 판매하고 있지만, 소비자들은 장흥 무산 김이 아닌 할인 판매하는 저렴한 김을 선택한다. 이유는 많은 소비자들이 기름과 소금을 발라놓은 조미 김을 주로 먹는데, 양념으로 김의 맛과 향을 가려놓은 조미 김은 김의 품질이 잘 느껴지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김 맛을 떠나서라도 장흥 무산 김은 바다와 김에 인위적인 장치를 가장 적게 하는, 지속 가능한 어업을 위해 양심적으로 생산하는 김이기에 그 노력의 대가는 인정받아야 할 것이다.
“우리 김이 얼마나 깨끗한지 하나 따서 맛보십시오.”
박인석 씨가 바다에서 바로 딴 물 김 맛 좀 보라며 김발을 들어 올려준다. 미역보다 가늘고 짧은 물 김이 김발에 척척 널어놓은 듯 매달려 있다. 하나 따서 입에 넣어 씹는데 쫄깃하고 차진 김에서 청정 바다의 향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1 수확한 김은 마른 김 공장으로 운반해 수차례 이물질 분리와 세척 과정을 거친다.
2 이물질 분리 마지막 단계, 초강력 자석으로 눈에 보이지 않는 중금속까지 걸러낸다.
3 장흥에서 가공한 마른 김은 철저한 품질 검사 과정을 거친 뒤에도 사람이 직접 한 장 한 장 넘기며 이물질을 확인한 다음 조미 김으로 가공한다.


박인석 씨의 김이 우리 식탁에 오기까지
장흥군이 ‘무산 김 양식’을 선포한 뒤 장흥에서 양식한 김은 모두 장흥 안에서 마른 김으로 가공한 뒤 다른 지역으로 내보낼 수 있다. 이진목 어촌계의 김은 대부분 장흥군과 MOU를 체결한 풀무원으로 최종 납품하는데, 일단 수확한 물 김은 마른 김 가공업체인 ‘영일수산’으로 운반한다.
그곳에서 깨끗한 바닷물과 민물 순으로 수차례 세척과 이물질 분리 과정을 거친 뒤 잘게 잘라 김발에 떠서 말리면 마른 김이 완성된다. 영일수산은 이물질 분리 과정 중 초강력 자석을 이용해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의 미세한 금속까지 철저히 걸러낸다. “풀무원과 함께 일하기 전에는 중금속 분리까지는 생각 못 했습니다. 자석을 설치하고 거기에 붙은 중금속 가루를 보면서 꼭 필요한 과정이란 것을 깨달았지요.” 영일수산 홍영길 사장의 설명이다. 영일수산에서 가공한 마른 김은 생산지에서 직접 판매하거나 또 다른 풀무원 협력업체인 에스지푸드로 옮겨가고 이곳에서 다시 중금속・이물질 검사를 마친 뒤 합격한 김만 조미 김으로 생산한다. 풀무원에서는 여러 종류의 김을 출시하지만 장흥에서 재배한 무산 김은 ‘장흥 무산 바다섬김’뿐이니 기억해두자. 풀무원은 생산자부터 철저하게 관리하기 위해 수산물 이력제도 실시하고 있어 수산물 이력제 홈페이지(www.fishtrace.go.kr)에 제품에 표시된 번호를 입력하면 생산에서 판매까지 제품의 이력을 조회할 수 있다. ‘장흥 무산 바다섬김’은 조미 김의 산패로 인한 제품 변질을 사전에 예방하기 위해 시중 판매되는 김 중 유통기한이 가장 짧다.

외부에서 유입되는 강물이 거의 없어 맑고 투명한 장흥 회진면 앞바다에 지주식 양식을 위한 마장이 가득 꽂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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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흥 회진면 앞바다에서 지주식으로 양식해 영일수산에서 깨끗하게 가공한 장흥 무산 김을 ‘행복이 가득한 쇼핑’에서 판매합니다.
장흥무산참김 6속(1속 100장), 3만 6천 원, 장흥무산구운김 30봉(1봉 10장), 4만 5천 원,
장흥무산선물세트(참김 2속+무산구운김 20봉), 4만 2천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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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화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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