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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도의 풍류를 누리다 징광문화
가을 단풍이 물든 산자락 아래 정자에 앉으니 흐드러진 구절초 너머로 보이는 장독대가 그림처럼 아름답다. 전통 옹기 감상은 물론 잎차 만들기, 차 음식 배우기, 천연 염색 체험 등 다양한 전통문화 체험이 가능한 곳, 징광문화를 찾았다.


1 문화재청에서 한옥의 성공적인 레노베이션 사례로 선정한 ‘징광문화’의 한옥. 남도의 풍류를 누리다
2 야생 잎차와 징광 옹기를 생산하고 다양한 전통문화 체험을 운영하는 ‘징광문화’ 대표 차정금 씨.


전라남도 보성군 벌교읍 징광리에 있는 ‘징광문화’는 전통 옹기와 야생 차밭으로 유명한 문화단지다. 징광문화에 들어서면 산비탈에 비스듬히 누운 가마와 넓은 마당에 옹기가 가득 들어서 있고, 연꽃이 피어 있는 연못 옆으로 정자와 몇 채의 기와집이 어우러져 한 폭의 그림 같다. 주인의 마음결과 정성이 고스란히 배어 있는 구석구석엔 고층 빌딩 숲을 뒤로하고 먼 길 달려 도달했을 때의 기대를 넘치도록 만족시키는 편안하고 안락한 기운이 감돈다.
이곳은 1979년 고 한상훈 선생이 전통 문물의 발굴과 보존을 위해 설립한 곳으로 그는 <뿌리깊은 나무> <샘이 깊은 물> 등을 창간한 고 한창기 선생의 동생이다. 이들은 우리 문화에 대한 사랑이 깊었던 형제로 형은 한국의 멋을 널리 알리는 잡지를 발행했고, 아우는 야생 차와 전통 옹기 등을 제작해 우리 전통문화를 되살리는 데 앞장섰다. 징광문화를 설립한 한상훈 선생이 세상을 떠난 지 9년. 지금은 그의 아내인 차정금 대표가 뒤를 이어 징광문화를 세운 남편의 뜻을 계승, 발전시키고 있다. ‘처음에는 무척 힘들었지만 지금은 이 일을 한다는 것이 행복하고 자랑스럽다’는 차정금 대표가 서울 생활을 모두 정리하고 자녀들과 징광에 내려온 지 6년이다. 남편 그리고 아버지가 생전에 일궈놓은 업적을 온전히 보존하고 발전시키기 위해 이 가족이 가슴에 품은 사명은 ‘전통 문물의 발굴과 보존’ 그리고 ‘자연과 사람의 생명을 소중히 여기는 마음’이다. 이렇듯 징광문화는 자연이 살아야 사람도 살 수 있다는 생각을 바탕으로 전통 옹기 제작과 야생 차 생산은 물론 무공해 상품과 농산물 생산에도 힘쓰고 있다.

