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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의 고향을 찾아서 거제] 시 쓰는 마음으로 굴 농사를 짓는 중앙씨푸드 장석 대표 바다는 굴을 키우고 사람은 바다를 돌본다
남해안 청정 해역 일번지, 거제도 앞바다가 은빛 물결로 일렁인다. 제철 맞은 굴을 찾아 내려간 거제에서 시심으로 바다에 굴 씨를 심는 장석 대표를 만났다.
남쪽 바다에 자리 잡은 거제도는 외롭지 않다. 육지인 통영과 다리로 연결되어 있으며, 한산도, 외도, 매물도 등 이웃에 많은 섬이 있고, 거센 파도 대신 온화한 물결이 오가기 때문이다. 그중 거제-한산만 해역의 들머리는 미국 식품의약국(FDA)이 인가한 청정 해역 1호 지역으로, 양질의 수산물이 나는 곳으로 유명하다. 이곳에 위치한 중앙씨푸드를 찾아가는 길. 바다로 고개를 돌리니 저 멀리 줄지어 떠 있는 부표가 ‘여기가 굴 밭’임을 알리며 일렁이고 있었다.

문학 청년, 굴과 함께 밝은 사회를 만들다 중앙씨푸드는 청정 해역 1호 지역을 바라보는 어구 마을에 있다. 설치미술품처럼 굴 껍질이 가득 쌓인 해안가 건너편의 소박한 잔디밭, 그 안에 서 있는 세 명의 여인상이 눈에 들어왔다. 이 조형물은 흙을 빚어 굽는 테라코타 작가 한애규 씨의 작품으로 ‘굴 밭의 여인들’이라는 제목이 붙었다. 뜻밖의 예술 작품을 만난 기쁨에 한참을 바라보는데, 중앙씨푸드의 장석 대표가 성큼 걸어와 인사를 건낸다. “어서 오세요. 작품 좋지요? 해를 거듭할수록 점점 더 멋져지네요. 바닷바람이 생명을 불어넣나 봅니다.” 중앙씨푸드에는 담과 대문이 없다. 굳이 따지자면 ‘굴 밭의 여인들’이 대문 구실을 한다고 할까. 담을 쌓지 않은 건 누구든 반갑게 맞이한다는 마음의 표현이다. 실제 바다 향기와 굴 향기에 이끌려 찾아오는 사람이 많고, 중앙씨푸드는 이들을 진심으로 반긴다. ‘자연의 혜택으로 하는 생업인데, 자연과 담을 쌓고 싶지 않다’던 장석 대표의 마음결이 사업장 입구에서부터 따스하게 느껴졌다.

(위) 굴 농사는 깨끗하고 맑은 바다에서만 지을 수 있다. “인간이 자연을 조작하고 착취하는 것이 아니라 가장 친근한 방식으로 만나 자연과 협업하는, 지속 가능한 어업이 굴 농사입니다. 바다는 굴을 키우고, 사람은 바다를 돌보는 일, 그게 전부지요”라는 중앙씨푸드의 장석 대표가 청정 해역 굴 밭 가운데 서 있다.


통영 미륵도 전망대에서 바라본 거제도와 한산도. 청정한 저 바다는 굴을 포함한 양질의 수산물이 많이 생산되는 자연의 보고다.


중앙씨푸드 사옥 앞에서 찾아오는 손님을 반기는 한애규 작가의 테라코타 작품 ‘굴 밭의 여인들’.

경상도의 거친 ‘바다 사나이’를 기대한 건 진부한 착각이었나. 차분하게 이어가는 그의 말과 태도에서 시종일관 자연스러운 배려와 점잖음이 묻어났다. ‘바다에서 일하시는 분 맞나’라는 생각도 잠시, 그의 이력을 보니 중앙씨푸드 대표이사 외에 교육운동가들이 모여 설립한 공동체 대안학교인 이우학교 이사장, 인터넷 언론 매체인 프레시안 이사, 한국문명교류연구소 이사라는 직함도 있었다. 푸르메재단 후원 내용도 눈에 띄었다. 건강하고 밝은 사회를 만드는 데 관심이 많은 그는 재활 전문 병원 건립을 목표로 하는 비영리 공익 재단인 푸르메재단과 협약을 맺어 2006년부터 매년 수익금의 1%를 기부하고 있다. 또 2007년부터는 장애 어린이와 청소년들을 이곳으로 초청해 굴 양식장 견학, 굴 까기 등 다양한 체험과 거제도 여행의 기회도 제공하고 있다.
“굴 농사나 열심히 짓지, 뭐 그리 하는 게 많냐고 하실지도 모르겠어요. 그런데 제 생각은 조금 달라요. 기업의 사회 공헌은 매출이나 사업 규모에 따라 차등을 둘 일이 아닙니다. 작은 회사지만 조금 벌 때부터 시작해야 나중에 많이 벌어도 도울 수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1 하얀 부표가 줄지어 떠 있는 저곳이 청정 해역 1호 구역에 있는 중앙씨푸드의 굴 밭이다. 씨를 뿌리고 거두는 작업이기 때문인지 굴은 ‘양식’보다 ‘농사’라는 말을 많이 쓰고, 양식장을 굴 밭이라 부른다.

