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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물원 가이드 강원도 제1호 식물박물관, 원주허브팜
서울에서 1시간 20분 남짓, ‘허브 농장’이 생겼다는 말을 듣고 한달음에 달려간 원주는 생각보다 가까웠다. 친근한 이름을 듣고 찾아간 그곳에는 허브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1천여 가지 식물을 보고, 체험하고, 그 안에서 쉴 수 있는 ‘식물박물관’, 이것이 원주허브팜의 진정한 이름이다.

1 원주허브팜에서 가장 인기 있는 장소 중 하나인 수련뜰. 이 뜰에만도 약 80가지 수련이 자라고 있다.

오후 4시경, 수련이 잎을 오므리기 시작하는 시간이다. “수련의 수 자를 ‘물 수’라고 아는 분이 많은데 사실은 ‘졸음 수(睡)’예요. 해가 뜨고 지는 시각에 맞춰 잎을 폈다 오므렸다 하거든요. 저쪽에 보시면 올모스트블랙이라는 수련이 있는데 꽃 색깔이 검붉은 게 활짝 피면 정말 장관이죠.” 원주허브팜 차성환 관장이 관람객들을 대동하고 ‘허브팜 투어’를 하는 중이다. 원주허브팜은 문화관광부가 지정한 강원도 최초의 식물박물관. 1만 7000㎡의 땅에 야생화와 자생식물 2백여 가지, 연과 수련을 비롯한 수생식물 3백여 가지, 허브 및 외래식물 3백여 가지, 수목 2백여 가지 등 총 1천여 가지의 식물이 자라고 있다. 단순히 수만 많은 게 아니다. 깽깽이풀, 개병풍, 섬백리향 등 여러 가지 희귀한 멸종 위기 식물도 만날 수 있는 명실공히 식물박물관이다. 그중에서도 수련뜰은 관람객에게 가장 인기 있는 곳. 아쉽게도 수련은 오후보다 오전에 더 아름답다지만, 수련잎이 넓은 수면을 빽빽하게 뒤덮은 광경조차 쉽사리 눈을 뗄 수 없게 만든다.

2 차성환 관장과 아내 정강희 씨. 캠퍼스 커플로 만난 그들은 여전히 이곳에서 일상을 함께한다.
3 수련은 피는 정도가 그날그날 달라 볼 때마다 다른 느낌을 준다.
4 장미뜰 입구. 검붉은 색상의 오클라호마, 크림색에 향기가 좋은 스니왈츠 등 다양한 장미를 만날 수 있다.


화살나무에서 시작한 식물박물관 차성환 관장은 초등학교 3학년 때 ‘화살나무(마치 화살에 달린 날개처럼 줄기에 코르크질의 날개가 달린 나무)’를 처음 본 이래 식물의 매력에 빠져들었다. 대학에서 건축을 전공했지만 그의 식물에 대한 탐구는 계속되었다. 연초가 되면 그해 가봐야 할 식물원 리스트를 뽑아 영국・일본 등 해외 식물원은 물론 크고 작은 국내 식물원까지 쉴 새 없이 둘러보았고, 매년 열리는 영국 정원 박람회인 첼시쇼, 일본의 정원 용품 박람회 등에도 방문해 견문을 넓혔다. 그동안 가보았던 식물원들의 장점만 취하고, 거기에 개인적 취향을 더해 원주허브팜의 마스터플랜을 세웠다. 처음에는 완성까지 7년 정도 걸릴 것이라 예상했지만, 지금의 모습을 갖추기까지 10년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식물도 사람처럼 각자 원하는 것이 다른 탓에 여러 번 실패를 거듭하고 나서야 비로소 각각에 맞는 재배법을 터득하게 되었고, ‘불법 채취는 하지 않는다’는 양보할 수 없는 절대 원칙을 고수하느라 지금처럼 다양한 식물을 수집하기까지 더 오랜 세월이 필요했던 것. 지금도 그는 원주허브팜을 더욱 아름답게 꾸미기 위해 구슬땀을 흘린다. 그와 함께 흙을 만지고, 아침저녁으로 식물의 상태를 기록하며 원주허브팜을 만든 직원들이 10여 명. 어느덧 식물 전문가가 된 그들을 차성환 관장은 ‘진정한 식물학자’라 부른다.

5 원주허브팜을 가로지르는 샘물가에 피어 있는 물매화.
6 허브 잎을 넣어 만든 한지. 체험장에서 직접 만들어볼 수 있다.


동선이 없는 박물관, 원주허브팜 원주허브팜에는 유독 나무 벤치가 많다. 앉아서 쉬다 보면 하늘도 한번 쳐다보게 되고 옆에 난 풀에도 눈길을 주게 되고, 그냥 지나칠 때는 몰랐을 자연의 작은 부분까지 세심히 관찰하게 된다. 차성환 관장이 원한 것이 바로 이런 것이다. “딱딱하게 구획을 정해놓기보다 여러 가지 식물을 섞어서 심는 영국풍의 자연스러운 정원을 좋아해요. 학습하는 곳이 아닌 쉴 수 있는 곳으로 만들고 싶어 동선도 없앴죠. 천천히 자유롭게, 단순히 보는 것이 아니라 느끼는 공간이 됐으면 좋겠어요.” 수련뜰, 허브뜰, 장미뜰 등 10여 개의 테마뜰과 실내 전시뜰, 야생화 동산 등으로 구성된 관람 시설 외에도 원주허브팜에는 다양한 체험 프로그램이 마련되어 있다. 허브 분갈이, 허브 한지 만들기 등을 체험할 수 있고 자연 건조 허브티도 구입할 수 있다. 또 허브 카페의 인기 메뉴인 신선한 루콜라를 올린 화덕 피자는 오후가 되면 동이 날 정도다. 박물관이라는 곳은 보통 한번 보고 나면 다시 갈 필요성을 못 느끼기 쉽다. 하지만 원주허브팜은 다르다. 마치 아침에 폈다가 오후에 오므라드는 수련처럼 계절마다 식물들이 옷을 갈아입고, 시시각각 모습을 달리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올 때마다 다른 기분을 느낄 수 있는 원주허브팜에는 한번 왔다가 단골이 된 사람이 많다. “여기 있는 식물 이름 외우러 오지 말고 자유로운 마음으로 쉬다 가시라”는 차성환 관장의 말처럼, 진정한 휴식이 그리운 사람에게 원주허브팜은 오아시스 같은 곳이 될 것이다.
주소 강원도 원주시 무실동 887-24 문의 033-762-7447, www.wonjuherb.com

서지희 객원 기자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09년 7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