야생에서 자란 ‘잎차’의 맛과 향 22만 평에 이르는 금화산의 너른 자락에 징광문화의 야생 차밭인 징광다원이 있다. 해발 269m에 자리 잡은 징광다원은 차 재배지로 완벽한 조건을 갖추고 있다. 토질이 마사토(배수성과 통기성이 좋아 야생초, 분재 등에 많이 쓰이는 흙)와 암반층으로 형성되어 있으며, 낮과 밤의 기온 차가 크고 볕과 바람이 잘 든다. 토종 차나무의 강한 뿌리는 땅속 5m 이상 곧게 뻗어내려 땅속의 영양과 기운을 모두 잎으로 끌어 올린다. 그래서 이곳에서 채취한 찻잎으로 만든 차를 우리면 땅속 깊이만큼 진하고 깊은 맛과 향을 느낄 수 있다.
자연의 생명력이란 인간의 간섭보다 훨씬 강하고 귀한 것이어서 사람이 관리하는 차밭 보다 야생 그대로 자랄 때 더 싱싱하고 건강하다. 이곳의 차나무는 인공적으로 조성한 차밭과 달리 인적이 드믄 산 속에서 화학비료나 농약을 사용하지 않으며 퇴비조차 주지 않기 때문에 사람의 손길을 전혀 타지 않고 자라 국립 농산물 품질 관리 위원회에서 친환경농산물 인증도 받았다.
누가 우리나라 자생 차나무 잎을 우려낸 차를 두고 영어의 그린 티green tea를 그대로 해석한 녹차라 부르기 시작했을까? 징광문화의 차정금 대표는 붉은 빛이 감도는 차를 ‘홍차’로, 초록 빛이 감도는 차를 ‘녹차’로 부르는 것은 일본식 말이라며 녹차라는 단어를 쓰지 않고 모든 차를 ‘잎차’로 부른다.
“찻잎을 고압으로 쪄서 만든 증제차를 우리면 맑은 녹색을 띠는데, 그 차를 두고 녹차라 했겠지요. 우리 전통 방식대로 가마솥에 덖어 만든 덖음차를 우리면 연한 노란빛이 감돕니다.”
자랄 때 사람 손길을 피해 오로지 산이슬과 맑은 공기만 맛보며 자란 찻잎이 차로 완성되기까지는 사람의 손을 일일이 거쳐야 한다. 산기슭 야생 차밭에서 1창2기, 연한 순 하나와 양옆으로 두 잎이 나온 것을 정성껏 골라 딴 다음 400℃의 무쇠솥에 덖고 멍석에 비비기를 아홉 번 거친 전통 제다製茶 방식으로 만들기 때문이다. 기계의 도움을 받지 않고 사람 손으로만 만들기 때문에 차밭의 넓이에 비해 생산량이 많진 않지만 차의 맛과 향이 좋아 차인들은 그 가치를 알아본다.


3 구절초꽃이 한아름 핀 연못 옆 정자. 그곳에 앉아 차 마시고 싶은 생각이 절로 난다.
4 야생에서 자란 찻잎을 채취해 뜨거운 가마솥에 덖고 멍석에 비벼서 만든 징광 잎차.


음식의 멋을 돋우는 징광옹기 징광옹기는 간장, 된장 등을 담아 숙성시키는 ‘마당용 보관 용기’로만 생각하던 옹기를 가정의 식탁 위로 끌어 올리는 데 큰 몫을 하고 있다. “옹기는 그릇만 보면 별로 아름답지 않아요. 김치, 나물, 구이, 전, 밥, 국 등 우리가 자주 먹는 음식을 담아 한 상 차려내면 비로소 음식이 돋보이고 그릇도 아름다워 보이죠.” 차정금 씨가 손수 차린 밥상을 보여주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밥상을 보니 옹기로 만든 보시기, 찬합, 종지 등에 담은 밥, 국, 김치, 나물 등 소박한 차림인데도 절로 군침이 돌 만큼 맛깔스러워 보였다.
“작년 이맘때였어요. 프랑스 르코르동 블루 홍보 책임자와 태국의 대학교수, 미국 CIA 요리전문학교 교수 등 세계 각국의 음식 전문가 20여 명이 이곳을 다녀갔어요. 그때 모든 음식을 옹기에 차려 냈는데, 참석자 모두 백자에 차린 음식보다 훨씬 아름답다고 칭찬하시더군요.”

