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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식품 명인]21년 키운 도라지는 나물이 아닌 약으로 먹는다 장생도라지 명인 이성호
때론 선구자처럼, 때론 바보처럼 꿋꿋하게 자연을 거스르지 않고 작품을 짓는 식품 명인 12인. 그들이 구슬땀 흘려 생산한 믿을 수 있는 우리 먹을거리를 소개합니다.

삶의 기로에서 마지막 희망의 줄을 잡고 찾아온 사람들을 많이도 살렸다는 이성호 씨는 한 뿌리에 1kg 이상 나가는 21년생 이상의 도라지를 재배해 고농도로 추출한 액상 제품과 도라지 환, 도라지 분말은 물론 캔디, 술까지 다양한 건강 기능성 제품을 만들고 있다.


이성호 씨는 평생을 도라지 연구에 바쳐온 농사꾼이자 민간 의학자다. “열네 살 때였지, 동네 머슴을 따라 산에 나무를 하러 갔는데, 그 사람은 천식에 결핵까지 심해 쉰이 넘도록 장가도 못 간 처지였어. 그런데 그 머슴이 굵은 도라지를 캐서는 앉은자리에서 칼로 깎아 먹고 낮잠을 자는 거야. 한 시간이 지나도록 깨우다 지쳐 혼자 산을 내려왔지. 집에 와서 어른들께 말씀드리니까 놔두라는 거야. 도라지에 취한 거라고. 사흘째 되었을까? 머슴 집에 갔는데 사람이 들어왔던 흔적이 없는 거라. 놀라서 산에 갔더니 그때까지도 자더라고. 한참을 기다렸더니 한숨 잘 잤다며 일어나. 그러고 한 달 정도 지나니 병이 없어지고 사람이 달라졌지.” ‘오래 묵은 도라지는 산삼보다 낫다’는 옛날이야기가 없는 말이 아님을 눈으로 확인한 이성호 씨는 군 제대 후 나물이 아닌 약이 되는 도라지 농사에 매달려왔다. 올해로 55년째. 3~4년만 지나면 저절로 썩어 없어지는 도라지의 특성 탓에 열심히 심고 가꿔도 굵은 뿌리 하나 캐지 못하는 세월을 15년이나 보냈다. 지리산 깊은 산중으로 들어가 가재 잡고 칡뿌리 캐 먹어가며 도라지 심어 썩혀버린 세월. 죽지 않는 도라지의 비밀은 썩은 도라지를 던져두었던 황토밭 자락에 홀연히 찾아왔다. 거름기라곤 없는 메마른 땅바닥을 뚫고 새순이 돋아났던 것. 도라지는 땅의 기운을 먹고 사는 식물이지 거름기를 먹고 사는 식물이 아니었던 것이다. 척박한 땅만 골라가며 3~4년마다 옮겨 심으니 도라지가 죽지 않고 다시 태어났다. 그렇게 재배한 장생도라지의 약성은 놀라웠는데 그는 지리산 자락인 경남 진주와 사천, 거창, 함양, 하동에 농장을 두고 한 뿌리에 1kg 이상 나가는 21년생 이상의 도라지를 재배해 건강 기능성 제품을 만들고 있다.‘내 한평생 희생해서 아픈 사람에게 도움이 된다면 그것만큼 가치 있는 삶은 없다’는 이성호 씨. 몸이 아프면 약을 먹지 않고 병이 더하기를 기다리다가 장생도라지로 다스리며 스스로 임상실험을 한다는 그는 아직도 팔팔한, 일흔여덟의 청년이다.

이명아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09년 9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