부산에서 태어난 장석 대표는 서울대학교 국문과를 졸업했다. 1980년에는 <조선일보> 신춘문예 시 부문에 당선되기도 했다. 본래 문학도였던 그가 1985년 거제로 내려와 굴 사업에 뛰어든 것이다. 아버지를 도우며 시작한 일이지만 서울대 국문과를 졸업한 시인과 굴 사업은 어쩐지 거리감이 있어 보였다.
“시 쓰는 것을 좋아했는데, 제가 학생일 때는 사회 분위기가 많이 어두웠어요. 서정시를 쓸 수 있는 환경이 아니었지요. 인생 경험을 많이 쌓으면 더 잘 쓸 수 있겠다는 생각도 했고요. 마흔이 넘으면 다시 쓰려고 했는데, 계속 미루고 있네요.”
그의 문학적 기질은 사업에도 영향을 미치는지, 회사에 담을 쌓지 않고, 대문 대신 테라코타 작품을 세운 중앙씨푸드는 수산업계에서는 드물게 브랜드 관리에도 심혈을 쏟고 있다. 제품력을 높이는 것은 기본이고, 생산자의 철학을 명확히 표현할 수 있는 제품 패키지와 홈페이지 디자인으로 소비자와 신뢰를 쌓고 있는 것이다.


2 굴 씨가 붙은 가리비를 일정 시간 공기 중에 노출시키면 더 강한 굴로 단련된다.
3 바다에서 거둔 씨가 건강하게 자라도록 위치를 옮겨주는 일. 굴 농사에서 사람의 손은 이때만 필요하다.



4, 5 단련시킨 굴 씨를 깊고 청정한 바다에 넣어주면 굴 스스로 바다의 양분을 먹으며 크고 탐스럽게 영근다.

양식이야 말로 진짜 ‘굴’이다 중앙씨푸드의 역사는 40년 전으로 올라간다. 1960년대 말 그의 부친은 ‘중앙수산’이라는 이름의 회사로 거제도에서 굴 양식을 시작했고, 1974년부터 미국과 일본에 수출하는 등 활발한 사업을 펼쳐왔다. 학교 졸업 후 거제도에 내려와 부친의 뜻을 이어받은 장석 대표는 국내 시장을 활성화하기 위해 중앙수산의 자회사인 ‘중앙씨푸드’를 설립하고 ‘믿고 안심할 수 있는 맛있는 굴’ 생산으로 국내 굴 산업의 선진화와 활성화에 매진해왔다.
중앙씨푸드에서 생산, 가공, 판매하는 굴은 모두 굴 밭에서 기른 양식 굴이다. 중앙씨푸드도 굴 밭을 가지고 있는데 그곳에서 생산한 굴과 청정 해역에 있는 인근의 다른 굴 밭에서 생산한 굴을 수매해 가공, 판매한다. 자연산 굴은 전혀 취급하지 않는다.
“자연산 굴이 좋다고 생각하는 분이 있어요. 하지만 미국 등 몇몇 나라에서는 자연산 굴 섭취가 법으로 금지되어 있습니다. 굴을 포함한 폐류는 모두 오염 물질에 민감하게 반응하는데, 갯벌 가까이 붙어 있는 굴은 바다에서 육지로 밀려나온 오염 물질을 많이 흡수한 굴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 이유로 깨끗한 먼 바다에서 양식한 굴이 더 안전하고 맛도 좋다고 평가되고 있지요.”


1 껍질을 까지 않은 각굴과 껍질이 반쪽만 붙어 있는 반각굴, 굴 까는 칼, 손 보호 장갑, 초고추장과 레몬이 함께 들어 있는 제품. 저 상자 하나만 있으면 별다른 준비 없이 굴 파티를 즐길 수 있다.
2 소독, 정수, 살균 과정을 거친 깨끗한 물에 굴을 담아 봉지만 뜯으면 바로 사용할 수 있는 봉지 굴.



3 신제품 개발에 적극적인 중앙씨푸드는 생굴을 담는 보관수에 레몬과 허브 추출물을 첨가해 더 맛있고 신선한 제품, ‘숨굴 프리미엄’을 출시했다.
4 중앙씨푸드의 굴 선별 및 포장 과정.