지난해 한국국제교류재단과 식생활문화학회가 해외 음식전문가들을 대상으로 마련한 ‘한국 음식 워크숍’에서 있었던 일이다. 참가자들은 3박4일의 빠듯한 일정 동안 국내 유명 한정식의 음식을 두루 맛보았는데 이때 마지막으로 방문한 곳이 징광문화였다. 이곳에 오기 전까지만 해도 ‘한국 음식은 가짓수만 많고 막상 먹을 것은 없어 세계화가 어렵다’는 쪽으로 기울던 여론이 징광옹기에 담긴 소박한 밥상을 보고는 ‘한국 음식은 간소한 웰빙 밥상으로 세계적으로 우수한 음식이다’라는 결론으로 바뀌었다고 한다.“사실 그릇보다는 음식 덕이지요. 요리 연구가 박종숙 선생이 우리나라 전통 조리법을 이용한 정갈한 디톡스(해독) 요리를 대접했거든요.” 겸손하게 공을 돌리면서도 그 자리에 징광옹기가 함께했다는 사실에 뿌듯한 표정이다.
징광옹기는 서양식 그릇에 빼앗긴 우리 식탁을 다시 찾기 위해 다양한 크기와 디자인으로 제작한다. 찬기, 보시기, 국그릇, 밥그릇부터 물병, 물컵, 찻잔까지 식탁에서 필요한 모든 그릇을 생산하고 있다. 모두 차정금 씨와 그의 딸이 협력한 작품으로 차정금 씨가 직접 써보면서 느낀 점을 이야기하거나 스케치해서 딸 한나래 씨에게 넘기면 한나래 씨가 실용적이고 아름다운 옹기로 만들어낸다.

(위) 징광문화는 야생잎차, 전통옹기, 천연염색 등 우리 전통 문화를 되살리기 위해 고 한상훈 씨가 전남 벌교읍 징광리에 설립한 전통상품 생산단지다.

건강한 그릇 징광옹기
징광옹기는 1986년 전승공예대전에서 국무총리상을 수상했고, 2006년 아름다운 수공예품으로 ‘유네스코 seal’ 인증을 받아 국제적 문화 상품이 되었다. 그릇 한 점 한 점을 일일이 손으로 만들고 천연 유약을 발라 1230℃에서 굽기 때문에 태토가 속까지 잘 익어 높고 맑은 소리가 난다. 잘 구워진 옹기는 그릇에 담긴 음식의 수분은 완벽하게 감싸면서 공기가 잘 통하기 때문에 음식을 맛있게 숙성시키고 보관할 수 있다. 특히 징광옹기는 징광에서 직접 채취한 오염 없는 깨끗한 유약을 발라 높은 온도에서 굽기 때문에 인체에 유해한 물질을 걱정할 필요가 없다.

절대 고요 속, 신명 나는 전통문화 체험
징광문화에서는 작은 그릇이나 오브제 등을 직접 만들어보는 ‘옹기 흙으로 만들기 체험(1인 1만 원)’, 찻잎을 넣어 만든 수제비와 시루떡을 만들고 시식하는 ‘차 음식 만들기(4인 이상, 1인 1만 원)’, 매실 철에는 매실 따기, 매실청 담그기, 장아찌 만들기 등으로 구성된 ‘매실 따고 담그기(가족 단위 운영, 10kg 4만 원)’, 홍화나 차를 이용한 ‘천연 염색으로 실크 머플러 만들기(20인 이상 단체, 1인 2만 원)’, 5월과 6월엔 찻잎 따기와 차 만들기로 구성된 ‘잎차 만들기(10인 이상, 1인 5만 원)’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즐길 수 있다.
그중 특별한 것은 ‘한옥 관람’. 미리 신청한 사람은 징광다원 옆에 있는 한옥 두 채를 관람할 수 있는데, 이 한옥은 전통 한옥이 아닌 현대 생활에 맞도록 개량한 한옥이라는 점과 서울에 있던 한옥을 옮긴 것이라는 점이 독특하다. 1980년 도로 확장 때문에 철거될 신세에 놓인 한옥을 그대로 옮겨왔다고 한다. 문화재청에서 성공적인 한옥 레노베이션 사례로 지정했을 정도로 잘 지어져 실제로 보면 생활이 불편하고, 관리가 어려울 것이라는 한옥에 대한 모든 편견은 사라진다. 문의 061-857-5064, www.jingkwang.co.kr



이화선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08년 11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