굴 농사는 먼저 굴 씨를 받는 것에서 시작한다. 5~8월 산란기가 되면 바닷속을 떠다니던 굴 씨가 바위에 가서 붙는데, 이때 굴 껍질이나 가리비 껍질을 바닷속에 넣어 굴 씨가 붙기를 기다린다. 그다음 가리비에 붙은 굴 씨가 약간 자라면 굴 단련장으로 옮겨 단련을 시킨다. 사람이 운동으로 체력을 단련하는 것과 달리 굴의 단련이란 조수간만의 차를 이용해 매일 일정 시간 동안 공기에 노출시키는 것을 의미한다. 굴 씨를 단련시키면 약한 굴은 스스로 떨어져 나가고 강한 굴만 살아남는데, 이때 단련을 잘 시켜야 1년 뒤까지 건강하게 잘 자란다. 단련을 마친 굴 씨는 먹이가 풍부하고 해류, 온도가 알맞은, 맑고 깨끗한 깊은 바다로 이사를 시킨다. 그곳에서 양껏 키워 굴을 수확하는 것이다.
“인간의 손은 굴이 보다 나은 자연 상태에서 잘 자랄 수 있도록 굴을 옮길 뿐입니다”라는 장석 대표의 설명처럼 굴은 철저하게 자연이 키운다. 땅에서 농사를 짓는 사람들이 유기농 퇴비도 주지 않는, 자연 그대로 키우는 농법을 연구하고 있다더니 굴이야말로 사료, 비료, 농약 등을 전혀 쓰지 않는 친환경 농업이며, 후손에게 자신 있게 전할 수 있는 지속 가능한 어업이었다.


5, 6 굴 라면과 굴 삼겹살. 장석 대표의 추천으로 삼겹살을 구울 때 굴을 같이 올려 살짝 구웠더니 맛이 꽤 잘 어울렸다.

바다가 기른 굴, 과학이 식탁 위로 나른다 바다가 건강하게 키운 굴은 수확 후 식탁 위로 가는 과정 또한 매우 중요하다. 굴은 쉽게 변질되기 때문에 갓 수확한 상태 그대로 유통 및 판매가 이뤄지도록 심혈을 기울여야 하는 것이다. 우리나라 바다를 미국 식품의약국이 청정 해역 1호로 지정, 인가한 것은 미국이나 유럽으로 수출하는 굴의 성장 환경을 관리하기 위해서였다. 마찬가지로 중앙씨푸드의 굴 가공 시설 역시 유럽과 미국에서 인정하는 식품위해요소중점관리기준(HACCP)을 비롯 ISO 9001 품질경영시스템, ISO 14001 환경경영시스템 인증 등 여러 분야의 인증과 등록을 마쳤다.
장석 대표가 운영하는 중앙씨푸드의 굴이 어떤 과정을 거쳐 소비자의 식탁에까지 오르는지 궁금해 공장 견학을 부탁했다. 생산부 고덕열 이사의 안내를 받으며 가벼운 마음으로 나섰는데, 공장에 들어가기 전 위생복 착용부터 각종 세척과 소독까지 10여 가지 위생 관리 시스템을 거치는 데에만 족히 10분은 걸린 듯하다. 중앙씨푸드는 세균은 물론 먼지 한 톨, 날파리 하나도 공장 안으로 들어갈 수 없도록 사람은 물론 이 공장에 출입하는 모든 물건과 자제까지도 철저히 관리한다.
굴 밭에서 채취한 굴은 세척, 껍질 까기, 세척 및 이물질 분리, 포장의 과정을 거쳐 가공하는데 그중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이 물 관리였다. 중앙씨푸드는 수돗물은 물론 해수까지도 냉각, 여과 등을 거친 뒤 사용한다. 특히 봉지 굴 제품에 굴과 함께 들어가는 물은 해수와 담수를 7:3으로 섞어서 사용하는데, 모두 마이크로 필터와 자외선 살균을 거친 뒤 봉지에 담는다. 수질 관리 시스템을 꼼꼼히 살펴보고 있는데, “국내에서 가장 잘나가는 클럽도 우리 회사만큼 철저하게 수질 관리를 하지는 못할 것”이라는 장석 대표의 자부심 섞인 농담이 들렸다. 세척한 굴을 포장하는 일은 모두 일본에서 수입한 기계가 대신한다. 하루 세 번 샘플을 채취해 미생물 및 세균 검사도 실시한다. 자연이 키운 굴이 식탁에 오르기까지, 굴 껍질을 까는 작업 외의 모든 과정을 과학의 힘으로 정확하고 깐깐하게 관리하고 있었다.
식품의 안전성을 위한 시설과 절차는 까다롭고 지나칠수록 좋다. 특히 대량 생산을 하는 요즘에는 식품(What)을 누가(Who), 어디에서(Where), 언제(When), 어떻게(How), 왜(Why, 어떤 마음을 가지고) 재배・생산하는지를 알고 먹는 것이 중요하다. 5W1H. 신문 기자들의 기사 작성에만 해당되는 사항이 아니었다.

‘건강의 고향을 찾아서’는 한국벤처농업대학 설립자이며 농림수산식품부 제1차관으로 재직 중인 농업경제학자 민승규 박사와 함께 기획・구성한 건강의 고향을 찾아 떠나는 여행입니다.

이화선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09년 11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